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야.. 너에게 엄마를 선물할께..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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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자식 자랑에 대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들을 한다. 자식이 여럿이라도 모두 다 사랑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엄마들은 안다.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는 것을..

내겐 둘째 윤정이가 그렇다.

 

네 살 터울인 오빠를 두고 첫 딸로 태어난 윤정이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순하고

착한 딸이었다. 네살때 여동생이 태어났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오빠와

동생 챙기는 것이 알뜰하고 깊은 아이였다.

늘 생글거리고, 영특하고, 엄마를 잘 돕는 윤정이를 보며

이런 딸이라면 열명도 키우겠다고 이웃들은 입을 모으곤 했다.

오빠는 언제나 좌충우돌 고집이 셋고, 갓 태어난 여동생 돌보는 일로 늘 바쁜 엄마를 보며

윤정이는 일치감치 제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로 자랐다.

 

막내가 태어난 그 해 첫 아이는 입학을 했다. 유치원도 안 다녔던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도 핏덩이가 있어 학교에 오가는 것도 제대로 챙겨줄 수

없었다. 그 시절 내 관심은 늘 학교에 간 첫째와 어린 막내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둘 만으로도 내 여력이 모자랐다.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고 늘 내 곁에 있던 네 살 둘째는 그저 고맙고,

착한 딸이라고만 여겼다. 어린 동생을 돌보는 데 네살 아이의 도움도

퍽 의지할만 해서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런 생각만 했다.

 

윤정이를 생각하면 네 살 아이가 동생이 타고 있는 유모차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따라 걷는 모습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그 나이면 같이 태우는 유모차를 알아볼 수 도 있을텐데 네 살 씩이나

된 아이까지 유모차에 태우고 다닌다는 것은 내겐 상식 밖의 일이었다.

언니가 되었으니 당연히 유모차는 양보하고 힘들더라도 열심히 걷는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동물원에 갔을때 아빠가 저를 위해 유모차를 하나 더 빌려서

태워 주었을때 윤정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안다.

또래 친구들은 다섯살까지도 타고 다니던 유모차였다. 시내에 나가면

윤정이보다 더 큰  애도 어린 동생을 질투하고 시샘하는 것이 귀찮아서

쌍둥이용 유모차에 함께 태우고 밀고 다니는 엄마들도 많았다.

다 큰 애까지 유모차에 태워야 하냐며 혀를 끌끌 차는 동안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동생에게 양보한 둘째 아이의  마음에 차 있을

서운함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그 시절에 내게 네살이란 다 큰 아이처럼 여겨졌다.

막내가 네 살이 되었을때에야 비로소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리고

사랑스런 나이인지 깨닫고 가슴이 철렁했었다.

막내는 다섯살인 지금도 너무나 어리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윤정이에게 참 많이 미안하다.

 

동생이 있는 아이의 운명이란 그렇다.

막내는 언제나 어리게 느껴지고, 언니는 언제나 큰 아이처럼 보인다.

둘째도 아직 어리다고, 아직도 엄마의 품과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

나이라고 이따금 생각하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으로 들어오면

나는 다시 변함없이 둘째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막내는 물고 빨고 하며 모든 것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착하고 양보 잘하고 이해심 깊던 윤정이도 동생이 크면서

짜증과 화가 폭발하는 신경질 많은 언니가 되었다.

힘세고 고집센 오빠와 언니보다 더 일찍 말문이 트이고 더 빨리

영악해진 막내 동생 사이에서 윤정이는 항상 스트레스가 많은데

언제나 제일 많이 믿고 있는 아이인 탓에 윤정이 편을 들기보다

윤정이가 조금 더 노력하고 애써주기를 바라곤 했다.

그러면서 내내 윤정이 마음에 쌓여가는 서운함과 속상함을

알아채는데 오래 서툴렀다.

 

어느날 평소처럼 이룸이를 부벼주며 안아주고 있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정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 나는 왜 그렇게 안 해줘요?'

'.....?  글쎄... 너는 엄마한테 이렇게 해 달라는 말을 안 해서...'

