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의 비전문가들이 안보위기 고조시켰다! 국방개혁

 

 

해군 제독, 천안함 이후 화병 얻어 사망

 

해마다 6월이 되면 해군 예비역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화가 있다.

제2연평해전(2002년)이 끝나고 2함대 사령관을 지낸 J 소장이 전역한 지 3년 만에 화병으로 숨진 사건이다.  그는 몇 해 전에 선배 예비역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마음을 둘 데가 없어 그냥 전화 올렸습니다.”

후배들의 어려운 처지를 직감한 선배가 되물었다.

“지금 어디냐? 만나자.”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니?”

“무작정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달리고 있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불길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는 후배에서 가까운 인터체인지로 나가 위치를 확인하고 전화하라고 당부했다. 어디든 나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러나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에 그 후배가 폐암을 선고받고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선배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안타깝게도 후배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임종을 지켜보고 장례까지 참석하고 난 선배는 후배의 죽음이 서해에서 일련의 비극적 사건과 관련 있음을 직감했다. 마음의 병, 즉 ‘화병’이었다. 

2002년 6월 29일에 벌어진 남북 대치 상황에서 J 제독은 '이길 수 있었던 전투'를 합참의 부적절한 지시로 작전에 실패하게 된데 대해 평생의 한을 품었다. 6월만 되면 마음 둘 데가 없어 방황하던 그는 당시 작전의 비밀을 간직한 채 고인이 되고 말았다.  

올해 국방개혁 307 계획이 발표되는 것을 지켜 본 그 선배 예비역 제독은 이제껏 해군은 바다에서 북의 위협을 마주하면서 반대편으로는 상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과 싸워왔다고 설명했다. 바다에 대해 잘 모르는 육군 위주의 합참이 해상작전을 지휘하는 것은 “북의 위협보다 더 두렵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이런 상황에서 합참의장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덧붙였다. 함께 자리한 대란 예비역 제독은 또 하나의 사례를 제시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지 한 사나흘쯤 되던 날. 북한의 경비정이 중국 어선과 섞여 백령도 북방에서 북방한계선(NLL) 부근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해군을 통해 합참의장에게 보고되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몹시 궁지에 몰리고 있던 이상의 합참의장은 2함대 사령관에게 남하하는 선박들이 NLL을 월선하면 실탄을 사용하여 ‘격파’하라고 명령했다.

2함대사령관은 저항했다.

“중국 어선이 있기 때문에 쏘면 안 됩니다. 작전예규에도 못 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에 합참의장은 화를 벌컥 내며 소리쳤다.

“무슨 작전예규에 그런 게 있어? 내가 쏘라면 쏘란 말이야.”

재차 사격명령이 하달되자 2함대사령관은,

“의장님께서 하달하신 작전예규 ○○ 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때마침 합참을 방문한 김태영 국방장관이 합참의장과 2함대사령관 사이에 옥신각신하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크게 놀란 김 장관이 합참의장에게 황급히 “쏘지 마”라고 소리쳤다. 이걸로 다행히 사격명령은 취소되었다.

 

 

"어선도 격파" 명령 후 취소시킨 사연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합참과 해군 간의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 이후 구성된 국가안보총괄회의에 참여한 해군 출신 대표가 “딱 10분만 달라”며 우리 군사제도에 내재된 잘못된 인식의 문제점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반응이 “얘기 들어보니 주로 해․공군 예비역들이 하는 얘기와 비슷하다”며 귀담아 듣지 않았다. 뒤이어 이상우 국가안보총괄회의 위원장은 “자군 이기주의에 관한 얘기는 하지 말라”며 사실상 해․공군의 의견을 차단했다.

이런 일들은 천안함 사건 전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항상 그래왔다. 공군 예비역은 그 실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연평도 사건이 나고 그 다음 달인 12월에 연평도에서 재차 포 사격 훈련이 진행되었다. 이 당시 합참으로부터 경천동지할 지시가 내려왔다. 공군 전투기들이 일렬로 연평도 인근에서 비행하라는 것이다.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이다. 전쟁터에서 어떤 미친 공군 지휘관이 그런 비행을 하나? 이것도 공군이 저항해서 없던 일이 되었지만, 바로 일렬로 서서 방어하는 육군 사고방식이기에 그런 지시가 내려왔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런 일은 부지기수다.”

