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방 리더십, 좌초 직전의 국방개혁 국방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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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Focus 2010년 12월호  


대통령의 군 개혁 칼 가는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삼각지



 

“마땅한 인물이 없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어수선한 지난 11월초.

약 2만 명의 병력을 G20 정상회의 경계지원에 투입해서 눈 코 뜰 새 없는 국방부 장관실은 색다른 고민에 빠졌다.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김 장관의 중국 방문을 확정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였다. 이 무렵 G20 정상회의가 종료된 직후인 11월 중순에 국방장관이 교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자칫 중국 측에 방문을 통보해 놓은 상황에서 장관이 바뀌게 될 경우 외교적 결례가 되기 때문에 지극히 신중한 결정이 요구된 것. 한편 청와대 안팎에서는 김 장관의 교체를 기정사실화하며 후임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국방 주요 직위자들이 온통 여기에 관심을 집중하던 터에 G20 정상회의가 임박한 시점에 김 장관은 방중을 전격 결정한다.

한동안 장관 교체문제가 초미가 관심으로 떠오르더니 막상 G20 행사가 끝나자 거짓말처럼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청와대가 아직 후임자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지금 청와대 안에서는 후임자가 마땅치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선 장관으로 진출시킬 현역 장성이 딱히 없다. 예비역 중에서 선발하려면 가급적 현 정부에서 진급하고 전역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입장인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 결국 지난정부 사람을 발탁하려니까 정치적 부담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장의 군사감각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다. 수년 간 군문을 떠나 있었던 사람이 지금과 같이 엄중한 안보정세에서 민첩하게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지, 청와대 차원에서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후임 장관 물색에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김 장관이 연말 또는 내년 초까지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마침 청와대 정통한 라인들은 “개각은 빨라야 내년 1월 중순”이라며 개각설을 부인했다. 국방부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엄중한 안보정세에서 전략적 식견을 가진 김 장관이 조금 더 버텨주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이상의, 한민구 대장으로 이어지는 합참 수뇌부는 합참 근무경력이 없는 야전 작전통이거나 순수 정책통이었다.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군 지휘체계는 소통 부재, 허위보고, 상호불신과 갈등으로 얼룩졌고 합참은 한반도 전장에서 작전의 큰 판을 짜는데 역량의 부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때 전략과 작전, 정책까지 두루 섭렵한 김 장관이 홀로 그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의 유임이 요구되는 이유가 명확해 진다. 리더십의 핵심 문제는 현 한반도 정세를 관리할 수 있는 국방에서의 ‘통찰력’이다.

그러나 김 장관을 빨리 교체해 주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여론이 비등한 중심권은 바로 여의도다. 국회에서 김 장관의 말실수가 자주 구설수에 오르면서 국회가 이를 성토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고, 올해 연이은 안보의 실패에 대해 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어 온 것이다. 이는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나오는 주장이다. 게다가 G20 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해군 고속정이 침몰하고 공군 정찰기가 추락하는 등 총체적 군 기강문란의 난맥상이 드러난 상황이다. ‘책임 질 것이 너무 많은 장관’이라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현 장관을 빨리 교체하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군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는 “바꾸기는 해야겠으나 지금 당장 결행하기에는....”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천안함 사건 발표 직후인 올해 6월에 청와대에서 김 장관 경질론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온 세력은 기획관리비서실, 정무비서실 등이었다. 이들은 올해 김 장관 후임으로 문민장관을 추대하려는 분위기였으나 6월 말에 터진 ‘영포회’ 사건으로 자신들이 먼저 경질된다. 이후 국방개혁 문제로 수시로 청와대와 의견을 달리한 김 장관에 대해 청와대 일부 비서관들이 경질을 주장하고 나섰고, 그 중 일부가 최근 시중에서 도는 김 장관 경질설의 진원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의 시선이 온통 청와대의 ‘입’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은 청와대와 국방부가 각기 다른 계산법으로 움직이며 개각의 시점을 점치는 애매한 상황이다.       


국방개혁의 세 가지 축


장관의 거취문제가 내년으로 이월되었다고 해서 청와대와 국방부 간에 모든 현안이 원만하게 절충되고 조정되었다고 보면 오산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군의 낡은 체제와 구조, 의식을 “보다 현대적으로 진화시키라”며 국방개혁을 강하고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현재까지 ‘군 개혁’을 수시로 거론하고 있다. 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군 인사의 선진화다. 군의 진급 및 보직인사는 미래 국방을 책임질 핵심역량을 양성하고 발탁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껏 군 인사는 음주운전을 비롯한 경범죄 유무나 사생활 부조리, 유력자와의 근무인연이나 출신지역, 정치논리에 의해 크게 좌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 군 생활을 한다면 중령 진급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군 인사를 방치하고는 미래 핵심 군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문제의식이다. 주로 청와대 기획, 민정 비서실에서 이와 같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두 번째는 천안함 사건 이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군 대비태세에서의 부실과 무능을 과감하게 개선한 새로운 군으로의 진화 요구다. 이 대통령은 수시로 “민간은 앞서 가는데 군은 수 십 년 간 정체되어 있다”며 “민간의 경영 노하우를 활용한 새로운 진화”를 주문해왔다. 군의 구조와 문화를 바꾸면서 적은 예산으로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체제로의 혁신적 변화에 대한 주문이다.

