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싸우고, 종일 놀고.. 세 아이와 보낸 겨울 방학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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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를 다니는 큰 아이의 겨울 방학은 꼬박 두 달이다.

일반학교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정도다.

그 두달 내내 세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지 상상해보라.

큰 아이에게 저 혼자 사촌 집에서 며칠 자고 온다던가, 친구집에서 하루 자고 오는 일 따위는

아직 상상할 수 도 없다. 11살이 되자마자 제 방에서 잔다고 호기롭게 선언하길래

드디어 잠자리 독립을 하는구나.. 감격에 겨워 베이비 트리 지면을 통해 전국민에게

자랑을 했더니만 고작 일 주일 따로 자고 다시 내 옆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야말로 하루 종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박물관이다, 아쿠아리움이다 하며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애 셋 데리고 길 나서면 다 돈이라 너무 자주 할 수 는 없었다. 물론 몸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주로는 집에서 지내는 날이었다.

눈이 많이 오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 동안 아이들은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눈길을 걸어 시내고 다녀오고 했지만 눈도 너무 잦고, 날도 계속 추우니 결국엔

집에서 노는 시간이 제일 많았다.

 

오전 아홉시쯤 눈을 뜨면 큰 아이는 제일 먼저 이렇게 묻는다.

'엄마, 오늘 아침 메뉴는 뭐예요? 맛있는거 먹고 싶어요!'

아아.. 이 말이 정말 제일 스트레스다.

종일 세 아이를 먹여야 한다는 이 어마어마한 부담감.. 게다가 수시로 맛있는 것을 내놓으라니..

나도 아침에 눈 뜨면 맛있는거 내놓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는 것을

애들은 지치지도 않고 체력부실한 엄마에게 '맛있는 거'를 요구한다.

 

반찬이라는게 매 끼니 새로 할 수 없고, 아침에 먹고 남으면 점심이나 저녁에도 내 놓게 되는 것인데

두 번만 내 놓으면 '또 이거야!!' 불평이다. 세 끼 밥만으로도 힘든데 거기에 한창 먹을 나이가 된 큰 아이는

간식 타령도 엄청나다. 마늘빵도 만들고, 핫케익도 굽고, 떡볶기도 하고, 과일이며 빵도 사 나르지만

금방 금방 동이 난다. 조금 있으면 둘째와 셋째도 본격적으로 먹어댈텐데 정말 식비 들어가는게 무섭다.

40대 중반으로 들어선 엄마는 게을러지고 귀찮아져서 꾀만 느는데, 아이들은 힘만 늘어나니 이런 네 사람이

집에서 함께 지내는 일은 종일 큰 소리가 나고, 누군가는 울고, 서로 싸우고, 그러다 또 깔깔 거리고 웃고

다시 어울려 노는 것의 반복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아파트단지라면 같은 동에 사는 친구들과 수시로 어울려 놀겠지만 마을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번씩만 지나가는 우리집에선 필규 친구들과 어울릴래도 누군가 데려다 주고, 데리러 와야 하다보니

친구들과 맘 놓고 노는 일도 어렵다. 그래서 큰 아이는 방학 내내 두 여동생들과 제일 많이 놀았다.

열 한살 사내아이와 일곱살, 네살 여자아이가 함께 노는 일이란 한바탕 신나게 어울리다가 둘째나 셋째가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달려오는 일의 연속이다. 어린 동생들 사정을 들어주면 큰 아이도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바빠서 컴퓨터 앞에라도 앉아 있으면 방에서 셋이서 싸우고 고함지르는 소리가

집안을 울린다. 종일 세 아이 사이를 중재하고, 설명하고, 위로하고, 야단치고, 달래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다.

 

베이비트리에 '허태욱, 차상진'님이 '아이들 싸움 중재하는 법'을 2회에 걸쳐 연재하신것을 열심히 읽긴 했다.

그러나 내가 바쁘고, 힘들때 세 녀석이 악다구니로 싸우고 있으면 정말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나는 안 된다. 아아.. 부끄럽지만 나는 정말 어렵다.

힘도 머리 쓰는 것도 월등한 큰 녀석은 두 여동생들을 제가 원하는 대로 이끌면서 놀다가 툭하면 울리기 일쑤인데

늘 어린 동생들이 당하다보니 큰 녀석의 마음을 공감해주는게 안된다. 게다가 제 성에 차게 뛰고 달리며

놀다보면 따라가지 못하는 여동생들이 넘어지거나, 가구에 부딛치거나 하는 일이 잦다. 곁에서 일하며 지켜보면

정말 '조심해'. '뛰지마', '다치겠다!', '그만해!'소리의 연속이다. 그러다가 막내라도 넘어지면 타박은 온통 큰애하게

가기 마련이다. 그러면 큰애는 저만 미워한다고 펄펄 뛴다. 큰 애가 원하는 것은 엄마가 제 성에 차게 놀아주는 것인데

나도 힘들다. 애써 한 10분 정도 뛰면서 놀아주면 큰 애는 그때부터 슬슬 탄력받기 시작할때 나는 체력이 바닥난다.

그러니 늘 해준다고 애써도 원망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좋을 때도 많다.

어찌되었건 친구보다도 동생들과 더 많이 놀며 자라는 큰 아이는 턱없이 유치한 일들로 내게 반항하면서도

가끔은 놀랄만큼 어린 동생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챙겨줄때도 있다. 큰 아이와 막내 사이에서 제일 많이 치이는

둘째는 제 나이보다 훨씬 깊은 이해와 사려깊은 행동을 보여 뭉클하게 할 때가 많다.

큰 오빠가 어린 동생들과 함께 레고놀이를 하면서 한참을 깔깔거리며 재미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래도 서로 함께 보낸 시간이 우리를 이렇게 서로에게 깊게 연결시킨거려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아들의 방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2월말에 개학을 하면 아들은 다시 종일 학교에서 살다가 저녁에야 집에 올 것이다.

둘째는 발레에 이어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고, 바우쳐를 이용한 한글 학습지도

시작하게 되었다. 넷이서 찐하게 서로 얽혀 지내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그래도 계절은 봄으로 가고 있고, 길고 추웠던 방학동안 큰 아이도  여동생들도 크게 아픈 일 없이  키가 쑤욱 자랐으니

고마울 밖에..

 

봄이 오고 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날들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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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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