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로 접근하는 전작권 전환 국제안보

 

D&D Focus 2010년 2월호 


비논리적 전작권 전환 논의에

‘연합’과 ‘합동‘의 정신이 왜곡된다!


 


청와대가 직접 나선 배경


전작권 전환 시점을 2012년 이후로 연기하자는 여론에 밀린 청와대가 최근 미 국무성과 은밀히 이 문제를 타진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이 문제에 정통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청와대 핵심 인사가 지난해 미 국무성을 직접 방문하여 전작권 전환 연기 협상을 제안하고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관계자는 “한국의 거듭되는 전작권 재협상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미 국무성과 ‘절대 재협상 불가’를 고수하는 미 국방성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며 자세한 내막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으나 기자의 취재결과 어렵지 않게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 비서관은 지난해 말에는 비밀리에 국무성을 방문하였으나, 올해는 자신의 미국 방문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언론에 의하면 김 비서관은 2월 3일부터 5일까지 워싱턴을 방문하여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비롯해 미 당국자들과 두루 만난 것으로 보여 진다.

언론이 보도한 김 비서관이 미 측과 협의하게 될 주요 의제로는 ▲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미국 측에 설명 ▲ 미 국방부의 '2010 4개년 국방검토 보고서(QDR)' 발표를 통해 제기된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 ▲ 한국의 BMD 참여 ▲ 전시작전통제권 이전 문제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듣고 협의할 예정이라고 알려 졌다.

그런데 이러한 안건들을 이제 와서 미국과 협의하는 모양새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 문제에 대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추진 의지가 표출되는데 대해 미 측은 “진즉 그렇게 하라니까 이제야 그렇게 나오냐”며 보다 적극적인 대북접근을 추진할 것을 한국정부에 권유하는 분위기다. 즉 미국이 적극적인 대북 접근과 미중 대화 등 동북아 평화공존 질서를 향해 나아가는데 대해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한국정부가 이제 와서 자신들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뒤늦게 뛰어드는 ‘지각생’이라는 입장이다.

미 국방부의 QDR과 주한미군의 해외차출 문제는 이미 작년부터 한국정부와 협의해 온 사안이고 상당부분 완결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미 정부의 입장이다. 작년 5월~6월 한국을 방문한 미셀 플루노이 국방부 정책차관은 한국의 국방부 및 합참 관계자들과 QDR 작성을 위한 중요한 검토 의제들을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제로 한 한미동맹의 미래 발전상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견을 개진한 상태다. 그 과정을 다 거쳐 나온 QDR에서 주한미군의 해외 분쟁 차출은 당연한 미국의 정책인데, 이제 와서 새삼 문서로 이를 명기했다고 한국이 펄펄 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정서다. 이런 점에서 미 국방부를 비롯한 정책 당국자들은 냉혹한 협상의 논리를 한국에 들이민다. 즉 주한미군을 더 붙잡아두려면 방위비분담금을 비롯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에 소요되는 주한미군 지원금을 대폭 늘리고 아프간에도 한국군이 더 많은 기여를 하라는 얘기다. 이런 것도 없이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를 반대하는 것은 “한국만 살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답은 명확하다. “우리도 돈 없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전작권 재협상 


