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게 싸우거나, 징그럽게 잘 놀거나..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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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룸이가 내가 잘못한것도 아닌데 먼저 때렸어요"

"엄마, 언니가 규칙 어겼어요. 나한테 '야'라고 했어요, 이름 안 부르고.."

"너도 규칙 어겼잖아!"

"언니도 어겼잖아! 언니가 더 많이 어겼어!"

"아니거든!!"

"엄마, 언니가 나한테 소리질렀어요!"

"엄마, 이룸이가 더 크게 소리질렀어요!"

"언니가 더 크게 소리질렀잖아!"

"너잖아!!"

여덟살 윤정이와 다섯살 이룸이는 한꺼번에 내게 매달리며 제 편을 들어달란다.

아아아... 징징거리고 시끄러운 소리에 머리가 다 아프다.

들어보면 이유라는게 얼마나 사소한지, 그러나 둘은 또 얼마나 심각한지

일일이 귀 기울여 사정을 듣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형제나 자매들의 운명은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 힘 겨루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양일까.

윤정이와 이룸이도 붙어 있기만 하면 시끄럽다. 잘 노는가 싶으면 금방 한쪽이 삐지고

소리를 지르고 내게 일르러 달려온다. 그러다가 저희들끼리 소리를 질러가며 싸우고

내가 누구편도 안 들어주면서 건성으로 대꾸하면 오빠 한테도 하소연하러 가고

아빠한테도 달려간다.

이야기 들어주고 조금 더 잘못한 아이에게 사과를 시키고, 비슷한 갈등 상황에선

서로 어떻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인지 설명해주지만 곧 똑같은 상황이 일어난다.

싸우고, 소리지르고, 한 아이가 울면서 달려오고, 분이 안 풀려 씩씩거리고

끝이 없다.

 

이룸이는 욕심이 많아 언니에게 부러운 것이 많다.

언니는 받아쓰기도 잘하고 일기도 잘 쓰고 수학도 잘 한다. 저는 아직 글씨도

못 읽는게 속상하다. 부러운게 많은 이룸이는 언니앞에서 엄마노릇을

하려고 한다.

"언니, 학교 같다와서 손 씻었어? 비누로 깨끗이 씻어야 되는거 알지?"

"가방, 여기에 두면 안될텐데.."

이런식으로 내가 해야 할 말을 제가 하면서 언니에게 잔소리를 한다.

윤정이는 이럴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서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동생에게 화를 내면 영리한 이룸이는 언니가 제게 화 냈다고 소리질렀다고

내게 일르러 온다. 윤정이는 그런 동생이 더 얄밉다.

이룸이는 언니의 약을 바짝바짝 태우고 언니는 그때마다 발끈하니

싸움이 끊일 수 가 없다. 어린 동생의 말을 적당이 들어넘기거나 무시하면

될텐데 예민한 윤정이에겐 그게 어렵다.

그러니 매일 싸우고, 매일 밉고, 억울하다.

끝이 없다.

 

그런데 또 어떠날은 둘이서 쌍둥이처럼   붙어 앉아 사이가 그렇게

좋을 수 가 없다. 윤정이는 이룸이를 가르쳐주고 이룸이는 언니 말을

고분고분 들어가며 열심히 배우는데 이럴땐 조금전까지 그렇게 싸우던

그 자매가 맞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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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이는 학교에서 배움이 다 끝난 교과서를 꼭 이룸이에게 물려준다.

그런 날엔 이룸이에게 책에 나와 있는 글자들을 가르쳐주거나

만들기 같은 것도 같이 해주는데 그럴땐 여간 살가운게 아니다.

이룸이도 언니가 제게 다 쓴 책을 물려주며 뭔가 가르쳐 주려고 할 땐

세상에 다시없는 착한 학생이 되어 열심히 배운다.

 

이번에 윤정이는 국어책을 물려주었다.

책의 끝 쪽에 글씨 교본이 실려 있었다.

