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손을 부탁해^^ 생생육아

막내 손을 부탁해.jpg

 

남편이 출장을 간 밤, 늦도록 글을 읽다 딸들 옆에서 자려고 작은 방에 들어갔더니
이불 속에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잠들어 있다.
아홉살 막내다. 감청색 양말을 뒤집어 쓴 손 모양이 꼭 아기 고양이같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룸이는 꼭 손이 튼다.
손등이 거북이 등처럼 거칠거칠해지다가 빨개져서 얼얼해지도록 아프게 된다.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도 윤정이는 괜찮은데 이룸이는 손 때문에 고생을 한다.
이유는 있다.
이룸이는 소변에 대한 예민함이 있어 유난히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린다. 그때마다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따끈한 물로 잘 씻고 물기를 꼼꼼히 닦고 나와야 하는데 찬물로 대충 씻고

수건에 손을 한번 비비고 후다닥 나오기 일쑤다. 물기가 남아있는 손으로 다시 교실로, 운동장으로,
마당으로 다니며 놀다보니 손이 트지 않을 수 없다.
밤 마다 잘 씻고 좋은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고 자도 별 효과가 없다. 요즘은 축구에 재미를 붙여
방과후에 아이들과 운동장을 달리며 공을 찬다니 손이 안 상할 수 가 없다.

그래서 어제는 자러 가는 이룸이 손을 만져보다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손을 잘 씻고 잘 말린 다음에 바셀린을 듬뿍 바르고 면장갑을 끼고 자 봐. 아주 효과가 좋아"
"손에다 장갑을요? 면장갑이 어디 있어요?"
"음.. 면장갑이 아니라도 양말도 괜찮아. 바셀린이 이불에 묻지 않고 손에 잘 스며들게
하는 목적이니까 양말을 손에 끼고 자도 되지"
"불편하지 않을까요?"
"뭐, 조금 불편하겠지만 효과가 좋아. 한 번 해봐"

그리고는 밤 늦도록 일을 하느라 이룸이가 손에 바셀린을 바르고 양말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곁눈으로 대충 살피고 말았는데 나중에 방에 들어와보니 감청색 양말을 양손에 낀 채로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대학시절 내 쌍둥이 언니도 이런 모습으로 잠들곤 했지.

그 시절, 아빠가 잡자기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집안이 크게 어려워졌을때 우리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쌍둥이와 나는 시급이 좋은 백화점 일자리를 구했는데,

잔업까지 하루 열시간동안 서서 물건을 팔고, 나르고, 포장을 하는 일 이었다.
빳빳한 종이포장지를 접다보면 손이 금방 상했다. 나중에는 손끝이 갈라져서 옷을 입을때마다
올이 걸리곤 했는데 자지러질만큼 아팠다. 더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았던 낡은 집에서 아홉명이
부대끼며 사느라 서로를 챙겨주고 살펴 줄 여유라곤 없었다.
나보다 아르바이트가 더 많았던 쌍둥이 언니는 밤 마다 손에 크림을 듬뿍 바르고 장갑을 낀채

잠 들곤 했다. 잠 속에서도 고단해 보이던 얼굴과 양 손에 끼워져 있던 장갑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땐 가족 모두 다 힘들었다.

이런, 이런..
귀여운 막내 모습에서 아득히 지난 날 힘들었던 모습을 떠올리다니... 궁상이다.
안스럽던 그녀의 손은 이제 철마다 알록달록 화려한 메니큐어를 자랑하는 고운 손으로
이쁘게 나이들어 가고 있는 걸..

오늘 아침 잠결에 양말이 빠져있는 막내의 손을 만져보니 하루만에 놀랄만큼 보드라와졌다.
역시 어린 아이는 회복력도 크구나.
"와, 엄마, 만져보세요. 완전 매꼴매꼴해요" 이룸이는 웃으면서 제 손을 어루만졌다.
"그러네, 정말 매꼴매꼴하네. 오늘 밤까지 양말 끼고 자면 내일은 정말 비단결같은 손이 되겠다"
우린 같이 웃었다.

날이 한층 추워진 아침, 이룸이는 양 손을 잠바 주머니 속에 넣고 생글생글 웃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또 수시로 화장실을 들리고 그때마다 대충 손을 씻고 교실이며 복도며
운동장을 누비겠지. 호기심도 많고, 에너지도 넘치는 딸이라 종일 만들고, 쓰고, 만지느라
손이 쉴 틈이 없겠지만 이젠 요령을 알았으니 아플만큼 트지는 않을꺼야.
나도 더 세심하게 살피겠지만
크림아, 양말아.. 막내 손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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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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