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람을 바꾸다! 생생육아

남편 6.jpg

 

남편은 그야말로 엉덩이가 무거운 남자였다.
짧은 연애를 할때도 우린 주로 남편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거나 카페에 앉아서 얘기를 했지
함께 등산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는, 몸 움직이는 일은 별로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퇴근을 하면 리모콘을 끼고 있다가 잠들곤 했다. 주말이면 종일 뒹굴거리며 쉬거나 자고 싶어했다.

반면에 나는 엉덩이가 가벼워 진득히 앉아있지 못했다.
처녀적에도 산을 타고, 암벽도 오르고, 마라톤에 요가며 내 몸을 단련해서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거리를 하염없이 걷는 것도 좋아했고, 여행도 좋아했다. 결혼을 하면 남편과 이처럼 내가 좋아하던
일들을 함께 하고 싶었다. 함께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은 서른 일곱해 만에 아내를 얻더니 오래 마음써 오던 일이 해결된 기쁨에 취해
아내가 챙겨주는 편안한 살림속에서 마음껏 쉬고 싶어만 했다. 그런게 결혼 생활의 기쁨이라고
여겼던 눈치였다. 신혼초부터 주말마다 싸웠다. 나가자는 나와, 집에서 쉬자는 남편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렵게 외출하면 한없이 돌아다니고 싶어하는 나와 얼른 돌아가서 쉬고 싶은
남편은 또 서로 빈정상해 돌아오기 일쑤였다.

 

아이가 생기면 달라지겠지.. 생각했다.
아들을 낳았으니, 이 아들이 걸음마를 하면 아이 손을 잡고 동네라도 돌겠지. 아이가 공을 차기
시작하면 운동장에 함께 나가주겠지. 아들때문에 엉덩이 무거운 남편도 더 많이 움직이도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될꺼야....
꿈을 꾸었건만 아들이 걷고, 뛰고, 남편 손을 잡고 공차러 가자고 졸라도 남편은 굼뜨기만 했다.
나가서 놀자고 보채는 아이에게 '아빠, 조금만 자고....'를 외치며 꼼짝도 안하고 누워있는
남편에게 맘 상해 내가 애를 데리고 나가 축구를 하며 아이를 키웠다.
코앞에 도립공원이 있어도 아이 손 잡고 산을 오르는 일이 없었고, 집만 나서면 공원이며 운동장이
있는 곳에 살아도 온 가족이 단란하게 그런 곳에서 공을 차며 뛰고 웃었던 일도 손에 꼽는다.
아이가 셋으로 늘어도 남편은 더 고단해 할 뿐 변화가 별로 없었다.
간절하게 마당이 있는 집을 원했던 것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남편이
달라질것 같은 절박한 기대가 있었다.

 

마침내 결혼 9년 만에 이 집을 얻어 아파트 생활을 벗어난지 1년 5개월째...
남편은 예전의 그 남편이 아니다.
금요일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남편의 차엔 온갖 모종들과 퇴비가 가득 쌓여 있었다.
옷만 갈아입고 윗 밭으로 간 남편은 해가 꼴딱 지도록 낫으로 풀을 베고, 쟁기로 땅을 갈아 엎고
퇴비를 뿌려가며 모종을 심었다.
토요일엔 일어나보니 남편은 이미 밭에 나가고 없었다. 아침밥도 안 먹고 밭에 나가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내 윗 밭과 아랫밭을 오가며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부터는
창고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언니에게 부탁받은 책장을 만들었다. 나무를 다듬고, 드릴로 구멍을 뚫고
망치소리가 요란하더니 언니네가 도착할 오후 무렵엔 근사한 책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용도를 짐작할 수 도 없는 갖가지 공구들을 사용해가며 책장의 나뭇결까지 매끈하게 다듬어서
주니, 큰 언니는 너무 멋지다고 감격하며 가지고 돌아갔다.

