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송영길 인천 시장 서북 도서 방문 남북군사력

 

 

D&D Focus 2011년 1월호


서해 평화정착에 정치적 운명을 건

젊은 시장, 인천의 송영길


동행취재 김종대 편집장

사진 서정환 기자



바다 위의 화산


이건 날벼락이다. 어느 날 평화롭던 섬에 포탄이 날아들어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다. 피난 갈 곳도 없는 갇힘 섬에 포격이란 더더욱 치명적이다. 망망한 바다 가운데 섬광과 폭음에 이은 불바다의 섬은 그야말로 바다 위의 화산이었다. 그 일은 지난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에 발생했다. 그리고 아직 무덤덤한 사람들까지도 확실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2차 포격은 오후 3시 11분에 찾아왔다. 포탄이 쓸고 간 마을과 군부대에서 수습이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불은 계속 번지기 시작했고 면사무소 직원의 연이은 대피 방송, 군인들이 뛰어가는 소리, 대피소를 찾아 헤매는 주민들의 아우성이 어우러지던 이 날의 기억은 참혹하다. 차마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기억이다. 

한국전쟁 때도 전투가 없었던 ‘전쟁의 청정지역’이었던 서북 5도(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소청도, 우도)는 아름다운 경관과 풍부한 어업자원이 어우러진 평화의 섬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사건에 이은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이 해역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변했다.

사건이 벌어질 당시에는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탁상공론으로 시간만 허비하던 우리나라 전쟁지도본부, 즉 청와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는 포격이 진정되고 난 이후에야 강경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에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단호한 대응을 천명하고 나섰고, 급기야 11월 26일부터는 서해에 미 항모 조지워싱턴호가 들어왔다.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 서해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에서 북한에 대규모 무력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12월 6일에 대통령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는 향후 서북 도서 방어를 위해 의미 있는 조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 서북 도서의 요새화 ▲ 서해북부합동사령부 창설 ▲ 서북도서 전력증강 등 군사적 조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업기지로서 서북도서의 평화적 기능은 전략기지라는 군사적 기능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진화위의 보고가 있을 무렵 우리 군은 한반도의 전 해역 총 26곳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한데 이어 12월 중순인 현재까지도 추가 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12월 18일부터는 연평도, 백령도 인근에서도 사격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여 또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군사적 긴장에 가장 속을 앓는 하는 당사자가 바로 송영길 인천시장이다. 송 시장은 정부나 언론에서 서북도서를 대만의 금문도(金門島 진먼다오)와 같은 군사적 요새로 만든다는 말에 무척 마음이 무겁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서북 도서의 평화적 가치는 평가 절하되고 군사적 가치만 부각시키는 중앙정부의 태도가 마뜩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남북 간의 충돌을 불러 올 해상사격훈련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이런 추세라면 4년 후 아시안게임을 주최하는 인천 관내에서 한국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적 긴장이 벌어진다는 것인데, 이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45억의 아시아인들이 지켜보는 도시의 행정구역 내에서 긴장이 지속된다는 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군사적 조치 외에 남북 간에 서북도서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어떠한 구상과 노력과 계획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략기지? 지하요새?


12월 12일 아침 8시에 송영길 인천시장 일행과 기자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 소청도를 향해 출발했다. 시장으로 취임하고 4번째 서북도서를 방문하는 길에 기자는 처음부터 동행했다. 1박 2일 간의 이번 방문에는 인천 시청의 이성철 인천시의원, 한광원 전 웅진 국회의원, 하태윤 국제자문대사, 박종민 안보정책특보, 신동호 남북교협력 특보 외에 자치행정국장, 소방안전본부장, 남북교류협력팀장, 교육지원담당관, 경제수도정책관, 자치행정과장, 해양수산과장과 기자가 동행했다.

