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네살 아들과 '통'하고 삽니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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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기질이 다른 아이 키우는 일, 정말 힘들다.

아이는 부모를 닮기도 하지만, 어떤 면들은 도무지 내 속에서 나왔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기질도, 취미도 다른데 그 아이와 하루를 온전히 같이 보내야 하고, 놀아도 줘야

하는 일.. 엄마가 되기전까지는 이런 일이 얼마나 힘든지 정말 몰랐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레고'에 열광했다.

문제는 나도 그 레고를 같이 조립해주기를 원하는 거다.

나는 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허리를 숙이고 콩알만한 그 작은 조각들을

이리저리 끼우고 빼는 일이란 고문에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일을 하라면 차라리 밭에 나가 괭이질을 하고, 삽을 뜨겠다.

평면을 입체로 구현하는 일 따위는 애시당초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데 아들은 이 일을 너무 너무 좋아했다. 여섯시간도 넘게 꼼짝도 않고

조립을 한 것이 여섯살때 였다.

그땐 신기함을 너머 무서웠다.

엄청난 집중, 몰입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와달라고, 같이 하자고 징징거리고, 짜증 부리고, 화를 내는 아들 때문에

적성에도 안 맞는 레고 조립을 하는 시늉을 할 때면 허리도 아프고, 눈도 쑤셔오고

무엇보다 손톱이 너무 아파서 열 받고 화가 났다.

어린 아들과 자주 싸웠다.

엄마는 놀아주지도 않는다고, 제가 좋아하는 일은 다 싫어한다고 원망도 숱하게 들었다.

그래도 '레고'는 싫었다. 지금도 보는 것만 좋아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면서 같이 열광하는 것들이 생겼다.

'책'이다.

재미있는 책이라면 아들도, 나도 꼼짝 못한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다.

재미있는 만화라면 더 열광한다. 나는 좋은 만화는 돈들여 구입해서 소장하며

몇 번이고 읽는데 '캔디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같은 고전 순정만화부터

'송곳'이나, '신과 함께 '같은 요즘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아들과 같이 즐기고 있다.

 

며칠전부터 아들과 나는 '야마자키 마리'가 지은 '테르마이 로마이'라는 만화에 빠져있다.

로마시대의 목욕탕 건설 기사가 현대 일본으로 시간 여행을 오면서 겪는 시대를 초월한

목욕문화에 대한 만화다.

언뜻 황당하고 터무니 없는 스토리같지만 읽다보면 로마와 일본을 잇는 목욕문화의

풍부한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노란 때수건을 들고 있는 '밀로의 비너스; 라든가,

샴푸 캡을 쓰고 있는 '라오콘'같은 표지도 너무 웃기다.

역사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기막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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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아키미'가 지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아들과 내가 흠뻑 빠져든 만화다.

표지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다 시원해지는 이 작품은 '가마쿠라'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네 자매가 겪는 사랑과 일, 이별과, 일상등을 담백하고 훈훈하게 담아낸다.

10대, 20대, 30대의 네 자매들은 각각 다른 일과 사랑을 겪고 있지만 어느 연령이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이 있다.

사람을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는 것과,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그 일이

주는 힘겨움과 보람을 성숙하게 배워가는 자세들은 사춘기인 아들에게도

뭉클하게 다가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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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들은 '마블'의 열렬 펜이기도 하다.

한달에 만 5천원 받는 용돈을 모아 열심히 마블 시리즈를 마련하고 있다.

얼마전에 선물해준 마블 백과사전은 아들이 밤 마다 끼고 애독하는 책이다.

마블의 수많은 케릭터들을 설명하고 있는 이 백과사전은 내가 공감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아들이 어떤 것에 열광하고, 감탄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내 취미는 아니지만 열심히 응원해주고 지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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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읽게 놔두면 글자 책은 안 읽게 된다고 염려하는 부모들, 많다.

그래서 만화는 안 사준다거나 못 읽게 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을 아는 아이라면 만화든 글자 책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을 알게 할 것인가지, 만화라서 안 되고

책이라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필규는 '재미'있으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신문기사건, 광고 전단의 내용이건

만화건, 책이건 상관없다. 빠져든다.

판타지 물, 역시 아들이 애정하는 장르다. 나니아 시리즈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열렬한 펜인 아들 덕분에 나도 이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아들은 그중에서도

'반지의 제왕'이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낡은 시리즈로 읽었던 아들을 위해 남편은 거금을 들여 새로 나온

시리즈를 구해 주었다. 멋들어진 장정 뿐만 아니라, 기품있는 삽화까지

아들은 너무 좋아했다. 며칠 밤마다 이 책을 잡고 단숨에 읽어치워 아빠의 후원에

보답한것은 물론이다. '호빗'과 '마션'도 한숨에 읽어 치웠다.

 

같이 읽은 책들이 많아지니까 할 예기도 넘친다.

차를 타고 멀리 갈때 길이 막히고 지루해지기 싫어하면 우린 함께 읽었던 만화나

책 속의 이야기를 하며 깔깔 거린다.

 

"야, 그 장면 생각나니?

'테르마이 로마이'에서 주인공 '루시우스'가 현대 일본의 대중탕에 나타났을때

기함을 하던 일본 할아버지들의 표정.. 정말 끝내주더라"

"엄마.. 원숭이 온천에 등장하는 장면이 더 죽여요. 크크"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오는 '히말라야의 두루미'.. 무슨 얘긴지 알지?"

"쇠재두루미 잖아요. 8천미터 에베레스트를 날아 넘는..."

"'플레닛 얼스' 다큐멘터리에서 보고도 정말 감동받았는데, 이 만화에 나오니까

더 감동이 있더라.

힘든 일이 생기면 '히말라야의 두루미'를 떠올리며 힘 낼 수 있을 것 같애"

"맞아요"

 

아들은 사춘기 소년답게 자주 나와 싸우고, 까칠하게 굴기도 하지만

재미난 책을 만나면 바로 동지가 된다. 빨리 읽고 넘기라고 재촉하며

서로 킥킥 거리는 사이 좋은 모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해 주고, 서로 좋아하는

일을 많이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초원의 집', '유리가면', 셜룩 홈즈', '땡땡 시리즈', '식객', '오므라이스 잼잼'

'오베라는 남자', '윤동주 시집'...

 

우리가 함께 읽은 수많은 책들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인공등, 우리를 숨죽이게 했던 사건들, 유쾌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등장인물들..

모두 아들과 나 사이를 깊고 따스하게 이어주는 끈 들이다.

 

'테르마이 로마이'를 샀다고 했더니 빨리 읽고 돌리라는 친정 언니들의 카톡이

성화다. '히스토리에' 9권 새로 나와서 바로 구입했다고 자랑하는 쌍둥이 자매와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는 반드시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진작에 내게 빌려준

큰 언니  모두 나이 들어도 재미있는 책으로 어려서부터 끈끈하게 이어진 친정자매들의

관계는 지금도 굳건하다.

아들이 더 크고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나와 재미있는 책을 주고 받으며 같이 나이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사랑에 빠질 또 다른 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두리번 거리고 있다.

세상에는 재미나고 좋은 책이 너무나 많다.

정말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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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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