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생생육아
2015.06.08 16:4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Edit
이건 정말 대란이다. 메르스 사태말이다.
뉴스, 신문, 인터넷... 어디나 온통 메르스 얘기 뿐이다.
매일 매일 격리자가 얼마나 늘고, 어디서 또 확진자나 나타나고 하는 뉴스를 보다보면
무슨 공상과학영화의 한장면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공포가 큰 공포가 되서 일상을 잠식해가는 과정이 낱낱이 중계되는 기분이랄까.
사람들도 그에 맞추어 불안을 차츰 차츰 키워 가고 있는 듯 하다.
이러다보니 도대체 우리가 느끼는 이 불안의 실체가 뭐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치사율이 높은가?
실제로 메르스로 죽은 사람들을 보면 대개 고령에 지병이 있던 사람들이던데
그 나이와 그런 상태에선 가벼운 감기도 치명적일 수 있지 않나?
백신이 없다는것이 그렇게 공포스러운 일인가?
벡신은 예방약이다. 치료약이 아니다. 메르스 의심환자로 격리되었어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고, 확진자 중에서도 완치되어 퇴원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매일 난리일까.
의심환자가 한명도 없는데도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쳐 휴교를 하는 학교와 학원들도
많다는데 휴교가 과연 대안이 될까?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어떤 상태에서 지내게 될까. 부모의 충분하고 사려깊은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갑자기 면역력 약한 조부모들에게 덜렁 맡겨지면
그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
일상의 리듬이 깨어지고 학교에 가는 것이 위험할 정도로 무서운 병이라는 인식이
아이들에게 새겨지는 것은 괜찮을까?
학교에 안 가는 동안 집에서 얌전히 지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혈기 왕성한 아이들은
집에서 못 견디고 놀이터로 이곳저곳으로 친구들을 찾아 돌아 다닌다고도 하고
동네 PC방에 모여서 논다는 얘기도 들려오는데 이런 현상은 괜찮은걸까?
아이들은 휴교해도 어른들은 다 직장엘 다니는데 각기 다른 직장에서 종일 다양한 접촉을
한 부모와 한 집에서 지낸다면 아이들만 휴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교도, 직장도, 다 쉬면 괜찮을까?
일상이 무너지는데서 오는 피곤과 스트레스가 더 위험하지 않을까?
과연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메르스 뿐일까.
다른 수많은 위험에는 이렇게 집단적으로 반응하지 않던 부모들이 왜 메르스에만 이렇게
큰 관심을 보이는 걸까.
메르스 확산과는 상관없이 나는 평소와 별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두 딸들은 각각 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방과후 활동도 하고 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이 놀러오기도 한다.
매일 씩씩하게 걸어서 학교에 가고 매일 충분히 뛰어 놀면서 지낸다.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 메르스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런 병이 돌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른들이 느끼는 심각함이나 공포, 두려움에
물들지 않는다.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메르스에 관한 이야기나 영상을 거의 보지 않고
지내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이나 안내문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고작이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어른의 감정을 먹고 자라는 존재들이다.
엄마가 무서워하면 아이는 뭐가 뭔지 모르면서 무서움을 느낀다.
어떤 대상에 대해 잘 모를때 아이는 어른들의 반응을 보며 제 감정을 결정한다.
그런면에서 지금 어른들이 보이는 모습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낮선 질병이 우리 사회를 휩쓸때 국민 건강을 위해 적절한 대처를 못한 정부의 잘못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매일 의심 환자 수를 발표하고, 격리환자 수를 통계내는 것이
과연 중요한 일일까.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임에도 언론은 그런 사실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기이한 세상이 나는 더 무섭다.
신종플루가 세상을 온통 휩쓸때에도 나는 아이들과 조용히 지냈다.
평소에 하던 모든 일을 그대로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시기에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일은 아니지만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면서 메스컴이 양산해내는 공포와 두려움에 되도록 아이들을
노출시키지 않는 일에 신경을 썼다.
어떤 질병에든 중요한 건 면역력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면역력이 강해지려면 매일 매일 걷고, 충분한 볕을 쬐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너는 건강한 아이기 때문에 어떤 병이라도 이겨낼거라는 말도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과 긍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메르스로 예민해진 한 엄마는 수시로 아이 체온을 재면서 노는 아이를 불러 어디 이상이
없는지 묻는다고 한다. 아이는 잘 놀다가도 엄마한테 달려와 열을 재달라고 할 정도란다.
언제든 아플 수 있다는, 언제든 그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멧세지를 계속 받으면서
생활한다면 그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몸은 생각을 반영한다. 아플꺼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 몸은 정말 아프기 시작한다.
온 세상 천지가 다 메르스 균이 우글거리고 있어서 어디도 안전하지 않고,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아야 할것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는 언론을 볼때마다
정작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집단 공포과 집단 두려움을 키워내는 언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메르스에 걸리는 것 보다 걸릴까봐 무서워 내 일상을 온전히 유지할 힘을
미리 잃어버리는 것이 더 무서운 일 아닐까.
미리 공포를 심어주고, 미리 그 공포를 키워가고, 미리 그 공포에 질식해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나는 휴교 여부를 묻는 학교운영위에 휴교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휴교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열악한 돌봄에 처해지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규칙적인 등교, 식사, 일정 속에서 정해진 동선안에서 지내는 것이 갑자기 일정과 동선이
바뀐 상태에서 지내는 것보다 아이들 심리에 훨씬 더 긍정적일 테니 말이다.
병엔 무엇보다 그 병에 대한 내 감정이 중요하다.
매일 즐거운 일들을 조금씩 만들고 몸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하면서
변함없는 일상의 과업들을 해 내면서 지내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휴교를 하지 않았다.
주변 학교들이 다 휴교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침착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학부모들이
많다는 것이 다행이다.
메르스는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또 다른 것들이 올 것이다.
새로운 것이 나타날때마다 이렇게 온 사회가 들썩이고 공포에 떨게 된다면 삶은 늘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공포가 사회를 잠식할때 평정을 유지하며 내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