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가 된 '키 리졸브' 편집장의 노트

  D&D Focus 2010년 4월호

 

전쟁 에너지가 소진된 유일패권

이제는 ‘힘의 공백’을 준비할 때


 

키리졸브에 대한 거짓말들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3월 8일, 키리졸브(Key Resolve) 한미군사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이 날은 아프간에서 2월부터 진행된 미군의 텔레반 대공격 작전인 ‘무시타라크’(현지어로 ’모두 함께‘라는 뜻)가 종료되는 날이었죠. 작전을 마친 아프간에서 미군 병사들이 모처럼 기지에서 샤워를 즐기는 동안 한국에서는 훈련에 참여하려는 미군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모든 시선이 아프간으로 향하고 있던 시기에 한국에 상륙한 미군 전력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언론에는 지난해 2만6000명의 미군이 참여한 것과 달리 올해는 1만8000명만 참여하는 ‘축소된 훈련’으로 발표됐습니다. 항공모함과 같은 미군의 핵심전력도 오지 않았습니다. 명분은 그럴싸했습니다.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치라는 거죠.

그러나 실상은 더더욱 가관입니다. 발표된 것과 달리 미군은 1만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명분보다 올수 없는 진짜 속사정이 있습니다. 투입할 병력도 없고 돈도 많이 든다는 겁니다. 항공모함의 경우 한 번 시동을 거는데 1억불이 듭니다. 1개의 항공모함이 하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부산시 전체의 소비량에 거의 맞먹는다는군요. 도대체 돈이 있어야 전력도 운영되는 것인데 철 지난 한반도의 재래식 전쟁 연습에 왜 항공모함까지 보내겠습니까?

병력 부족사태는 더더욱 심각합니다. 작년 통계를 보더라도 미군의 대위부터 소령까지 장교 3800명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숨만 쉬어도 중령까지는 저절로 진급된다”는 것이 미군 장교들 사이에 떠도는 속설입니다. 사병들도 모병 실적은 저조합니다. 최근 미국에 다녀온 사람들 말로는 동네마다 미 육․해․공․해병대 모병관이 부스를 설치하고 상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병관이 슈퍼 모델 뺨치는 미인들입니다. 이들이 향수 냄새를 풍기면서 고등학생 연령의 청소년에게 접근하여 유혹하면 넘어가기 쉽다는 거죠. 입대 가능연령은 18세부터인데 17세라도 부모 동의서만 있으면 즉시 입대가 가능하도록 규정까지 바꾸어버렸습니다. 입대하면 6주간 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이라크나 아프간에 투입됩니다.

1월에 발표된 미국의 ‘4주기 국방태세 검토(QDR)'은 미군의 신형전력 도입을 거의 다 중단시켰습니다. F-22, F-35 전투기를 비롯한 최첨단 전력 도입이 줄줄이 무산되었고, 이제는 핵무기도 돈이 많이 들어 유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오바마가 말하는 ’핵 없는 세상‘이란 구호도 기실 알고 보면 미국 내부의 열악한 재정상황 때문이지, 돈 만 많다면 굳이 이런 구호가 필요 없습니다.

미군 전체가 하루에 쓰는 예산이 17억 달러, 우리로 말하면 2조원입니다. 미국의 언론 등 대다수 여론은 하루에 이렇게 많은 돈을 먹어치우는 미국 군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지난 9년 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연이은 작전실패에 대해 “무언가 근원적으로 잘못된 군대 운영”이라는 매서운 질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지도력의 붕괴’


이렇게 보면 최근 미군의 상황은 적어도 베트남 전쟁 이후 최악입니다. 단순히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것보다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의 지도력이 붕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아프간에서의 대공세작전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아프간 무시타라크 작전은 정규군대의 작전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엽기적인 광경을 연출했습니다. 우선 언제, 어느 시간에 미군이 공격해 올지를 대대적으로 알린 작전입니다. 탈레반들은 미군이 들어오기 전에 유유히 김밥 싸들고 산 속으로 소풍 가면 됩니다. 그리고 미군이 철수하면 다시 마을로 돌아오면 그만입니다. 그러다보니 별다른 교전상황도 발견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전쟁이 다 있나? 그러면 미군은 도대체 왜 이런 작전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탈레반과 민간인이 구분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방법 외에는 다른 작전을 생각할 수 없었다는 거죠. 게다가 작전은 미군이 내년에 철수한 후 치안을 유지할 아프간 군대와 경찰을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작전 개시일이 되자 출동해야 할 아프간 군이 무기가 없다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미군이 지급한 무기는 벌써 탈레반에게 다 팔아먹은 후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미군 지휘관들이 내뱉었을 욕지거리가 상상이 안 됩니다.

