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휴가 생생육아
2015.08.05 18:2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Edit
결혼하면 여름 휴가때마다 가족끼리 멋진 여행을 다닐 줄 알았다.
남들처럼 리조트도 가보고, 펜션도 빌리고, 멋진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맛집에도 다니는 그런 휴가를 꿈 꾸었더랬다.
그러나.. 꿈은 그저 꿈일 뿐 이었다.
대한민국 사람 열명 중에 일곱명이 휴가지로 손 꼽는 강원도 강릉이 시댁인
며느리의 운명은 휴가때마다 시댁행이다. 여름휴가는 대부분 3형제가
날짜를 맞추어 같이 모여 지내다보니 대식구 밥 차리고 치우고
매일 아이들이 버려놓는 빨래하다보면 휴가가 다 지나간다.
하루나 이틀 바닷가를 가기도 하지만 첫 휴가땐 해변에서 대식구 점심을
직접 불 피워 장만하느라 바닷물에 들어갈 새도 없었고, 다녀와선 모래범벅인
수영복이며 신발을 손빨래 하느라 허리가 휘었다.
대식구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돈이 많이 들다보니 휴가때라도 나가서 밥을 먹는
일은 드믈었고, 이곳 저곳을 많이 다니는 일도 드믈었다.
결정적으로 시아버님은 다리가 약하셔서 많이 걷지 못하셨다. 몸이 약한 어르신이
계시다보니 우리끼리 놀러가는 것도 어려웠고, 오래 걸어야 하는 곳엔 갈 수 도
없었다.
주로 시댁에 있다가 가까운 바닷가 한번 다녀오고 또 시댁에 있다가 근처
나갔다 오며 휴가를 보내곤 했다.
처녀시절엔 강원도를 정말 좋아해서 설악산이며 속초며 낙산이며 화진포며
여기 저기를 여행다녔던 나는 결혼하고서는 오로지 시댁과 그 근처만 있다오는
여행이 늘 아쉽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어른들이 어려워서 어디 좀 가보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서운해서 눈물이 나곤 했다.
설악산도 그리웠고, 바닷가도 그리웠고, 한계령이며, 미시령이며, 수많은 계곡들이며
처녀시절 좋아했던 장소들이 그리웠다.
결혼하고 5년 쯤 지났을때 난 남편에게 시댁에서 돌아오는 날만큼은 아침만 먹고
집을 나서서 우리가족끼리 좋아하는 장소를 들러 오자고 부탁했다. 남편은 그러자고 했다.
어르신들이 다 계시고, 형제들도 다 있는데 우리 가족만 아침만 먹고 일찍 떠나는 것을
형님은 못 마땅해 하셨지만 우리 가족끼리만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내겐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댁을 나와 경포대로 달려갔고, 낙산으로 달려갔다. 오대산 월정사를 들리고
봉평의 메밀꽃밭을 들렸다. 미시령 옛 고개를 넘고, 한계령을 넘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며느리로서의 내 자리에서 벗어나 세 아이의 엄마로서, 나자신으로서
시간들을 즐겼다.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내겐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온 후에는 여행을 잊고 살았다.
주말이면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도 했고, 세 마리의 개들과 열대여섯마리의 닭들을 두고
멀리 오래 갈 수 도 없었다.
친구들은 사이판이며 괌, 말레이시아와 홍콩등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고 자랑했지만
나는 내 집을 가꾸고 시댁을 오가는 것으로 만족했다.
3년전에 시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님을 보살펴드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을 다녀오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올 여름 휴가 역시 강릉이었다.
형님이 설악산에 콘도를 예약했다며 3형제가 날짜를 맞추어 모이자고 하신 것이다.
강릉에 부모님 집이 있어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한번쯤은 집이 아닌 곳에서
잠도 자보자고 형님이 아버님을 설득하신 모양이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 많은 것을 며느리들에게 의지하고 계신 아버님은 딱히 반대를 안 하셨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콘도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콘도에서도 대식구 식사를 차리고 치우는 일은 변함없었지만 이번엔 유명하다는 맛집도
두어군데나 들릴 수 있었다.
