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에 응급실, 주인공은 나!!! 생생육아

내 발.jpg

 

유리로 발을 베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8월 6일 부터 3박 4일간 홍천으로 캠프를 떠나는 아들 녀석의 도시락 준비를 하느라 밤 늦게

주방에서 일을 하고  마지막으로냉장고에 반찬그릇을 넣는 참이었다.

날이 더워서 모든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보관하다보니 넣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균형이 잘 맞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비스듬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찰라 반찬그릇이

 미끄러지면서 발등을  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차.. 싶었을땐 이미 바닥은 쏟아져나온 멸치볶음과 유리조각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일단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비켜서서 유리조각들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눈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흩어진 멸치들 사이로 붉은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네. 국물 흐를것이 없는데..' 생각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몸을 숙였더니

 붉은 물은 내 발 바닥 아래에도 고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깜짝놀라 살펴 보았더니

붉은 물이라고 했던 것은 내 발에서 솟고  있는 피였다.
복숭아뼈 위쪽으로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피가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무서운 생각이

왈칵 솟았다. 그때까지 나는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남편을 부르고 한쪽으로 나와 앉아 우선 키친타올로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유리로 된 반찬 그릇이 바닥에 부딛치면서 큰 조각 하나가

발위를 지나간 것일까. 이렇게 깊은 상처가 나다니...

 

침착한 남편은 재빨리 어수선한 부엌바닥을 정리하고 내 상처를 살펴 보았다.

고맙게도 질책은 하지 않았다.
시간은 밤 열시 반.. 두 아이들은 거의 잠자리에 들었고 큰 아이만 올림픽 중계를 보느라

 이불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상처에선 피가 계속 배어 나왔다. 어떻게 해야하나... 지혈만 하고 있으면 괜찮을까...

 병원에 가야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결론은 뻔했다. 상처를 이 상태로 둘 수 가 없었다.
그런데 남편하고 병원에 가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마악 잠든 막내까지 깨워서

데려갈 수 는 없었고  필규는 다음날 힘든 캠프를 떠나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근처에 살고 있는 필규 학교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필규와 같은 학년인 막내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차를 몰로 바로 달려와 주었다.

이룸이가 자다가 깰 수 도 있으니 우리 남편이 집에 있고 자기들과 함께병원에

가자는 것이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가 있을까.

산본 시내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10년간 세 아이 낳아 기르면서 응급실에서 벌벌 떨었던 기억은 없다.

딱 두번 응급실 신세를 지긴 했지만 경험없던 첫 아이 때 고열로 한 번, 그리고 막내가

 4개월때 팔꿈치 뼈가 빠져서 들렸는데 두 번다 순식간에 처치가 끝나서 당황하거나 무서워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나다. 그것도 외상을 입었으니 상처를 꿰매야 할 텐데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라 무척 겁이 났다.

휴가철 한 밤중의 응급실은 붐비고 있었다.
의료진은 내 상처를 핀셋으로 벌려 자세히 살펴보고 소독을 했는데 그야말로 끔찍하게

 아팠다. 그러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 아이가 아팠다면 치료를 받는 동안 얼마나 무섭고 아팠겠는가.

나야 어른이니까 아파도 소리 안 지르고
참을 수 있지만 아이였다면 내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모습을 붙잡고 있어야 했을테니

정말 다행이다. 다친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나여서...
소독을 마치고 바퀴달린 침대에 실려 엑스레이를 찍었다. 혹시 유리 조각이나 가루가

남아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상처 부위는 깨끗했다.


의사는 파상풍 주사와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지만 거부했다.