세 번째는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고 인식되는 국방 산업에 대한 과감한 전환이다. 지난 10월 19일 미래기획위원회가 이 대통령에게 「국방산업 G7 발전전략」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 무기체계가 북한을 제압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구태여 미국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들여올 필요가 있냐”며 “우리 DNA에 맞는 무기를 들여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작년에도 국방부가 조기경보기(AWACS)를 도입하려 하자 직접 그 예산을 뻘건 싸인 펜으로 그어버리면서 삭감한 바 있다. 군 장성들이 비싼 장난감 사달라는데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겠다는 투다.

이러한 세 가지 기조에 바탕을 둔 국방개혁을 내년부터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이 대통령은 참모들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10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이희원 안보특보와 상의하여 군 개혁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천 수석은 이후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수석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무는 군 개혁”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희원 대통령 안보특보는 10월부터 합참과 주요부대를 순시하면서 대통령의 군 개혁 의지를 전파하고 군 내부의 여론을 수렴하는 메신저로서 부각되고 있다. 벌써부터 대통령의 복심을 잘 아는 이 특보가 후임 국방장관 ‘0순위’로 거론되는 분위기다.

천영우 수석과 이희원 특보를 뒷받침하는 청와대의 국방개혁의 축은 몇 가지로 분류된다. 그 첫 번째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국방선진화위원회’(위원장 이상우)다. 주로 군의 태세, 조직, 구조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국방개혁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최근 국방예산 절감을 위해 미래기획위원회 주도로 청와대에 설치되는 ‘개혁 검증 TF'다. 여기에서는 주로 군 무기체계 획득 및 방위산업 구조개혁에 대한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이 두 조직과 모두 개혁의 방향을 둘러 싼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직접 챙긴 업무

  

청와대와 김 장관이 손발이 맞지 않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9월 말이다. 9월의 마지막 주말에 김 장관은 7월 말에 발생한 수륙양용 K21 장갑차 침수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고 받았다. 사고 원인과 장비결함 여부에 대한 조사위원회의 보고를 받고 나서 김 장관은 이상한 말을 했다. “오늘 내가 보고받지 않은 것으로 하자”는 돌연한 언급이다. 보고 내용이 미흡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장관이 일일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김 장관의 이 말에 의해 장갑차 사고원인 조사 발표는 멀찌감치 미뤄지고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방부는 어떠한 원인 제시도 없이 “조사 중”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인 9월 말에 이명박 대통령은 이희원 안보특보에게 “K21 장갑차 문제 등 K계열 장비의 결함문제에 대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특보는 서둘러 국방부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9월 말에 이 대통령에게 중간조사 내용을 보고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거듭 확실한 조사결과를 요구하여 10월 10일 경에 김병기 국방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재차 중간결과를 보고한다. 김 장관이 안 챙기려는 업무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일이 벌어지자 국방부는 뒤늦게 자원관리실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개최하여 청와대 보고를 서두르게 된다. 김 장관이 이 문제로 이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난 때는 10월 중순의 국무회의 직후였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K계열 장비 결함은 조사 중에 있고, 국방과학연구소와 제조업체 간에 책임 공방이 있다”는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지시했다.

이 작은 해프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사표를 제출한 김 장관보다는 이 대통령이 국방 업무를 더 적극적으로 챙겼다는 사실이다. K21 장갑차 침수사고 난 지 벌써 4개월이 다 된 시점에 아직도 “조사 중”이라며 어떤 개혁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는 국방부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지만, 청와대의 추궁에 마지못해 국방부가 끌려 다니는 식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의문이 제기될 만하다.

10월에 국방부는 국방 선진화위원회로부터 우리 군 개혁의 청사진을 담은 60개 국방개혁 과제를 통보 받았다. 이 무렵 이미 국방부와 합참 등지에서는 “군 실정을 모르는 선진화위원회가 구상한 개혁안은 대부분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선진화위원회의 한 민간전문가는 국방부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국방부가 청와대의 군 개혁안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인데 충격을 받았다”며 “갑자기 허탈해 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방부가 청와대 개혁안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한 사안은 우리 군의 지휘체계를 거의 통합군 수준으로 전환하는 ‘군 지휘체계 개선안’이었다.

