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포기한 진짜 이유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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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 간 미국의 국방비가 5천억 달러 정도 감축된다. 미 지상군도 9만 명 정도 감축됩니다. 국방력의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이제 미국은 대규모 지상군을 동원하는 고강도 전쟁을 당분간 수행할 수 없다. 또한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룰 능력도 포기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개의 전쟁을 포기한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방지침이나 펜타곤의 국방예산서에 이 말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미국 언론은 이미 2개의 전쟁 포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뼈아픈 전략적 후퇴로 기록될 것이다. 

2개의 전쟁은 이제껏 미국의 국방력이 지닌 상징이자 표상이었다. 그 의미는 단순히 군사적이지만은 않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주제였다. 

에드워드 기번이 집필한 <로마제국흥망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로마 공화국이 연전연승할 시대에는, 정책과 군사력을 하나의 단일전쟁에 집중하고, 하나의 적을 완전히 압도하지 않으면 제2의 적에 대해서는 전쟁을 도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로원의 정책이었다. 이러한 로마의 ‘하나의 전쟁 원칙’은 아라비아 이슬람 세력에 의해 소심한 정책으로 비판받았고, 로마를 대신한 이슬람의 사라젠 제국 중 오바르가 통치한 10년간은 많은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으로 군사력의 패러다임이 전환된다. 그 10년 간 사라센 족은 3만 6000천개의 도시와 성곽을 함락했고, 이교도 교회와 사찰 4000개를 파괴했으며, 마호메드를 신봉하기 위해 1400개의 모스크를 건립했다.”

동시에 여러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이슬람세력은 로마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대제국 건설로 이어진다. 근대의 유럽도 역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문제에 대하여 과거 로마와 이슬람의 사례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 진다. 유럽이 이슬람에 대해 갖게 된 최초의 충격과 공포는 바로 동시전쟁 수행능력이었다.


 

동시전쟁으로 파멸한 독재자


비스마르크나 나폴레옹 같은 전쟁 지도자들은 하나의 전쟁에 집중하면서 다른 적국은 동맹이나 협정으로 그 위협을 완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동맹, 협력, 봉쇄, 억제, 포위와 같은 다양한 전략들은 전쟁의 우선순위설정과 이를 관리하는 기법의 산물이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패권을 추구하는 유럽의 독재자들은 하나의 전쟁에 집중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우호협력을 맺었던 러시아를 침공하여 동시전쟁 수행체제로 전환하였고 파멸을 맞이했다. 2차 대전 말기에 일본은 중국, 미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동시전쟁 수행체제로 전환하고 나서 파멸을 맞이했다. 동시전쟁 수행능력으로 일거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바로 이슬람 제국의 호전성을 추종한 것이다.

중간급 국가가 동시전쟁을 하면 파멸한다는 사실과 반대로 미국은 2차 대전에서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였고, 모두 승리했다. 여기에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동시에 고강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냉전의 초기에 미국은 유럽에 집중하면서 유사시 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억제한다는 ‘원 플러스 정책’으로 분쟁을 관리하였고, 냉전의 후기와 탈냉전 기에는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윈윈 전략(Win-win)'을 군사력 규모를 결정하는 규범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윈윈 전략은 걸프전 승리로 자신감을 갖게 된 미국이 1993년에 최초로 표방한 이래 미국의 군사력이 세계의 경찰력과 동일시되는 서구의 일반적 관념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개의 전쟁 개념은 많은 반론에 직면했다. 냉전과 탈냉전을 거치면서 미국의 군부는 다양해 진 전쟁양상을 고려하지 못하고 군사력 재편을 미루다가 21세기 초에 9․11테러를 겪었다. 그제 서야 군사력 운용의 큰 방향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도 두 개의 전쟁이라는 기본 패러다임은 고수한 채 단지 군사력의 운용 측면 만 바꾸려고 하였다. 여전히 로마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몇 개의 전쟁이라는 관점에 고착된 결과 변화된 전쟁의 양상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였다. 로마는 하나의 전쟁의 원칙을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천 년 간 제국을 누린데 반해 미국은 한꺼번에 여러 분쟁을 관리하는 경찰력에 과도한 집착을 보인 결과 과도한 군사력 소요, 재정부담의 증가 등으로 국가가 지탱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점점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두 개의 전쟁이라는 개념은 현실에 부합되지도 않을뿐더러 재정적으로도 유리하지 않은 족쇄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문제의 핵심은 전쟁 비용


