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전 딸기여행, 결혼후 딸기체험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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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따뜻하고 화사한 봄이 왔다. 몸과 마음이 웅크려지는 겨울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살랑거리는 봄이 왔다. 봄 하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 두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후리지아의 달콤한 향기, 세번째 떠오르는 것은 딸기의 상큼함이다. 까만 씨가 톡톡 박힌 탐스런 딸기가 동네 슈퍼 매대에 자태를 드러내면 그 딸기를 당장이라도 한 입에 베어 먹고 싶다. 그 딸기는 봄의 춘곤증도, 봄의 무료함도 날려버릴 것만 같다. 요즘은 사시사철 딸기를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딸기가 가장 딸기다워보이는 때는 봄철이다.
 
딸기를 떠올리면, 2004년 4월 남양주에서 한 딸기농장 체험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결혼을 안한 자유의 몸이었다. 입사한 지 2년이 갓 지났고, 대학 시절부터 지냈던 하숙집에서 하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봄이 다가오자 여대생과 사회 초년생 여자 6명이 뭉쳐 딸기농장 체험과 함께 남이섬 여행을 떠났다. 당시 누가 여행 스케줄을 짰는지 모르지만, 그때 나는 남들이 짠 스케줄에 몸만 합류해 그저 즐겁게 놀았다. 누구를 돌보지 않아도 됐고, 시간에 쫒기지도 않았다.

 

사진_0~2.JPG » 9년전 남양주의 한 농장에서 딸기다던 내 모습.

 

nam_182.jpg » 겨울연가 주인공 배용준의 품에 안긴 내 모습이 행복해보인다.

 

20대 풋풋한 여자 6명은 남양주 근처 한강변을 산책하고 딸기농장에서 딸기를 땄다. 잼을 만들고 유기농 채소로 정성껏 차린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바로 옆 다산 정약용 선생님 기념관 및 갤러리를 구경하고 남이섬으로 이동했다. 배를 타고 들어가 남이섬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다시 배타고 나와 가평역에서 기차로 서울에 도착했다. 그때의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줄 나는 알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주인공들이 첫키스하는 장소였던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6명의 여자들이 ‘까르르’ 웃으며 이상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며 그 찰라가 젊음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딸기잼을 만들기 위해 큰 주걱을 들고 휘휘 저으면서도 그저 까르르, 딸기를 따며 딸기 바구니를 머리에 얹고 엉덩이에 대보고 각종 장난을 하며 또 까르르. 과거는 항상 아름답게 미화된다지만, 2004년 딸기농장 체험을 생각해보면 ‘까르르’ 그 자체다. 그때 딸기농장과 남이섬 여행은 ‘까르르’ 그 자체다.
 
IMG_0553.JPG » 딸기 따는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

 

그 후로 9년후인 2013년 3월, 나는 아줌마가 됐다. 두 아이, 남편과 함께 양수리 근처로 딸기농장 체험을 갔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엄마가 유기농 딸기농장을 알게 됐고, 처음으로 아빠들까지 다 모여 다섯 가족이 함께 체험을 하게 됐다. 어른들은 1인당 1만5천원, 아이는 1만원, 36개월 미만 아이는 공짜였다. 9년만에 가는 딸기농장 체험이 기대되고 설레었다. 기사 마감을 앞두고 스트레스도 많고 몸도 피곤했지만 다 잊고 즐겁게 다녀오자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 딸기농장 체험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체험이나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4살 된 아들이 문제였다. 아들은 작은 고랑밭을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잘 익은 딸기를 따야하는데, 아들은 허옇게 덜 익은 딸기를 마구 따댔다. 나는 아들에게 “민규야~ 그건 안돼~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야지~”“민규야~ 어서 걸어가! 뒤에서 사람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딸기 꽃에 앉은 벌이 보이면 무섭다며 앞으로 걸어가지 않고 “엄마 안아줘”라고 말하며 내게 매달렸다. 13㎏이 넘는 아들을 안고 딸기를 따려니 땀이 삐질삐질 날 수밖에. 결국 아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서 잘 익은 딸기를 더 따겠다고 눈을 부라리며 딸기 따기에 매진했다. 뚜껑이 닫힐 정도로만 따라는 농장주의 주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딸기를 마구 먹어대면서 딸기 하나라도 더 따던 내 모습을 회상해보니 영락없이 ‘아줌마’다. 피식. 9년만에 내 모습은 그렇게 변했다.

IMG_0557.JPG » 딸기를 만지작거리는 아들 민규

 

IMG_0517 - 복사본.JPG »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

 
IMG_0567 - 복사본.JPG » 딸기잼을 만드는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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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jpg » 이번 체험 함께 한 다섯 가족 단체 사진.

 

비록 나의 ‘까르르’는 없었지만, 아이들의 ‘까르르’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딸기밭 고랑이 좁은 것도 신기해했고, 딸기잼을 만드는 것도 신기해했다. 비닐하우스 비닐이 조금 구멍이 났는데 거기로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농장주가 유정란을 삶아 서비스로 주셨는데, 달걀도 맛있게 먹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던 마루에서 아이들끼리 즐겁게 알아서 놀았다. 어른들은 옆에 앉아 삶은 달걀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두물머리 근처에서는 여기저기를 그저 뛰어다니고, 강에 돌팔매질을 하며 즐거워했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어른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줬다. 아마 그 자리에 모인 어른들은 모두들 몸과 마음이 피곤했겠지만,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에 위안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 했다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남편이 미리 준비한 초밥과 주먹밥은 다른 엄마들과 아빠들에게 박수를 받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이들은 “나는 딸기밭에 가서 딸기도 따봤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자연과는 거리가 멀고 콘크리트 벽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만끽했다. 그래, 9년만에 찾은 딸기농장에서 과거와 같은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 그 즐거움을 느꼈으리라. 그래,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가끔씫 9년 전의 그 여유롭고 자유로운 여행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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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