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많은 않구나, 시아버님과 함께 살기..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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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1년 동안 한번도 시아버님을 내가 모시고 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시어른을 모시고 산다면 그 대상은 어머님이지 결코 아버님은 아닐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연세도 월씬 많고 건강도 더 안좋은 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했었고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어머님은 아마도 강릉에서 혼자 지내실거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어머님 건강이 정말 안 좋아지면 그때가서 어머님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를

형제간에 의논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늘 그렇듯이 예측은 빗나가기 마련이다.

 

아버님보다 다섯 살이나 적으신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가족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머님의 장례를 마치고 내가 아버님을 모시고 올라온 것이 지난 8월 18일..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고, 그 일이 가져온 커다란 변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정리할 틈도 없이 아버님을 모시게 된 내 일상은 적지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흔히 여자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살림을 같이 하는 사이로서 통하는 것이 있다.

시어머님과 며느리 사이도 살림을 공유하며 친해지고 혹은 서로를 알게 된다.

시아버님은 다르다. 결혼 11년간 아버님과 따로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본 일이 없다.

명절때 많은 가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만 대하면서 아버님은 그저 우리 집안의

제일 어른으로서만 여기면서 살았지 아버님의 개인적인 역사나 이야기 조차

제대로 들어본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곁에 있어도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시고 아이들을 귀여워 하신다는 표현이

늘 아이들을 짓궂게 괴롭혀서 울게 하시는 아버님이셨다.

그런 아버님을 갑자기 모시게 되었을 때 나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조차 모르고 있었다.

 

집안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일상의 모든 리듬이 새롭게 재편된다.

대안학교 다니는 첫 아이의 등교 시간이 늦어 늘 오전 여덟시 정도에 일어나던

내 게으른 생활은 아버님이 오시면서 끝이 났다.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님의 기척을 들으면 잠이 싹 달아났다.

아이들과는 자주 빵으로 아침을 먹었지만 아이들 토스트를 구워주면서

동시에 아버님 아침상을 차리게 되었다.

 

큰 아이가 학교에 가면 늦은 아침을 먹고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하곤 했는데

이젠 끼니때마다 새로운 반찬을 하나라도 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이가 안 좋으신 아버님을 위해 부드러운 국이나 반찬을 고민하게 된 것도 변화다.

매일 아버님 쓰시는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 드리고 재털이를 비우는 일도

그렇고 장 보러 근처 가게에 가거나 아이들과 도서관을 찾더라도 느긋하게 있을 수 가

없다. 집에서 혼자 계실 아버님이 신경 쓰여 아이들을 재촉하게 된다.

 

유선방송이 안 나오는 우리집 텔레비젼은 볼 것이 없어 재미난 사연과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를 하루종일 볼륨을 크게 해서 틀어 놓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채널은 잊은지 오래다.

가끔 한 두시간씩 아버님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이가 많이 빠지셔서 발음이 분명치 않다보니 알아듣는 것이 절반도 안 되는데도

아버님은 끝없이 이야기 하신다.

 

어떤날은 아버님과 같이 사는 일이 그럭저럭 할만한 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가도

밤이 되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고단함에 마음까지 가라앉아 이제 겨우 일주일이 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에

낙심하기도 한다.

다시 날이 밝으면 전보다 훨씬 부지런하게 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맘 놓고 외출을 하기도, 맘 놓고 친구 만나 밥 한끼 먹는 일도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히기도 한다.

 

보통사람보다 유난히 더 담배 냄새를 싫어하던 내가 온 집에서 담배 냄새 풍기는 것이

한층 더 속상하기도 하고 창문을 열고 사는 여름에도 힘든데 겨울엔 또 어떻하나..하며

앞질러 걱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장 맘에 쓰이는 것은 아버님이 우리집에서 행복하시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 그만 갈란다' 하시는 아버님이다.

'사람들을 못 만나니 애가 말라. 유치장에 있는 것 같애' 하시는 아버님을 보고 있기가

참 괴롭다.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그렇겠지. 평생 살아오신 곳을 별안간 떠나게 된 것은 내가 아니라 아버님이다.

친구도, 익숙한 거리도, 당신의 손때 묻은 자전거도 없는 우리집.. 시내와 떨어져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 편하실 리 없다. 맘대로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닳고 닳은

얘기 나누고, 돌아오면 하루 종일 TV를 틀어 놓고 화투장도 만지다가 담배도 피우다가

손닿는 곳에 있는 휴지 뽑아 가래도 뱉고, 당신 맘대로 하실 수 있는 당신 집이 더

좋으신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며느리가 세 끼 더운밥을 차려 드리고, 손녀들이 곁에 와서 재롱을 부린다해도

당신의 뿌리는 강릉집이지 결코 자식의 집일 될 수 가 없는 것이다.

 

종일 무기력하게 계시면서 담배만 피우시고, 그러다가 누워 주무시고, 마당에 나가

서성거리시고, 다시 의자에 앉아 꾸벅 꾸벅 조시곤 하는 아버님을 보고 있으면

자식이 모신다고 다 효도가 되는 것은 아니구나... 마음이 조여온다.

 

우리집에 내내 계신 것도  방법이 아닌듯하여 주말엔 남편이 일주일 휴가를 내어

강릉에 모셔갔다. 금요일 밤에 함께 내려가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요일에

고속버스로 올라왔지만 남편은 아버님과 둘이 한 주 내내 강릉에서 지내다가

이번주말에 다시 모시고 올라올 예정이다.

너무 힘들기 전에 한 번씩 강릉을 오가며 지내시는게 아버님을 위해 좋은일인데

그렇게 자주 우리가 모시고 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이번 추석은 사이에 끼인 날을 쉬게 되면 아흐레 정도 길게 이어진다.

어머님 없이 우리끼리 지내야 하는 첫 명절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가족이 모여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긴 만큼 아버님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이 아버님이라는 것은 안다.

힘들고 고단하다고 불평해도 이 시간 역시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는 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버님이 행복하시기위해서는 나 역시 행복해야 한다.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에만 기댄다면 그 역시 오래 갈 수 없이 위태로운 구조가 될

수 밖에 없으리라.

 

가끔 큰 아들네와 막내 아들 네도 며칠씩 다녀오시고 강릉 집에서 혼자 며칠이라도

지내실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고 혼자지내시는 노인들을 위한 지방 자치단체의

지원 방안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보건소나 여러 단체에서 지원해주는 서비스들도

적극적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모셔야 하는 사실은 변함없다.

날이 추워지면 나와 지내셔야 하는 날들이 더 길어질 것이다.

나도 어서 익숙해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아버님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조금씩이라도 바꾸실 수 있도록 하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해도

이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시고 힘들지만 조금씩 노력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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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훨씬 빨리,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일상을 금방

받아들이고 할아버지를 챙기게 된 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버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시는 것도 적지않음을 알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선물들을

놓치지 않는 지혜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 몸을 더 잘 제대로 보살펴주어야 하는데 8월 13일 이후로

단 하루도 맘 놓고 쉬어 본 적이 없다. 남편과 아버님이 안 계신 이번주..

내게도 휴식이 되도록 애써봐야지..

 

힘내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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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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