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권, 알려지지 않은 진실 편집장의 노트

 

D&D Focus 2010년 2월호 


역사적 좌표를 상실한 전시작전통제권



알려지지 않은 진실


2009년 8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하여 한국군 주도로 진행되던 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깊은 산속 지하의 한국군 전쟁지휘 벙커. 밖은 머리속까지 익게 만드는 폭염이지만 세상과 단절된 이 비밀장소에서는 계절조차 느낄 수 없습니다. 연습의 작전상황이 종료되고 강평을 하는 자리에 과거 한국 지도적 위치에서 한국 군부를 호령하던 한 원로 장성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는 군사 쿠테타의 핵심세력이자 비밀 사조직 출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입니다.

“현역 후배들을 상대로 우리나라 작전통제권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를 공개하겠다. 6공화국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한다고 할 때 처음부터 우리는 이를 반대했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 군이 평작권 환수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바로 80년 광주 소요사태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광주 일원으로 군을 동원하는데 병력이동을 통제하는 주한미군이 상당한 걸림돌이 되었다는 당시의 경험은 결국 노태우 대통령이 평시작전권을 환수를 우리가 막판에 동의하게 된 이유였다.”

이 말이 튀어나오자 듣고 있던 상당수의 현역 영관급 장교들과 장군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주한미군이 작전권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군 병력이 조기에 광주로 투입될 수도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장교들 사이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평시작전권을 한국에 돌려주려는 의도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 청와대에서 작전권 환수 업무를 관장했던 또 한 명의 예비역 장성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미국은 6공화국 출범한 88년 이전부터도 한국에 작전권을 돌려주고 싶어 했는데, 그 이유는 80년 광주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작전부대가 광주로 이동한 배경에는 작전권을 갖고 있는 주한미군의 동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결국 이것이 반미운동으로 연결될 조짐을 보인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국내정치 문제에 자신들이 연루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크게 우려하며 작전권을 내놓으려 했고, 일단 평시작전권 만이라도 먼저 가져가라고 했다.”


최소한의 주권마저 없다면...


이런 정치적 이유들 때문에 과연 한국군의 자주화가 진행되어 온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한국군은 외부로부터 국토를 방위하는 임무보다는 내부에서 통치를 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였던 셈입니다. 군사정권이 천년, 만년 지속될 줄 알았고 국민은 군대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평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추진되던 시기부터 그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작전권만 되찾아오면 외국의 간섭 없이 국민을 더 강압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군부의 믿음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군정이 종식되고 민주화된 정치권력이 등장하자 이제 군사문제는 정치논리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더 이상 국내 정치문제에 종속된 안보 논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더불어 발전하는 정상화된 국가안보 체제가 정착된 거죠.

그러자 이제껏 한국군 자주화를 지지해왔던 예비역 장성들은 한 때는 그들이 금과옥조로 신봉했던 ‘자주국방’이라는 말 자체를 불온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작권 전환에 목청 높여 반대하는 지도급 예비역 장성들은 과거에 국방개혁을 반대했었고 군정과 냉전의 영속 바라마지 않았던 인물들이 다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습니다.

독재 권력은 자주화를 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나 민주화된 국민권력은 자주를 더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미래에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공존 질서를 주도적으로 형성해 가기 위해 현재의 국가 역량을 비축하자는 것이 바로 ‘자주’입니다. 그것도 배타적인 자주가 아니라 주변국과 협력해 나가자는 의미에서 ‘최소한’의 협력적 자주입니다.

2007년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착수될 무렵, 국방부와 합참의 중견 장교들은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보았습니다. 주한미군 핵심전력을 한국군으로 대체한다든지, 새로운 지휘통제의 모델을 모색한다든지, 합참 조직발전 방안을 구상한다든지, 하는 괜찮은 시도들이 하나 둘씩 보여 지자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눈을 뜨지 못했던 안보의 근원적 문제들이구나”라는 경탄과 감격의 물결이 일었고 “무언가 해보자”는 결의가 솟구쳤던 것입니다. 김관진 당시 합참의장은 “이제 우리 군은 국가 100년의 생존을 좌우할 중차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실 이제 변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군은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습니다.



불길한 조짐들


물론 이전에도 한국군의 역사에서 ‘국방개혁’과 ‘자주국방’은 수없이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좌절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월간조선」에서 육성으로 회고한 대로 “작전권을 환수하려 해도 그 ‘주체’가 있어야”하고, 이를 위해 8․18계획으로 군 구조개혁을 단행해 합동참모본부를 출범시켰습니다. 또한 각 군의 이기주의와 자군 우선주의를 척결하여 효율화된 합동군으로서 한국군을 재창조하려 한 것이 노태우 대통령 이래 국방개혁의 역사였습니다.

