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천안함 2주기, 국민통합의 계기로 기고

 

경향신문 2011. 3.24.

 

사진1.jpg

 

2년 전에 천안함 46명의 꽃다운 청춘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지 못한 우리의 무능 때문에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났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 침통해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비통한 마음으로 엄숙하게 천안함 2주기를 맞이했으면 한다.

대부분의 안보 사건은 국민통합을 이루어 성숙한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천안함은 여전히 분열과 갈등의 진원지다. 보수언론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천안함의 정부발표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라면 마치 현상수배범 취급하면서 사냥질 한다. 이제 이 논란은 많이 가라앉을 법도 한 데 여전히 유족들을 내세워 “괴담을 주장하는 사람은 천안함 용사를 두 번 죽이는 자”라고 외친다. 이런 보도들은 일종의 ‘윽박지르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서슬 퍼런 군기반장들의 위세가 무서워서 궁금한 것이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는다. 혹시라도 좌파로 몰려 사회에서 매장 당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하는 측은 보수성향의 군사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사건 이후 2년이 흘렀으면 지금쯤 북한 해군의 전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북한의 새로운 수중전력이 무엇인지, 북이 의도하는 전략적 중심은 무엇이고, 누가 어떤 지휘체계와 혁신적인 전술을 구사하여 천안함 사건과 같은 작전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감쪽같이 없다. 그런 토론이 혹시라도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라는 믿음을 훼손하기라도 할까봐 전문가들도 완전히 입을 닫았다. 북한에 스텔스 잠수정이 얼마나 있는지, 버블제트 어뢰라는 것이 있는지, 수중 특수작전이 백령도가 아닌 서해의 다른 장소에서 가능한지, 수중 작전의 효과를 높이는 감시정찰과 통신체계는 무엇인지, 이런 작전은 얼마나 준비하고 훈련한 것인지, 더 나아가 이런 첨단 작전이 한반도의 전략적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 흔한 학술대회나 토론회도 없다. 그 많은 해군 지휘관들과 무기체계 전문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천안함을 침몰시켰는가에 대한 ‘믿음’은 있어도 ‘어떻게’라는 ‘분석’은 없다. 그런 머리 아픈 것은 회피하고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라는 걸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게 이 나라 보수안보세력의 위선적 이중성이다. 시민과 전문가들이 철수한 공론의 광장에서 안보세력과 보수언론은 ‘믿음’을 강요한다. 이런 현상은 천안함 사건이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안전보장에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활발한 토론과 의사소통을 막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믿고, 현명한 자는 의심한다’는 격언이 있다. 이제는 반대 의견을 괴담이라고 몰아 칠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토론을 준비하는 보수의 성숙한 자세를 기대한다.

반면 진보세력 역시 정권 바뀌면 누군가 천안함 사건의 조작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이라도 하리라는 허망을 버려야 한다. 만일 진보세력의 어느 한 구석에 음모론적 속성이 있다면 과감히 이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과학, 검증, 객관적 진리라는 덕목에 충실하면서 천안함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치열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보수 안보세력으로 받은 모멸과 공포도 극복되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진보는 역사의 발전이라는 첫사랑에게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천안함 2주기는 보수다운 보수, 진보다운 진보가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를 창출하는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러져 간 꽃다운 청춘들에게 속죄할 길이 없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