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산업, 도요타의 재앙을 잊었는가? 방위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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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Focus 2010년 12월호 



한국 방위산업, 도요타의 재앙을 잊었는가?


 

대규모 부실 잉태 중


방위산업이 산업계의 ‘탕자’로 전락하고 있다. 산업계의 왕따가 되어 비난을 뒤집어 쓴 채 남몰래 서러움을 삭혀야 하는 그런 존재와 같다.

최근 국방 개발 사업에서 저가 낙찰이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부실이 잉태되는 중이다. 방산 분야는 애초 소요군이 책정한 사업비를 방위사업청이 20~30% 정도 ‘후려치는’ 낮은 예정가 책정이 그 직접적 원인이다. 이에 “일단 사업을 수주하고 보자”는 체계종합업체들의 과당경쟁과 저가 응찰이 일반화되었고, 낙찰 후에는 하청 및 협력업체들을 ‘쥐어짜는’ 식의 납품가 후려치기, 과도한 경쟁 유도, 특정 협력업체와 공모한 원가조작 등 기상천외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들은 누차 정부가 ‘원가부정 척결’을 공언한 마당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단순한 도덕성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저가입찰 방식의 개발 사업관리는 국방사업에 대한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켜 부실한 제품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납품된 국방 제품들이 막상 야전에서 전력화될 시점에는 잦은 결함과 하자 발생으로 군 전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개연성을 급격히 높이고 있다. 최근 체계종합 업체와 그 협력업체들은 비용의 60% 수준밖에 안 되는 낮은 사업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겨우 인건비 정도가 충족될까 말까한 낮은 가격에 첨단기술 연구개발이나 투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를 짐작하게 하는 몇몇 사례가 있다. 국방부 획득관련 관계자는 기자에게 최근 “대대급 훈련을 연대급 이상으로 확대하는 과학화훈련장(KCTC) 사업의 경우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총 2500억원의 이 사업은 예정가가 2000억원 수준으로 500억원이상 삭감된 채로 L사에 낙찰되었다. 애초 비용을 밑도는 가격에 수주한 L사는 최근 더 낮은 가격으로 협력업체와 계약하려 했으나 협력업체들이 사업을 기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사업추진을 위한 계약마저 체결하지 못해 사업 추진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 관계자는 “대화력전체계구축 사업도 총 450억원의 사업이 예정가가 책정 단계에서 315억 수준으로 30%정도 삭감되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은 사실상 방산 전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어 향후 제품이 납품되고 난 이후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소요 및 정책부서들은 방위산업청의 지나치게 낮은 예정가 책정에 불안이 가중되고 있으나 이를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방위산업 입찰가가 실소요 예산 대비 70%에도 못 미치는 지극히 열악한 상황이 초래된 이유는 국방산업의 특성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획일적 경쟁체제 도입이 그 원인이다. 국방사업은 일반 시장과 달리 정부가 유일한 수요자로서 요구 성능이나 가격, 품질 등을 시장이 아닌 국가가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입찰자 선정은 무기체계의 전략적 중요성이나 시장규모 등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 경쟁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저가 출혈경쟁을 유발시키는 중이다.

기술개발 과제의 경우를 보면 작년에 60% 수준의 최저가에 최고 점수를 주는 식으로 평가를 하다가 그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방위사업청은 80% 수준으로 예정가를 상향조정했다. 과거에는 이렇게 예정가가 조정되고 나면 대개 예정가의 99% 수준에서 낙찰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지금은 다시 입찰과정에서 10%가 삭감되고 사실상 사업비의 70%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낙찰이 되는 실정이다.

