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국방개혁 실패의 역사④ 노무현과 국방개혁 2020 국방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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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자주’의 기관차

작지만 강한 ‘2025년 목표군’


편집부


프랑스 식 국방개혁의 영향


프랑스의 아름다운 여성 국방장관 미셀 알리오 마리가 향수 냄새를 풍기며 노 대통령에게 ‘프랑스의 국방개혁’에 대해 설명한 때가 2004년 12월이었다. 프랑스 방문 중 약 한 시간에 걸쳐 국방개혁에 대해 설명을 들은 노 대통령은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귀국한 직후 노 대통령에게 비서실은 영국의 데이비드 츄터 박사가 쓴 『국방개혁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Defense Transformation : Short Guide to the Issues)』를 요약해서 보고했다.

마리 국방장관의 브리핑에 이어 비서실의 보고서를 읽은 노 대통령은 2005년 1월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이 책을 전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식 군 개혁을 한국에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이 지시한 요지는 역대 정권마다 국방개혁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국방개혁이 장기적이고 일관되게 지속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법과 제도에 기반하지 않고 군이 독자적으로 내부에서만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국방개혁은 국민적으로 공론화되어야 하며 법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조이며 노 대통령과 윤 장관은 ‘협력적 자주국방’을 임기 중에 반드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2004년 8월 중순에 윤 장관은 노 대통령으로부터 ▲향후 10년 이내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 구비 및 주한미군 의존 핵심전력 확보 ▲전시작전권의 조속한 환수 및 이를 주한미군 감축 협상과 연계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 등 ‘협력적 자주국방’의 기본 전략 지침을 받아 이를 국방부 본부와 합참, 그리고 각 군 본부에 하달했던 적이 있다. 이어 8월 30일, 월간 군사상황 보고를 받은 윤 장관은 "9월 말까지 자주국방 5개년 추진계획을 작성하되, 각 군의 요구를 합참에서 잘 통제하고, 통합전력 건설 및 발휘와 대북 억제 전력을 보유하는 보다 큰 차원에서 접근하라"고 지시하여 국방개혁 2020이 탄생할 전조를 형성했다. 노 대통령이 직접 국방개혁을 강한 어조로 촉구한 때는 그 직후인 10월 1일 국군의 날에서다.

“국방개혁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과거에도 국방개혁을 위한 여러 조치들이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운용상의 개선만 있었을 뿐, 본격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군 스스로 강력한 혁신 의지가 필요합니다. 국방 조직의 전문화․문민화와 같은 혁신을 통해서 국방운영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한층 더 높여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보화․과학화된 기술집약적 전력구조로 발전시켜 미래전 수행에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군 주도의 작전수행이 가능하고, 통합전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국방개혁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서 국방장관을 중심으로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 주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협력적 자주국방 계획은 2004년 11월 8일에 발표되었다. 주한미군 핵심전력을 대체하는 ▲감시정찰 ▲지휘통제 ▲정밀타격 전력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하면서 2008년까지 GDP의 3.2%를 국방비로 확보한다는 목표로 4년간 99조 원의 국방비를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 협력적 자주국방 계획이 조영길 장관이 만든 ‘자주국방 계획’과 다른 점은 ▲전력증강 일변도의 과도한 국방 예산 팽창을 통제하려 했다는 점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과 연계된 계획이라는 점 ▲국방의 제반 영역에서 민주적 가치와 효율화․투명성을 강화시킨 점 등이다.

윤 장관은 노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취임 이후 국방부 본부의 문민화, 3군 균형 발전 등 일련의 개혁 작업을 표명했고, 이들 개혁안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2005년 9월 13일 국방부는 포괄적인 국방개혁안을 마련하여 공개했다. ‘21세기 선진정예국방을 위한 국방개혁 2020(안)’이라고 명명된 이 개혁안은 ‘국방 전반의 체질개선’을 통한 ‘효율적 국방 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효율적인 선진정예강군’으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유지되어 온 한국군의 ‘양적 구조’를 ‘질적 구조’로 재편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 개혁안이 나오기까지는 역대 정부의 군 개혁에 대한 연구가 큰 도움이 되었다. 2005년 초에 윤 장관이 국방부 본부를 문민화하고 3군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며 병력을 50만으로 감축한다는 새로운국방개혁법초안을 안광찬 정책실장에게 주며 "이를 토대로 2020년까지의 국방개혁안을 성안하라"고 지시할 때만 해도 국방부 정책실은 눈앞이 캄캄했다. 적어도 3년 정도 기획만 해도 나올까 말까 한 포괄적 국방개혁안을 어떻게 단 몇 개월 만에 만들어내란 말인가?

