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이 왔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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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설유치원에 입학한 막내가 드디어 3시까지 방과후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둘째까지 막내가  끝나는 시간까지 학교에서 놀면서 기다리게 되었다.

큰 아이야 본래 수업이 3시였으므로 드디어 세 아이 모두 오후 3시까지

내 품을 떠나있게 된 것이다.

 

작년까지만해도  어딜 가든 막내와 함께 였다.

잠깐 누구를 만나게 되도, 급히 마트를 다녀올 일이 생겨도, 학교 상담을 하는 날에도

나 혼자 훌쩍 다녀올 수 가 없었다. 막내부터 옷 입히고 챙기고 손 잡고 다녔다.

아이는 늘 이뻤지만 아이때문에 모임에서 일찍 일어나야 했고, 아이 때문에

참석할 수 없는 모임들도 있었고, 아이때문에 더 늦어지거나, 아이때문에

더 복잡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언제 나만의 시간을 좀 여유있게 누려볼까.

언제쯤이면 될까, 언제쯤이면...

늘 간절하게 고대하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이다.

애초에 내 계획에도 없던 유치원을 원해준것도 고마운데 막내는

유치원을 아주 아주 좋아한다.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에도 가고싶고

유치원이 끝나도 더 오래 남아 있고 싶을 정도란다.

노래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이젠 급식도 맛있고 이도 잘 닦는다며 싱글벙글이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가.

그동안 애쓰며 지내온 모든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시키고 세 아이를 내몰아 학교까지 걷는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면 느긋하게 산길을 걸어 집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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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거리는 아이들 손을 잡고 넘던 길을 나 혼자 걷는다.

딱따구리소리가 들려오고 산비둘기가 울고 이름모를 작은 새들이

날아오르는 숲길이다.

이런 여유... 정말 오랜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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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리면서 슬슬 텃밭을 손 볼 때가 되어 자주 들리시는 친정엄마와도

맛난 반찬 만들어 둘만의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일흔이 넘은 엄마와 마흔이 넘은 딸은 애들 얘기도 하고, 남편 흉도 함께 보고

TV 프로그램에 대한 수다도 떨면서 즐겁게 밥을 먹는다.

그전까지는 기껏 밥 차려 놓고 애들 데리러 가야하거나 밥 몇 술 뜨다가

애들한테 달려가곤 했다. 이제 천천히 먹어도 애들 걱정은 없다.

세 아이 모두 정성 가득한 맛있는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오늘은 친정엄마와 윗밭에서 땀을 흘려가며 일을 했다.

밭을 덮고 있는 마른  풀들과 잎들을 거둬내고 지난해 농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밭을 정리했다. 애들 걱정이 없으니 맘 놓고 일을 할 수 있다.

봄 햇살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기분... 짜릿했다.

여기엔 강낭콩을 심고, 저쪽엔 감자를 심고, 호박은 이쪽에 심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왕룽이라도 된 기분이다.

늘 어린아이를 달고 있을때에는 텃밭일도 맘 놓고 못했다.

일을 할라치면 심심하다고 내려가자고 조르고, 혼자 집에 있게 하면

가위며 칼이 안 보인다고 엄마를 부르고,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

대번에 나타나는 풀모기때문에 애들은 얼씬도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한가지 일이 끝날때까지 그 일만 할 수 있는

즐거움...

정말 좋구나.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꼬박 여섯시간의 자유가 매일 내게 주어진다.

집안일도 많고, 텃밭일도 많지만 내 속도와 내 계획대로 할 수 있으니

걱정없다.

가끔 영화도 보러 갈 수 있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과 차 한자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오래 생각만하던 영어 공부도 시작하고

겨울동안 중단했던 요가도 다시 등록해야지.

둘째가 다니는 학교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도 시작했다.

맘 놓고 여유있게 보내기엔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좋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일인가..

당분간 이 행복한 자유에 취해 힘든 줄도 모를것 같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춤을 추고, 나 혼자 차를 마시고

뭐든지  나 혼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 가사도 있더만

나는 좋구나. 혼자 밥 먹고, 혼자 거리를 걷고, 혼자 책을 읽는

이 시간이, 너무 오래 기다린끝에 얻은 이 자유가 좋아 죽겠다.

 

머리속엔 3천가지도 넘는 버킷리스트가 넘어가고 있지만

워워... 진정해야지. 그냥 매일 매일 내가 계획한 일들을 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애쓴 내 몸을 잘 돌보고 내 감정과 생각속에

풍덩 풍덩 빠져들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세상에나 13년 만에 이런 날이 오다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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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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