종일 일한 남편은 간단하게 저녁을 먹자고 했으나, 꼭 밖에서 바비큐를 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아들을 보더니 '알았다' 하면서 마당에 불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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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마당에 깔아 놓은 매트위를 뒹굴거리며 놀다가 남편이 참나무 장작에 구워준 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뒤늦게 남편과 고기 몇 점 먹고 있는데 잠시 뒷밭에 갔다온 남편은 쑥갓과
상추, 머위를 뜯어 왔다. 얼른 씻어서 남편과 맛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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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영화 한편 보는 동안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모닥불을 크게 피워
주었다. 내 집 마당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커다란 모닥불 앞에 앉아 있으려니 하루종일
고단했던 마음이 다 환해진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건만 일요일에도 남편은 쉬지 않았다.
아랫밭에 고구마 심고, 닭장에 볏집 갈아주고 물통 고치고, 다시 윗밭 가장자리 풀 베고
고랑에 쌓인 낙엽 걷어 놓느라 늦도록 애 썼다. 정원에 정원등 다는 공사 하느라 또 밤까지
고생한 남편은 저녁 먹고 두 딸들 다 씻겨 놓고서야 단잠에 빠져 들었다.
워낙 일찍 출근하는 남편이라 나가는 것도 못 봤는데 아침상 치우고 집안 정리하고 있을때
전화한 남편의 첫 마디는 '고구마 밭에 물 좀 듬뿍 줘'라는 것이었다.

1년 만에 농삿군 다 됬구나... 쿡 웃움이 나왔다.

작년에는 넓은 땅 달린 커다란 집을 덜컥 얻어 놓고 농번기가 와도 뭐 부터 해야할지
우왕좌왕하던 사람이 올해는 시기에 맞춰 척척 일을 벌이고 또 해낸다.
머리가 굵어져 귀찮은 일은 안 하고 싶어하는 큰 아들 살살 또드겨셔 일도 거들게 하고
한 숨 돌리고 나면 개도 산책시켜 주고 아이들 데리고 동네 저수지에도 다녀 온다.
이 집에서는 일부러 시간내어 놀이터에 나가서 놀아주거나 공을 차 줄 필요가 없다.
집안일 하는 것이 놀이고 체험이기 때문이다.
밭에 나갈때 아이들 불러 모종도 옮기게 하고 물도 뿌리게 하고, 목공일 할때 연장 심부름도
시키고 간단한 공정을 직접 하게도 한다. 남편은 아이들과 그런 일도 함께 해 준다.

올 해 6월이면 결혼한지 꼭 10년이 되는데, 나는 10년 만에 완전히 리모델링 된 남편과
사는 기분이다. 생활패턴도 리모델링 되었지만 몸이 바뀐것도 감격스럽다.
충만하던 뱃살도 많이 빠졌고 무엇보다 어깨 근육이 더 좋아져서 가끔 일 마치고 샤워하고
나오는 남편에게는 새삼 설레게 하는 남자의 매력도 늘었다. ㅋㅋ

게임과 텔레비젼만 보는 아이들, 리모콘만 사랑하고 집에서 뒹굴려고만 하는 남편을 두었다면
무엇보다 아파트를 탈출해 보기를 권한다. 쉽지는 않지만 사람이 건강해지고 생활이 건강해지는데
충분히 해 볼만한 일이다.
움직이지 않고, 직접 손 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집을 만나면 남편도, 아이들도, 나도 변한다.

결혼 10년 만에 나는 이제 텃밭에서 부추 뜯어다 부침개도 부치고 직접 김치를 담그는 진짜 주부가
되었다. 밭에 푸성귀가 넘쳐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귀찮아도 그 아까운 것들로 뭔가를 만들어
먹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벌레를 무서워 하지 않는 아이들, 흙범벅이 되어 뛰어 놀고, 길가에서 본 새 풀 이름을 찾겠다고
도감을 뒤지고, 개를 끌고 기꺼이 동네 산책을 해 주는 모습들을 보는 것은 고맙고 뿌듯한
일이다. 영어 단어는 모르지만 지칭개와 애기똥풀과 고마리의 이름을 아는 것은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자.. 어서 이 글을 마감하고 나는 윗 밭으로 달려가 남편이 애써 심은 고구마순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듬뿍 주어야지. 슬슬 뱃살도 늘어나고 건강의 적신호도 오기 시작한다는 결혼 10년에
나는 다시 젊어진 남편과 살고 있으니 아무 불평이 없다.
일거리 많이 주는 이 집을 만나서 다시 이렇게 땀 흘리고 애 쓰고 보람있는 나날을 살게
된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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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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