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다 고맙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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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살 아들은 요즘 몸이 좋지 않다.

장염 증세로 이틀간 학교에 못 가기도 했고, 그 후로도 기침도 하고, 여전히 소화도

잘 안되고, 눈도 피곤해 한다.

나이가 주는 성장통이 온 녀석이라 가뜩이나 신경질이 많고 예민한데 몸도 좋지 않으니

이래 저래 엄마와 자주 부딛친다.

아침 일찍 나가서 차를 두 번 갈아타고 학교에 갔다가 저녁 여섯시나 되어야 돌아오는

생활을 1년 가까이 해 오다 보니 연말이 다가올수록 체력이 딸리는 모양이다.

집 근처의 대안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많이 놀면서 느슨한 생활을 했던 녀석이

중학생이 되자마자  빡빡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몸도 마음도 어지간히 고단할 것이다.

 

며칠전에 아들과 사소한 일로 또 부딛쳤다.

화가 난 나는 "내일부터 아침에 시간 맞줘 일어나는거, 니가 알아서 해. 엄마는 신경

안 쓸테니까"하고 쏘아 부쳤다. 아침마다 못 일어나는 아들 깨우는 일이 힘들긴 했지만

사춘기 아들한테 퍽 유치한 보복을 표현 한 샘이었다.

그러자 아들은 나늘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엄마한테 의지하는게 몇 가지나 된다고 그런것까지 제가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의지하는게 별로 없다고? 맨날 엄마 엄마 하며 의지하는 녀석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잖아요. 제 힘으로 숨 쉬죠, 제 힘으로 걸어다니죠, 제 힘으로 학교 다니죠, 제 힘으로

하는게 얼마나 많은데요. 백가지도 더 댈 수 있어요" 아들은 소리쳤다.

아이고 녀석아....

기가 막혀서 대답할 말을 못 찾고 있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렇지... 그렇지... 하는

깨달음이 마음을 울렸다.

 

그래, 그래..

밥 차려주는거야 내가 하지만 떠 먹는건 니가 하지, 꺠우는건 내가 하지만

네 발로 걸어나가 학교에 가는구나.. 학비를 내 주는건 우리지만 학교에 가서 배우고,

익히고, 애쓰는건 네가 하고, 씻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걷고, 달리고,

안아주는 것도 네 스스로 하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대단한 일인지

가슴에 쿵 울렸던 것이다.

그 대단함, 그 고마움, 그 뿌듯함을 너무 당연하게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여겼구나..

온전하게, 건강하게, 살아 있고, 곁에 있어서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또 화해하는

순간들이 모두 모두 기적이고 선물인것을 또 잊었다.

한 해가 가는 12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또 욕심을 비우고 있다.

아들 덕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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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을 보내고 있는 둘째는 슬슬 그 분이 오시는건가 싶을만큼 2학기 들어

자주 짜증을 부리고 신경질이 늘었다.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보다 감정변화가 빠르고 다양하다는데 설마 아들과 딸이

한꺼번에 사춘기에 들어서는건 아니겠지... 걱정 했을 정도다.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란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다.

이해하고 참아주는 폭도 넓지만 늘 누구에게도 충분히 저를 주장할 수 없다보니

한번씩 예민해질때마다 큰 소리가 난다.

그 마음을 다 알면서도 나는 잘 받아주는 엄마가 못 되었다. 세 아이 사이에서

널 뛰듯 오가다 보면 균형을 잡아 줄 수 있는 위치인 둘째에게 더 많이 기대게

되기 때문이다.

 

며칠전 먼저 방학을 한 이룸이가 아직 자고 있는게 맘에 걸려서

"오늘은 학교 근처에 내려 줄테니까 너 혼자 걸어가면 어떨까"

윤정이에게 부탁을 했었다.

"싫어요. 엄마랑 함께 갈래요"

"이룸이도 아직 자고 있고 엄마도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그래"

".... 그래도요... 엄마랑 둘이만 가고 싶어요.같이 가주세요"

난 딸애를 다시 찬찬히 보았다. 평소같으면 한숨을 쉬며

알았어요.. 혼자 갈께요... 하는 딸이었다.

나는 뭔가 생각이 들어 집을 같이 나섰다.

교실 입구까지 같이 걸어가며 얘기했다.

"윤정아.. 다음에도 누군가 네게 부탁을 해도 잘 생각해서

정말 니가 원하는게 아니면 그렇게 하겠다고 안 해도 돼.

정말 안 되는 상황이면 어쩔 수 업지만 상대방 마음 먼저

살피느라 니 마음이 원하는 거 말 못 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거

하는 것 보다는 나아. "

"네... "

교실로 들어서는 현관까지 손을 꼭 잡고 가던 윤정이는 친구들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뛰어 갔다.