70년대 말 이란 인질 구출사건 당시 미국은 각 군이 책임지지 않으려 해서 함께 참여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결국 따로 움직여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인질 구출사건이 끝난 후 미국의 브라운 합참의장은 이임사에서 “내가 합참의장으로 있으면서 내 부하는 여비서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내 밑의 장교는 전부 육해공군, 해병대에서 파견된 정보수집요원이나 로비스트였다”고 말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하며 군제개편을 서둘렀다고 회고합니다. 

모든 국방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자주’였습니다. 이미 북한을 압도한 한국의 국력이 주변국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시대를 여는 국가적 역량이 바로 ‘자주적 방위역량’입니다. ‘자주’가 없는 국방개혁은 목표와 방향성이 상실된 맹목적인 개혁 지상주의가 되고 맙니다.

또한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자주’란 만용에 불과합니다. 연연세세 미국에 의존하면서 한국군은 정보와 작전보다는 각군 총장을 중심으로 한 인사․군수, 관리나 잘하는 ‘관리형 군대’로 변질되어 왔고, 비효율성을 내포해 왔습니다. 어차피 이런 군대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자주란 허장성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국방에서의 합동성을 구현하는 과업은 전시작통권 전환이 기정사실화 된 지금도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우리가 아는 합동성이란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일찍이 표현대로 ‘존중과 배려’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지상과 해상, 공중 작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체제가 바로 한국군 합동성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각 군의 전문성이 보장되고 서로 타군을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전구작전을 지휘하는 합참이 각 군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체제가 바로 합동성이 구현된 군대입니다. 또한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현 단계 국방개혁의 핵심이자 요체입니다.



해괴한 합참 조직개편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전시작통권 환수 재검토 문제가 거론되더니 급기야 합동성에 대한 본질마저도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합참의 2단계 조직개편으로 추진되는 전력발전본부 신설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조직은 각 군이 전투발전을 도모하면 그 바탕 위에서 각 군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데 그 방향성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각 군의 전투발전 기능을 없애고 자신이 다 직접 하겠다는 발상으로 조직개편과 통폐합만 추진 중입니다. 뿌리를 자르고 어떻게 가지와 열매가 풍성해 질 수 있다는 것인지, 그 발상 자체가 해괴합니다.

더 해괴한 일도 있습니다. 합참의 정보기능을 축소하여 작전본부 밑으로 종속시키는 정보작전본부 창설이 그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정보는 작전에 개입할 수 있어도 작전이 정보에 개입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정보와 작전은 일방향 소통관계이지 쌍방향 소통관계가 아닙니다. 이 원칙이 훼손되면 정보가 객관성을 상실하고 정치적으로 왜곡될 위험성이 커집니다. 럼스펠드 장관이 이라크 정보를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잘못된 작전을 수행한 바로 그 오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장기적인 안목의 부대 운용을 계획하는 기획기능까지 위축되고 야전 작전만 판치는 합참이 되다보니 도대체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 합참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 의도가 혼란스럽습니다. 혹시 전작권 전환 시기가 연기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일까요?

이런 우려가 나오는 바로 지금,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은밀하게 미 국무성을 접촉하여 전시작통권 전환 시기 연기문제를 타진했다는 의미 있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가 한국에 대한 전작권 전환의 입장을 고수하자 외교 라인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작권 문제는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군사적인 문제”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만일 양국의 국방부가 아닌 외교 라인이 이 문제를 주무른다면 전작권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엉망진창이 될 것이 명확합니다.      

이렇게 정권이 바뀌면서 한국군의 진보를 성취하고자 노력했던 진정한 국방의 가치는 또다시 왜곡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온갖 방해와 비난 속에서 꿋꿋하게 개혁을 추진해 온 한국군 내부의 개혁 주체들이 겪은 고난과 정치보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아십니까? 비난 속에서 변혁을 추진해 왔던 창조적 소수, 즉 개혁 엘리트들이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군은 더욱 암울한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개혁 주체들과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접목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보았고, 국방은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군의 고급장교들을 평가할 때 단지 별을 몇 개 달았느냐는 외형적인 기준보다는 한국군의 역사적 발전에 있어 무엇을 고뇌했고, 어떤 좌표를 그리고 있었는지, 그 내면을 보다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계급이 높더라도 생각이 낡아 진보를 적대시하는 군인이라면 국민의 세금을 착취하는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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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