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말이 시가 되고 꽃이 되는 나이 생생육아

이룸 11.jpg

 

'우리집에 옥수수가 피어나면 따 먹으지.

다 먹고 옥수수 똥을 싸지, 찰 옥수수 똥을 싸지.

옥수수를 다 먹으면 엄마한테 또 달라고 하지.

또 달라고 하지.'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차가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설 때 이룸이가 노래를 부르듯

읊펐던 말들이다. 동시를 외우듯, 노래를 부르듯 이쁜 아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너무 이뻐서 나도 금방 외웠다. 옥수수를 정말 좋아하는 이룸이의 귀여운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표현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들은 정말 타고난 시인이고 춤꾼이고 예술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들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을 보며 '엄마, 정말 멋있지요' 감탄할때,

색연필로 쓱쓱 힘들이지 않고 그려 내민 것들이 내가 보기엔 정말 자연스럽고

근사할때, 어른인 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야 한 두 개 떠오를 것같은 멋진 표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 읊어대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난다.

그 자연스러움이, 그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들이 너무 빨리 TV에, 광고에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들의 닳고 닳은 비속어, 유행어들에 오염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부처님 오신날에 강릉 시댁에 내려갔다가 부모님을 모시고 시내에 있는 절에

들렀는데 절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특별 공연을 펼친다고 해서

함께 보았던 일이 있다.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들이 진한 화장을 하고, 짧은 스커트에

배꼽이 다 보이는 옷을 맞추어 입고는 유행가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 대는 모습에 아연실색 했었다.

어른들은 이쁘다고 잘 한다고 박수치며 좋아했지만 아이들은

제가 춤을 추는 그 노래의 가사 뜻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 어리고 이쁜 아이들이 어른들을 축소해 놓은 듯한 옷을 입고

'대서양을 건너, 태평양을 건너 달려갈꺼야' 라고 하는 유행가

가사에 몸을 흔들어 대게 하는건지, 그것이 부처님 오신날에

어떻게 기념 행사가 될 수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되도록 대중매체에 아이들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큰 아이가 9개월때 텔레비젼을 없앴고

다행히 큰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고 싶지 않았기에

비교적 유행하는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키울 수 있었다.

아파트를 떠나 시골로 이사를 온 후에는 주위에 가게도 없고, 놀이터도 없어서

그야말로 마당이나 골목을 뛰며 흙속에서 자라게 되어 주변 사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너무 일찍 오염되지만 않는다면, 아이의  맑은 표현들에 귀 기울이고

아이의 세상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진다면 모든 아이가 다 시인이라는 것을

어른들을 깨닫게 되리라.

 

시인이자, 예술가였던 윤정이는 차츰 그 마법이 벗겨지고 있다.

학교에 입학하는 날을 손꼽아 고대하고, 일주일에 두 번 가는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또래 친구들과 노는 일을 좋아하는 어린 숙녀는

제가 빠져있던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이젠 조금은 시크하게

내려다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완전한 상상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장래 꿈이 '공주'라고 내게 속삭이는

네살 막내가 있다. 흔히 미운 네살 이라고 하지만 내게 막내는

나를 제일 많이 웃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 귀염둥이다.

변덕도 심하고, 툭 하면 울면서 떼 쓰고, 고집 부려서 힘들게 하지만

금방 생글거리며 내 곁으로 달려오는 막내는 모든 일들을 금방 노래로

만들어 부를 줄 알고 생각하지도 못한 말들로 우리 가족을 웃게 하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며칠 전 더웠던 날 저녁을 먹고 저수지 근처로 산책을 갔을때

그날따라 바람이 정말 시원하게 불었다.

'이룸아, 정말 시원하지?' 했더니

'엄마, 하늘에서 커다란 선풍기를 틀었나보다요' 했다.

방안에 개미가 돌아다니길래 아무생각 없이 손으로 치려고 했더니

이룸이가 깜짝 놀라면서

'엄마, 애기 개미잖아요. 엄마 개미한테 가는거거든요?' 하는 것이다.

 

발레리나가 꿈이라고 말하는 언니를 따라 '나는 공주가 꿈이예요' 하더니

'엄마는 꿈이 뭐야? 뭐가 되고 싶어?' 물었다. 마흔 네살의 엄마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하하.. 네가 아니면 누가 나에게 그런 꿈을 물어줄까.

그냥 막내를 따라 '엄마는.... 이쁜 공주..할머니가 꿈이야' 했지만

엄마에게도 당연히 되고 싶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준

그 이쁜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요즘 열심히 내 꿈을 생각해보고 있다.

 

날이 더워서 마당 나무 그늘아래 늘어져 있는 내게

'엄마, 오늘은 정말 너무 멋진 날이지요?' 하며 황홀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는 딸과 같이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특별해지고

고마와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빠에게 걸려온 전화를 제가 받아서

'아빠, 따랑해요. 핑크 사랑의 하트, 무지개, 레이스, 보석

진주, 노랑 나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말들을 끝없이 늘어 놓는

이쁜 딸의 맑은 목소리는 사무실에서 지쳐있는 남편에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될 것 같다.

 

같이 손 잡고 저수지를 걷다가도,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는 길에

밤에 자기 전에 문든 '이룸아, 노래 좀 불러줄래?' 하면

'꽃밭에 노랑 나비가 펄렁 펄렁 날으고, 무지개 레이스 나비도 날고..' 하면서

제가 지은 노래를 끝없이 불러주는 막내는 더위로 지친 나를 기어코 웃게 한다.

 

아이의 입에서는 꽃도 나오고 돌도 나온다. 어린 아이도 말로 어른을 아프게 할 수 있고

제 주위를 할퀼 수 있다. 그러니까 아이의 입에서 꽃이 더 많이 나오게 하는지

돌이 더 많이 나오게 하는지는 함께 있는 어른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아이의 작은 표현에 열심히 감동하고, 흘러 나오는 그 말들을 아껴가며 마음에

새기면서 아이를 향하는 내 입에서도 돌보다 꽃이 더 많이 나오도록 노력해야지..

생각하게 된다.

 

아아. 네 살. 얼마나 이쁜 나이일까.

돌아보면 아이의 모든 나이가 다 이쁘다.

이뻤다. 이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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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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