 

엄마 사정을 제일 많이 이해하는 딸이어서 늘 고맙다고 생각하는동안

힘들때마다 내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역할을 제일 많이

종용해오던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둘째의 의견은 다른 아이보다

조금 가볍게 여겨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갈등이 생길것을 예상하면서도 제 주장을 내세운다. 무조건 고집을

부리는게 아니라, 좋은거, 싫은 거를 분명히 표현하는 것이다.

그건 분명 큰 변화고 좋은 성장이다. 둘째에겐 더욱 그렇다.

언제나 착한 딸 보다는 제 생각이 또렷한 딸이 더 낫다.

이젠 나도 둘째의 마음과 변화를 더 잘 봐야겠다.

내년엔 열한 살이다. 잘 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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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라서 그런지 이 아이와 보내는 모든 순간은 눈부신 발견과

아쉬운 작별의 연속이다. 올해를 끝으로 유치원생을 키우는 날들은

끝이다. 막내는 드디어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그 일로 내내 기대에

차 있는 딸이다.

언제나 건강했던 막내는 얼마전 배가 아파서 유치원을 하루 쉬었다.

워낙 드믄 일이어서 걱정을 했었다.

한 아이가 아파도 다른 두 아이가 함께 있는 집이다 보니 안 아픈

아이는 아픈 아이 앞에서 과자도 먹고, 빵도 먹고, 이것 저것 맛난 것들을

계속 먹어댄다. 어린 마음에 그런 것들이 먹고 싶을텐데도 이룸이는 참

대견한것이 설명을 해주면 받아들인다.

"너는 배가 아프고 소화가  안되니까 밀가루 음식은 먹을 수가 없어.

배가 다 낫기 전에는 고기도 안되고... 대신 누웅밥이나 숭늉, 죽은

괜찮아"

"네.. 알았어요. 대신 제 과자랑 빵은 꼭 남겨두세요"

이룸이는 배가 다 나을때까지 맛난 것을을 못 먹는 것을 속상해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았다. 제 몫이 있으니 아픈게 지나가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세 아이 중에서 가장 건강한 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막내다.

빵보다 밥을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하지만 나물을 제일 잘 먹는다.

방학을 한 막내는 요즘 매일 그림일기를 쓰고 있다.

선물받은 1학년 문구 셋트 중에 그림 일기장이 있었는데 띄어 쓰기는 서툴어도

한장을 꽉 채운다. 해야 한다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저 혼자 글을 익히고

저 혼자 계획을 세워서 열심히 즐겁게 한다. 오빠와 언니를 보고 배우고

욕심을 내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이자 막내라서 받는 선물이기도 하고

타고난 것도 있을 것이다. 부모 입장에선 참 고마운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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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세 아이들과 무던히도 싸우고 소리 지르고 야단치고 화 내며 살았다.

그렇지만 정말 많이 웃고, 안고, 울고, 함께 뒹굴며 지낸 시간이었다.

툭하면 싸우지만 서로를 많이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열네살, 열살, 일곱살이란 어쩌면 참 같이 어울리기 어려운 나이일지도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워낙

함께 지낸 시간들이 많은 아이들이라 여전히 집에서는 같이 노는 아이들이다.

크리스마스 날 집에 오신 외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한다미씩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을 보고 친정 아빠는 참 즐거워 하셨다.

힘든 시절이었는데 아이들은 참 반짝 반짝 커 왔다.

 

학부모회장을 맡아 1년간 정신없이 뛰었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도 마무리 할 일이

있어 이리저리 바쁘다. 그래서 살림에도, 애들한테도 많이 소홀했었다.

학교일도, 나랏일도 맘 같지 않고, 신경 써야 할것들이 넘치고, 몸을 내고 마음을 내고 시간을 내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한 해 였다.

그 사이에서 때로는 같이, 또 때로는 저 혼자 아이들은 자기만의 시간속을 잘 걸어왔다.

 

사춘기에 접어 든 큰 아이

아이에서 소녀로 나아가고 있는 둘째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할 막내까지 세 아이와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지낼

새 해를 기다리고 있다.

크느라고 대들고, 자라느라고 아프고, 여무느라고 힘든 아이들이다.

다 제 몫대로, 잘 크느라고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돌아보면 고맙지 않은 것이 없고

소중하지 않는 시간들이란 없다.

 

1년의 끝에 서보니 다 알겠다. 다 알아진다.

새 역할을 맡아 애쓰면서 크게 아프지 않았던 나도 애틋하고

이 아이들이 이렇게 피어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가장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해주는

남편도 너무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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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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