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집 나갔다, 얼쑤 신난다!! 생생육아

필규 4.jpg

 

유난히 친구네 집에 가서 자고 오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다 크도록 집 아닌 곳에서 자는 일을 아주 아주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

우리집 큰 아들 필규는 딱 두번째 경우다.

친구네집에 놀러가는 것은 좋아해도 자고 오는 것은 질색을 했다.

친구네 집 뿐만 아니라 엄마가 같이 가지 않으면 친지 집에 가서

자는 일도 싫어했다.

막내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구정이 와서 남편과 아들만 설쇠러

강릉 시댁에 보냈는데 기어코 그날 밤에 집으로 와 버린 아들이었다.

새벽같이 운전해서 대관령을 넘었던 남편이 한밤중에 아들과 같이

집에 나타났을때의 낭패감이라니...

최소한 그런 경우엔 그냥 엄마없이도 하루 정도는 아빠와 잘 수 있으면 했건만

아들에게 그런 일은 너무나 힘든 모양이었다.

 

친한 친구가 우리집에 자러와도 친구랑 단 둘이서 자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촌형아들이 집에 놀러와서 자고 가도 밤 늦도록

함께 히히덕 거리다가 정작 잘때는 내 옆으로 기어들어오곤 했다.

네살 다섯살도 아니고 열살이 넘도록 아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1년에 두번씩 학교에서 떠나는 단체 여행을 갈때도

설레거나 기뻐서 떠난 적이 없었다.

버스에 올라서도 밖에 서 있는 나를 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몇 번은 기어코 눈물바람으로 떠나는 바람에 내 가슴을 에이게 하던 아들..

 

엄마를 너무나 좋아하는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이제 여행이나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는일, 최소한 사촌 형아네 집에 가서 자고 오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도대체 그런 날은 내게

언제나 올까...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지난 일요일 아들은 저 혼자 집을 나갔다.

가방에 속옷과 칫솔을 챙겨들고 경기도 양주에 있는 둘째 이모네 집으로

저 혼자 떠난 것이다.

 

저보다 두살, 네 살 위인 사촌 형아들을 필규는 아주 좋아한다. 형아들이

우리집에 오면 종일 신이나서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재미나게 논다.

조카들도 우리집에 오는 것을 좋아해서 둘이 전철을 타고 먼 길을 돌아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다. 형아들이 갈때는 아쉬워하며 더 놀고 싶다고

속상해 하던 필규는 지난 달 모처럼 운전을 해서 아이들과 함께 갔던 이모네 집에서

저 혼자 남아 하루 자고 오겠다는 말로 나를 놀래키더니 이번엔 저 혼자

전철을 타고 이모네 집에 가서 자고 오겠다는 말로 나를 정말 깜짝 놀라게 했다.

 

방학이 두 달이 되어 가면서 무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나마 이따금 어울려 놀던

동네 친구들이 다니는 일반학교가 얼마전에 개학을 하면서 필규는 한층 더 심심해 했다.

집에서 매일 어린 두 여동생과 아웅다웅 다투는 일도 지겨워지고 뒹굴거리는 제게

쏟아지는 엄마의 잔소리도 싫었을 것이다.

주말 오전 갑자기

'엄마, 나 양주에 가서 자고 와도 되요?' 하는 것이다.

'너 혼자?'

'네. 전철타고 가지요 뭐..'

'정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마음을 애써 숨기고 나는 바로 양주에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하고 짐을 챙겨 주었다. 아들은 가방에 교통카드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현관에서 내게 몇 번이나 뽀뽀를 하긴 했지만 전철역까지 데려다 주는

아빠의 차에 훌쩍 올라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되어 내 핸드폰을 쥐어 보냈는데

전철 탔다고 전화하고, 환승한다고 전화하고, 도착해서 마을버스 기다리고

있다고 전화하고 다 왔다고 또 전화를 했다.

경기도 양주의 이모네집 까지는 전철 시간만 해도 적지 않게 걸리는데다

내려서는 마을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하는 먼 길인데 아들은 어느날 갑자기

집을 나서 저 혼자 가 버린 것이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오전 여덟시 넘어 벌써 아침밥을 다 먹었다고 전화를 해 왔다.

집에서는 오전 열시는 되야 일어나던 녀석이 부지런한 이모네 집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시간에 벌써 밥까지 먹은 모양이었다.

한 술 더 떠서 오후에는 하루 더 자고 가도 되냐고 전화가 왔다.

좋아 죽을 뻔 했다.

 

방학 내내 세 아이와 하루 종일 지내는 일에 지쳐있던 내겐 그야말로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제일 까다롭고 목소리 크고 고집 센 아들이 없는 집에서 나는 두 딸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보냈다. 우리끼리 산책도 가고 여동생들이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두 딸들 일찍 재워놓고

남편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내기까지...ㅋㅋ

 

아이들은 정말이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자라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발전이없는 것 처럼

평행선을 달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 있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데

아들이 자라는 모습이 딱 그렇다.

이 나이가 되면 이 정도 모습은 보이겠지.. 하는 내 예상이 맞는 법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다음으로 펄쩍 뛰어  오르곤 했다.

 

그렇게 엄마 떨어져 자는 것을 힘들어 하던 아들이 이젠 제 발로 다른 집으로

자러 나간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젠 며칠이라도 제가 좋으면 머무르다 올 모양이다.

아들의 변화에 발 맞추어 남편은 아들과 둘이 떠나는 여행도 생각하고 있다.

이거 정말 오래 바래왔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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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에서 벗어나기를 오래 기다려왔는데 갑자기 저 혼자 성큼 성큼 집 나서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이러다가 훌쩍 제 세상으로 가버릴 것 같아 미리 가슴도 서늘해진다.

 

열 두살..

그래, 그래.. 적은 나이가 아니구나.

엄마 눈엔 늘 철부지 같아도 속으로는 매일 매일 스스로 여물고 있었겠지.

그동안 엄마랑 끈끈하게 지내왔던 시간들이 어느새 이렇게 스르르 저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단단한 마음을 심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부랴 부랴 마음 준비를 해야겠다.

기쁘고, 또 짠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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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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