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화된 권력 하에서 군인으로서 출세하기 편집장의 노트

 

D&D Focus 2009년 3월호


사유화된 권력 하에서 군인으로서 출세하기


 

영․호남과 기타 잡도


‘기타 잡도’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그 말의 유래인즉슨 이렇습니다. 영남과 호남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잡을 때마다 지역편중 인사를 합니다. 예를 들어 영남 정권이 등장하여 군의 핵심 요직을 싹쓸이 하면서 호남 인사를 끼워주기 식으로 한 자리 배정합니다. 호남 정권이 등장하면 그 반대가 됩니다. 이걸 소위 ‘지역 안배’라고 부릅니다.

결국 지역색이 강한 영․호남 외에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제주 출신들은 출세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남과 호남 어디도 끼지 못하면 기타 ‘잡도’라고 불렸다는 군요. 이 말은 지난날 군의 인사가 특정 지역 출신을 기반으로 한 파당정치에 풍향계처럼 흔들려 왔음을 드러냅니다. 끊임없이 권력에 줄서기하며 일신의 영달을 도모했던 정치군인 시대의 잔재입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냐 하면 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후반부 한때의 국방부를 보면 장관은 호남, 차관은 영남, 그리고 4명의 차관보급 실장 중 3명이 호남, 1명이 영남입니다. 이 무렵 호남 출신이 실장을 맡고 있던 정책실의 경우는 운전병까지도 호남이었다고 합니다.

윗물이 이러하니 아랫물이야 말해서 무엇 합니까? 당시 육군과 해군의 인사를 보면 능력과 자질보다는 출신지역 위주로 진행되던 인사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역편중은 그 이전의 영남정권이 오랜 동안 호남을 차별해온데 대한 반발이라고도 합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골은 이제 불치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1월 23일, 국방 고위직 인사가 단행되었습니다. 국방부 차관과 산하 기관장 2명이 전격적으로 교체된 겁니다. 장수만 국방차관, 변무근 방위사업청장, 양원모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분들이 모두 육사 엘리트 출신이 아닌 순수 문민 또는 해군 출신, 3사 출신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런 만큼 경직된 국방부 문화에 변화와 혁신의 새바람이 일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그런데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이들이 모두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겁니다. 이 3명이 임명되기 직전의 국방 차관은 호남 출신이고, 방위사업청장은 제주 출신,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충청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교체된 신임 기관장은 전원 영남 출신입니다.



8개 기관장, 6명이 영남

      

지역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색도 뚜렷합니다. 장 차관은 한나라당 일류국가비전위원회 정책팀장을 역임하며 지난 대통령선거에 참여했습니다. 변 청장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 4대 군 계파 중 하나인 ‘서초포럼’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권 인사가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뭐라 하겠습니까? 대통령과 정권 핵심부의 의중을 훨씬 빠르게 파악하겠지요. 게다가 같은 지역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3월, 이명박 정부의 첫 공직인사에서 임명된 국방부 산하기관장들의 면면을 살펴볼까요? 박창규 국방과학연구소장, 박종달 병무청장, 김구섭 국방연구원장 3인은 영남 출신입니다. 영남 출신이 아닌 기관장은 정재원 기술품질원장(서울), 정진태 국립현충원장(호남) 정도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현역이나 계약직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다수의 국방부 직할부대와 기관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복잡함을 피해 청와대가 주로 관심을 갖는 기관장, 즉 정치적 영향을 받는 민간인 직위에 대해서만 언급한 겁니다.

한번 보세요. 현 정부 출범 이후 교체가 이루어진 8개 국방부 산하기관 중 6명이 영남, 1명이 호남입니다. 그리고 ‘기타 잡도’가 1명입니다. 망국적인 지역논리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분할 구도가 아닌지, 작년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반토막 냈던 ‘고․소․영’ 인사편중 시비가 이런 식으로 군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예정된 국방홍보원장 인사라든지, 4월 정기 군 진급인사에서 어떤 정치논리가 개입할지 모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30여년간 한국정치를 풍미한 3김 누구로부터도 정치적 영향력을 받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입니다. 정치입문 과정에서 3김 누구로부터도 공천을 받은 적이 없는 최초의 지도자라는 거죠.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도 이걸 자랑스러워 한다는 군요. 이 때문에 국민들은 과거 지역감정에 기생하는 낡은 정치를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국민을 통합하고 지역을 화합시키는 그런 정치 말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최근 민주당은 청와대 인사라인의 80%가 영남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모골이 송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국민들은 지역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마당에 권력의 중심부는 과거로 회귀하는 걸까요? 이런 상황이라면 강원도 출신인 이상희 장관의 입지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까요? 