선진화위의 안은 합참의장의 경우 미국과 같이 자문만 하고 작전의 계선 밖에 위치하는 존재로 그 위상을 제한하되, 새로 창설되는 합동군사령관에게 실질적으로 육․해․공․해병대에 대한 통합적 지휘를 보장하는 사실상의 통합군 제도의 직전단계를 상정하고 있다. 한편 각 군 본부를 작전사령부와 통합한 각 군 사령부 체제로 전환하면서 참모총장 직위는 폐지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럴 경우 합동군사령관의 위상이 급격히 제고되는 동시에 현재 인사권 등 군정에 관한 사항만 돌보는 참모총장 제도는 폐지되고 군령과 군정을 모두 행사하는 각 군 사령관이 출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대규모의 군사제도 개편안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0년에 ‘818 군제개편’으로  국군조직법이 개정되어 육․해․공군 병립의 합동군 제도가 정착된 지난 20년 이래 가장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군사제도 개편이다. 실질적 권한이 없는 명목상의 합참의장제도, 군령과 군정이 이원화되고 분리되어 혼선을 초래하는 복잡한 지휘체계, 각 군이 서로 칸막이를 설치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킨 결과 범군 차원의 합동성이 결여된 현 군사제도를 과감하게 혁파하자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방부는 헌법 제89조 16항에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임명되는 직위로 “검찰총장·합동참모의장·각군참모총장·국립대학교총장·대사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과 국영기업체관리자”라고 명기되어 있는 점 등을 이유로 “헌법 개정 없이 참모총장 직위 폐지는 곤란하다”는 반론을 곧바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껏 국방부와 합참 일원에 통합군제도를 지지하는 세력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개혁안에 국방부가 돌연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민간 주도의 선진화위원회에 개혁의 주도권을 뺏기기 싫다”는 정서가 드러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군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군제개편을 청와대의 민간인들이 주도할 경우 군 수뇌부는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리고 혼란이 발생하여 군 안정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10월 말에 이상우 선진화위원장,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김태영 국방장관 3인이 회동하여 군제개편 문제를 토의하였는데 여전히 이견이 표출되어 별다른 합의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우리 군의 미래 청사진에 대해 정치권력과 군사지도자가 통합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표류하는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일이 있고나서 청와대 일각에서는 김 장관의 경질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개혁 검증단의 실체


청와대 발 군 개혁에 ‘이유 있는’ 반기를 든 국방부와 지루한 군제개편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우리 군의 비효율적인 무기획득체계와 방위산업을 수술하는 또 다른 개혁의 액션 플랜을 준비 중이다. 지난 10월 19일 곽 위원장이 「국방산업 G7 발전전략」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 그 발화점이다. 이 당시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지난 40년 간 군과 국방과학연구소가 잘못 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었으므로 개혁을 해야 하고 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결정적 시기(Critical Time)다. 국방부(방사청)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껏 잘해왔지만 지금은 해이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순종주의에 따라 타 분야와 교류하지 않는 조직은 발전하지 못하고 낙후된다. 국방은 민간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고 아웃소싱을 확대해야 한다. 헬기 추락사고 시, 헬기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훈련된 군인의 사망이며, 사망에 따른 충격은 더 크다. 그런데 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중략) 방위사업청이 우리의 DNA에 맞는 무기를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라. 미국의 최신무기가 점점 비싸지고 있는 바, 그러한 무기가 우리한테 맞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조기경보기(AWACS)가 그런 사례다. 우리는 북한과 싸울 때 북한보다 나은 무기면 되는 것이지 미국과 같은 첨단무기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늘 보고는 (국방)예산은 절감하고 효율은 높이고, (무기체계) 수출은 증대시키는 효과로 나타나야 한다. 방위사업청장은 소요 검증을 조속히 실시하여 국방, 민간, 세계시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새로운 전력소요를 결정하도록 하라.”

주로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 개혁에 대한 언급이지만 우리 군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기존 전력에 대한 성능개량은 소홀히 하면서 최첨단 신무기 도입에 몰입하여 자군의 영향력 확대에 골몰해 온 각 군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 군은 기존에 보유한 전력의 기반체계 위에서 한국적 실정에 맞는 짜임새 있는 규모의 국방을 건설하지 못하고 선진국의 최첨단 전력만 추종해 왔다. 이런 실정에서 평시 훈련 때는 잘 가동되던 전력이 막상 위기가 발생하면 도처에 부실이 터져 나와 기본 임무수행 마저 차질을 빚는 우리 군에 새로운 한국형 전력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이 대통령의 이 언급이 있고 난 지 얼마 후인 10월 31일은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곽승준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불려갔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재차 “올해 안에 국방산업을 일대 개혁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곽 위원장은 즉시 천영우 수석과 회동하여 대책을 논의한 끝에 올해 안에 국방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로부터 세부 개혁추진계획을 제출받아 ‘액션 플랜’을 완성하고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개혁을 실행하되, 청와대에는 외교안보수석과 국방비서실, 경제수석과 경제비서관실, 기획관리비서실, 민정비서실이 대거 참여한 ‘국방개혁 검증조직’을 상시적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검증조직은 매월 국방개혁 추진상황을 점검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한편 국방개혁 검증조직은 최근까지 사전 준비회의를 마치고 11월 중순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이로써 청와대에 국방개혁을 추진할 심장과 엔진, 그리고 개혁에 반기를 드는 군 일각에 대한 응징을 벼르는 칼이 준비됨으로써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칼 가는 소리가 삼각지에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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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