평소 3시간이면 되는 바닷길은 연평도 사건 이후 우회 항로로 바뀌는 바람에 무려 4시간 반으로 늘어났다. 배에 오르자마자 송 시장은 “과연 서북5도가 금문도와 같은 요새가 되는 것이 맞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요새가 된다는 의미는 모든 군사장비와 시설이 지하화 되며 주민들도 대피소에서 기본적인 인간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갖춘다는 뜻이다. 식량, 급수, 에너지, 통신이 다 갖춰진 대규모의 지하시설이 필요하고 군 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특수시설이 들어서야 한다. 대만의 금문도가 바로 그렇게 되어 있다. 이런 요새는 적어도 2차 대전과 냉전시대까지는 세계 여러 곳에 만들어졌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핀란드, 노르웨이, 스위스와 같은 북구라파 국가들은 대규모 요새를 건설하였다. 대량 핵전쟁에 대비하다보니 그 규모나 시설은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냉전이 해체되고 나서도 없애지 못하다보니 지금 핀란드에서는 지하 요새에 축구장, 영화관, 도서관을 만들었다.

대만의 금문도도 마찬가지다. 1958년 8월 23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의 최전방 기지인 금문도(金門島)에 대대적인 포격을 가했다. 금문도는 대만의 섬이지만 대만에서는 190㎞나 떨어져 있으며 중국 본토에서는 불과 1.8㎞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이곳은 1949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대만으로 패퇴할 때 최후의 보루로 삼은 곳이다. 44일 간 47만4,000발의 포탄을 쏟아 부은 대공세는 막대한 중국군의 희생만 치룬 채 굳건하게 방어되었다. 58년 전투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인민해방군의 금문도 포격은 1979년 1월 1일을 기해 중단됐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요새화를 계속 추진하여 동서 20㎞, 남북 길이 5~10㎞인 섬 전체는 땅속으로 그물망처럼 연결했다. 지하에는 폭 1m, 높이 2m의 지하통로가 2㎞나 이어진 민간 대피소들이 12곳이나 건설돼 있으며 긴급 구호장구와 비상식량 등을 갖추고 있다. 각 대피소 길이를 연결하면 무려 10㎞나 되는 갱도가 거미줄처럼 도시 곳곳으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갱도는 차량 2대가 교차 통행이 가능하다. 지하 2층으로 건설된 지하도시나 다름없는 이곳은 4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화생방 방어시설과 지하 비행장을 포함해 주민 전체가 대피해 생활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70년대 핑퐁외교의 결실로 긴장이 완화되고 난 후 금문도는 1991년 계엄령이 해제된 후 평화와 교류의 섬으로 변했다.



군사적 실효도 없는 망상


이명박 대통령이 12월 8일 국무회의에서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해 5도를 금문도와 같이 군사 요새화를 추진하라”고 지시한데 대해 송 시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더군다나 금문도를 모방하기 위해 시찰단까지 파견한다는 정부와 여당의 발표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작 금문도에 가서 배워야 할 것은 지하요새가 아니다. 이제 중국 본토와 육교를 놓기로 할 만큼 성숙해진 양안관계를 상징하는 금문도는 고량주와 관광객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평화의 섬이다. 배우려면 그걸 배워야지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섬 전체를 요새화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구상이 남발되는 데는 일종의 망상이 도사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그런 냉전형의 요새를 짓는 나라는 지금 어디를 가도 없다. 하다못해 백령도의 두무진은 태풍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부두인데, 돈이 없어 방제시설조차 못하고 있다. 몇 억원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는 섬에 수조원이 들어갈 지도 모를 지하요새를 짓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만이다. 마을마다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 대피소부터 보완해야지 무슨 생뚱맞은 요새란 말인가?