바로 이때 국방부 정책실의 성우영 중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냈다.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진 『국방기본정책서 ‘99~’15』를 원용하면 이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국방기본정책 2015’라고도 불리는 이 문서에는 우리 군의 개혁 방향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와 기획이 담겨 있다. 개혁에 소요되는 기간도 비슷하고 게다가 50만 명으로의 감군이라는 목표도 비슷했다. 더군다나 당시 제시한 개혁안은 거의 실행되지 않아서 노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국방개혁의 방향에 적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개혁을 3단계로 구분한 접근 방식도 비슷했다. 각각의 개혁 완결 단계를 약간 보완만 하면 현 정부의 국방개혁안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선진국방의 청사진 탄생


이렇게 해서 과거 정부에서의 군 개혁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단 3개월 만에 국방개혁의 기본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안을 기초로 추가적인 연구를 국방부 정책실에서 진행하고 가다듬은 결과 ‘국방개혁 2020’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안광찬 실장이 직접 프리젠테이션 보고서로 바꾸고 나자 여름이 지날 무렵엔 개혁의 프레임이 거의 완성되었다. 이 보고는 2005년 6월에 이루어졌다.

두 번째 대통령 보고는 9월에 이루어졌다. 노 대통령은 군 병력을 감축하면서도 "고급 장교들의 숫자는 줄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장성들의 숫자는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이는 군 내부의 누적된 인사 적체에 대한 불만과 전역 장교들의 저조한 취업률을 고려한 결과였다.

그러나 군의 상부구조가 비대해져 고급 장성이 필요 이상 팽창되어 있는 군 인력구조의 불합리함을 개선하지 않는 국방개혁이란 애초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완성된 국방개혁 2020은 국방개혁의 추진 방향으로 ▲ 국방의 문민 기반 확대(군은 전투 임무 수행 전념) ▲ 현대전 양상에 부합되는 군 구조/전력 체계 구축 ▲ 저비용․고효율의 국방관리 체제로 혁신 ▲시대 상황에 부응하는 병영문화 개선이라는 네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군 구조와 운영을 개혁하고 국방부 직위의 70%를 문민화하면서 군 규모를 2020년까지 50만 명 정도로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혁을 추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방비를 연 11% 이상 증액하고, 타격 능력을 1.7~1.8배 향상시키며, 정보감시정찰(ISR) 및 지휘통제(C4I) 능력을 크게 확충하기로 했다. 또한 국방획득체계를 개선하고 방위산업구조를 효율화하며 국방 R&D를 국방비 대비 10% 이상으로 대폭 늘리고 방산 수출 지원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국방개혁 방안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방개혁 2020의 핵심 내용을 국방개혁기본법․방위사업법 등으로 입법화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국방기본정책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계획에 따르면 군 구조 개편은 크게 3단계로 추진된다. 2010년까지 추진되는 1단계는 군 구조 개편 착수 및 본격화 단계다. 군의 상부구조를 우선 개편하고 개혁 기반을 구축하는데, 특히 전구 작전지휘가 가능한 방향으로 합동참모본부 개편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후 5년간 추진되는 2단계는 개혁 심화 단계로서 상부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구조 개편에 따른 추가 전력을 확보한다. 이 시기에 한국군의 기동력․타격력을 보강하고 작전사령부를 개편하는 등 가장 활발한 변화가 일어난다. 구조 개편의 마지막 단계는 2020년까지 군 구조와 전력 구조를 완비하고 하부구조의 전력화 개편을 완료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합참은 한국군 전구사령부로서 그 능력과 위상, 규모가 변화하고, 현재의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가 통합된 지상작전사령부가 창설되며, 2군사령부는 후방작전사령부로 개편된다. 군단은 10개에서 6개로 줄어들고 사단은 47개에서 20여 개로 줄어든다. 병력은 68만 1000명에서 50만 명으로 줄어든다. ‘정보화․정밀화․동시통합성이 달성된 혁신된 군’으로 변환하기 위해 기동력과 타격력이 증강되고 정보․C4I(전술지휘통제)․화력지원 등 군 핵심전력이 대거 보강된다는 것이 구조 개편의 공식 방향이었다.

