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돈 못버는 방산에 먼지털이식 수사 방위산업

[시사저널] 2011년 11월 15일

 사진2.jpg

지난 2월 8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김홍일 검사장)는 재직 시 업무추진비 유용 등의 비리 혐의를 잡고 내사해온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관련 사건을 대전지검에 넘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총장의 재직 시절인 2009년 10월에 해군본부에서는 ‘9억원대 납품 비리’와 관련하여 현역 소령의 양심선언 사건이 벌어지는 등 크고 작은 잡음이 발생했었다. 당시 사정당국의 해군에 대한 비리 조사 과정에서 정 총장의 관련 여부를 집중적으로 내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는 올해 1월에 해군본부가 위치한 충남 계룡대 안의 모 은행 지점의 관련 계좌를 조사하여 정 전 총장의 공금 유용의 혐의를 추적해 왔다. 이와 더불어 검찰은 정 전 총장이 2005년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등을 역임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며 해군 무기도입 사업 과정에서의 비리 의혹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장의 재직 시절 전직 해군 총장에 대한 수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군납 및 방산비리 척결을 공언한 이래 육․해․공군에 대한 수사의 연장선 위에 있다. 방산 관련 비리 척결은 현 정부에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지시에 복명해야 하는 검찰의 최우선의 과제로 정착되었다. 대검 중수부의 범죄정보과나 수사기획관실 등은 방산비리 첩보를 종합하여 수사를 기획하고 여타 지검으로 사건을 배분 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정 총장 재직 시절에 이 부서들은 S 엔진 제작업체의 함정 엔진 납품 과정에서의 원가조작, 해군 무인정찰기 납품 시 단가 부풀리기 의혹을 집중 내사했다. 작년에도 갈짓자로 운행되는 해군의 최신예 유도탄고속함의 부실 개발, 함정에 탑재하는 대잠 링스헬기의 허위 정비 등 연이은 부실과 비리가 터져 나왔다. 한 검찰 소식통은 “원가관련 납품 비리를 수사하다보면 방산 업체의 비자금 조성이나 정관계 로비와 같은 ‘큰 물건’도 찾을 수 있다”며 검찰 내에 기대감이 상당하다고 전한다.

검찰이 해군에 납품 비리 추적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해군의 독특한 조직문화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선후배 관계가 철두철미한 해군은 외부로부터 닫혀 있는 배타적이고 응집력이 강한 분위기여서 음성적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비리를 규명하기가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비리척결을 공언하는 검찰이 지금껏 밝혀낸 비리의 정도가 애초 목표로 했던 비자금 로비 규명과 같은 큰 성과는 보여 지지 않는다. 게다가 군 장비의 원가산정이라든지 정비와 같은 후속군수지원체계는 검찰의 전문성으로 따라잡기 어려운 아주 복잡한 문제들이다. 당연히 수사를 받는 군과 업체로부터 무리한 수사에 대한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선의 지검과 대검 사이에서 방산 비리 수사 방향을 둘러쌓고 이견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방산비리 척결에 대한 현 정부의 집요한 의지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비리를 밝혀낸다는 정치논리에서 비롯되었다. 2009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리베이트만 근절해도 국방예산 20%는 삭감할 수 있다”는 발언이 알려지고 난 후 방위산업은 거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결국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과거 정부의 비자금을 찾아낸다는 검찰의 행보는 마치 전설적인 황금궤짝을 찾아내려는 황야의 인디아나 존스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와 함께 비리 수사를 통해 군 지휘부와 업체의 기강을 잡고 국방개혁에 힘을 실어준다는 정권적 차원의 의지도 부가되었다.

군납 및 방산비리 척결을 넘어 군 비리 전반을 수사하려는 현 정부의 의지는 불가피하게 군 지휘부와 갈등을 불어 왔다. 현 정부 들어와서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사지도자들이 임기를 제대로 마친 경우가 거의 없다. 육군의 경우 임충빈 총장, 한민구 총장, 황의돈 총장 3명이 각기 18개월, 9개월, 6개월이라는 초 단명으로 임기를 마쳤다. 이 중 임 총장과 황 총장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질된 경우다. 특히 황 총장의 경우 8년 전의 부동산 매입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불명예스럽게 전역지원서를 내야 했다. 공군의 경우도 김은기 총장이 제2 롯데월드 인허가 문제를 둘러쌓고 청와대와 갈등을 겪고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났다. 올해 4월에 있을 군 정기인사를 앞두고 최근 군 내부에서는 4성 장군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예전 정권에서는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들이 일상화된 구조에서 군 인사법에서 정한 ‘총장 2년 임기 보장’은 이미 공수표가 되어 버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은 군 고위 장성에 대한 비리 수사에 항상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위 군 장성에 대한 비리정보는 장군 진급 및 보직인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한폭탄과 같다. 최근 군 내부의 일부 장교들 사시에서는 청와대와 ‘직거래’하면서 군 장교들의 비리 사실을 제보하여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입장을 굳히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결국 인사권을 가진 총장들이 장군 진급인사를 심의․추천함에 있어 군 내부에서 떠도는 비리 관련 정보들에 영향을 받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헌병의 한 준장의 수십 가지 비리 사실을 담은 ‘공익 제보’가 국방장관에게 전달되고 난 직후, 해당 준장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한 사례도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단면이다. 

군이 비리의 온상으로 정권에 의해 사실상 낙인찍히고 군사지도자들이 빈번히 교체되는 상황은 군의 지휘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당면한 남북 간의 안보위기를 관리하는 모습은 분명히 아니다. 이렇게 정치권력과 군부 간의 일상화 된 불협화음은 적어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하나회 척결’ 이후 처음이라고 보여 진다. ‘총장들의 수난사’가 보수․안보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업계에서는 지난해 방산비리 수사 과정에서 전직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L사를 비롯하여 사주가 구속된 H사 외에도 압수수색, 검찰 소환 등 크고 작은 사건들에 사업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국내 재벌들은 수익성이 낮고 비리 잡음이 많은 방위산업을 한다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방산 분야를 그룹에서 분리하는 추세다. 특히 현대, 삼성, LIG, 두산 등 굴지의 재벌들은 방산 분야는 “돈이 안 된다”고 보고 단지 “말썽 안 나고 조용히 지내면 되는” 별종으로 취급하고 있다. 정부가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업이니 그룹에서 소외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인을 잃은 국방의 산업적 기반이 침해되면서 국가의 방위역량 자체도 악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유일의 항공 체계종합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우도 핵심 수익이 방산이 아닌 민수에서 달성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거의 전 방산 업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업계가 방산을 하면서 정부로부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방 산업 전체의 활력도 소진되고 있다. 방위산업이 산업계의 탕자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청와대-검찰-군-방산업체로 이어지는 일련의 난맥상이 ‘이명박 식 국방’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개혁의 미래가 무엇인지도 지극히 불투명하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