저가 예정가에 의한 입찰제도의 첫 번째 문제점은 대규모 부실을 잉태한다는 것이다. 마치 작년 하반기에 도요타 자동차가 약 4백만 대에 달하는 대규모 리콜을 실시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원가 및 비용절감 일변도의 도요타 생산방식은 결국 ‘품질의 실패’로 이어졌다. 이 전대미문의 리콜사태로 일본이 발칵 뒤집히고 1년이 지난 지금 도요타는 발상을 전환하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의 요코야마 상무는 “앞으로는 제품개발이 다소 늦더라도 확실한 제품만 내놓겠다”며 “품질이 기본이라는 초심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도요타의 실패를 연상시키는 똑같은 시도가 최근 우리 방위산업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방위사업청은 올해 국방예산 절감을 위해 국내 5개 기업을 시범으로 ‘원가검증단’을 파견하여 운영했다. 검증단은 최근 활동을 마치고 방사청에 “방산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비현실적 원가제도의 개선이 없는 가운데 이러한 원가 절감 일변도의 사고방식에 대해 아직은 회의적인 분위기다.



방사청의 불신이 핵심원인


특히 고숙련, 고지지식이 요구되는 공정에서 엔지니어는 실제 일하는 제품을 만드는 시간 못지않게 ‘작업지시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그런데 방사청의 원가검증단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톱워치를 눌러대며 “엔지니어가 일하는 시간이 얼마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기성품과 신규제품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평면적으로 인건비를 비교함으로써 실비용과 괴리되는 부정확한 측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원가 검증은 사실상 방위산업체의 직원 상당수를 구조 조정하라는 압박으로도 읽혀진다. 예컨대 700명 정도 되는 생산 공장을 3백 명 수준으로 감축해도 이상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접근법은 향후 대량해직을 포함한 실직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고, 자칫 방위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무리한 요구로도 ‘품질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바로 도요타식 생산방식의 위험을 답스하는 것이다.     

저가 입찰제도의 두 번째 문제점은 힘없는 중소기업, 즉 서민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계약한 하청 협력업체 수준으로 가면 계약 이전의 사업 준비비나 계약 종료 이후 사업처리 비용이 전혀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또 손실이 발생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나면 업체가 손에 쥐는 돈은 60% 수준도 안 된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오고 있다. 30%이상 적자를 내면서 사업에 참여하라는 강압적 요구에 힘없는 중소기업 일수록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못해 끌려가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대기업과의 거래 실적도 중요하고 추후에 또 다른 사업을 위해서는 현재의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 정부가 표방한 ‘공정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혼자 이익을 독식하는 것은 아니다. 항공분야 대기업 임원은 기자에게 “하청 업체에서 노사분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직접 나서서 노조 지도자를 설득한 일도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협력업체가 사업에서 이탈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동분서주하다보니 별의별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방위사업청이 이렇게 낮은 예정가 책정을 하는 우선적인 이유는 ‘예산 부족’이다. 현 정부 들어와서 국방예산 증가율의 둔화와 예산절감의 요구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방운영에 심각한 압박이 초래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소요 결정기관인 각 군과 합참에 대한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합참이 어떤 장비나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사업계획을 구상하게 되면 방위사업청은 소요군과 합참이 업체의 말만 듣고 사업비를 과다하게 책정했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의심을 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방사청은 사업예산에 비해 더욱 낮은 예정가를 책정하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방사청의 핵심 정책목표는 ‘예산 절감’이다.

방사청이 업체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도 더욱 큰 요인으로 꼽힌다. 소요군과 업체에 대한 불신, 방산 부조리를 척결하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적절히 편승하여, “업체도 돌아 갈 예산을 깍으면 그것이 바로 개혁”이라는 단순한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말한 ‘원가 검증단’이 바로 그런 사례다. 방위사업청이 업체의 원가상정에 불신을 표출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설령 개발사업의 원가 책정에서 업체의 애로사항이 있다하더라도 나중에 양산단계에서 일반관리비가 정산되므로 업체에는 이익이 돌아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업계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업은 할수록 손해”


양산단계에 들어가면 업체는 더 낭패 보는 일이 최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K-2 전차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례다. 개발 과정에서도 엔진과 변속기가 결합된 파워팩 문제로 몸살을 앓았지만, 설령 양산이 되어도 이미 소요량이 700대 수준에서 370대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고, 대당 가격도 120억원에서 78억원 수준으로 대폭 삭감되었다. 이럴 경우 양산과정에서 또 적자가 발생하는데 그 수준이 10~20%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렇게 양산에서 사업성이 크게 악화되자 최근 협력업체들의 사업기피 및 낙오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체계종합업체는 낭패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 직전 단계에서의 예산삭감은 사업의 예측 가능성을 붕괴시켜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장비의 성능 부실문제를 불러오는 핵심적인 이유가 된다.