라고 말하고 보니 늘 내게 안아달라고 매달리는 동생 옆에서

언제나 조금 부러운 듯 망설이는 듯 나를 바라보던 큰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내는 항상 저를 안으라고 조르고 매달리니까

그래서 자꾸 안아주게 되는데 그러고보니 윤정이는 그런

부탁을 하는 것도 드믈었다. 말을 안 한다고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데, 말을 안 해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서 있는 동안

나는 그저 쉼없이 내 애정을 요구하는 어린 동생의 요구에만

열려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윤정이는 어쩌다 저만 꼬옥 안아주거나, 따로 불러 소근거리고

격려해줄때 너무나 행복해 한다. 아무것도 아닌데,

잠시라도 언니가 엄마를 차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막내와 늘 함께 있다보니 요구가 적은  둘째에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지내온 것을 생각하니

윤정이에게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다.

 

핑게는 있다.

아침엔 두 아이를 각각 다른 학교에 보내는 일로 정신이 없고

방과 후엔 큰애 학교 일이며 마을 조합 일이며, 넘치는 농삿일과

밀린 살림에 늘 바쁜 탓에 둘째를 따로 배려하고 어쩌고 할

정신이 없다. 저녁을 먹고 나면 치우고 정리하고 씻기고

잠자리 준비하다가 어느새 잘 시간이다. 규칙적인 둘째는

내가 집안일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잠에 들어 버린다.

그래도 물론 엄마가 더 신경을 써야 하는게 맞다.

요즘엔 일부러 바쁜 일상 속에 아주 잠깐 씩 이라도

윤정이와 둘만 통하는 그런 순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동생이 화장실에 있을때 꼬옥 안아주거나 일하는 내 곁에

왔을때 품어 주거나, 하고 있는 일을 슬쩍 들여다보고

격려해주거나 지나가면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는 식이다.

윤정이는 이런 관심만으로도 전보다 더 행복한 표정이 된다.

참 착한 딸이다.

 

그런 윤정이가 요즘 들떠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은밀한

미소를 보낸다. 이번주 토요일에 엄마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늘 엄마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딸을 위해 둘 만의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항상 나와 같이 다니는

막내와, 엄마와 오랫동안 미술관이나 공연 관람 데이트를 단 둘이

즐긴 큰 아이는 빼고 둘째만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윤정이의 소원.jpg

 

윤정이는 종이에 엄마랑 단 둘이 하고 싶은 일을 적어가며 즐거워 하고 있다.

슬쩍 보았더니 서점에 가서 책 사고, 제가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맛난 간식을 사 먹는 등의 일정이 써 있다. 대단할건 없지만 오랜만에 엄마를 저 혼자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이 특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작에 해 줘야 하는데 그동안 농삿일이며 집안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엔 남편도

나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핑게다. 이번주엔 다른건 다 제쳐두고라도

윤정이과 단 둘이 데이트를 즐기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지.

 

윤정이처럼 믿음이 가고 잘 하는 아이는 오히려 부모의 관심이 덜 가기 쉽다.

잘 하니까,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니까 그냥 두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어서 더 많이 애쓰는 것인데 잘 하니까, 워낙

의젓하니까.. 하며 신경을 덜 쓰는 동안 그런 아이들의 마음엔 더 많은 서운함과

속상함이 쌓이기 마련이다.

아이가 셋이라면 가운데 끼어 있는 아이가 그러기 쉽다.

나이보다 일찍 철이 들고 의젓하다해도 역시 부모의 애정과 관심이 늘 고픈

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작은 무심함에도 상처를 받지만 조금의 관심으로도 금방 웃음을 찾는

존재다. 이제 입학해서 한 학기를 마쳐가는 둘째에게 남편도 나도

더 많은 애정과 손길을 기울여 줘야지... 다짐한다.

 

둘째야...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를 원하는 네게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자주 엄마를 선물할께.

좀 더 자주 엄마에게 조르고 부탁해도 괜찮단다.

혼자 잘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너무 참지도 말고,

너무 양보하지도 말고, 네 자신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며

네 마음속의 이야기를 가장 크게 들어주며 살아가렴.

고맙고.... 정말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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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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