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겨울 생생육아

필규 35.jpg

 

12월 24일 방학을 맞은 세 아이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고 맞은 월요일...

나는 깨달았다. 이제 진정한 방학이 시작되었구나...

 

열세살 아들은 오전 10시가 넘어도 거대한 누에고치가 되어 이불속에서 꼼짝을 안 한다.

밤마다 문 걸어 잠근 방안에서 늦도록 스탠드를 켜 놓고 부시럭거리며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아들은 아침이면 잠에 취해 옆에서 천둥 벼락을 쳐도 미동이 없다.

육아 선배들이 전수해준 사춘기 아들 대처 메뉴얼을 떠올려가며 도 닦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아들은 1월부터 장장 4주간의 입학 예정 중학교의 계절학교를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빡센 일정이다.

학부모로서 정말 고마운 학교다. ㅎㅎ

 

그래서 참기로 한다.

좋은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들아, 맘껏 즐겨라.

 

이룸 22.jpg

 

아이셋과 세 끼를 집에서 먹는 날이 시작되었다.

우리 네 사람의 역할분담과 음식을 주로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적절한 요령, 힘의 안배가 필요한 대목이다.

설거지는 각자 한다.

큰 아들과 큰 딸은 그럭저럭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늘 제일 예쁜 그릇을 탐내면서

설거지는 아슬아슬한 막내때문에 조마조마하다.

막내 설거지는 내가 한 번 더 체크한다. 그래도 많이 늘었다.

 

세마리 개들, 스므마리 닭들 밥 주고 물 주기, 빨래 널고 개키고 세탁기에 넣고 빼기

이부자리 펴고 개키기, 집안 정리...장작 나르기 등등 집에는 아이들과 함께 할 일이 널렸다.

뺀질거리는 첫째와 나날이 제 주장을 내세우는 막내 사이에서 '공평'에 눈을 밝히는

둘째까지 세 아이를 거느리고 하루를 살아내려면 무엇보다.... 유머가 필수다.

그렇다. 아이들이 많을수록 유머가 있어야 견딜 수 있다.

다행히 나는 나이들수록 체력은 떨어져도 웃음은 헤퍼지는 사람이라 신경질과 짜증 사이를

웃음으로 넘어가면 지내고 있다.

 

윤정 9.jpg

 

2학년을 아주 잘 마친 둘째 윤정이는 우쿨렐레와 줄넘기와 책과

소꼽놀이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일기 쓰는 것도 귀찮고, 집안일 돕는 것도 슬슬 꾀가 나는 예비 열살 딸은

그래도 엄마가 바쁠때 제일 먼저 눈치채고 손을 내밀어 준다.

점점 더 집요하게 따지고 시비걸고, 안 지는 동생 때문에 매일 몇 번씩

눈물바람을 하는게 안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동생을 잘 다스리는 요령도 힘들지만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법이다.

 

가족 3.jpg

 

꽁꽁 추웠던 일요일 오후, 남편의 제안으로 근처 화실에 놀러 갔다.

남편은 지난주에 이어 두번째로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차를 타고 가도 되었으나 모처럼 걸어가기로 한 날, 이제 아빠보다 커진 아들과

언니만큼 커진 막내까지 내 앞을 앞서가는 네 사람의 모습을 카매라에 담았다.

남편과 나는 그대로인데 아이들은 매년 놀랄만큼 자란다.

생각도, 행동도, 말도, 표현도 쑥쑥 자란다.

남편과 내 흰머리도 같이 늘지만 뭐 어떤가.

제 날들을 잘 살아내주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 아이들과 같이 걸어갈 날이 아직도 한없이 긴데..

 

그래서 다시 기운이 난다.

 

남편의 그림.jpg

 

이날 남편이 그린 그림이다.

요즘 남편은 여성 호르몬 증가 시절을 맞이하여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매일 넘치는 지경이다.

짧은 연애,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었던 신혼기간에도 못 하던 고백을

매일 듣고 있다. 남들은 갱년기와 중년의 시들함으로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는

나이에 남편과 나는 다시 연애하는 것처럼 뜨겁고 알콩달콩하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그림을 화실 안에 걸어두고 남편은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래..

긴 겨울이 와도, 춥지 않겠다.

건강한 아이들, 변함없는 남편의 사랑..

마흔 여섯의 내 겨울은 이렇게 충분하니까 말이다.

 

 

Leave Comments


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Recen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