미국의 전쟁수행능력은 당장의 몇 개의 전쟁을 수행하는 현재의 국방비가 아니라 전쟁이 발발하면 그 전비를 어떻게 조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은 바로 여기에서 실패했다. 2003년에 럼스펠드는 ABC 방송에서 이라크 전쟁 비용이 20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500억 달러면 이라크 전쟁은 끝난다”고 호언장담했다. 같은 시기에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라크 재건비용이 3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현실과는 동 떨어진 주장”이라고 일축하면서 “이라크의 재건비용은 석유를 팔아 충당하면 되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해야 할 재건비용은 17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식 이라크 전쟁비용은 8000억 달러, 아프간 전쟁 비용은 4000억 달러에 달했고, 재건비용은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더욱 치명적인 사실은 초기의 전쟁비용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때문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3년에 향후 10년 간 3800억 달러의 감세를 추진하는 법안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전쟁 중에 감세를 한 유일한 대통령이 바로 조지 부시였다. 이 때문에 몇 년 후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미국의 재정은 치명적 위기에 봉착했고,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전비를 조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두 개의 전쟁이 아니라 한 개의 전쟁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상황은 2020년까지 악화될망정 호전될 기미가 없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2020년까지 미국의 누적 적자는 총 13조 달러, 우리 돈으로 1경5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약에 미국의 경제가 조만간 전비조달 능력을 회복한다면 모르겠으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두 개의 전쟁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이를 반대할 미국 내 여론이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프랑스와 네덜란드로부터 돈을 빌려 전비를 조달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국내에서 국민을 상대로 발행한 국채로 수행했다. 승리채권, 자유채권이라고 불리는 전비조달 채권이 애국운동과 결부되어 마구마구 팔려나갔다. 이로 인해 1차 대전은 전비의 3분의 1, 2차 대전은 전비의 2분의 1을 국채로 충당했다. 오직 한국전쟁만 빚 없이 재정으로만 수행된 전쟁이었으나 그로 인한 전비부담은 현재가치로 약6000억 달러(당시 580억 달러)에 달했고, 재정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때문에 투르먼 대통령은 서둘러 휴전협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고, 뒤이어 재정적으로 보수주의자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서둘러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베트남 전쟁을 포기하고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병력을 철수시킨 것도 걷잡을 수 없는 재정적자 때문이었다. 재정이 왜곡되면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의 전쟁도 안 한다는 것이고, 이 점은 91년의 걸프전에서도 드러났다. 걸프전 비용 총 680억 달러 중 미국의 동맹국들은 480억 달러를 부담하여 미국은 재정적 부담 없이 전쟁을 치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간 전은 유엔 결의가 없이 미국이 단독으로 결심한 전쟁이기 때문에 막대한  전비와 재건비용을 미국이 혼자 부담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미국이 처한 끔찍한 상황이라면 현재 미국은 어떤 전쟁도 수행하기 어렵다.


돈 빌려 전쟁하는 나라


역설적으로 미국이 2차 대전에서 두 개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은 대공항으로 인한 800만 명의 실업자와 유휴화 된 50%의 산업시설 때문이었다. 대량의 실업자는 병력을 충원하는데 좋은 조건이 되었고, 유휴 산업은 전시 군수공장으로 동원하는데 최적의 조건이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불황인 경제가 완전고용을 달성하였고, 이 때문에 높아진 세수를 바탕으로 전쟁이 끝나고 채권을 바로 상환함으로써 미국은 높은 신용을 유지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슈퍼 파워가 된 비결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상황은 전비도 조달할 수 없고, 동원할 병력과 산업이 없다. 전쟁을 이기는 배경이 되는 핵심 세 가지, 즉 높은 세수 증대, 국채 발행 능력, 대규모 무기생산능력이 와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국방력 유지를 위해 더 세금을 거둘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럴 형편이 안 되고, 9조 달러의 국채는 외국이 절반을 매입했는데 그 중 가장 큰 매입자가 중국이다. 중국으로부터 돈 빌려서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이렇게 되면 당분간 두 개의 전쟁이라는 성역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두 개의 전쟁이라는 이제껏 관념이 허구적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오바마의 유일한 문제점은 이를 너무 솔직하게 말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말하지 않은 것은 미국이 독립전쟁 이래 처음으로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80년대 말의 레이건 대통령 시기와 같이 미국의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9․11테러가 발생하였다면 과연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결심할 수 있었겠는가? 그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전쟁을 결심한 시기는 높은 세수를 바탕으로 한 건전한 재정, 인플레이션에 대한 성공적 관리가 이루어진 상황에서였다. 만일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전쟁을 하게 되면 미 국민들의 복지가 희생된다. 즉 복지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전쟁으로 자국민이 고통을 감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2차 대전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파탄시켰고, 한국전쟁은 투르먼 대통령의 페어딜 정책을 파탄시켰으며, 베트남 전쟁은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정책을 파탄시켰다는 식이다. 미국의 열악한 의료보장, 교육, 빈민구제 프로그램은 바로 미국이 국방비와 전쟁비용 때문이라는 피해의식도 있다. 이 때문에 파네타 미 국방장관은 작년 11월에 할리팩스 연설에서 “앞으로 안보에 무임승차하는 동맹국은 없다”며 돈을 지불하지 않는 동맹은 동맹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한국에서 또다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다면 약 3000억불의 직접적인 전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 중 600억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부담해야 할 600억 달러는 북한의 군사력 규모와 전쟁 이후 안정화 작전까지 고려한다면 매우 낙관적인 수치이다. 그러면 최소한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약 3000억 달러를 부담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상황은 이를 뒷받침할 수 없으며, 한미동맹 만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불가능해 진다. 그렇다면 유엔의 결의에 의한 다국적군이 편성되고, 전 세계가 전비를 부담하는 91년의 걸프전과 같은 전비부담 체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단지 한미동맹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외교를 다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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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