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구 신임 합참의장이 직면한 문제들 국방개혁

 

<D&D Focus> 2010년 7월호  


‘동맹조정’, ‘합동성 강화’, ‘군 안정 도모’

험난한 3각 파도를 넘어야 합참의장


 

마침내 도래한 31기 시대


육사 31기에는 한국 현대사의 명암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특이한 세대다. 1․21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도배가운동’으로 510명이 육사에 입학시켜 가혹한 스파르타식 교육과 극심한 경쟁으로 126명을 퇴교시키고 384명이 임관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험난한 교육과정을 이겨냈다는 자부심과 경쟁의 에너지로 무장된 31기 출신들은 역동적 집단문화를 표출시켜 왔다.

6공화국이 저물어가던 92년 말 31기 동기회장 선거.

인원수가 많은 31기들이 전후방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들자 모임장소가 꽉 찼다. 비하나회 측에서 “동기회장을 선거로 뽑아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갑론을박이 진행되다가 마침내 선거가 진행되었다. 동기생들 사이에서 사조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다수의 인사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기회는 양분되었다. 결국 비하나회 출신이 동기회장으로 선출되었지만 되풀이를 하러 간 맥주 집에서 급기야 앙금이 있던 동기생들이 바닥에 뒹굴며 물리적 충돌까지 겪었다.

그리고 ‘신한국 창조’를 외치며 출범한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31기 출신 B대령에 의한 동빙고 아파트에서의 하나회 명단살포 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단순히 31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 전체가 사조직 척결로 일대 개편이 단행된다. 그 속도가 얼마나 전광석화와 같았는지 국민이 얼떨떨할 정도였다.

2004년 10월, 육군의 정기진급인사 발표를 앞두고 남재준 육군 총장은 3명의 31기 준장을 계룡대 인근의 한 식당으로 불러낸다. 술을 못하는 남 총장이 먼저 “소주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윽고 남 총장은 3명의 장군에게 “미안하다”며 진급을 시킬 수 없었던 사정을 설명했다. 그 다음날 한 명은 총장실을 찾아가 전역지원서를 던진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육군 진급비리 의혹 수사가 진행된다. 이 사건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군 인사개편과 또 다른 사조직에 대한 의혹으로 부풀어지면서 두고두고 군에 상처를 남긴다.

유달리 ‘튀는 기수’인 31기들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현재 이르기까지 대지진의 진앙지였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에 유별나게 연루되었던 군 역사의 박물관이다. 수시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자중지란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대부분 도태되고 유달리 군의 각 전문분야에서 대성하지 못한 불운의 기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6월 14일 이상의 합참의장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함으로써 31기 출신의 한민구 육군총장이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으로 발탁되었다. 동기생인 황의돈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육군 총장으로 영전함으로써 우리의 작전과 군정의 최고요직에 31기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책통’과 ‘정보통’의 만남


그러나 천안함 사건이라는 비극적 사태로 현 직위에서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영전되는 보직인사가 진행된 결과 많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초래된 군의 혼란을 종식하고 안정을 도모하며,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진 군의 정보․작전 태세를 개혁적으로 정비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 시점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한민구 신임 합참의장 내정자와 황의돈 신임 육군 총장은 전형적인 육군 야전파와는 거리가 있다. 한 의장 내정자는 국방부에서 정책조정과장, 국제협력관, 정책기획관을 역임한 전형적인 국방 정책통이다. 사단장도 전방이 아닌 후방사단에서 역임했다. 황 총장은 매우 드물게 정보병과 출신으로 총장까지 진출하였는데, 그도 역시 국방부에서 미주정책과장을 역임했고 국방부 정보본부장을 역임한 정보통이다. 이라크 자이툰 사단장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동맹정책에 정통하다는 평이다.