2004년에 표방한 ‘협력적 자주국방’이 자주국방과 한미동맹 변환을 상호 연계시킨 작품이라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2005년의 ‘국방개혁 2020’은 본격적인 군 병력 감축과 구조 개편, 합참의 기능 강화, 군 내부의 운영 개선이라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제껏 청와대가 주도해 온 자주국방의 담론을 바탕으로 구상된 국방개혁 2020은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갖추기 위해 감시정찰(ISR)․정밀타격(PGMs)․지휘통제(C4I)가 군사력 건설의 핵심임을 명확히 했다.

이제는 병력의 숫자로 말하는 재래전이 아니라 적의 핵심 시스템을 정확히 파괴하여 전체를 마비시키는 ‘효과중심작전’이 새로운 화두로 제기되었다. 이와 더불어 장사정 정밀교전, 정보전, 디지털 전쟁 같은 혁신적 개념과 기법들도 물밀듯이 군 내부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전시작전권 전환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한국 합참의장이 스스로 전역(戰役 : campain)과 ‘주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합참의 기능을 보완하고 능력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자주국방 표상, ‘2025년 목표군’


국방개혁 2020에서는 2025년의 목표군이 ▲감시권 ▲방위권 ▲결전권 ▲보호권으로 설정된 방위 영역에서 각기 필요한 임무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개념화되어 있다. 이것이 국방개혁 2020을 통해 개혁을 성취한 한국이 달성해야 할 목표군의 대략적인 윤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해․공군과 정보력이 강화된 목표군은 새로운 합동성의 교리를 바탕으로 첨단 복합 네트워크 체계 하에서 미래 전쟁을 준비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2025년 목표군은 2000km 동북아 전역을 감시권으로 설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의 분쟁 또는 위기 발생을 예방하고 억제하기 위한 전략적 억제능력을 갖춘다. 이 범위를 포괄하는 핵심 개념은 전쟁이나 위기 발생의 징후 정보를 수집하는 정찰감시능력이다. 그 핵심이 바로 글로벌호크․무궁화위성․조기경보기와 같은 정보전력이다.

방위권은 한반도 주변 500km 영역에서 국지전과 제한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 범위 안에서 한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세력에 대한 응징 보복 능력을 갖추자는 것이 그 요체다. 공세와 유연대응, 확전통제를 위한 신속대응전력과 전략적 억제능력을 갖춘다. F-15K, 이지스함, 잠수함, 크루즈미사일과 같은 제4세대 무기가 그 주된 수단이다.

한반도 결전권에서는 침략을 거부하고 국가 총력전으로 대응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반 전력과 신속대응, 전략적 억제, 동원 전력, 우방국 전력까지 총동원하는 전력을 구비한다는 것이다. 당면한 북한 위협으로부터 전면전을 각오하고 총력 대응하는 한국 안보의 기본 영역이다. 보호권은 우주 영역을 지칭하는데, 향후 한국의 우주항공력이 진출해야 할 영역이다.

이러한 개념은 노태우 대통령의 818 계획 이래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계승․발전시켜 온 선진국방의 종합적 산물이었다. 비록 국방개혁 2020이 급조된 계획으로 세부적 검토가 부족하고 수정하고 보완할 부분이 많다 할지라도 그 대체적인 방향은 기존에 논의되었던 선진국방의 비전을 종합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국방개혁 2020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된 국방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노 대통령은자주국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 적어도 박정희 대통령 이래 이처럼 국방을 중시한 정치 지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20년까지 총 621조 원의 국방 재원을 상정한 이 계획이 작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육군, 병력 감축 계획에 반발


국방개혁 2020은 미래 우리 군의 핵심전력으로 징후경보 수집(눈과 귀)과 지휘통제(신경과 혈관), 전략적 억제타격(펀치력) 같은 미래 전력을 구비하되, 병력 감축과 부대구조 개편을 통해 완전성을 갖춘 군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그 요체다. 장차 주한미군 감축에 대비하면서 스스로 억제력을 갖춘 선진군을 2020년까지 건설한다는 데 군 수뇌부는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밑그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에 맞는 합동전장의 개념이 없었고 새로운 국방운영 기조가 정립되지도 않아 병력 감축과 부대구조 개편에만 집착했다는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 국방 예산도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기 체계 플랫폼에 집착함으로써 실현성이 의문시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탄생한 국방개혁 2020에 청와대와 NSC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상희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내부의 토론을 거쳐 자율적으로 합의한 결과였다. 결점이 많다 하더라도 국방개혁 2020에 이르러서야 우리 군도 지상군 중심, 병력 위주의 재래식 군 운영을 청산하고 모양을 갖춰 제대로 작전권을 행사하는 군대로 전환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에 지나치리만큼 의존하면서 기형적으로 성장한 육군 위주의 군 구조를 대폭 손질한다는 군의 자기 혁신이자 선진화 운동이었다.