콘도 같은 곳에서 자 본 기억이 없는 윤정이와 이룸이는 너무나 멋지다며 아주 좋아했다.
비록 하룻밤 자고 나서 다시 시댁으로 와야 했지만 울산바위가 마주 보이는 근사한 숙소에서의
하룻밤은 오래 오래 기억날 만큼 근사한 추억이었다.
콘도에서 시원하게 지내다 시댁으로 오니 실내 온도가 31도가 넘었다.
강릉은 36도의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덕분에 결혼 후 처음으로 에어컨을 밤새 켜고 잘 수 있었다.
손주들이 땀띠로 고생을 해도 끝내 에어컨을 켜지 않으셨던 아버님이셨는데 말이다.
아버님 옷을 삶아 빨고, 우리 가족 옷도 모두 세탁해 널고 장을 봐서 몇 주간 드실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였다.
에어컨을 켠 거실은 시원했지만 불을 때며 음식을 하는 부엌은 거실과 별채로
되어 있어 너무 더웠다. 남편은 선풍기를 가져다 틀어주었다.
가스불때문에 직접 나를 향해 틀 수 없었지만 발목 언저리가 시원해지니 살 것 같았다.
큰 댁에 인사 드리러 아버님 모시고 다녀오고, 아버님 여름 바지가 필요하시다 해서
모시고 가서 두 벌 사드렸더니 하루가 다 갔다.
마지막 날엔 아침을 차려 드리고 일찍 나왔다.
아이들과 내가 좋아하는 대관령 옛길을 넘어 삼양대관령목장엘 들렀다.
필규가 4살 무렵에 한 번 와보고는 처음이었다.
6백만평의 평원은 초록 풀로 덮여 있었고 날은 덥고 맑았다.
정상까지 서틀버스로 가서 내려올땐 목책을 따라 걸었다.
한시간 반쯤 땡볕 아래를 걸어야 했지만 걷는것이 익숙한 아이들은
덥다고 하면서도 즐겁게 내려왔다.
늘 어린줄 알았는데 이만큼 커서 업을 일 없이 제 힘으로 걸어내려오다니
새삼 감동스러웠다.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혼자 남으신 아버님을 돌보는데 며느리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을 이해하게 된 남편은 시댁에 오면 열심히 많은 것들을
도와주려고 애쓴다.
오고 가는 길, 운전하느라 고생스럽지만 시댁에 있는 동안 마누라가 얼마나
애쓰는지 잘 알기에 묵묵히 도울 일을 찾을 뿐이다.
남해바다도 가보고 싶고, 서해의 좋은 곳도 늘 그립지만 아버님이 계셔서
동해바다가 의미가 있고 대관령 넘어 오가는 길에 정들고 익숙해진 수많은
풍경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세월동안 남편과 내 사이도 많이 깊어졌다.
강릉을 다녀오니 이젠 내가 사는 곳이 불볕 더위다.
다시 출근한 남편 대신 나 혼자 종일 세 아이와 지지고 볶아야 하는 일상이지만
무엇보다 모두 건강하게 여름을 나고 있으니 다시 기운내야겠다.
이다음엔 이다음엔 우리 가족끼리만, 혹은 남편과 단 둘이서만 떠나는 여행도
가능하겠지. 언젠가는 혼자서 훌쩍 떠날 날도 있겠지. 암.. 그렇겠지.
그러니까 지금 지나고 있는 이 풍경들도 사랑해야지.
8월 중순엔 어머님 3주기 기일이다. 더운 여름날 제사를 모시기 위해
세 며느리들이 또 애를 많이 쓸 것이다.
그러면서 정도 더 깊어지려니... 생각한다.
이제 우리들이 짧지만 진한 여름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여름은 아직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