시스템 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양산의 위험관리 기법이 최고로 선진화되어 있다는 삼성 계열사의 경우도 이익률이 3~4%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1년 6000억원 매출에 이익이 200억원대라는 설명이다. 삼성이 이 정도면 나머지 업체는 더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최근 방사청은 원가에 대한 압박뿐만 아니라 품질에 대한 강도 높은 요구를 업체에 가하고 있다. 최근 장수만 방위사업청장은 국내 방위산업체를 시찰하면서 “품질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방위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며 업체를 강하게 압박했다. 비용은 줄이면서 품질은 높여야 한다는 가중되는 부담은 장비부실의 책임을 두고 정부와 업체가 서로 책임공방을 하는 분쟁요인으로 발전한다. 최근 K21 장갑차 침수사고 문제의 경우 국방과학연구소와 업체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K2전차 파워팩 개발실패 문제, 고속정 엔진의 결함 문제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업체는 “정부가 설계의 책임을 지고 있고, 업체에는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재려하지 않았다”고 하는 반면, 국방과학연구소 측은 “업체가 다 개발하겠다는 말을 믿고 우리가 사업을 관리해 준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결론이 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갈등이 격화되자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등 획득관련 기관들이 민간업체에 대해 갖고 있는 고압적 자세다. 대부분의 책임을 업체에 전가하면서 규제에 익숙해진 이들 기관은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전형이다. 정부의 다른 부처 예컨대 지식경제부나 기획재정부, 중소기업청 등 정부 조달관련 기관의 경우 대개 민간업체의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그나마 소통이 활발한 편이다. 또한 다양한 고객지원, 소통의 제도를 갖추고 연중 민간과 정부 사이에 의견이 교환되고 정부 기관장이 앞서서 민간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다닌다. 그러나 국방 획득 분야는 불신과 불소통의 사각지대다.   

방위사업청이 주목하는 것은 원가와 입찰제도의 근원적 개선이 아니라 원가부정 등 부조리 척결이다. 최근 방위사업청은 방산비리를 없애고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정기국회에서 원가부정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 군수품무역거래업상 등록취소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등록을 취소 ▲ 군수품무역중개업을 하는 자는 중개수수료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한을 초과하여 중개수수료 수수 금지 ▲ 국방조달업체가 부당이득을 얻은 경우에는 부당이득금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의 과징금을 부과․징수 ▲ 최근 2년간 2회 이상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받은 자가 새로이 방위사업에 관한 계약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10년간 방위사업에 관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대부분 규제, 감시, 처벌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방위산업의 부정과 부조리는 척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부조리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처벌에만 몰두하는 것은 행정기관의 정책 중 가장 하책이다. 비현실적인 원가제도와 최저가 낙찰, 잦은 정책변경으로 사업성 악화 등 업체가 불법․탈법으로라도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환경 자체는 이 법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방사청 입장에서는 “국가예산을 건전하고 효율적이며 투명하게 집행하려는” 이 법의 취지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도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고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이 법안은 기존에 이미 여러 법령에서 충분한 규제와 통제를 명기하고 있음에도 별도로 규제사항 만 추려내서 또 다른 법을 만드는 ‘이중 입법’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입법 요건이 성립되지 않은 법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한 법안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이상하다. 방사청이 국가계약법 등 관련 법령을 다 모아놓고 그 중 규제를 강화할 만한 조항만을 뽑아서 조급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구조화된 불법과 탈법


여러 차례 방산 비리 척결이 공론화되었음에도 원가 부풀리기 부정행위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김장수 의원(한나라당)은 10월 7일 “지난 4년간 14건의 방산물자 원가 부정행위가 적발됐다”면서 “실제 부정행위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실 자료에 의하면 원가부정행위로 적발된 업체는 2007년 1개 업체, 2008년 4개 업체, 2009년 5개 업체였으며 올해 들어서는 9월까지 4개 업체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표 참조).