이상희 합참의장은 2005년 9월의 국방개혁 보고 당시에 개혁 완료 시기인 2020년까지 전력투자비가 271조 원 든다고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또한 김경덕 당시 합참 전투발전부장은 미래 군의 부대구조와 전력구조를 설계한 핵심 인물이었다. 이 두 사람은 국방개혁을 발표한 9월 13일, "우리가 설계한 국방개혁 2020은 ‘퍼펙트한 계획’이다"라며 미래 군의 전력구조를 설계한 국방개혁 2020은 더 이상 손볼 곳이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훗날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장관과 국방개혁실장으로 임명되자 자신들이 설계한 계획이 잘못되었다며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하겠다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전 정권에서 자신이 만든 개혁의 목표와 비전을 전부 뒤집는 이중적 행태였다.  

안광찬 실장은 자신보다 육사 1년 후배인 이상희 합참의장이군 서열 1위라며 자신의 의지대로 국방개혁안을 주도하려 하자 "몹시 독선적"이라며 거북해했다. 개혁의 사령탑인 안 실장의 입장에서는 합참의 경직된 사고가 항상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안 실장은 자신이 이 장관보다 육사 선배라는 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합참의 장군들과 조정을 시도했고, 그런대로 절충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부담은 주한미군과 육군의 조직적인 반발이었다.

국방개혁 2020에서는 육군의 군단과 사단을 대폭 통폐합하고 기동력과 타격력, 생존력을 강화하기 위해 병력을 17만 명 감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군 병력 감축에 대해 2006년 연합사령관으로 부임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2007년 3월 7일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한국군의국방개혁 2020’에 따른 병력 감축과 병사들의 복무기간 단축 계획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벨 사령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한국군은 현재 현역과 예비군을 포함해 370만 명 수준의 병력을 오는 2020년까지 20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할 계획"이라며 "북한군이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이 같은 대규모 병력 감축은 신중하게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방개혁 2020 발표 당시부터 미국이 진정으로 우려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2001년 이후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한미연합사의작전계획 5027’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침공을 격퇴한 후 북한 지역에 5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상시 주둔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통치가 가능하다"고 예측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이후로 미국은 이 수치에 계속 집착해 왔다.

국방부의 병력 감축 논리는 보병부대의 감축과 기계화부대의 창설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방개혁 2020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한국군의 대표적인 ‘거품’과 ‘군살’로 지적되는 총장 산하의 행정부대와 지원부대를 통폐합하고 아웃소싱한다는 내용은 강조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초기의 『국방기본정책서』와 비교해도 후퇴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전투 병력 구조조정을 통해 병력 감축을 도모하되 후방 지원부대의 병력 수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 군은 전투를 하는 군이 아니라 행정과 관리를 하는 군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 예로 군은 골프장, 호텔 및 콘도, 복지회관 등 2000여 개 복지시설에 총 5000명의 현역병을 투입하고 있었다. 취사병만 해도 6000명이 넘는다. 일선 부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 밖에도 정비창․보급창․인쇄창․경리단․병원․학교기관․군종병 등 각종 명목의 비전투병은 전투 기능이 떨어진다. 이 밖에도 연간 2만~3만 명의 입실 환자, 연간 6000건에 이르는 범죄자 등 각종 명목으로 전투 임무에서 제외되는 인력을 모두 빼고 나면, 실제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부대 병력 수는 상당히 줄어든다. 명목상으로는 68만 명의 대군이라지만 일선 부대는 언제나 병력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당시 국방부에 근무하고 있던 한 육군 대령은 "이렇게 되면 육군이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전투병은 10만 명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며관리형 군대로의 추락을 우려했다. 그러나국방개혁 2020’의 군 구조 개편은 병력 감축에 따라 전투병의 비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제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각 군 참모총장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실상 합참의장 관할의 작전부대 위주로 감축을 단행하는 것은 "국방개혁이 일선의 전투력을 약화시킨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마저 있었다. 개혁이란 군의 규모를 축소하면서도 전투력을 증강하는 것이 본래 취지인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는 것 아닌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된 데는 818 계획 이래 항상 개혁에 반대해 왔던 각 군 본부의 수구적 태도를 간과할 수 없다.



