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밥 사이, 방학은 간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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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윤정이가 초등학생이 된 덕에 우리집에는 방학을 보내는 두 명의 학생이 생겼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해서 먹이는게 일이다.

바야흐로 폭풍 성장기에 들어선 열세살 아들과 뭐든 잘 먹는 아홉살, 여섯살

두 딸들은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먹을 것을 찾는다.

게으름과 귀차니즘이 천성인 나는 세 아이들과 하루를 뭐 해 먹고 지내야 하나...

하는 것이 매일 매일 가장 큰 고민이다.

 

애들이 학교에 다닐때에는 하루에 두어 번은 학교를 오가느라 차를 운전해서

나가야 해서 그 김에 마트에서 간단한 장도 보고 했는데, 이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종일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서 장 보러 다니는 것도 큰 일이 되었다.

게다가 새해들어 딱 두장 있던 신용카드를 모두 꺾어 버리고 카드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터라, 미리 계획해서 생협에 주문을 잘 하지 않으면

찬거리가 마땅치 않고, 큰 맘 먹고 생협 매장에 가서도 정신 차리고 장을 봐야

지갑의 현금과 맞아 떨어지게 되어서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지경이다.

 

겨울이 되면서 세 아이 모두 기침이 끊이지 않고 있어 아침 식사를

빵으로 하는 것도 치워 버렸다. 늘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들에게 아침부터

밀가루를 먹이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러니 꼬박 세끼를 밥으로 차려내는 일이 큰 일인거다.

 

평소에도 부지런하고 손이 빠른 엄마라면 별 걱정이 없겠지만

살림 13년째이면서도 여전히 손이 느리고 부엌일에 서툰 나로서는

매일 매일 밥 차리는 일이 숙제같다. 그래도 꼭 해야 하는, 게다가

꽤 중요한 숙제다보니 이런 저런 궁리가 는다.

 

아이들의 방학과 더불어 아침 일찍 일어날 일이 사라진 집안에서

나는 아이들과 늦잠을 잔다. 그래서 어중간한 시간에 먹는 아침은

간단하게 한다. 전날 남은  반찬에 계란 후라이 하나 더 해서

먹는게 제일 흔하고, 가끔은 김에 볶은 김치를 넣고 김주먹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구운 고구마에 사과나 귤로 아침을 대신하기도 한다.

 

점심엔 새 반찬을 만든다. 저녁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금 볼륨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찬거리가 있으면 2-3일에 한 번 밑반찬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 쯤은 라면이나 국수를 끓여 먹는다.

외식은 별로 안 하지만 가끔 남이 해주는 밥이 먹고 싶거나 도서관에

가서 오래 있게 될 때는 마을 조합 터전에서 운영하는 밥상에 간다.

한끼에  5천원짜리 조합 밥상엔 늘 여덟가지 반찬과 국이 나온다.

나도 아이들도 아주 좋아한다.

대충 이렇게 지내고 있다.

 

시내에 나가 장을 보는 일이 드믈어 지다보니 냉장고에 오래

쟁여있던 식재료들을 알뜰히 챙겨 먹게 된다.

딱히 찬거리도 없는데 시내에 나갔다 오기는 도무지 귀찮았던 날,

나는 김장할때  지붕 아래쪽에 줄을 메고 널어 두었던 무청을 거두어 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무청은 새파랗게 고들 고들 잘 말라 있었다.

전에는 시어머님이 시래기를 챙겨 주어도 해 먹기 귀찮아서 미루고

놔두다가 다 바스러져 버리기도 했었는데 이젠 내 손으로

말리 시래기를 거두고 있으니 그새 철이 많이 들었다.

 

하룻밤 물에 담갔다가 오래 오래 삶아서 찬물에 헹구고

질긴 겉 껍질을 일일이 벗겨 꼭 짜서 적장한 크기로 잘라

된장과 들기름으로 양념을 하고 달달 볶다가 멸치 육수를 넣고

푹 익혔더니 구수한 시래기 나물이 되었다.

어찌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나물 한 접시 만드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 앞으로 정말 정말 귀한 손님이 오게 되면

다른 음식보다 이 시래기 나물을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아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외출만 하면 치킨과 피자와 돈까스를 부르짖는 아이들이기도 하지만

시래기 나물도 좋아하고, 김치도 잘 먹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시래기 나물이 질릴때 쯤 되면 시래기 된장을 끓인다.

그러면 또 새 반찬으로 여기고 좋아해준다.

 

겨울이 되면서 닭들은 알들을 하루에 두서너개 정도 낳아주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 정도면 애들 먹이는데 충분하니 역시 다행이고

가을에 수확하느라 애먹었던 아랫밭의 고구마도 아직 그득하게

남아 있어서 방학중인 세 아이들의 든든한 간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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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 조림이 물릴때면 식촛물에 데쳤다가 부침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져주면

또 맛있다며 잘 먹는다. 같은 재료를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는 요령은

살림 이력만큼 늘어서 그럭저럭  한 끼를 또 넘게 된다.

 

불 앞에 서서 오랫동안 삶고, 데치고, 끓이고 조려서 만든 반찬도 두 세 끼 먹고 나면

없어져 버리고, 또 다른 반찬을 고민하는게 일이지만 생선 한 마리 구워도

김만 넉넉히 내 놓아도 한 끼 뚝딱 먹어주는 아이들이라서 다행이다.

셋이서 아웅다웅 거리며 투닥거리며, 경쟁하듯, 장난하듯 밥을 먹는 시간이

고단하지만 제일 뿌듯한 시간이다.

 

조금 더 크면 활동 반경이 달라지고 시간대가 달라져서 한 상에 앉아 밥 먹는 일도

어려워진다는데 아직 내 품에 있고, 한 자리에 같이 모여 밥 먹을 수 있으니

귀찮아도, 힘 들어도 귀한 줄 알고 힘 내야지.

 

딸래미 개학은 1월이지만 대안하교 다니는 아들은 무려 2월 말이다.

아직 겨울은 춥고, 방학은 길고, 밥 하고 밥 하는 일은 끝 없이 이어지겠지만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잘 수 있는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인줄은

알고 있어서 매일 매일 수고하는 내 자신을 토닥토닥 격려하며

또 하루를 산다.

 

밥과 밥 사이에 나의 하루가 다 가지만 한 끼와 또 한 끼를 제대로  정성껏 잇는 일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려니 생각하며

밥 세 끼를 다 끝낸 부엌 불을 끈다.

 

내일 아침엔 또 뭘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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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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