이런 갈등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모든 안보위기 시마다 항상 그랬다. 지금은 정보통신이 발달하여 해군 작전상황을 합참에서도 해군전술지휘통신체계(KNTDS)를 통해 다 본다. 99년의 제1연평해전 직전의 일이다. 시스템을 통해 작전을 지켜보던 합참은 남북 함정이 일촉즉발로 충돌할 위기로 가자 6월 12일 경에 비교적 대형인 수송함(LST)를 현장에 출동시켜 막도록 지시했다. “적이 용달차로 오면 우리는 덤프트럭으로 막아야 할 것 아니냐”는 말도 덧붙여졌다. 몸집이 커야 막는데 유리할 것 아니냐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LST는 무겁고 굼뜨며 무장도 없다. 2함대사령부는 “작전에 방해된다”며 이를 반대했다. 그러자 해군 작전사령관이 재차 2함대에 “당신들 누구 부하야, 하라면 하란 말이야”라며 합참 명령에 따를 것을 종용했다. 갑자기 큰 배가 나타나자 북의 전술이 바뀌었다. 14일 경에 무언가 껌벅껌벅 기어들어오는데 보니 북의 어뢰정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2함대 지휘부는 신속히 LST를 연평도 뒤쪽으로 가도록 조치하고 고속정으로 하여금 북의 어뢰정과 경비정으로 돌진하도록 조치했다. 우리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과 스치듯 지나가면서 보니까 갑작스런 큰 물결에 북 경비정 후미에 있던 북한 해군 7명 정도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보였다. 속도가 더 빠른 우리 고속정이 구사하는데 아주 유효한 기동전술이었다. 이후 양쪽 함정이 서로 육탄으로 치닫다가 교전으로 이어진 것이 바로 이 날의 해전이다. 잘못된 합참의 지시로 상황이 크게 악화된 뒤였다.

교전이 종료된 후 합참은 허가 없이 LST를 후퇴시킨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진지를 사수한다’는 육군의 전술개념은 뒤로 물러서는 것 자체를 비겁한 행위로 본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그러한 진지 사수 개념이 없다. 공간을 넘나드는 축구와 일렬로 밀고 당기는 럭비가 다른 것과 같다. 이 당시 합참은 ‘무언가 보여주려는’ 작전에 깊이 경도되어 해상에서의 특성을 무시하는 듯 했다.

 

 

육군 식으로 바다 작전을 지

 

또 한 번은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북한의 어선이 NLL을 월선하는 데 대해 합참은 “나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 어선을 나포하면 즉각 북의 경비정을 비롯한 무력이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이걸 잘 아는 해군이 망설이자 재차 합참이 독촉했다. 결국 이 명령은 해군의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마치 관함식에서 보듯이 무언가 보여주는 식으로 해군 함정을 1km 간격으로 줄지어 NLL으로 기동하도록 지시한 적도 있다. 이러한 기동은 해군 장병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전술이다. KNTDS를 통해 합참은 이런 것까지 일일이 통제하려 했는데, 이는 “육군 식으로 바다에서도 작전을 하라”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지난 20여년 합참과 해군은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는 게 예비역의 증언이다. 이들은 필자에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며 현재 국방개혁에서 요구되는 것은 권한 세 진 합참의장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라고 말한다.

학생을 입시지도를 하는데 필요한 것은 입시에 대한 전문성이다. 그런데 입시지도를 국어 선생이 잘 하냐, 영어 선생이 잘 하느냐는 의미가 없다. 전문성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합참에 육군이 많으냐, 해군과 공군이 많으냐는 논란도 의미가 없다. 합참에 요구되는 전문성은 각 군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준 높은 전쟁지도를 할 수 있는 전문성이다. 그런데 합참에는 그러한 전문가 집단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에게 놀라운 사실을 털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8년 3월에 육군 3군사령부에서 대통령이 이상희 국방장관으로부터 첫 번째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을 당시의 일이다. 휴식 시간에 이 전 장관이 삼군의 균형발전을 언급하는 대통령에게 생뚱맞게 한 마디 했다.

“대통령님, 해․공군 얘기는 반만 믿으시면 됩니다.”

당시 배석해 있던 청와대 관계자는 국방장관의 말에 크게 놀랐다. 그 때 그 핵심관계자는 바로 ‘저 말이 육군 장교단의 일반적 인식’이라고 실감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개혁에 대해 해․공군이 무슨 말만 하면 ‘자군 이기주의’로 매도되는 일이 생겼다.

새로운 개념, 새로운 기법으로 운영되어야 할 합참에서 요구되는 인재는 바로 합동의 개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전문 집단이다. 여기에는 각 군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합동성에 대한 높은 전문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합동교리와 합동전장개념을 읽어본 적도 없고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야전의 장교들이 합참의 전 요직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1981년에 미국에서 이란 이질구출작전이 실패하고 난 후 브라운 합참의장은 이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합참의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내 부하는 여비서 한사람 밖에 없었다. 각 군에서 파견되어 나온 장교들은 각 군의 정보원들이거나 로비스트였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미국 정치인과 군부가 군제개혁을 시도하여 1986년에 골드워터-니콜스 법이라는 강력한 합동성의 규범을 마련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번에 합참과 각 군 총장의 권한을 조정하는 군 상부구조안은 마련된데 반해 아직도 합참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구호뿐인 합동성에 군의 미래는 없다.

 

* 이 글은 D&D Focus 5월호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26일 발매될 5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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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