게다가 군사작전 측면에서도 실효성이 없다. 작은 섬인 서북5도는 광활한 북한의 육지를 상대하고 있는 비대칭적 대치구도다. 여기에 아무리 많은 야포와 미사일을 쏟아 붓는다 하더라도 지형적 불리함이 극복될 수 없다. 섬 방어를 위한 필수전력을 최소한으로 구비하되, 서북 해역의 방어는 현장의 군사력이 아니라 후방에서 지원하는 지․해․공 합동 전력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방부와 합참이 수립한 ‘국지도발대비계획’, ‘NLL대비계획’을 비롯한 작전계획, 군사지침은 일관되게 현장의 군사력 보다는 후방 지원전력으로 섬을 방위한다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여기에는 평택의 2함대사령부에서 지원하는 해상 함포와 오산 및 군산기지에서 지원하는 전투기 등 공중지원 전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이 섬에다가 “세계 최강의 무기를 배치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연평도 사건 이틀 후의 발언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발언이 있고 나서 청와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을 통해 연평도와 백령도에 300km 사정거리의 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타킴스(ATACMS)를 배치한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거의 제정신이 아니다. 이 미사일은 후방의 특수 보호시설에 배치해야지 적진이나 다름없는 북한 해안포 코앞에 배치할 수 없는 무기다. 만약 서북도서에 평양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치명적 공격무기를 배치한다면 북한은 즉각 이 해역에 엄청난 대응무기를 투입할 것이고, 그 즉시 이 해역은 어업기지로서의 기능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사시 우리의 전략무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북한이 잠수함 침투나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활동을 강화하게 되면 어업이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리고 이 작은 섬에 그런 전략무기를 갖다놓을 장소라도 있단 말인가? 연평도 사건 직후 군이 긴급히 연평도에 투입한 다련장포는 배치할 장소가 없어서 도로나 민가 옆에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건 작전적으로, 전술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이다. 게다가 서북5도의 해병대 병력을 대거 증강시킨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려면 민간의 토지를 수용하여 부대  시설을 짓고, 철조망 치고, 장벽 쌓고, 진지 공사하는 등 많은 예산투입과 주민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걸 정말 하겠다는 것인가?

송 시장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듯 했다. 마침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이 임명되기 전 12월 3일 국회 청문회에서 “서북도서에 전략무기 배치는 군사적으로 옳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김 장관은 서북도서가 ‘어업기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장관이 대통령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 이후 송 시장과 만난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주민 누구도 자신들이 사는 섬에 군사력을 증강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민들이 제일 잘 안다. 무엇이 진정으로 섬을 지키는 것인지를.



안보의 최우선은 현지 주민


대청도에서 송 시장을 만난 김정도(78세)씨는 51년 8월부터 57년 9월까지 정보부대 요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중사로 전역했다. 그 이후로 60여 년 간 대청도에 거주해 온 이 노인은 잔뜩 목소리를 높였다.

“각종 시사토론에서 국회의원인지, 국방관련 무슨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이 90%다’라며 위기를 조장할 때마다 TV를 부셔버리고 싶었다. 자기들이 위험한 곳에 없으니까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일단 주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 예전에 선배님들이 내게 ‘이곳에 사는 것 자체로 애국이다’라고 말했는데, 요즘 그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자꾸 불안한 말만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가, 더 불안하게 해서 쫓아내자고 하는 것인가?”

주민들은 보수적 시민단체가 이곳에 와서 북한에 전단 살포를 하려 했을 때 거세게 항의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정치논리로, 이념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주민들에게는 ‘공공의 적’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박 모(45세)씨는 백령도 토박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안함 사건 때도 주민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원래 포성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연평도 사건이 나고 난 뒤로 천둥만 쳐도 깜짝 놀란다. 이제 우리 집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그렇게 연평도 포격 사건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주민 전체가 그렇다.”

송 시장과 기자는 거의 모든 주민들로부터 박 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군사적 위협을 느낀 다음 엄습하는 것은 생계의 위협이다. 서북 해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주민들의 고통은 더더욱 커진다. 우선 조업 허가 범위가 확 줄어든다. 백령도의 경우 섬에서 북방한계선(NLL) 쪽으로 어선이 나갈 수 있는 거리는 800미터에 불과하다. 천안함 사건이나 이번 연평도 사건 이후 어업 허가 범위는 더더욱 줄어들어 어획고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틈을 노려 중국 어선이 싹쓸이해 간다. 백령도 북방한계선 쪽으로 많을 때는 중국 어선이 200척이 들어온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백령도 촛대 바위 부근에 3척의 중국어선이 보였다. 이들은 우리 어선의 어구를 가져가는 등 그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 보상은 없다. 현행법에서는 어구 조업은 불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손실을 정부가 보상할 책임이 없다. 다만 “이제까지 이 섬의 어민들이 불법 어업을 정부가 묵인해 주었으니 보상은 이미 된 것 아니냐”는 것이 농림수산식품부의 입장이다.

