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다섯.. 내가 나이 든 걸까?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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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더 여유로와지고 너그러워질....... 줄 알았다.

공자의 말처럼 마흔이 되면 불혹, 흔들리지 않는 중심 하나 마음에 굳건히 자리잡을 줄.... 알았다.

 

아니다.

안된다.

말짱 꽝이다!!

 

여유와 너그럽긴 커녕 이젠 다섯살 이룸이에게까지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다.

불혹은 개뿔, 뿔혹이 돋은 마녀처럼 내 입에선 성마른 고함과 잔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아이들에게 화내고, 소리지르고 밤 마다 자책하고 후회하고 눈 뜨면 또 반복이다.

내가 점점 못된 엄마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가끔 눈물도 훌쩍거린다.

 

생각해보면 그럴만한 이유들은 댈 수 있다.

마흔 다섯이란 나이가 힘이 펄펄 넘쳐나는 젊은 엄마들에 비해 체력이 달리는

시기이기도 하겠지.

겨울로 접어들면서 단독주택에서 겨울나는 일이 더 팍팍해진 탓도 있겠지.

그리고 내 건강에 대해 자신을 잃은 것도 큰 몫을 할 것이다.

 

2년만에 한번씩 남편 직장에서 부부 검진을 받고 있는데 얼마전 받아든 결과표는

나를 아주 우울하게 했다. 그동안 나는 내 관리를 잘 해오고 있고 남편 건강이

늘 걱정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막상 받아든 결과표엔 내쪽이 추후 검진 항목이

더 많았던 것이다.

 

없던 위염 증세도 있다하고, 관상동맥 질환 관리군에 들었다고도 하고

혈액에 철분포화율이 너무 높아서 전문의와 상담을 하라는 권고도 받았다.

어쩐지 요가를 하고 운동을 해도 저녁이면 늘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아직 애들도 어리고 할 일은 넘치는데 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큰 일이라 나는 바짝 긴장을 하고 내 몸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로 더 예민해지고 있다.

 

내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이르는 시간은 아침에 아이들 깨워

학교로 보내기 까지와 밤에 저녁상 물린 후 청소하고 씻기고

이부자리 펴서 재우기 까지 두 번이다.

그나마 아침은  어째튼 짧게 지나니까  그럭저럭 지나가지만

밤엔 상황이 다르다.

 

날은 춥고 금방 어두워 지는데다 남편이  퇴근시간이

늦는 까닭에 저녁상을 두 번 차리고 치우다보면 여유있게 책 한권

아이들한테 읽어줄 틈이 없다. 집안은 늘 어질러져 있어서

거실을 다 치워야 이부자리를 펴고 온 가족이 누울 수 있는데

빨리 정리해서 치우고 눕고 싶은 내 마음은 아랑곳 없이 아이들은

자기전까지 내내 뛰고 떠들고 장난이다. 그게 자연스럽고 아이다운 모습이란걸

알면서도 내 몸 상태에 예민해져 있다보니 빨리 빨리 하라고 재촉하고

다그치고 소리지르게 된다. 

기껏 거실 치워놓고 이부자리 펴 놓았는데 그 위에서 또 벙벙 뛰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나고, 잠자리에 누울 시간에 다시

책을 펴드는 큰 아이도 밉고, 이불 속에서 싸우기 시작하는 둘째와 막내도

지긋지긋 해진다.

 

밤이 되면 아이들이 빨리 빨리 씻고, 누워서 잠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아이들이 다 누워야 비로소 나도 누울 수 있다보니 내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들에겐 폭풍 잔소리리와 버럭버럭 고함소리가 나가게 되는 것이다.

 

늦게 퇴근해 늦은 저녁을 먹은 남편은 마누라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아이들과 뭐 하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애들을 재촉해 재워야 한다.

불을 끄고 누워도 이불 속에서 장난치고 킥킥거리는 아이들에게 또 짜증이 난다.

모두 내가 쉬는 것을 방해하는 장난꾼으로만 느껴지는 것이다.

 

척척 자기가 할 일을 하고, 남편은 부지런히 나를 도와 아이들 재우는 것을

도와주면 좋겠는데 피곤한 남편은 집에 오면 퍼져있고 싶고, 아이들은

늦게 온 아빠와도 놀고 싶어하니 다섯 사람의 다섯 마음은 좀처럼 하나가 되기

어렵다. 이 가운데에서 나는 혼자 방방뛰며 잔소리를 퍼 붓고 짜증을 내는

엄마가 된다.

 

"빨리 자!". "내일 얘기하자!", "그만 좀 움직여!" "이제 그만 하라고!"

 

겨울엔 거실 벽난로앞에서 다섯 식구가 모여 같이 자는데 한 사람만 부스럭거리고

큭큭거려도 전체가 영향을 받는지라 가능한 한 빨리 아이들을 재우는데에 내 모든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만다. 그러니 밤마다 나는 마녀같은 엄마가 된다.

 

"칫,, 엄마는 너무해"

 

이런 말들을 소근거리며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이불속에서 조용해진다.

어두운 거실이 마침내 고요해지면 이제 나는 또 참을 수 없는 스스로에 해단 혐오감에

괴로와진다.  그렇게까지 잔소리를 안 해도 되는데, 그냥 한 번 안아주고 말 것을..

애들은 애들답게 행동할 뿐인데....내가 나쁜 엄마인가봐...

왜 이렇게 모든것이 다 거슬리기만 할까.. 그렇게 이쁜 아이들인데..

왜  이렇게 힘들까. 정말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크면 육아도 살림도 더 쉬워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도, 아이들이 이만큼 커 주었어도 여전히 쉽지도 수월해지지도 않는

살림과 육아에 지쳐버린걸까. 아니면 단순히 지금 몸이 안 좋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런게 갱년기의 시작일까..

이제 마흔보다는 쉰에 더 가까와지는 내 나이에 대한 불안감일까.

 

이런 생각으로 이번엔 또 피곤한데도 잠을 못 이룬다.

새벽까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설친다.

자고 나서도  피곤은 그대로다.

악순환이다.

 

너무 바쁘다. 연말이라 더 그렇다.

남편과 나도 서로 얼굴 마주하고 쌓인 얘기 한 번 나눌 여유가 없다.

그렇게 하루 하루 허덕 허덕거리며 지나간다.

학교 행사, 집안의 대소사, 매일 해 내야 하는 집안일들 사이에서

문득 문득 우울해지곤 한다.

 

내 생각만큼 내가 너그럽지도 느긋하지도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절하게 깨달으면서 연말을 보내고 있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나 역시 언제든 크게 아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내 몸의 상태를 인정하고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겠지.

 

살다보면 고비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알면서 지나고, 모른채로 지나기도 하지만 마흔 다섯의 겨울에 나는 어쩌면

조금은 더 굵고  단단한  나이테 하나를  내 안에 만들며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힘들땐 힘들야지.. 생각대로 잘 안될때는 잘 안되는 걸 견디기도 해야지.

어려울땐 어렵게, 모자랄땐 모자라게...

 

곧 방학이 온다.

묶여진 시간표에서 자유로와지면 아이들과 조금 더 느긋하게 지낼 수 있겠지.

신정 설을 쇠는 친정 식구도 우리집에 불러야 하고 1월 중순엔 시어머님 생신 제사도 있고

큰 아이 학교 총회며 일들이야 쉼없이 다가오겠지만 망망대해의 작은 배 안에 호랑이와 함께

던져진 파이도 결국 '리차드 파커'라고 이름붙인 그 호랑이가 있어 긴장을 잃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던 걸 기억하자.

삶의 문제는 살아갈 내 힘을 더   키워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기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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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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