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산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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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결혼 11년째 들어선 내 살림을 표현하는데 딱 맞는 구절이다.

퍽이나 단출한 혼수를 해 와서 살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남편이나 나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다보니 혼자 살면서 조금씩 장만했었던 물건들도 많아서

혼수는 아주 간소하게 했었다.

처녀적에 '헬렌 니어링'의 소박하고 건강한 삶을 동경했던 나는 내 삶도 그처럼 간소하고

정갈하게 이루어지길 소망했었다. 소파 하나 없이 딱 필요한 것만 갖춘 신혼살림이 좋았다.

작지만 물건들이 적어서 넓게 느껴지던 신혼집이었다.

 

내 살림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 건 결혼 1년만에 첫 아이를 낳고 부터다.

애한테 필요한 물건들이 하나 둘 씩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살림은 금새 불었다.

돈 주고 산 건 얼마 없었지만 먼저 애 키운 친구들이며 친지들이 물려준 것들로

작은 집은 비좁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른 일곱에 가정을 이룬 남편은 형제중에도 친구들 중에도 결혼이 늦은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형제들과 친구들에겐 이제 쓰임이 다한 육아용품이 다 우리집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나 둘 생겨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뭉텅 뭉텅 들어왔다.

특히 어린애들 전집을 샀다가 애들이 다 커서 곤란해 하던 친구 하나는 한번에 백권도 넘는

책을 보내주기도 했다. 돈주고 사면 비싼 것들이라 고맙게 받기 시작했는데 정리하기 바쁘게

또 보내주곤 했다. 전생에 무슨 복을 쌓아서 이렇게 재물이 몰려드나 고민할 사이도 없이

집은 어린 애가 어지르고 다니는 물건들로 꽉 차버렸다.

두 아들 키울때 큰 집에서 살던 쌍둥이 언니는 유치원 마당에 있어야 어울릴 법 한 큰 미끄럼틀까지

내게 보내 주었다. 애는 기절하게 좋아했지만 마루는 꼬딱지만하게 좁아 졌다.

 

여기에 또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남편이다.

평생 동전 하나도 허투르 쓰지 않고 아끼고 아껴 재산을 이루신 부모님의 가풍속에서 자라난 남편은

버리는 법이 없었다. 도무지 쓸 데가 없는 것 같은 물건들도 '놔두면 다 쓰게 돼' 한마디면 끝이었다.

심지어는 선물 받은 종이 상자가 좋다고 챙기고, 포장지도 잘 두면 또 쓴다고 하면서 챙기는 식이었다.

물건들이 귀하던 시절에야 그런 것들이 요긴하게 쓰이지만 요즘엔 어디 그런가.

상자야 그렇다 치는데 젊은 시절에 입던 옷들은 왜 그렇게 또 많던지..

결혼할때 신랑은 몸무게가 70킬로를 훨씬 넘는 상태였는데 옷장속에는 예전에 50킬로 였을때 입던

고가의 청바지도 들어있었다. 버리자고, 기증하자고 사정을 해도 언젠가 살 빼서 다 입을 옷들이란다.

옛날 옷도 다 가지고 있고, 체중 느는 대로 새 옷도 사다보니 옷장은 더 이상 수납이 불가능했다.

우린 대형 헹거를 사서 나머지 옷들을 걸었다. 이런식으로 하다보니 그나마 좁은 집에 방 하나가

옷으로 꽉 차 있었다.

 

3년을 참다가 일을 저질렀다.

물건이 느는대로 수납 할 가구를 사는 것은 더 이상 하지 말자고 선언을 했다. 새 물건 하나 들어오면

옛 물건 하나씩 처분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남편을 설득했다.

그 해 우린 집안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서 대대적인 물건 방출을 감행했다.

남편의 오래된 옷들이며 내 처녀적 옷들도 과감하게 정리했다. 1년 넘게 쌓아둔 많은 물건들도 치웠다.

불필요한 옷들을 정리하고 나니 옷장 하나로 충분히 수납이 되어서 새로 산 대형 헹거는 큰 언니네로

보내기까지 했다. 집안은 다시 쾌작해 졌고 이렇게 가끔 온 집안을 말끔히 정리하는 맛도 좋구나

하며 만족해 했다.

 

그러는 사이 둘째가 태어났고 우린 좀 더 넓은 집을 얻었다. 나는 두 애들 건사하느라 다시 바빠졌고

아들에 이어 딸을 낳으니 여자애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새 살림들이 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운동장같이 넓게 느껴지던 집이 다시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애들 옷을 새로 사 주지 않고 얻어 입히다 보니 누가 물려준다고 하면 큰 옷들도 가리지 않고 받아서

쌓아두곤 했는데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짐이 되었다. 이 와중에 이웃집에서 내 놓은 대형 가죽 소파를

냉큼 주워 왔다.

 

셋째를 낳고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오자 살림은 걷잡을 수 없이 늘기 시작했다.

농사도 시작하고 남편이 목공을 시작하니 필요한 공구들이 제일 먼저 늘기 시작했다.

다른 형제들이 새로 사거나 처치 곤란한 살림들을 '니네 집은 넓으니까..'하며 우리에게

넘기곤 했다. 개 두마리에 닭 여덟 마리 사료들은 현관 마루 절반을 차지해 버렸다.

아파트 살때 남편이 야침차게 장만하기 시작하던 캥핑 용품들이며 집 공사 하고 남은 자재들이며

2층은 아예 거대한 창고로 변해 버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새 집이 주는 새로운 일거리에 치어 정리며 처분은

엄두도 못 내고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막내가 세 돐을 넘긴 올 봄.. 나는 큰 집에 가득찬 살림들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대대적인 중간 정리를 할 때가 되었구나.

이제 아이들도 어느정도 손을 덜 타고 말귀도 알아들으니 슬슬 시작해야 하겠다.

2층에 아직도 쌓여 있는 신생아 용품이며 (혹시 혹시 하며 지금껏 버리지 못했다.ㅠㅠ)

주는 대로 다 받아 놓았던 애들 옷가지들도 정리하고 결혼 생활 내내 창고에만 있던

물건들도 처분 대상이다. 신형 제품을 사며 처박아 두었던 구형 가전 제품들이며

무엇보다 애들이 못 버리게 해서 남겨 두었던 온갖 잡동사니 장난감들도 치울 생각이다.

그래도 여전히 짐은 많겠지만 이번만은 정말 과감하게 정리해야지.

 

소박하고 간소하게 살고자 했지만 넘쳐나는 물건들 정리하고 치우느라 늘 고단한

어리석은 내 일상에 여유를 들여 놓고 싶다.

남편은 출장가고 큰 아들은 학교에 간 지금이 적기다.

 

잘 버리는 것 또한 살림의 큰 지혜인 법..

 

이제 나는 버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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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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