여기에다가 예전 같으면 부두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낚시꾼들이 몰려와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한창 때는 지금쯤이면 내년 3월까지 민박과 식당 예약이 다 차 있었다. 가장 큰 관광지라고 하는 백령도 두무진에 송 시장 일행이 도착한 때는 13일 오전 10시. 텅 빈 부두에서 관광 유람선은 이미 잠들어 있고 쓸쓸한 항구와 비경을 만들어 내는 절벽들은 까마득히 오래 전의 전설 속 같았다. 이 유령 항구에서 나뒹구는 어구들과 조각배들은 쇠퇴하는 지역경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먹고 살기 막막해진 주민들은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에서 왔다는 점을 잘 안다. 이들은 하루빨리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한다.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다”


송 시장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인상 깊은 글을 보았다. 몸의 중심이 어디인가? 누구는 배꼽이라고 하고 누구는 심장이라고 한다. 그것이 아니다.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다. 혀끝이나 손끝이라도 아픈 곳이 있으면 온 몸의 신경이 그리로 집중된다. 그곳이 바로 중심이다. 지금 서북 5도가 대한민국의 아픈 곳이다. 이곳이 중심이다. 남북 간의 평화정착도 이 중심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송 시장은 주민들에게 어떻게든 용기를 불어 넣으려고 애썼다. 주민들이 여기서 생존을 포기하고 타 지역으로 이주한다든지 하면 이곳은 ‘생명의 섬’에서 ‘죽음의 섬’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중앙정부가 안보를 강조하고 군사적 대응에 골몰하는 동안 송 시장은 평화를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주민의 대표로서 일종의 숙명이다. 어쩌면 중앙정부와 격렬하게 대립할지도 모를 반대 입장이다. 송 시장이 계속해서 서북도서를 방문하는 것은 바로 이곳이 인천과 대한민국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를 주장한다. 송 시장에게는 ‘평화 구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구상을 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번에 연평도 사건으로 주민들은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습니까? 그러나 인천시가 있고, 저 시장은 이곳에서 주민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번에 북한 포격으로 돌아가신 고 서정욱 하사는 저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절친한 친구의 조카입니다. 아들이 죽은 것 같은 비통한 심경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민간인 희생자 김치백 씨의 경우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려다 중도금 잔금 치루기 위해 연평도 막사 건립의 인부로 와 있다가 폭격을 당했습니다. 시신은 너무 처참하고 수습이 안돼서 가족이 염도 안 봤습니다. 그의 가족이 관을 옮길 때 관이 너무 가벼워서 더욱 애통했다고 합니다. 화장장에서 납골 양이 너무 작아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답니다. 민간까지 포격한 도발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행위입니다. 반드시 응징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 이 백령도가 17km 밖에 북한이 있기에 그들과 떨어져 살래야 살 수 없다는 숙명과 같은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저 백령도 앞바다의 올레도에서 북한은 불과 7~8km 앞에 있습니다. 언젠가 통일의 대상이 될 북한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 고민이 있습니다. 마치 혈압관리를 잘못하면 쓰러지는 것처럼 아무리 경제가 튼튼해도 남북관계가 잘못 관리되면 국지전이 벌어지고 사정거리 안에 서울도 들어갑니다. 인천시장은 그런 현실을 좌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연평도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송 시장은 아시안 게임 준비와 평화구상에 온통 몰입해 있었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열리던 때 인천시는 북한 측과 4년 후 아시안게임에서의 협력 문제로 광저우에 접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돌연 북 측이 회담을 거부하고 나서 정확히 6일 후에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다. 송 시장은 연평도 사건의 와중인 11월 29일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광저우로 날아가 차기 대회 개최지 시장으로서 깃발을 인수했다.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차기 대회의 위상을 과시하려던 송 시장에게는 커다란 난관이 생긴 셈이다.

