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 우리만의 힐링타임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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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이 시댁이라고 하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시댁에 갈때마다

경포대에서 놀거나 정동진에 들리거나 회를  먹거나 하여간에

강원도의 좋은 풍경들을 남보다 많이 누릴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아주 잠깐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처녀적부터 워낙 좋아했던 곳이니까, 시댁에 갈때마다 바닷가에도 가고

설악산이나 속초, 하조대 같이 내가 좋아하는 장소도 들릴 수 있겠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들은 아주 순진한 착각이었다.

명절에 시댁에 내려가면 내가 오가는 동선은 아주 단순했다.

부엌에서 거실로, 다시 거실에서 방으로, 다시 부엌으로 오가며

종일 일하고 큰댁에 가서 제사 지내고 친척 어르신댁 방문하고

그리고 돌아오면 명절이 다 가곤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는 친척들 집을 들렀다가 시댁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만 잠깐씩 누릴 수 있었다. 가끔은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들 성화에

바닷가에 차를 대고 내려서 잠깐씩 놀다 오기도 했지만 정말 잠깐 뿐 이었다.

어디를 가든 시댁 식구들과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하다보니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맘대로 갈 수 도 없었고, 내가 더 있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결혼 12년동안 설악산 언저리를 들려본 것은 어머님 살아계실때

척산 온천에 모시고 갔던 적이 유일하고 정동진은 가본 적도 없으며

속초며 하조대도 집으로 돌아올때 잠깐 들려본 것을 제외하곤 제대로

머물렀던 적이 없다.

어머님은 명절이나 여름 휴가철에도 품일을 나가시는 적이 많았다.

아버님은 내가 시집올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특히 오래 걷는 것을

힘들어 하셔서 어딜 모시고 다닐 수 가 없었다.

게다가 평생 알뜰하게 살아오신 시부모님들은 밖에서 밥을 사 먹거나

돈을 쓰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런 어르신들을 집에 두고

젊은 사람들끼리 나가서 놀다 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시부모님 몰래 우리끼리 따로 숙소를 잡아 강릉이나 강원도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양심에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처녀적엔 휴가철마다 달려갔던

동해바다나 설악산을 정작 강릉이 시댁이 되고 난 후 부터는

늘 그립고 보고싶은 곳들이 되어 버렸다.

내내 시댁에만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곤 할 때는 아쉽고 속상해서

눈물바람을 하곤 했다. 나는 이런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고

남편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그래서 몇년 전 부터 연휴 마지막 날엔

아침을 먹고 시댁을 나와 우리 가족끼리 따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밤 늦게 도착해야 하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아이들과 신나게 동해 바닷가를 뛰어 다녀도 보고, 한계령이나 미시령같이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들러보는 기쁨이 컸다.

 

최대한 늦게까지 시댁에 남아 부모님을 도와 드리다가 서둘러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 형님과 동서에게 연휴 마지막 날

제일 먼저 시댁을 나서서 우리끼리 놀러 다니는 모습이 이쁘게 보일리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가정을 이루어 아이들 교육비며 지출이 한창인 두 사람에겐

시댁에 한 번 오갈때 드는 경비 외에 가족끼리 따로 놀러 다니며 돈을 쓸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기에 몇 년 동안 우리끼리

따로 시간을 갖는 것을 망설였었다. 그러나 며느리로서 시댁에 와서

도리를 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가족끼리 행복한 것이 불효가

될 수 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 부터 행복해야 내가 시댁에도

시댁 식구들에게도 더 잘 할 수 있었다.

 

큰 댁에서 제사 지내고 돌아올때 일부러 바닷가 길로 오곤 했었는데

바닷가를 끼고 이어져있는 푸른 솔숲길을 늘 걸어보고 싶었다.

올 구정은 날이 봄처럼 따듯하고 좋아서 처음으로 솔숲을 걸어보기로 했다.

송정에서부터 경포대에 이르기까지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 길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솔냄새에 취해 걸을 수 있는 근사한 경험이었다.

이게 뭐 그렇게 어려워서 12년동안 망설이기만 했을까.

이렇게 온 가족이  손 잡고 걷고 있자니 행복이란게 별건가 싶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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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길을 필규는 제일 씩씩하게 걸었고

다섯 살 이룸이도 끝에 약간 업어준 것을 제외하곤 명랑하게 걸었다.

윤정이도 볼이 빨갛도록 힘을 내서 걸었다.

걸어가면서 솔방울도 줍고 소나무 등걸에 기대어 앉아도 보고

나무 그루터기에서 뛰어도 보면서 우린 많이 웃었다.

 

제일 늦게 시집와서 세 아이 낳아 기르는 일로 늘 동동거리며

살았다. 이룸이가 이만큼이나 커서 이런 산책도  가능하기까지 적지않은

세월이 지나야 했다. 이제 형님과 동서네 아이들은 훌쩍 커 버려서

 더 이상 바다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겐 여전히 바다가 신나고 좋은 어린 아이들이 있고

처녀적이나 중년이 된 지금이나 동해 바다를 보면 마음이 설레는

내가 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남으신 아버님 건강이 나날이 더 쇠약해

가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지만 아버님을 살피는 일에도 마음과 몸을

다 하는 것 처럼 우리 가족만의 설레고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일에도

소홀하지 말아야지.

 

동해바다의 푸른 기운과 소나무 숲의 싱그런 기운을 가슴 가득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정말 새로운 기분으로 새 해를 더 힘차게 잘 살아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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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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