이룸이는 그 교본을 따라 글씨를 쓰고 윤정이가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어찌나 열심히 신이나서 하는지 이렇게만 해주면 유치원 입학전에

언니때문에 영재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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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넘겨 봤더니 어려운 글자도 연필에 꾹꾹 힘주어 가며 야무지게 따라 쓰고 있다.

아직 이런 글자까지 안 써도 되는데 이룸이는 언니가 물려준 책으로 뭐든지

열심히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이에 비해 글씨도 야무지다. 이럴땐 정말 언니 덕을 톡톡히 보고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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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글씨를 봐주면서 윤정이는 그 옆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글씨가 반듯하니 이쁘다.

큰 아이가 윤정이만했을때 글씨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둘쨰의 이런 모습은

동네방네 자랑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대견한 것이다.

 

세살 많은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크는 막내는 뭐든 언니처럼 하고 싶어 애를 쓰고

언니보다 더 잘 하고 싶어 안달을 한다. 그래서 싸움도 시비도 끊이지 않지만

배움도 발전도 훨씬 빠르다.

실뜨기도, 줄넘기도, 글쓰기와 종이접기도 언니가 학교에서 배워오는 것은 뭐든

이룸이의 목표가 된다. 부탁한 대로 잘 안가르쳐 주고, 못 한다고 무시하면

싸움이 되지만 마음이 풀린 날은 알뜰 살뜰하게 동생을 가르쳐 주고 챙겨주기도 해서

언니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럴땐 정말 자매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징글징글하게 싸우다가도 사소한 것으로 풀어져서 금방 옷장을 뒤져  하늘하늘한

옷으로 바꿔입고 공주 놀이도 하고, 보자기로 망또를 만든 언니 뒤에서  망또 자락을

들어주는 시녀역도 마다않는 이룸이다. 맨날 저만 학생역할을 시킨다고 삐져서

소리소리 지르며 울다가도 언니가 인형놀이 하자고 부르면 금방 또 달려간다.

레고를 해도, 실뜨기를 해도, 종이접기나 인형놀이, 역할놀이를 해도 상대해주는

언니가 있어야 이룸이는 신이 나고, 친구가 없는 집에서는 이룸이가 같이 놀아줘야

덜 심심한 윤정이다. 그래서 자매는 맨날 싸우면서도 늘 같이 붙어 논다.

 

다섯 자매와 같이 자란 내 어린시절도 매일 매일 언니들과 동생들과 싸움을 했다.

너무 밉고, 너무 싫다가도 밤이되면 한 이불속에서 자고 어려운 숙제를 물으러

언니에게 가며 컸다. 어지간히 큰 다음에는 엄마 대신 동생들을 챙기게 되었다.

자매라서 그렇게 자랄 수 있었다. 모두 어른이 된 지금도 서로 살뜰하게 챙기고

늘 서로를 염려하며 지낸다. 의지할 수 있는 자매들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싸우고, 웃고, 또 소리 지르고, 둘이소근거리고, 어울려 놀고, 또 싸우고

울고, 삐지고, 달래고, 다시 킥킥 거리며 어울리고...

윤정이와 이룸이는 싸우기도, 놀기도 잘 하는 자매다.

덕분에 온 가족이 같이 있는 시간엔 집안이 조용할 수 가 없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애가 있는 집이 조용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시끌벅적 요란한거야

자연스런 일이니까..

지긋지긋하게 싸우지만 서로를 또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지 잘 알고 있고

만약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갈두 아이다.

 

오늘 두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서로 살뜰하게 가르쳐주고 배워가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내일은 일어나는 그 순간부터 발길이 오가며 싸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제일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두 아이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내 곁에 자매들이 많다는 것이 두고 두고 부모님에게 감사하게 된다.

윤정이와 이룸이도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크면 클 수록 느끼겠지.

내 손녀, 손자들에게 '이모'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니 미래의 이모들아.. 서로에게 잘 하거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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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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