한편 김태효 비서관이 전작권 재협상 논의를 미 백악관과 미 국무성을 통해 시작하려 하는데 대해서도 미국 정부 내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친구가 어렵다고 말하는데 일단 사정은 들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특히 미 국무부는 “주한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는 사업이 지연되는데 따라 전작권 전환 일정도 신축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미 국무부는 이러한 기지이전 문제를 예로 들며 미 국방부에 넌지시 전작전 전환 시점을 평택 기지 완공시점과 연계하여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기자에게 설명한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이에 대해 지극히 냉소적이다. 여러 차례 알려진 대로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부임한 이래 여러 차례 “내 재임 기간 중 한국과 전작권 재협상 논의는 없다”고 밝혀왔다. 오바마의 신임이 두터운 그는 이미 내년 말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2011년 말까지는 전작권 재협상이란 없다는 분위기다. 게다가 미 국방부가 전작권 재협상 문제를 접근하는 한국 정부, 특히 청와대의 ‘비논리적 접근’에는 더더욱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의 비논리적 태도란 전작권 문제를 군사적 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적인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한미 간에 전작권 문제에 대한 성격 규정은 2006년 9월 14일,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였다. 이 당시 양 정상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문제는 군사적 효율성을 달성하자는 취지로 협의되어야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적어도 전작권 문제로 양국에서 정치적 논란이 커지는 것은 작전권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국의 국방당국은 이제껏 전작권 문제를 협의하면서 일체의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미래 한미 군사동맹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충분히 협의하고 진행시켜 온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전작권 전환 과정에서의 군사적인 문제점과 보완방향을 논의하지 않고 단지 ‘정무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마저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적 발상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월 20일에 김태영 장관이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강연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관한 문제는 한미 간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며, 대통령과 우리 군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고 밝히고, “2012년에 전작권이 넘어오는 게 가장 나쁜 상황”이라고 지적한 뒤, “하지만 군은 그것을 준비해야 하며 재조율은 정치적인 판단까지 덧붙여 한미 간에 국가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데 대해서도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언제부터 전작권 문제가 ‘군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돌변한 것인지, 국방장관이라는 자리가 군사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자리인지 의문이 고조된 것이다. 이 발언과 맥을 같이하여 청와대가 ‘말이 안 통하는’ 미 국방부가 아니라 ‘말랑말랑’한 미 국무성과 대화를 시도한 것은 원칙을 저버리는 얄팍한 술수라고 미 국방부가 판단한 것이다. 이런 정치논리대로라면 만일 남북관계나 미북관계가 잘 풀려서 정치적으로 환경이 좋아진다면 전작권은 합의된 2012년 이전에 전환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김태영 장관을 비롯한 예비역 장성들은 2012년이 한미 양국의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이고 북한이 강성대국 완성을 천명한 시기인 만큼 정세가 극도로 유동적이라고 전망하며, 혼란기에 전작권을 전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논리를 개진하고 있다. 그런대 미국은 2012년이 다름 아닌 미북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정착되는 시기로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미셀 플루노이 차관도 한국 관계자들에게 “2012년 이후 정전체제가 한반도 위기관리에 효율이 없기 때문에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망을 제시해 좌중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동북아에서 공존과 평화의 질서를 향한 주변국의 노력이 본격화되어 드디어 한반도에서도 냉전의 먹구름이 걷어 내겠다는 노력이 이제 진행 중인데, 거구로 이 시기에 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 때문에 국가 간 합의를 번복하자고 한다면 이는 동맹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과 같다.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궁색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갈 미군 없다


이러한 우려는 다름 아닌 청와대 내부로부터도 터져 나왔다. 김태영 장관의 발언이 나오고 난 직후 한나라당 핵심 인사들은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김 장관의 발언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보아도 되는가”를 문의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의견이 여러 가지로 갈라졌는데, 한미 간 군사문제에 정통한 국방비서실 등은 “김 장관의 발언은 전혀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이었다. 더불어 비서관 신분으로 대통령과 ‘직거래’하며 한미동맹에 대한 원칙과 절차를 초월하여 사태를 주도하는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 시절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제2의 이종석’이라는 비아냥까지 터져 나왔다. 이런 청와대 분위기를 감지한 여권 핵심부는 더욱더 큰 혼란에 빠졌다.

이 외에도 청와대의 전작권 재검토 조짐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전작권 문제를 정치논리로 접근하다보니 외교안보 문제의 본질을 망각하는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선 전작권 전환 시점을 연기하고 현 한미연합사 체제를 더 지속시키자는 주장이 과연 군사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냐는 문제다. ‘전통적 동맹’에 주한미군을 가두어 두려고 해도 그럴 ‘전통적 미군’이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전략 동맹’이 표방되고,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자는 것이 마치 ‘동맹 복원’과 동일시된 결과 주한미군은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그나마 존재했던 거추장스러운 규제 장치를 벗어버리고 더욱더 자기들 의도대로 변환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인 냉전형 붙박이 군대로서의 주한미군은 과거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중이다.

그 실상을 살펴보면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퇴임 하루 전날인 지난해 9월 22일에  ‘국유재산관리법’ 상으로는 절대 허용될 수 없는 평택 미군숙소에 대한 장기임대사업(BTL)을 한국이 보증해주도록 조치했다. 처음에는 이 장관도 난색을 표명했던 일이 작년 초부터 월터 샤프 연합사령관이 “청와대로 찾아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만일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시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고 노골적인 협박을 가하자 이에 굴복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에서 1년 주둔하는 주한미군 장병의 주둔기한이 3년으로 늘어나고 가족과 함께 안정적으로 근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이번에 QDR에서 주한미군이 안정적인 기지를 확보하여 향후 타 지역 분쟁지역에 투입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 숙소 보증을 해주면서도 사실 미군이 한반도에서 방위임무에 더 충실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반대급부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일방적인 양보만 한 것이다. 주한미군 장병의 3년 근무는 미군 규정대로라면 한반도가 ‘전쟁 가능지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명백히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군‘이 아니라 글로벌 전략을 수행하는 ’다기능 신속대응군‘으로 변화하는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다. 

