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덟명 시댁 식구, 1박 2일 손님 치르기 생생육아
2011.11.01 15:03 raimondaa Edit
신혼초에 시댁 식구를 초대하여 집들이를 했었다.
결혼하고 양가 식구들 초대해서 집들이를 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하루 와서 밥 한끼 같이 먹고
헤어지는 친정 식구들과는 달리 시댁은 강릉인데다 3형제중 첫째는 구미에 막내는 춘천에 살고 있다보니
집들이는 기본이 1박 2일 이었다.
그때만해도 직장에 다니고 있던 나는 늦은 나이까지 사회생활 하느라 살림을 제대로 해 본 일이 없어
시댁 식구들과 1박 2일로 집들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숨 막힐만큼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시부모님에 형님네 식구 다섯, 동서네 식구 네명만 계산해도 많은데 어머님은 아들이 없어 며느리
효도를 받을 일이 없다는 큰 이모님과 그 이모님의 둘째딸 가족까지 대동하고 오셨던 것이다.
어렵고 서먹한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초보 살림꾼인 나는 근 한달간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요리책을 보고 메뉴를 정하고 미리 연습해보며 집들이를 준비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열 다섯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덮고 잘 이부자리를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결혼할때 혼수중에 이불은 비교적 간단하게 장만했었다. 침대를 쓰니까 침대용 침구와
손님용으로 한 채 준비한게 다 였는데 1박 2일 집들이를 하려고 하니 당장 이부자리부터 새로 사야 했다.
신혼 부부만 사는 단출한 신혼집 장농을 손님에게 내어 드릴 이불로 꽉 꽉 채우고나서 집들이를 해야 했으니
정말 거창한 행사였다.
시댁 식구들과의 1박 2일 행사는 그 후로 여러번 있었다. 아이들 낳을때마다 돌잔치를 1박 1일로 치루었고
이사하고 집 옮길때마다 또 집들이를 그렇게 치루었으니 결혼 9년 동안 대 여섯 번은 된 모양이다.
처음엔 몸살을 앓을만큼 힘들고 오래 오래 마음고생을 했었지만 어떤 일이든지 여러번 하다보면
익숙해 지는 법이다. 그리하야 이번엔 총 스물세명을 뒷바라지 하며 1박 2일 잔치를 우리집에서 또 열었다.
계기는 서울에서 살고 계시는 시 이모님의 환갑이었다.
40대에 청상이 되신 이모님은 슬하에 딸 하나만 두었는데 아직 출가를 안 한 딸이라 다른 자손이 없었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 7년 동안을 그 이모님 댁에서 함께 살아서 정이 각별했다.
평소에도 생신이나 명절이면 꼭 찾아뵙는 분인에 이번에 환갑을 맞게 되셨다.
구미에 사시는 형님과 동서가 음식을 조금씩 장만해서 찾아 뵌다는 것을 내가 나서서
우리집에서 하자고 했다.
집도 넓고 마당도 넓으니 바비큐 파티로 하면서 오랜만에 식구들끼리 여유있게 회포를 풀자고 나섰다.
시부모님과 이모님, 형님과 동서도 내가 너무 힘들다고 만류했지만 그 많은 식구들이
좁은 이모님댁에서 모여 하는 것도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고, 나가서 사 먹는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텐데 우리집에서 하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남편도 아들도 없이 고생하며 살아오신 이모님께 훈훈한 환갑 잔치를 마련해 드리고 싶기도 했고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온 후 시댁 식구들과는 한번도 바비큐 파티를 해 본 일이 없어
겸사 겸사 마련한 자리였다.
그러나 일을 벌이고 보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1월에 이사하고 일주일만에 집들이를 한 후로 시부모님은 무려 아홉달 만에 우리집에 오시는 건데
집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게 도리이리것 같아서 근 일주일을 폭풍 청소를 했다.
1층 2층을 모두 치우고 정리하고 쓸고 닦는 일을 허리가 부러지도록 힘들었다. 집 주변 청소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 식구까지 총 스물 세명이 먹을 밑반찬을 준비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그 식구들 다 깔고 잘 눅눅한 이부자리 미리 세탁하고 챙기는 일도 큰 일이었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강릉에 사시는 시부모님, 주문진에 사시는 큰 이모님네, 구미에 사시는 형님가족
대전에 사는 동서네 가족, 그리고 서울에 사는 막내 이모님 가족과 큰 이모님네 둘째 딸 가족까지
모두 우리집에 모였다.
마당에 불을 피워 고기와 해물을 구워 먹고 젊은 사람들은 밤 늦도록 불가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오랜만에 만난 어머님의 자매 세 분은 거실에 펴 놓은 이부자리에 누워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셨다.
윗 밭에서 키운 알찬 열무를 몽땅 캐서 오신 분들 차에 실어 드렸고, 주렁 주렁 열림 감도
함께 따서 보내 드렸다. 헤어지기 전에 마당의 벤취에 앉아 결혼하고 처음으로 제대로된
가족 사진도 찍어 보았다.
몸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모두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훈훈했다.
신혼초였다면 이런 잔치를 우리집에서 하자는 얘기만 들어도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겠지만
이젠 친정 언니와 여동생을 끔찍히 챙기는 어머님의 모습에서도 내 모습을 볼 수 있고
어려웠던 형님과 불편했던 동서에게도 함께 나이들어가는 연민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결혼 9년의 세월이 이런 편안함과 넉넉한 마음을 내게 선물한 것이다.
시댁 식구들은 모두 내게 애썼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시며 총총히 돌아가셨다.
서로 사는 일이 바쁘고 고단해서 자주 한 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워지지만 그럴수록
서로에게 더 기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집에 언제까지 살수있을지 모르지만 이 집에서 사는 동안은 언제라도
내 집에 많은 식구들이 편하게 머물고 즐겁게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 일을 잘 치루어내고 그럭저럭 몸살 안나고 견디고 있는 나도 대견하다.
이제 나를 좀 돌보면서 내게 좋은 선물도 안겨줘야지..
이번엔 스물세명이었는데 내 1박 2일 손님 치르기의 최고 기록은 어디일까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