송 시장이 광저우에 머무를 당시 중국 TV는 미 항모 조지워싱턴호의 서해 진입을 시시각각 보도했다. 한 보도에서는 한국군 장성이 미군으로부터 무슨 상패 같은 것을 수여받는 모습이 나왔는데, “한국은 미국의 영원한 하수인”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었다. 26일에 서해에 조지워싱턴호가 들어오고 나서 축구를 비롯한 전 한국전 경기에서 중국 국민들은 한국의 상대편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민족주의가 새삼 자극되고 반한 감정도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결국 우리의 안보를 위한 군사적 조치가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또 다른 안보의 불안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를 저절로 체험하게 되더라는 설명이다. 이 복잡하고 역동적인 정세에서 우리가 미래에 대한 비전, 위기를 관리하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낙오자가 될 수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밝히는 비전과 철학, 그리고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젊은 리더십의 송 시장은 더욱더 평화적 구상을 가다듬는다.    



송 시장의 비책


송 시장이 구상하는 평화구상은 바로 「강화교동 평화산업단지 기본구상」이다. 강화도의 교동과 개성, 해주를 잇는 ‘황금의 평화삼각축(Golden Peace Triangle)’을 형성하여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기술, 물류를 결합해 개발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개성공단은 전략물자와 기술의 적성국가 반입을 금지하는 바세나르 체제(Wassenaar Arrangement) 때문에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노동력을 우리 쪽으로 불러 들여야 이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 중심이 바로 교동평화산업단지다. 이를 통해 인천이 새로운 경제교류협력의 권역으로 설정하여 환황해권 경제중심의 인천 비전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선언한 2007년의 10.4 남북공동성명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아래 그림 참조).

이것이 환상이라고? 실현될 수 없는 관념이고 추상이라고? 그러면 북한주민의 변화를 말하고 통일을 말하는 대통령은 환상 아닌가? 지금과 같은 긴장이 4년 후에도 지속되어 아시안 게임 와중에 포격이 오가는 그런 현실만이 구체적인 것인가? 가장 밝은 빛은 가장 깊은 어둠에서 탄생한다. 위기에 처할수록 긍정적 비전이 요구된다는 것은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체득하는 진리다. 또한 젊은 시장, 송영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송 시장은 이미 정치인이라기보다 비전가, 전략가에 가깝다.

송 시장은 2014년 아시안 게임의 상징으로 백령도 물범을 선정했다. 누구는 송도 앞바다의  저어새를 주장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다. 평화의 상징은 백령도에서 나와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범은 백령도 인근에서 생활하다가 겨울에는 북한을 거쳐 중국으로 갔다가 따뜻해지면 다시 돌아온다. 지금은 멀어진 평화지만 물범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평화를 기다리고 또 앞서서 만들어 나갈 작정이다.

차기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남북공동응원단이 구성되고 북한 팀도 참여할 것이다. 이때가 바로 도약의 기회이다. 최근 정부는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서해5도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서북 5도의 주민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송 시장은 이왕에 서북 도서를 지원하는 종합계획이 수립된다면 용지포항이 내년도에 완공될 경우 3천톤 급 대형 여객선을 취항하도록 하여 서북 5도서와 인천 간에 안정적 노선이 운용되도록 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이 해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미역, 다시마 등이 신속하게 운송이 돼서 제값을 받고 파는 여건이 마련되고 많은 관광객 유치할 수 있다. 이왕이면 중국 관광객을 많이 유치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어렵게 한다는 ‘비책’도 있다. 이 해역에서 평화만 정착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온갖 어려움 이겨내고 최북단 영토를 지켜내 통일의 시대 황금의 섬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왕이면 금문도와 같이 백령도와 해주 간에 교량이 건설되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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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