육군 장성, 윤 장관을 능멸


육군은 국방개혁 2020이 사실상 ‘육군 개혁’으로 가고 있는 것에 엄청난 불만을 가졌다. "해․공군에 대한 배려에만 치중하는 국방개혁"이라는 육군의 반발은 전방 부대 구조 개편과 병력 감축 문제로 모아졌다. 국방개혁 2020이 확정되면 2019년까지 육군은 부대 개편을 완료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매년 새로 작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혼란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2020년까지 병력을 감축해야 하는 국방개혁의 목표는 사회 병역자원 수급 여건상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병력 감축에 착수할 수는 없다는 태도였다. 일단 현재의 병력 수준으로 최대한 버티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줄여서 그 목표를 충족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여기에서 선 전력화 후 병력감축이라는 대응논리가 육군으로부터 제기되었으나 이는 수용되지 않았다.

육군 정책처장이던 강한석 장군은 NSC 사무처에서 국방개혁 문제를 담당하던 임춘택 행정관에게 병력감축의 부당성을 설명하려 했으나 임 행정관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개혁의 최종 목표를 인정하되 중간 목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육군의 태도를 당면한 개혁 요구를 회피하기 위한 얄팍한 술책이라고 판단한 청와대와 NSC는 국방부에 더욱 확고한 개혁의 실행을 주문했다.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윤광웅 장관은 심적 부담을 느꼈다. 육군의 고위 장성들은 사석에서 윤 장관의 직함을 빼고 이름만 부르며 노골적으로 장관을 능멸하고 비하했다. 반면 청와대는 "개혁의 특공대로 내려보낸 윤 장관이 제 역할을 못한다"며 불만스러워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병력이 감축되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육군의 전력 현대화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NSC의 한 실무자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방개혁 2020은 청와대가 육군에 코가 꿰어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부대 구조를 개편하고 병력을 감축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육군의 전력 현대화 요구를 전부 수용해 준 것이다. 이로 인해 국방개혁 2020에 지상 전력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것을 NSC가 견제하지 못하고 합참에 끌려다녔다. 노 대통령까지도 이를 내심 불만스러워했으나 결국 군의 요구를 수용했다."

우리 군이 장기간 병력 위주의 군에 안주하면서 경직성 경비인 인건비와 유지비가 팽창되어 오는 동안 세계의 무기는 날로 첨단화되었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20년까지 군을 선진화하려면 그야말로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다. 우리의 육․해․공군은 북한을 의식하기보다는 경쟁 관계에 있는 타군을 의식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했다. 서로 더 많은 무기 소요를 계획에 반영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했다. 그 바람에 각 군의 무기가 서로 중복되는가 하면 도입 규모를 늘리는 등 예산을 부풀리는 악습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예컨대 한국군의 징후경보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공군의 글로벌호크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 계획이 채택되었음에도 육군은 사단급 중고도 무인정찰기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육군의 중고도 무인정찰기의 요구성능(ROC)이 과도하게 설정되다 보니 공군의 글로벌호크와 사실상 중복되는 결과를 빚었다. 명백히 작전영역이 중첩되는 무기들이었다. 또한 공군이 근접 항공 지원을 할 수 있는로우(LOW)급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음에도 육군은 대형공격헬기(AH-X), 또는 한국형헬기(KHP) 사업을 강행하려 했다. 이 두 사업 역시 작전영역이 서로 중복된다. 이렇듯 검증되지 않은 소요가 국방개혁 2020에 다수 반영되어 있었으나 당시 청와대와 NSC는 이를 검증할 능력이 없었다.

한편 육군의 장군들은 급격한 지상군 병력 감축으로 육군 전력이 시급히 보완되어야 함에도 해군이 한 척에 1조 원이 넘는 이지스함을 도입하고 공군이 대당 가격이 5000억 원이 넘는 조기경보기를 도입하는 등 해․공군에 국방 재원이 투자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전통적으로 육군은 한미동맹 체제 하에서 해․공군은 미국의 증원 전력에 의존하고 한국은 지상전 위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값비싼 해․공군 전력은 미국에 의존하여 국방비를 절감해야 미군이 한국군에게 이양하고자 하는 지상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방개혁 2020을 법으로 만들어 장기적 일관성을 부여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힘입어 2006년에 ‘국방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개혁의 구체적 목표가 법으로 명기되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개혁에 대한 육군의 반발은 새로운 정부 탄생을 기다리며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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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