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지리산국립공원 왕시루봉을 탐하는가!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2004년쯤으로 기억된다. 모 대학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리산국립공원에 건물을 몇 채 가진 분들이 있는데 캠프나 모임 하기엔 아주 좋은 곳이다, 그 분들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이하 우리)과 그 건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한다, 좋은 기회니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있는 건물, 공동사용,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당시 우리는 자연해설, 국립공원을 거점으로 한 기획프로그램 운영, 청소년 캠프 등을 진행하면서 우리만의 공간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안면이 있는 공단 직원에게 그곳에 대해 아는 지 물어보았다. ‘아 왕시루봉이요, 사용할 수만 있으면 무척 좋지요, 근데 쉽지 않을 걸요, 내려와서 직접 보고 판단하세요.’

 

왕시루봉은 전화로 시작된 인연의 땅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왕시루봉에 다녀왔다.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이하 남부사무소) 직원과 동행한 그날은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푸른 하늘 아래 영화에서나 본 듯한 건물들이 숲 사이에 박혀 있었다. 외국인 선교사 별장이라고 했다. 수영장은 과하다 싶었지만 그 조차도 아름다웠다. 왕시루봉은 환상적인 곳이었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한 장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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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채의 별장 중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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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들이 사용한 수영장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남부사무소가 전한 바로는 그 건물들은 철거 예정이었다.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되어 곧 철거 될 거라 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뭘 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조차 기억에서 사라진 2008, ‘왕시루봉 외국인 선교사 별장’(이하 별장)을 전라남도문화재로 지정하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전문가들과 왕시루봉을 답사하고, 여러 논의를 한 후 별장이 있는 땅(전남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산 17번지)의 소유자인 서울대학교와 현장을 관리하는 남부사무소에 의견서를 발송하였다.

별장이 전남지역 선교 활동지였다는 기독교계의 입장은 이해하나 왕시루봉 일대는 반달가슴곰 등 야생동식물 서식 등으로 국립공원특별보호구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백두대간보호지역 중 핵심지역이며,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리산국립공원 중에서도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니 별장은 철거 후 자연경관 회복, 고유 식생으로의 복원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더하여 우리는, 별장을 보전하려는 기독교계와 지리산국립공원을 보전하려는 사람들, 지역사회 등의 입장을 고려하여 별장 철거, 별장이 있던 왕시루봉에 작은 비석 설치, 기독교계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건물은 산 아래로 이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전달하였다. 그 후 전라남도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별장은 다시 우리의 뇌리에서 잊혔다.

 

20131월 초 윤여창 상임대표가 전화를 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이하 NT)가 별장을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 한다고, 들었냐고.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NT는 우리와 하는 일은 다르지만 환경생태 보전에는 뜻을 함께 하는 단체이다. 국립공원에 대한, 왕시루봉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NT에 자연·문화유산 지정 재검토와 철회를 건의하였다.

그러나 NT는 별장이 건축양식 및 공법상의 특징과 함께 문화인류학적 사료로서의 가치와 보존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별장에 대해 소중한문화유산상을 수여하였다. 우리로서는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었으나 추가적인 활동을 진행하진 않았다. 우리는 환경단체간의 갈등으로 보여질까봐 염려되었다.

 

염려가 더 큰 논란이 된 것은, 2014319일자로 NT()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이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 보전과 운영을 위한 신탁협약서를 작성하면서부터다.

우리는 NT에 물어보았다. 지리산국립공원, 그것도 생태적으로 가장 민감한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안에 있는 건물에 대해 신탁협약을 체결하면서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 등의 의견을 청취하였는지, 우리가 이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의식을 제출하였음에도 신탁협약 과정에서 우리를 포함한 환경생태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별장과 관련한 지역사회의 아픔을 듣고 기록하였는지.

그리고 NT에 제안하였다. 별장을 둘러싼 객관적 사실(철거 건물의 존치 이유, 문화재적 가치,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관리 방침, 지역사회 여론 등)을 정리하고, 기독교계, NT, 환경부-국립공원관리공단, 환경생태단체,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여 별장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공론화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얼마 전 문화재청은 별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현장실사를 다녀갔다. 그러면서 별장은 구례만이 아닌 지리산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2004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611일 지리산자락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조직인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이하 협의회)와 지리산자락에서 생명평화적 삶을 실천하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성직자들의 모임인 지리산종교연대(이하 종교연대)는 환경부와 문화재청에 별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협의회와 종교연대의 생각은 이렇다.

지리산국립공원 왕시루봉은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의 서식처이며 공원자연보존지구,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구역, 생태경관보전지역 등으로 지정된 곳으로 엄정 보존이 요구되는 지역이다. 그런 이유로 지역주민들조차 왕시루봉 출입은 금지되고 있다. 왕시루봉이 엄정보존지역임에도 별장과 관계된 일부 사람들이 수시로 출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별장은 2004년 철거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철거를 미루더니 이제는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한다. 원칙적으로 철거되었어야 할 건축물을 차일피일 시간을 끌어 철거를 지연시키다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면 이는 법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다. 모든 국민 앞에 평등해야할 법이 일부 사람들에게 특권적으로 적용된다면 앞으로 국립공원 관리는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별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다면 이에 따른 지리산국립공원 훼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보수, 관리, 관람 등의 이유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출입할 것이고 이에 따른 국립공원 관리 수요 확대,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지정 취지 무색, 야생동식물 서식조건 악화 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말하는 별장의 근대건축물 가치가 우리나라 생태계의 핵심지역인 지리산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중에도 가장 보호해야할 공원자연보존지구,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의 보전가치를 앞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별장으로 머리 아파하던 어느 날, 용인 사는 분이 전화를 했다. 유병언이 구례로 갔다던데 알고 있냐고, 세월호의 아픔이 왜 유병언으로 집중되는지 짜증을 내려는 시점에 그가 말했다. 지리산에 유병언이 갈만한 곳은 딱 한 군데 밖에 없다고.

어딘데요? 의례적인 나의 질문에 그가 말했다. 왕시루봉!

 

2004년 우리가 앞뒤 상황을 모른 채 잠시 탐했던 왕시루봉, 고지대임에도 물이 많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여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 뜻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50년 넘게 탐하는 왕시루봉, 어쩌면 유병언도 탐하고 있을지 모를 왕시루봉, 당신도 가보면 탐할 것이 뻔한 왕시루봉!

우리는 왕시루봉이 국립공원이고, 백두대간이고, 특별보호구역이고, 공원자연보존지구고, 생태경관보전지역이고, 반달가슴곰이고,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탐의 농도가 가장 진한 인간이 점하게 되지 않을까 몹시 걱정된다. 아침과 저녁, 하루 2번 이상 바라보며 걱정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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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