묻지마 품위! 태평육아
2011.12.09 10:09 Edit
항상 인심이 넉넉한 친구가 홍합을 한 박스 보내줬다. 워낙 손이 큰 친구라 사흘 밤낮으로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었다. 당장 홍합을 다듬어서 한 솥 끓였다. 우리 세 식구 원 없이 먹었다. 그 다음날 남은 홍합을 또 삶아 먹었다. 다시는 홍합을 못 먹는다고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을 만큼 질리도록 먹었다. 이제부터 먹는 홍합은 한계효용이 급격히 감소될 것이 뻔 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홍합주간을 선포하고, 친구, 이웃들에게 ‘홍합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우리집 문을 두드리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마침 이웃에 사는 언니가 전화를 했다. 저녁에 술 한 잔 하자는 거였다. 나이스 타이밍! 그럴 줄 알고 우리 집에 기가 막힌 술안주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고 했다. 당장 몇 시간 뒤에 사람들 데리고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홍합을 다듬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홍합 다듬는 일에 열중하다 보니 아차 싶었다. 내 꼬락서니와 집안 꼴을 챙기지 못한 거다. 까칠한 민낯은 기본이고, 며칠째 머리를 못 감아 제대로 떡진 머리. 집안 꼴도 얼굴 사정에 못지 않았다. (나중에 내 떡진 머리를 머리 감아서 그런 줄 알았단다ㅋㅋ) 빨래와 온갖 잡동사니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주방에는 설거지 거리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충이라도 손 쓸 겨를도 없이 벨이 울렸다. 그 상태로 문이 열렸다. 일행 중에는 서로 본 적은 있지만, 우리 집에 처음 오시는 분도 있었다. 밝게 웃고 있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흑흑
얼마 전부터 이렇게 겁(?)을 상실하고 대범한 삶을 살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가 우리 집에 온다고 하면, 그 전날부터 대청소를 하던 나였다. 아무리 급해도 청소기도 한 번 돌리고, 얼굴에 비비크림도 발라서 최소한의 품위(?)는 유지하던 나였다. 그런데, 그 얄팍한 품위조차 점점 바닥나고 있다.
애 낳기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우선, 사람들을 이렇게 빈번히 집에 초대하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늘 깔끔하고 정리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보여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소정의 연출과정이 필요했고, 자주 연출하려면 피곤하니까 그냥 밖에서 ‘쾌적한 환경’을 소비하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전혀 달라졌다. 아이를 데리고 음식점이나 커피숍을 전전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 연출하는 일보다 그 스트레스가 더 고달팠다. 그래서 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제대로 연출하곤 했다. 청소도 제대로, 음식도 제대로 준비하고, 머리도 감고 드라이도 했었다. 애 엄마처럼 푹 퍼져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샌가 준비시간과 연출하는 가짓수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가까운 이웃과 더 자주 더 우발적으로 만나는 까닭에 이제는 아예 평소 모습, 초자연인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생각해보면 삶이란 늘 정리 정돈된 상태가 될 수가 없다. 내가 볼 때는 아예 불가능하다. 그걸 인정하고나니 한동안 유지되었던 가식과 품위는 하나 둘씩 떠나갔다. 그리고 언제, 어떤 순간에도 마음 편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망가져(?) 갔지만, 우리집 문은 항상 열린 상태가 되었다.
가끔 포털 뉴스에 심심치 않게 지나가는 뉴스 중에 하나가 ‘애 엄마 맞아?’ 이다. 애 엄마인데, 처녀처럼 완벽한(?) 몸매, 피부, 화장, 스타일 등등이 유지된다는 의미다. 애 엄마한테 '아줌마'는 욕이고, ‘애 엄마 아닌 거 같아’는 칭찬인 세상이다. 애 엄마가 애 엄마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들이는 수많은 노력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흔을 바라보면서도 가끔 그 이야기가 솔깃한 건 사실이고, 그렇게 관리되거나 그렇게 타고난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긴 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는 거. excuse me!!! 푹 퍼졌다, 망가졌다 소리도 달게 듣겠다. 그냥 생긴 대로 마음이나 편하게 살겠다는 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수도 못하고 파자마차림으로 앉아서 이러고 있는 나를 위한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