미군이 이렇게 죽을 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프간에 파병된 2000명의 네덜란드 군인들은 큰 낭패를 맛보았습니다. 기지 안에 근사한 네덜란드 식 풍차도 만드는 등 그럴싸한 기지를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디서 날라 온 것인지도 모를 로켓포에 풍차가 박살이 났습니다. 네덜란드 군인들은 겁에 질려 기지 밖으로 나가지도 못 했구요. 그러자 계속 날라 오는 로켓포에 21명의 군인이 총 한번 쏴보지도 못하고 ‘기지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이 소식에 네덜란드 국민은 경악했습니다. 결국 파병시한 연장을 주장하는 기독민주당의 얀 페터 발케넨데 총리에 맞서 노동당수인 바우터르 보스 부총리가 철군을 주장하자 네덜란드의 연정은 붕괴됐습니다. 지난 2월 20일의 일입니다.

네덜란드의 연정 붕괴는 아프간에 파병을 해 온 나토(NATO) 국가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쳐 이제는 파병국의 연이은 철군 도미노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초래되는 동안 미국은 어떤 지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군의 총체적 약화가 지도력의 붕괴로 이어지는 이 믿어지지 않는 현상을 보면 이번 키리졸브 훈련에서도 기실 미군은 종이호랑이라는 사실에 일견 수긍이 가는 것입니다.    



“돈 내놓으라”는 미군


키리졸브 연습 상황은 3월 11일에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한미 양국군의 전쟁모의연습(워게임)을 담당하는 연합전투모의실(CBSC)을 기자들에게 내보인 거죠. 한미연합군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라 가상 전투를 치르고 전황을 분석하는 이 상황실에는 350대의 워크스테인션과 25대의 화상회의 모니터, 500여대의 인터넷 전화기를 갖추고 있으며 동두천 및 용산의 주한미군전투모의실, 평택, 오산기지뿐 아니라 미국 텍사스주 포트후드 기지, 일리노이주 스콧 공군기지 등 미국 본토의 주요 기지, 주일 미군기지 등 42곳의 사이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 미군의 지휘소 중에서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지휘통제시스템(C4I)를 자랑하는 한미연합사령부는 한국군에게 있어 언제나 의존의 대상이었습니다. 연합사령부 영내의 지휘소뿐만 아니라 전쟁지휘시설인 경기도 지하벙커의 상황실에 있는 연합사령관 발코니에는 8개의 대형화면과 함께 전 세계 미군 전력과 연동된 최첨단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연습이 시작된 지 얼마 후에 일어났습니다. 미군 측은 “이제부터는 한국군이 사용하는 미군의 지휘통제시스템을 유지하는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며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비용을 대지 않으면 메인 컴퓨터 전원을 뽑아버리겠다”는 말도 덧붙여졌습니다. 단순히 전기료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최첨단 지휘통제 시스템은 유지비용 자체가 엄청납니다.

연습기간 내내 돈 타령만 하는 미군에 대해 한국군은 기가 질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한반도에서 미군의 힘의 공백이 초래될 전조에 불과한 것입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그들의 전략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중입니다. 재래식 전쟁에 대한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장차 주한미군이 주력해야 할 두 가지 임무, 즉 북한 급변사태 관리와 동북아 분쟁 개입에 대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거죠. 이러한 전략의 대전환이 임박한 지금은 전력이 형편이 없이 약화된 미군이 자신의 새로운 존재감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바로 그것이 월터 샤프 사령관의 깜짝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령관은 “미 측은 유사시 북한의 WMD를 제거하기 위한 전담부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현재 실시 중인 한·미 키 리졸브 연습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WMD 제거 전담부대는 2007년 을지포커스 훈련과 2009년 키 리졸브 연습에서 운용됐지만 미군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입니다. 이렇게 보면 연습 시작 시에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무색해 집니다.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모를 리 없는 사령관의 돌출 발언의 진정한 의미는 “북한 급변사태 만이라도 열심히 대비하고 있으니 노는 군대로 보지 말아 달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수십만 명을 거느린 미 중부사령관도 3성 장군인데, 2만여 명을 거느린 주한미군 사령관이 4성 장군이라는 이 ‘불균형’ 속에서 계속 4성의 자리를 유지하려는 미 육군이 이런 임무라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속사정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자신이 주도한 훈련에 항공모함 한 대 정도 동원할 능력이 없음을 샤프는 이런 우회적 표현으로 에둘러가려는 것일까요? 예전 같으면 주한미군 사령관은 항공모함 두 대 정도는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가난해진 미군, 그리고 앞으로 초래될 힘의 공백이 예고되는 세계 유일 패권의 미군. 그 속내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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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