아직 수유중이기도 했지만 쇠로 다친 것이 아닌데 굳이 파상풍 주사까지 맞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처 부위만 깨끗하게 꿰매달라고 얘기했다.
마취주사를 놓을때도 퍽이나 아팠지만 함께 간 친구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자신도 조각을 하다가 손이 찢어져 꿰맨 적이 있다는 경험담으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마취를 하고 나니 세 바늘 꿰매는 것은 아프지 않았다.
피가 고일 수 가 있다며 상처를 압박붕대로 단단히 감아 주는 것으로 치료는 끝이 났다.
내일 나와서 상처를 소독하고 소염제를 복용하라는 처방을 받고 응급실을 나왔다.
경비원 아저씨가 휠체어에 태워 차까지 밀어 주셨다.
드라마를 볼때마다 바퀴달린 침대며 휠체어를 타면 재미있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번에 다 해봤다. 전혀 재미있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상처 부위에 물이 닿으면 절대 안되고 당분간 오른발을 쓰지 않아야 상처가 빨리

아문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서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니 세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한쪽엔 캠핑을 떠날 아들의 커다란 베낭이 세워져 있었다.
비로소 한숨이 나왔다.

 

제일 더운 여름의 한 복판에 아직 개학도 한참 먼 집에서 세 아이들과 종일 함께 지내야

하는 내가 오른발을 안 쓰고 살림을 할 수 있을까. 물도 닿으면 안 된다니,

 2층에 만들어 놓은 근사한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딱 한번 어울려 첨벙거렸는데 모든 일이

다 물건너 갔구나...
큰 아들이 캠프를 떠나면 두 딸만 데리고 가뿐하게 미술관도 가고 나들이도 하려고 했었는데...

늦게 자는 큰 아들이 없으니
남편이랑 밤 늦도록 영화도 보고 모처럼 둘만의 시간도 보내려고 했었는데...

방학이 끝나기 전에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모든것이 끝났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욕조에 들어가 붕대 감은 발만 욕조 바깥으로 향한체 조심스럽게

 샤워를 했다.맘대로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름을 지내는 일이 얼마나 수월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 다음날 남편은 필규를 캠프가는 차까지 실어다 주고 늦게 출근을 했다.

친정 엄마를 불렀지만 오실때까지 아침을 차리고 치우는 일은 내 몫이었다. 친정 엄마가

오셨어도 아이들 시중을 다 맡길 수 는 없었다.  처음엔 한 발로 뛰어 다니기도 하고,

엉덩이로 끌고 다니기도 했지만 도저히 안 되어서 오른발 바깥쪽을 바닥에 대고  쩔룩 거리며

 살살 돌아다녀야 했다.

 

늘 살림하는거 애들 키우는 거 힘들다고 불평했는데 한 발이 불편해지고 보니, 몸만 성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겠다. 아무렇지 않게 후딱 해주던 일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불편하고

힘든지 새삼 깨닫고 또 깨닫고 있다.
아무리 엄마 발이 아프다고 해도 세살, 여섯 살 아이는 쉽게 잊어 버리고 저희들이 원하는

 것만 얘기한다. 2층에 만들어 놓은 물놀이장도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픈 발로

2층을 몇 번이나 오르 내렸다.

2층에 있을때 1층에서 울리는 전화 받는 일, 주방에 있다가 아이들 방으로 가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늘 크고 넓어서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불편해지니 말할 수 없이 힘든 집이 되 버렸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남편은 아픈 마누라 덕에 퇴근하고 설걷이에 이런 저런 집안일도

도맡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평소에 냉장고 정리를 잘 안하고 반찬 그릇도 아무렇게나 집어 넣곤

 하던 내 습관 탓이라고 생각하니 더 할말이 없다. 응급실에서 일하시는 경비 아저씨는 냉장고

 열다가 다쳐서 오는 엄마들이 정말 많다는 얘기를 해 주셨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일상 생활에서 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습관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더불어 오래 잊고 있었던 몸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여름은 아직 길고, 상처는 최소 열흘은 있어야 낫는다는데 견딜 일이 아득하다.

43년간 한 번도 입원이나 수술을 해보지 않은 내가 처음으로 응급실 신세를 진 것이 겨우 세바늘

꿰매기 위해서라면 낙심보다는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부러진것도 아니고 상처만 입은거니까,

 걸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 불편할 뿐이니까 그러니까 다행이라고 고마운 일이라고 여겨야지..

그래야지..

 

조심, 또 조심하자. 세 아이 키우는 엄마가 아프면 정말 아니, 아니 아니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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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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