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따라 달라지는 명절 풍경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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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로서의 내 역할이 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물론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일이다.

아버님과 단 둘이 고향집에서 살면서 아버님을 보살피던 어머님이 떠나신 후

어머님이 해오시던 많은 일들은 며느리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 중 하나가 아버님의 속옷을 빠는 일이다.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고 13년째 살고 있지만 나는 남편 속옷도 손으로

빠는 일이 드믈었다.  대개는 세탁기로 빨고 흰 내의만 이따금 삶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이들 어렸을때 똥기저귀야 물론 손으로 털고 비비고 삶아 빨아 널었지만

길게 이어진 육아기간 내내 기저귀를 건사하는 일에 신물이 난 나는

애들 속옷도 거의 세탁기로 빨곤 했다.

그러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세 며느리가 돌아가며 강릉 본가에 들러

아버님을 보살펴드리게 되어 내 차례가 되었을때 때 몇 주만에  벗어 놓은

아버님의 속옷을 대했던 순간은 확실히 며느리로서 내 역할의 지평이

한참 넓어지는 대목이었다.

 

아버님은 흰 면 속옷만 입으셨고, 어머님은 매일 손으로 비벼빨아

눈처럼 희게 삶아 내 놓곤 하셨다. 며느리들이 와도 아버님 속옷 빠는

일은 언제나 당신이 손수 하셨다.

그랬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세 며느리들이 3주나 4주에 한번씩

내려와 살림을 하게 되었을때 아버님은 며느리들이 왔을 때에만

속옷을 벗어 놓으셨다.

3주만에 가도, 한달만에 가도 속옷은 딱 한벌 뿐이었다.

본래 옷 갈아입는 일을 귀찮아 하셔서 어머님 계실때도 몇 번이나

곁에서 재촉하고 지청구를 해야 마지못해 벗어 놓으시던 아버님이셨다.

그런 어머님이 안 계시고 며느리들이 드믄 드믄 들리게 되자 아버님은

며느리들이 오는 날에 맞추어 속옷을 갈아 입으셨다.

빨래 하는거 상관없으니 매일 갈아 입으라고 해도, 넉넉하게 속옷을

준비해 드려도 언제나 한벌 뿐이었다.

 

몇 주씩 입어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해진 속옷을 처음으로 손으로

비벼 빨 때 여러가지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했다.

싫거나 더럽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한 개인의 가장 내밀한 부분들을

며느리들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아버님의 입장이 애달팠고

내가 챙기고 신경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형님과 동서 보다 나는 하루 일찍 본가에 내려갔다.

그 다음날 형님과 동서가 도착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버님으 벗어 놓은 옷을 빨아 놓고 몇 주동안 쌓인 먼지를 닦아가며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손으로 비벼 빨아 하얗게 삶은 옷들을 옥상에 널었다.

바람과 볕이 좋아 빨래를 잘 말랐다.

 

깨끗해진 아버님의 속옷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살펴 드려야 할 일들이 늘어날수록 내 어른 노릇이, 며느리 노릇이

더 깊어지는 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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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 남자들과 아이들만 아버님을 모시고 큰댁으로 건너가 차례를 지내는 동안

세 며느리들은 우리집 차례상을 차렸다.

큰댁에서 음복을 마치고 남자들과 아이들, 일가의 남자 어른들이 도착하면

다시 우리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한다. 그리고 나서 선산에 간다.

큰댁의 자손들, 우리집과 작은집의 자손들이 모이는 선산의 성묘는 왁자하고 북적거린다.

요즘엔 어떤 풍경을 보든 언제까지 이 풍경이 이어질까.. 생각하게 된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많은 풍경이 바뀌었다.

아버님의 건강이 더 나빠지면 또 많은 풍경이 바뀔 것이다.

어른으로서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얼만큼이나 감당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게 오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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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모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있을리 없다.

가족이 모이면 갈등도 모이고 문제들도  모인다.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3박 4일을 함께 지냈다.

더러 불편한 장면이 연출되고, 어색하고 속상한 순간도 있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순간들도 있다.

그래도 가족이고 그래도 한 식구라서 함께 밥 먹고 자며 또 그만큼의 사연과 역사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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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묘에서 이룸이는 절을 아주 잘했다. 작년까지 어색해하던 모습이

많이 자연스러워 졌다. 필규는 제사에 들어가 남편 옆에 서서 제법 의젓하게

둘째 손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서툴던 떡 반죽을 이번에는 어쩐지 잘 해내서 쫄깃한 송편을 만들수 있었다.

시간이 가면 잘 해내는 일들도 생기고, 편해지는 부분들도 늘어난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불편한 것들도 있지만 이젠 그것도 크게 마음쓰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위안이 되는 날들이다.

또 한번의 추석이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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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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