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부려먹기.. 생각보다 힘들구나.. 생생육아

세아이 2.jpg

 

'닭장에 쌀겨 좀 뿌려야 하는데 엄마 좀  도와줘'

 

늦은 밥상을 물린 일요일 정오무렵 집안일 좀 하자고 세 아이를 불렀다.
여섯 살, 세 살 두 딸은 '네!' 신나서 일어서는데 정작 열 살 큰 아이는 '에이..' 하며 시큰둥이다.
날도 추운데 그냥 따듯한 집에서 뒹굴거리며 책이나 보고 레고나 맞추고 싶은 것이다.
남편은 모처럼 낮잠에 빠져있는 집에서 일  하자고 세 아이를 꼬셔내는 일은 쉽지 않다.
두 딸은 언제나 오케이지만 사실 큰 도움이 안 되고, 제일 도움이 되는 큰 아이는
머리가 굵어져서 조금이라도 귀찮거나 힘들것 같으면 요리조리 핑계를 대어 안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떠나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와서 개와 닭을 키우고 텃밭 농사를 시작했을때는
나름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밭도 일구고, 개와 닭도 돌보고, 집도 손 보는 그런 나날을 기대한 것이다.
아파트와 달리 새 집엔 일거리가 넘쳐날게 뻔하니 아이들과 함께 할 일도 많을 것이었다.
특히 한창 키도 크고 체력도 좋아지는 아들에게 큰 기대가 있었다.
아빠와 망치질도 하고 농사일도 거들겠지. 가축들도 돌보고 이런 저런 집안일에 큰 도움이
될꺼야.

 

그러나 내 기대는 금방 깨졌다.

새 집이 다양한 경험을 안겨주긴 했지만 새로운 것들이 안겨주는 짜릿함이 사라지고 나자
큰 아이는 바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 해를 날때는 그래도 신이 나 있었다.
밭을 가는 것도 처음이고, 종자를 심는 것도 처음이니 뭐든지 제가 하겠다고 나섰다.
풀도 뽑고, 감자도 캐고, 앵두도 따고, 닭들에게 사료와 물을 주는 것도 제가 하겠다고
야단이었다.
처음으로 밤을 털때도 커다란 장대를 휘두르며 힘을 쓰고, 개들이 어릴때는 동생들과
경쟁해가며 밥을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주곤 했다. 도끼로 장작을 쪼개는 일도 제가
하겠다고 나서 남편이 말리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큰 놈이 집안일에 이렇게만 관심을 갖고
도와주면 이 집에서 사는 것도 수월하겠구나... 미리 단꿈을 꾸기도 했건만..
큰 아이는 제가 흥미를 느낄만큼 해보고 난 후에는 모든 것을 '귀찮은 일'로 정해 버렸다.

 

아파트에 살 때야 밤줍는 체험이 신기하고 색다르니 재미나서 따라 나섰지만
가을이 되면 매일 매일 밤을 줍고 털어야 하는 집에서 살게 되니 이젠 밤  터는 일이
재미가 아닌 노동이 되 버린 것이다.
어쩌나 나들이처럼 가는 시골에서 한 두번 풀을 뽑는 일이야 놀이로 여길 수 있지만
뽑아도 뽑아도 넘쳐나는 풀들로 둘러싸인 집에서는 풀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어지는
모양이었다.
닭장에 들어가 알을 꺼내오는 일도, 개들 밥과 물 챙겨주는 일도, 똥 치우는 일도
장작을 나르고 난로에서 재를 긁어내는 일도 이젠 모두 지겨워진 눈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말만 되면 마음껏 뒹굴고 놀고 싶어하는 아이와
어떻게든 꼬드기고 야단쳐서 일을 시키고 싶은 엄마 사이에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진다.

 

처음엔 역할을 나누어 맡기도 했지만 툭하면 변수가 생기는데다 어쩌다 동생들이
제 역할을 까먹기라도 하면 저 혼자 하는게 억울하다고 펄펄 뛰는 통에 잘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두 여동생은 나이가 어려서 늘 쉬운 것을 맡고
저만 제일 힘든 일을 한다고 늘 불평이어서 일 하나 시키려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도 '일'이 되곤 한다.
옛날엔 애를 많이 나으면 그만큼 일꾼이 늘어나는 일이었지만
시대가 변하고보니 애들을 부려먹는 일도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버린 것이다.

 

용돈으로 구슬러보기도 하고, 그처럼 목메는 게임을 당근으로 써가며 일을
시키기도 하지만 당연히 도와야 할 일을 보상한다는 것이 잘 하는 일 같지 않아서
결국 큰 소리 나기 십상이다.
애들은 셋이나 되는데 제일 어리고 그나마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
막내는 뭐든지 제가 하겠다고 나서고, 여섯 살 둘째는 늘 앞장서주지만
도움 받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데 제일 힘이 되주어야 하는 큰 아이는
잔꾀를 쓰니 아이고... 애들 부려먹으려다 나만 더 힘든 꼴이 되곤 한다.

 

그래도 바쁘고 힘들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시골살이라서
나는 또 힘을 내어 머리를 살살 굴리고 목소리를 높여 아이들을 찾는다.
저질체력을 끌어 올려 아이들이 좋아하는 '좀비놀이'를 해 주고, 맛난
음식도 해 줘가면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다.
가끔은 큰 소리도 나지만 그래도 애들은 애들인지라 저희들끼리 신명이나면
내 부탁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주기도 하고, 이런 집에서 살려면 가족 모두가
제가 맡은 몫을 해 내야 한다는 것을 더디게나마 깨닫고 있는 눈치니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내가 더 많이 움직여야 하지만 아무리 게으름과 잔꾀를 부려도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내는 아이들인것만은 틀림없다.

 

이날도 세 아이들과 힘을 합쳐 작은 수레를 끌고 우리 동네에 있는 쌀 껍질
벗기는 기계 옆에 수북히 쌓여 있는 쌀겨와 현미에서 벗겨낸 쌀가루를
듬뿍 실어다가 닭장에 뿌려 주었다. 나와 두 여동생이 쌀겨를 실어오면
큰 아이가 닭장에 들어가 골고루 뿌려 주었다.
모두 힘을 합해 일을 하고 난 후에는 모처럼 아이들에게 짜장면을
시켜 주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다음번에도 하겠단다.
짜장면 다 먹고 난 다음엔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아직은
짜장면 한 그릇에 힘이 번쩍 나는 귀여운 녀석들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제멋대로고, 내 맘 대로도 안되고, 한 번 부려먹으려면 내가 더 힘들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일꾼들을 쓰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본격적인 겨울나기를 하려면 손봐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아이들과 또 어떻게 이 일들을 함께 할지..

엄마인 나는 이래저래 흰머리와 잔머리가 함께 느는구나... 어흑..

Leave Comments


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Recen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