또한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더라도 한반도 입․출입(flow in-out)을 한국이 사전 통보받겠다고 표방하여 미군으로부터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라든지, “동북아 지역분쟁에 주한미군이 연루되는 것을 제한하겠다”는 것과 같은 주한미군의 투명성을 증진하려는 노력이 현 정부에서는 전혀 진행된 바 없다. 거의 미군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에 힘입어 미국이 주한미군의 신속한 변환을 서두르고 새로운 미군기지가 해외 발진을 위한 중간기지로 변환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아무런 규제조치를 한 바 없다. 지난 정부에 미약하게나마 존재하고 있던 ‘주권의 관리장치’들마저 하나 둘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평택의 새로운 미군기지는 단순한 미군기지가 아니라, 한국의 주권이 전혀 통하지 않는 5만 명이 사는 ‘미국의 속지’, 도는 ‘신도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한국정부는 그 속지에서 미군이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위치로 추락하게 된다. 미군이 완전히 ‘행동의 자유’를 확보함으로써 미군의 전략, 전력, 병력에 대해 한국정부는 까막눈이 된다. 주한미군 전체가 스텔스화 되는 것이다. 과거 전통적인 동맹으로 되돌아가려고 해도 되돌아갈 미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다 방치하고 이제 와서 전통적인 동맹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전시작전통제권 연기를 검토하자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군의 ‘한반도 엑소더스’를 다 뒷받침해 준 당사자가 바로 이명박 정부인데, 진정으로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일단 그러한 변환부터 제동을 걸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청와대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 기지재편, 전시작전통제권과 같은 주요 의제들이 뿌리가 얽혀있는 한미동맹의 동일한 선상에서 나오는 문제라는 시각을 갖지 못하고 마치 별개의 사안인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합적인 시각이 완전히 결여된 것이다.



역대 대통령과 이명박의 차이


미군이 급속도로 재편되는 것은 사실 전작권 여부와 관련 없이 이제 막을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고 그 어느 것 하나 과거로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보여 진다. 여기서 미군이 급격히 재편될 때마다 역대 대통령은 어떤 자세를 보여주었는가를 되돌아  보자.


▲ 박정희 대통령의 사례

1977년 3월 11일, 김동조 외교특보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군 철수대책을 보고하는 자리. 이틀 전인 3월 9일, 카터 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을 4~5년에 걸쳐 철수할 계획임을 공표한데 대해 박 대통령과 김 특보가 나눈 대화가 「월간조선」 2009년 10월호에 수록되어 있다.

김 특보 : “앞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협의를 요청해 오면 각하가 지난번 기자회견에서 제의하신 불가침협정 수락 후 미군 철수문제를 거론하고 북괴가 이를 수락할 때까지 미군이 있어 달라고 요청하면 어떻겠습니까?”

박 대통령 : “여보시오. 카터 발언이 공식통보나 다름없는데 이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요? 기정사실로 알고 자주국방이 어디까지 와 있나 국방부에 알아보기나 하시오.”

그로부터 4일 후인 3월 15일, 주한미군 철수대책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말한 내용이다.

“카터의 얘기를 공식통보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그들을 붙잡고 ‘더 있어 달라’,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교섭을 벌이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중략) 물론 미군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학생에게 가정교사가 있으면 든든하겠지만 어디 가정교사가 학생 대신 시험을 치러 주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체통을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60만 대군을 갖고 있는 우리가 4만 명의 미군에게 의존하다면 무엇보다 창피한 일입니다.”


▲ 노태우 대통령의 사례

노태우 대통령은 88년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용산에서의 미군 철수와 작전권 환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의 육성 회고록이 출판되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노태우 대통령의 말이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는 창피한 일이었다. 민족자존이다, 자주외교다 해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국가 안보 면에서 아무리 평시라 하지만 지휘권을 갖고 있지 못함으로써 일종의 패배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 측이 감군, 철군을 거론할 때마다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었는가. 나는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취임할 때만 해도 한국군 내부에서는 ‘미군이 서울에서 나가면 큰일 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우리 스스로 문제를 결정할 때가 왔고, 그만한 자신을 가질 때도 됐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미군이 나가더라도 우리가 작전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훈련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8․18 계획’을 추진한 것이다.”

90년 미 의회는 주한군의 단계적 철군계획인 「넌․워너 수정법안」을 통과시키고 그해 1단계로 7000명의 주한미군 철수를 발표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를 포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어 나라가 발칵 뒤집힐 판인데도 의외로 청와대는 냉정했다. 역시 회고록에 나오는 당시 김종휘 안보수석의 증언이다.

