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 토닥 2013, 두근 두근 2014 생생육아
2013.12.24 10:2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Edit
올 해 딱 한 장의 사진만을 고르라면 나는 이 사진이다.
6월 16일, 결혼 11주년 기념으로 마당 단풍나무 그늘아래에서 우리끼리 찍은 가족 사진이다.
세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남편이 미소 짓고 하늘을 맑았고 단풍나무의 초록그늘은 근사했다.
내 집에서 내 가족과 같이 보낸 특별한 것 없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1년은 언제나 너무나 많은 일들을 안겨준다.
나라 안팎으로도 비참하고 아쉽고 가슴아픈 사건들이 너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름날 갑작스레 시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한 해 였고
내 분신과도 같은 쌍둥이 자매는 죽음 직전까지 같던 교통사고에서 살아 돌아와
지금도 큰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몇년 동안 흘릴 눈물을 한꺼번에 쏟았던 한 해 였지만
그러나 2013년 마지막 날에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은 희망을 보았다.
안녕하지 못한 날들을 살아가면서도 크게 아프지 않았고 늘 명랑했고
키도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 주었다.
필규는 열 두 살 5학년을 앞두고 있고, 윤정이는 손가락으로 날을 헤아리며
어서 빨리 여덟살이 되서 학교에 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룸이도 다섯살은 더 신나고 즐거울 거라며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장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힘든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이들을 끼고 누우면
남편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잊었다.
아이들때문에 힘들다고 늘 불평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매일
아이들과 사는 날들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안다.
부족하고 소리 잘 지르고 벌컥 벌컥 화도 잘 내는 엄마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웃기는 엄마라고 좋아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다시 힘을 얻곤 했다.
고등학교 입학식날 제 손으로 자퇴서를 내고 나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큰 조카는 저를 몹시도 아끼셨던 할머니의 죽음에서 누구보다 마음아파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겨울 긴 방황을 끝내고 직업학교에 진학해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조카가 방황하는 모습을 아프게 아프게 지켜보았던 우리는 새 출발하는
조카의 새해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남들처럼 평범한 고교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흔들린 만큼 더 단단하게
제 앞길을 헤쳐 나갈것을 믿고 있다.
엄마의 교통사고와 이어진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도우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친정 조카들도 대견하다.
큰 조카는 내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둘째도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엄마가 겪는 고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무섭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면서도 누구보다 엄마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늘 어리게만 보이던 조카들도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며 더 여물어졌다.
새해엔 쌍둥이 자매의 건강도 조금씩 더 회복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황망하게 아내를 떠나보낸 시아버님도 딸처럼 챙겨드리는 둘째 며느리집과
강릉 본가를 오가시며 잘 지내 주셨고 몇 달 씩 걸렸던 치아 보철 치료도
잘 견뎌 주셨다. 본가에 가 계실땐 스스로 밥도 지어 드시고 반찬도 챙겨 드시는
날들을 보내셨다. 어머님 살아계실땐 전혀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직장에 다니며 시아버님을 모셨던 동서에게도 정말 큰 감사를 보낸다.
동서는 시부모님께 늘 막내딸이었다. 나는 11년째 며느리로 모시고 있지만
동서는 정말 딸처럼 살갑고 따듯하게 아버님을 챙긴다.
맏며느리지만 아버님을 모시지 못하는 형님 내외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아버님 곁에 가까이 두고 있음을 안다. 어머님이 떠나신 자리를
삼 형제와 세 며느리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깝게 채워주고 있다.
어머님이 주고 가신 선물이다.
친정 부모님은 크게 아프지 않고 한 해를 보내셨다.
엄마는 내가 손 내밀면 늘 먼 길을 달려와 나를 도와 주셨다.
생각하면 눈물겹게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한 해 한 해 분명 더 늙어가시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식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두 분이
새해에도 늘 건강하고 안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 하면서 아이 키우는 두 여동생들의
고단한 삶에도 새해엔 여유가 생기기를...
아이가 없는 대신 마음이 아픈 친정 남동생을 누구보다
많이 보살피는 큰 언니네 부부의 날들에도 축복이
내려앉기를...
그리고 1년간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서 힘든 회사 생활을 견디며
든든하고 따스한 남편이자 아빠로 있어준 남편에게 토닥 토닥
위로와 감사를 보내고 싶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이 만큼 애쓰며 눈물겹게 살아냈으니
새해엔 다시 희망을 품고, 기대를 품고 두근 두근 설레며
맞을 생각이다.
새로운 생활을 앞두고 있는 모두에게 새날들은 분명 올해보다
더 좋을 것이다.
그런 날들을 만드는 일에 내 작은 힘도 열심히 보태야지.
1년 동안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그리고 베이비트리 필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더 성장한 나 자신에게도 토닥 토닥 위로를 보낸다.
애썼다. 애썼다.
내년엔 올해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애썼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