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름다운 피아골, 내년에도 걷고 싶다_ 3월 피아걸음 후기 피아골댐

2013년 3월 마지막 토요일, 광양과 하동, 구례의 매화, 산수유는 꽃잎을 떨어뜨리고, 햇살 따스한 곳엔 벚꽃이 핀 날이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봄꽃구경을 온 도시사람들이 하동 쌍계사, 광양 매화마을로 향하던 날, 우리는 피아골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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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피아골을 걸어야 매화를 제대로 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이석호 님 (신촌마을 주민)은 3월 30일이라 했다. 구례읍보다 1주일 늦게, 3월 마지막 주가 피아골 매화는 절정이라고, 눈부시게 아름답게 했다.

구례버스터미널에서 피아골행 버스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피아골로 향했다. 피아골행 버스 종점인 직전마을은 물소리가 거셌다. 피아골 골골이 물소리, 새소리로 가득하니, 그 소리로 피아골이 더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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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유독 붉은 이유는 ‘그 골짜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또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 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피아골을 피로 물든 격전지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식용 피가 많이 재배돼 ‘피밭골’로 불리던 것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란다. 그럼에도 왜 나는, 피아골을 생각하면 손톱, 발톱까지 붉어지는 걸까?

피아골 첫 마을, 직전은 이름만 본다면 피아골을 대표하는 마을이다. 피직(稷)자에 밭전(田)자를 사용하여 직전(稷田)이라 하였으니. 직전마을에서 연곡사까지는 아스콘 포장길이다. 햇살 아래 아스콘포장길을 걷는 일이 유난히 상쾌한 아침이었다. 차도 사람도 없는 피아골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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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에 짬을 내어 연곡사에 들렀다. 동부도를 돌아보고, 찻집에서 차도 한잔 마셨다. 우리의 걸음이 평안하길 바라는 찻집 주인장의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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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치마을로 올라가는 큰길을 지나 평도마을, 연곡분교, 남산마을 앞을 걸어 신촌마을로 가는 길 곳곳에 매화가 폈다. 피아골을 사이에 두고 남산마을과 평도마을은 마주보고 있다. 때가 되어도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는 집, 남산마을에서는 평도마을 어느 집이 저녁밥을 굶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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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마을과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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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마을 건너 평도마을, 왼쪽 재 아래 당치마을도 보인다.

원기마을에 들어서자 온통 매화다. 원기마을은 1975년 1월 1일 분동되기 전까지 신촌마을에 속하였으며 내서리 1구라 했단다. 원기(院基)는 원터라고도 하는데, 김해 김수로왕의 아들 7형제가 칠불암에서 수도를 하고 있을 때 아들을 찾아가고 오면서 쉬어가기 위해 큰집을 지었다 하여 원터라는 설과 연곡사를 찾아가던 원님이 이곳을 지나던 중 날이 어두워 문바위 밑에서 하룻밤을 쉬어 갔다하여 원터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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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마을에서 낮밥을 먹었다. 이 가방, 저 가방에서 나온 샌드위치, 주먹밥, 쑥부쟁이나물과 달래장에 봄빛이 가득하다. 낮밥 후 원기마을을 나서며 마을입구 벚나무 아래서 시회를 했다. 오늘 우리가 이 길을 걸을 줄 나옹선사는 어찌 알았을까!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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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곡삼거리(기촌마을)에서 직전마을까지 가는 865번 지방도가 한산하다. 차가 다니라는 지방도이지만 한산하니 그 위를 걸었다. 걷다가 매화를 보고, 걷다가 진달래꽃을 보고, 걷다가 벚꽃을 봤다. 온 산과 들이 꽃밭이 되어버린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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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 걷기의 백미는 조동마을에서 죽리마을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건너기다. 쇠다리가 아닌 돌다리로 건너는 길, 앞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물빛을 바라보며 걷는 길, 반야봉에서 시작된 피아골 물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길, 징검다리 길을 건널 때면 반야봉, 임걸령, 피아골대피소가 눈앞에 삼삼히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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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리마을에서 기촌마을까지 가는 길엔 막 초록잎을 단 나무들이 많아졌다. 연두빛, 연초록 잎들이 살짝 고개를 내놓고 세상을 향해 뭐어라 말하는 듯하다.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 모두를 평화롭게 하는 빛깔, 꽃과 다른 더 깊은 매력, 이제 피아골은 초록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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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가 피아골에 댐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이후 피아골로 향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한 달에 한번이라도 피아골을 걷자한 첫날, 우리는 피아골 첫 마을 직전에서 피아골로 들어가는 첫 마을 기촌까지 걸었다.

섬진강이 가까워지며 꽃의 종류도, 나뭇잎의 빛깔도 점차 변해가는 피아골에 감탄을 넘어서 감동스런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해준 우리가 소중히 느껴진 시간이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피아골 마을들이 물에 잠기는 일을 그냥 바라보고 있지는 말아야겠다는 작은 다짐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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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허명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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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