이번 인사가 경질 당사자인 김종천 전 차관이 중요한 국제 현안으로 해외 출장 중에 이루어진 일이고, 일설에 의하면 이상희 장관도 차관 교체사실은 예상치 못했다고 합니다. 양치규 방위사업청장은 자신의 경질 사실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국회에 2009년도 예산집행에 대한 협조를 구하러 갔다가 경질 당했습니다. 단칼에 전광석화처럼 해치우는 이명박 식 인사 스타일에 “장․차관 목숨 값은 정승 집 개 만도 못하다”는 한 예비역 장성의 탄식이 들립니다. 이번호에 실린 예비역 장교들의 ‘취중 객담’ 기사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차별은 인간본성


얼마 전에 공군은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호남 출신 이계훈 공군 참모총장이 임명되었습니다. 이 총장이 임명되기 전까지 30여년간 영남 출신 공군 총장은 무려 11명이 배출되었더군요. 이상하죠? 지난 10여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호남 출신을 왜 한 명도 배려하지 않았던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 당시 육군 총장과 해군 총장을 호남 출신으로 임명하려니까 공군마저 호남으로 앉힐 수 없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공군 내 호남 출신은 ‘역차별’ 받은 셈입니다.

물론 새로 임명되신 분들 개개인을 살펴보면 뭐라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 될 만하니까 되신 분들이겠지요.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한번 이 문제를 봅시다. 우리가 우라늄 원자나 분자 하나만 보면 방사성 물질의 특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임계 질량 이상으로 합쳐 놓아야 원자폭탄도 되고 연료도 됩니다. 모아 놓으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특징이 출현하는 겁니다. 중력이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을 세분화하면 중력의 성질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합쳐 놓으니까 새로운 힘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 과정이 너무나 신비해서 아이슈타인 조차도 세상에 존재하는 힘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생을 마감했지요. 아직도 물리학자들은 중력, 원자기력과 같은 다양한 힘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질의 원리가 이런 힘을 만들어 내는지 아직도 우리는 모릅니다. 아이슈타인의 필생의 꿈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한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개개인들이지만 합쳐 놓으면 그들 간에 공통된 어떤 특징이 표면 위로 드러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 냅니다. 선한 개인들이 악한 집단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 서로를 결속시키는 가장 강한 중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출신지역’이라는 겁니다. 이건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오직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부족주의 근성이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근성이 극대화될 때 갈등과 차별이 나타납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이러한 본능의 중력에 이끌리지 않고 도덕과 이성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적까지도 포용한 링컨 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도 첫 인사에서 그런 포용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은 본능에 예속됩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자마자 자기편이 아닌 사람을 배제하려 합니다. 본격적인 ‘내 사람 심기’가 나타납니다.       



또 다른 폭탄, 근무인연


그런데 군인의 경우에는 ‘내 사람’ 이라고 할 때 출신 지역 못지않게 ‘근무 인연’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직접 살을 맛 대고 동고동락하는데서 오는 ‘전우애’야말로 자신이 군인임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자산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전에서의 일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잡고 나서도 그런 전우애에 지나치게 연연한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최근 국방부 내에 특정 야전군 사령부 인맥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일부 보직 인사를 두고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난 번 진급인사 역시 군심을 크게 동요시키는 인사였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독재자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작년에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대통령을 할 때도 내 마음대로 장군 한 명 진급시키지 못했다, 만일 누구를 봐주려고 하면 부하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하나회 장군들이 인사를 전횡하던 시절에도 통상적인 인사의 룰을 깨려는 시도가 나타나면 가만있지 않았다는 군요. 비록 대통령일지라도 사적인 판단으로 인사를 하면 하나회 장군들이 나서서 강력히 견제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회의 지배체제가 붕괴된다고 보았던 거죠. 

그런데 어느새 우리의 고위 권력자들은 “내가 정권은 잡았으니 인사권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권력의 공공성은 사라지며 사유화되는 거죠. 지난해 초 한나라당의 정두언 의원이 현 이명박 정부 초기에 ‘권력의 사유화’가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발언하여 파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런 사유화된 권력체제 하에서 고위직에 진출하는 것이 그 무슨 가문의 영광이라 하겠습니까?

최근 군의 고위 장성들 중에 ‘장․포․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장군 되기를 포기한 대령’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그런 뜻이 아니랍니다. ‘장관되기를 포기한 대장’이래요. 한 야전군 사령관이 최초로 이 말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장․포․대들은 권력에 줄 서기하는 것을 포기한 강직한 군인이라는 뜻입니다. 군의 최고계급인 대장 그룹에서 군인의 본분에 충실하게 근무했는가, 아니면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근무했는가가 장․포․대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대장 출신 장관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희는 이제껏 그런 사유화된 권력에서 장관이 되신 분들이 다행히도 훌륭한 분들이어서 국방에 큰 탈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더 훌륭하신 분들이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그것은 아직도 한국정치가 군인을 줄 세우고 싶어 하는 본성을 이기지 못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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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