이 외에도 수시로 진행된 검찰의 압수수색 및 방위사업 수사 등으로 최근 방산 업체는 ‘비리의 온상’인 양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방산 비리 언론보도는 ▲ 군사기밀 유출 등 보안사고 ▲ 업체 간 유착에 의한 원가 조작 ▲ 방위사업청 출신 인사와 업체와의 부적절한 유착 ▲ 기타 단순 부정사건 등으로 대별된다. 그런데 이중 가장 많이 적발된 사례가 ‘을(乙)-병(炳)-정(丁)’ 간 원가 부풀리기, 또는 해외업체와 무역대리업자 간 로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유착형태인 것으로 보여 진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보면 방위산업에는 업체 간에 유착을 하거나, 또는 유착을 하지 않더라도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식의 그릇된 거래 행태가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여 진다.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분류된다.

그 첫 번째는 대기업이 자사 퇴직직원을 통해 별도로 분사된 협력업체를 창업하고 여기에 특혜를 주는 ‘제 식구 끌어안기’ 유형이다. 반드시 믿을 만한 같은 회사 출신끼리만 거래를 하여 은밀하게 원가가 부풀려지는 등 비리가 자행되는 경우다. L기업, A기업 등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이런 경우로 거론되고 있다.

두 번째는 대기업이 철저하게 법을 지키며 원가를 조작하지 않되, 여러 협력업체에 문호를 개방하여 경쟁체제로 운영되는 경우다. 방사청이 가장 좋아할 만한 공정하고 투명한 경우인 것처럼 보여 진다. 그런데 실상을 살펴보면 중소기업이 이런 기업의 협력업체로 들어갔다가는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경우다. 살인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 과도한 경쟁유도로 사업을 하면 할수록 손해 보기 십상이다. 결국 법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힘없는 자에게 고통을 전가할 수밖에 없는 ‘준법 투쟁’을 하는 S기업 등이 꼽힌다.

세 번째는 중간간부들이 협력업체와 뿌리 깊은 유착관계를 형성하여 사업주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다. 방산 업체를 돌고 도는 임원급 간부들은 방산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주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해 줄 중소기업을 고른 다음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특정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자신 만의 수익구조를 만든다. H기업, P기업 등 주로 고용사장, 또는 방산 사정에 어두운 사업자가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들은 ‘준법 투쟁’이건 ‘탈법 부정’이건 간에 현실과 괴리된 방산 환경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나름대로 저항하는 고육지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난 2년 여 간 이러한 부정에 대한 검찰의 대규모 수사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로비자금이나 정치권이 연루된 대형 비리는 아직껏 발견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생계형 비리 수준에 그친 것이다. 마치 여기에 거대한 권력형 비리가 있는 거처럼 기대하고 사정의 칼을 빼든 검찰은 거의 물먹다시피 했다.

한편 방위사업청은 이와 같은 부정․비리 사건의 연이은 언론보도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련자는 없다”는 해명에만 집중하는 반면, 부정 시비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는 개혁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소홀히 하고 있다. 개혁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비리의 근원을 해소함이 없이 응징 및 단속만 표방하고 있다. 결국 기술력과 도전정신, 창의력으로 무장된 중소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연줄도 없고, 자금력도 없는 경우 방산시장은 빛 좋은 개살구다. 이 구조 자체를 바꿔서 공정사회에 부합되는 환경을 만들어 놓지 않고 오직 ‘부조리 척결’만을 외치는 검찰과 방위사업청은 개혁의 본질을 왜곡하는 셈이다. 이런 식의 개혁이 남발되고, 예산 절감 명분으로 부실한 개발관리가 지속될 경우 몇 년 안에 우리 국방에는 대규모 리콜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세계 유수의 선진 방위산업체를 탄생시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려면 기존 업계에 대한 골목대장 식 통제를 벗어나 보다 통 큰 차원의 개혁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방위산업체에 대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초일류 방위산업체를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집중시키는 등 보다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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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