이렇게 보면 이전 이상의 의장과 달리 우리 군의 최고 지휘부가 야전의 색깔을 벗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면모를 일신하는 중이다. 야전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위기관리 차원의 전략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할 군 최고 지휘부에 정책통과 정보통의 조화는 의미 있는 현상으로 비춰진다. 한민구 의장 내정자가 정책조정과장이던 시절에 바로 옆 사무실이 황의돈 총장이 근무하던 미주정책과 사무실이었다. 같은 국방부 정책실 내에 지근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합참은 내외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비롯한 동맹정책 조정문제다. 본지의 취재결과 현재 한․미 간에는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를 3년 정도 연기하는 것으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제 한미 양국 대통령이 만나서 이를 재확인 하는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이런 합의를 기초로 내년도 을지 프리덤 가디언 연습을 한국군이 주도하던 예전의 방식과 달리 미국이 주도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뀐 상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합참 내에서 영관급 장교들을 중심으로 “매우 굴욕적”이라는 자탄과 함께 “다시 우리 주도의 군사연습 지휘권을 미국에 넘겨주는 퇴행적 결과”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우리가 연습을 주도할 수 있다는 합참 영관급 장교들의 의견과, 미국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누구 주장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된다.  

 


정보․작전태세 혁신 요구


특히 이러한 논란의 배경에는 “한국군 작전능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미군 당국의 판단이 곁들여져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결국 한국군은 스스로 작전을 지휘할 줄 모르는 대미의존 국가라는 평가에 대해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럴 경우 향후 전작권 전환을 3년 정도 연기하되, 여전히 한미 간에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연기 조건’이 문제가 된다. 전작권 전환 문제를 아예 무시하고 예전의 전통적 동맹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군사대비태세의 핵심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전환 프로세스가 잠시 연기된 것으로 보고 한국군의 단독작전 능력을 계속 보완하고 준비할 것인지의 문제다. 모처럼 고양된 한국군의 자주적 의지와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포기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향후 미국과 상당한 논쟁 및 갈등이 표출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하면서 동맹의 비전을 새로 창출해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 드러난 우리 군의 합동성 결여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의 문제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해군과 합참 사이에는 상호 이해부족, 보고 단절, 의사소통 단절과 같은 갈등이 드러났다. 그 결과 군 전체가 매도되고 단죄되는 참혹한 상처를 남겼다. 타군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합동성의 기본이 흔들리는 현상이 적나라하게 국민들 눈에 비춰진 것이다. 특히 사건 발생 당일 날 진행된 ‘합동성 강화 토론회’는 창군 이래 최초였다는 대목에서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미래 군 대비태세의 핵심적인 의제가 군 수뇌부 사이에서 단 한 번도 토론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 군이 얼마나 자군 연고주의와 이기주의의 노예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심각한 일이다.

이는 우리 군의 뿌리 깊은 의식구조와 관행을 완전히 새롭게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성을 드러낸다. 합동교리는 제대로 된 문서가 있는지도 의심스럽고 합동전장운영 개념은 과연 구체화되고 있는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 군간에 서로 존중과 배려의 기풍이 있기나 한 것인지, 실로 암담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육군의 특정 인맥이 합동작전 직위의 요직을 독식하고 사실상 군의 자원배분 구조까지 왜곡시켜 왔다는 사실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육군 총장 출신인 한 내정자가 과연 육군의 입장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면서 한국형 합동성의 개념을 창출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겠는가는 향후 의장직 성패의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세 번째는 군 관리의 안정과 효율을 도모하는 문제다. 천안함 사건이 아니더라도 올해 들어와서 우리 육․해․공군은 유례없는 사건, 사고에 시달려 온 터였다. 연이은 전투기 추락, 헬기 추락 등 노후화된 재래식 군사력은 이미 북한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고 군인의 미래는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향후 군 대비태세는 의외성을 내포한 비대칭적 교전양상, 또는 국지적 충돌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명실 공히 ‘포괄안보’를 구현하기 위한 군 조직과 전투원의 능력을 구축하는 일은 이제 시작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비전, 새로운 능력, 새로운 동력으로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는 혁신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는 군 상부구조로부터 하부구조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또 용두사미로 끝날 일이다. 어쩌면 현대적 군사사상과 지식으로 무장된 신진 군사엘리트로 세대교체를 단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요구에 과연 한민구 신임 합참의장은 과연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군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겠는지,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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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