“미국이 단 한 번 한국에 통보도 않은 채 주한미군 7000명 감축을 발표한 일이 있다. 과거였다면 ‘주한미군 감군하지 말라’하고 미국은 ‘비용 때문에 안 된다’ 하고, 결국 ‘우리가 주둔비 더 부담할 테니 그대로 있어 달라’는 식으로 승강이를 벌였을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이번 감군은 미군의 재정 사정상 구조조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전협의를 않은 것은 잘못이다, 앞으로 한국 측이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미국과 상의하지 않고 해도 되는가’ 하니까 실망하는 눈치였다. 붙잡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에 대해 말한 적은 많았지만 보다 직설적으로 이를 거론하며 예비역 장성들과 일전을 불사한 때는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의 연설이었다. 그의 연설 중 일부다.

“심리적 의존 관계, 의존상태를 벗어놔야 한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고 하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국방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한테 매달려서, 미국 뒤에 숨어서 형님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인계철선이란 말 자체가 염치가 없지 않습니까? 남의 나라 군대를 가지고 왜 우리안보를 위한 인계철선으로 써야 합니까?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지요. 그런 각오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미국과 우리 사이에 경제적인 일이나 다른 일이 있을 때 미국이 호주머니에 손 넣고 ‘그러면 우리 군대 뺍니다’라고 나올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하고 당당하게 ‘그러지 마십시오’라든지, ‘예 빼십시오’라든지 말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미국이 ‘난 나가요’ 하면 다 까무러지는 판인데, 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미국하고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청와대, NSC 부활 검토


이 세 명의 대통령이 말한 내용은 한미동맹에 대한 일치된 ‘자주’의 문법이다. 이제 한국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의지와 자신감을 갖고 미군에 대한 의존을 줄이자는 호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우리가 자주적으로 무엇을 해보자는 결의가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80위원회,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818 군구조 개혁,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자주국방 추진계획’이다. 이 당시 세 대통령은 ‘떠나려는’ 미군에 대해 국가 지도자로서 의연한 태도를 취했던데 반해 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미 떠나는’ 미군에 대해 다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는 겪이다. 결국 가장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접근법을 지금 청와대가 시도하는 중이다. 

한편 청와대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안보정책의 구심점으로 작용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와 상임위원회 체제를 부활시키려는 조짐이 드러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청와대는 NSC를 부활시키는데 수반되는 법적인 문제점을 검토하라는 지침을 이미 지난해 말에 안보관련 산하기관에 하달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안보 환경의 급격한 변환을 목격하면서 이제껏 국방철학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던 현 정부가 이제야 새로운 정책의 구심점을 마련하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변화된 안보환경에서 자주적으로 전쟁의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위기관리능력을 더욱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최근 합참의 2단계 조직개편에서 드러나는 전문성 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뜻있는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각 군의 전문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합참은 각 군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합동의 리더십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합참의 전력발전본부 창설을 준비하면서 현재 합참은 각 군의 전투발전단을 해체하고 이를 합참에서 통합 운용하려 하고 있다. 이는 뿌리를 다 자르고 가지와 열매는 더 맺겠다는 발상으로 비판된다. 또한 독립성을 갖고 객관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정보 분야가 작전에 종속됨으로써 군사정보가 왜곡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마치 이라크 정보를 멋대로 해석하여 잘못된 작전을 한 럼스펠드의 오류가 한국에서도 재현될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합동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구비한 각 군의 역량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합참은 그러한 문화적 기반을 도외시하고 각 군의 기능을 통합하는 조직개편에만 몰입하고 있다. 그 결과 합참에 전력발전본부가 창설된다 하여도 구체적으로 어떤 합동성을 구현한다는 것인지, 그 임무영역과 업무 프로세스와 절차, 거양해야 할 성과가 무엇인지 조차 모호하다. 장기적인 안목의 전략기획과 부대발전에 대한 청사진 없이 조직만 만들면 된다는 편의주의로 조직개편이 진행 중이다. 또한 이를 지도할 합참의장이 합참 경력이 없는 무경험자라는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미래 한반도 전구작전을 이끌 구상과 노력과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금 합참이 제시하는 것은 초라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리더십과 학습능력의 부재다.

C4I 기능에 대한 보강문제만 해도 그렇다. 현재 합참이 한국군 지휘통제능력을 보강하는 수준은 “마치 전광판만 설치하면 지휘통제가 다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듯한 인상이다. 장비와 시스템만 들여온다고 지휘통제가 저절로 될까? 그것은 지휘자의 리더십과 소통능력, 그리고 무엇을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문제다. 미군과 똑같은 시스템만 깔아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결과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육군 중심의 조직개편이 초래하는 종착역은 합동성을 빙자한 지상 작전 만능주의로 귀결된다. 미래 한반도 전쟁기획의 능력 발전보다는 대군 위주의 이기주의에 군 발전이 희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은 정치권이 전작권 전환 연기를 거론하니까 ‘이제 현실에 안주해도 되겠구나’라는 과거 회귀, 보신주의의 산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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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