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선 길바닥에도 감귤이 열린다? 길에서 찰칵

 [길에서 찰칵] 30년 베테랑 운전도 “아차차~”
 

트럭 주인 아저씨와 김승민씨가 트럭의 감귤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284.jpg

    트럭 주인 아저씨와 제주 적십자사 산악구조대원 김승민씨가 트럭의

    감귤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11월은 제주 감귤 수확이 시작되는 시기. 마을마다 돌담마다 푸른 잎 사이 탱글탱글한 주황색 감귤들이 눈부시다.
 부슬비 내리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차가 굽잇길을 돌자 도로 한쪽이 갑자기 환해졌다. 감귤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길 한쪽에 서 있고, 차 주변 길바닥에 온통 주황빛 감귤이 깔렸다.
감귤 다시.jpg 부딪쳐 깨지고 금간 채 굴러다니는 감귤을 차량들이 질주하며 으깨는 중이다. 트럭 주인 아저씨가 이리뛰고 저리뛰며 상자에 감귤을 주워담지만 역부족이다.
 제주 적십자사 산악구조대원 김승민씨가 차를 세우며 말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게 내 임무 아닙니까.” 귤 사이로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다가가 김씨가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도와드릴까에? 빗길에 차가 미끄러졌수꽈?”
 땀을 흘리며 황망히 감귤을 주워담던 50대 아저씨. “하~나 이거 참 챙피해서….” 혼자 일일이 주워담기도 번거롭고 안 주워담을 수도 없는 상황이 아저씨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저씨를 도와 감귤을 상자에 집어 담았다. 슬며시 카메라를 들이대자 아저씨가 화를 벌컥 내신다.
 “찍지 마! 에잇. 이런 걸 찍어서 뭐할라고. 허~ 나 이거 참 챙피해서….”
 아저씨 얼굴엔 당황스럽고 화나고 창피하고 아깝고 번거롭고 귀찮은 표정이 함께 섞였다.
 김승민 구조대원은 침착하고 씩씩했다. 찻길 쪽으로 흩어진 감귤을 먼저 주워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아저씨를 도와  트럭에 반쯤 걸린 채 기울어 감귤이 계속 쏟아져내리고 있는 상자들을 차곡차곡 다시 쌓았다. 밧줄로 팽팽하게 상자들을 묶은 뒤 길바닥의 나머지 감귤을 상자에 주워 담았다.
 그러는 동안 화났던 아저씨 표정도 풀려갔다.
 “허허, 내가 쬐끔 과하게 실었나봐. 나 이거 챙피해서….”

수확기를 맞은 제주 감귤.  007.jpg

    수확기를 맞은 제주 감귤.


 아저씨가 직접 농사지은 감귤이었다. 자신의 감귤밭에서 올해 처음 수확한 100상자를 트럭에 싣고 마을로 돌아가던 길이다. 빗길에 굽잇길을 돌다 쌓아올린 감귤상자들을 묶는 밧줄이 어긋나며 상자가 밀려나와 쏟아진 것이었다. 그는 “내 운전경력 30년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혀를 찼다.
 그때 지나던 승용차 몇 대가 멈추더니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감귤을 줍기 시작했다. “아저씨이, 두어 개만 집어 갑시다아.”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감귤을 주워가려는 이들이다. 아저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었다.
 “이게 한 상자에 2만 몇천원씩에 넘기는 건데, 그나마 몇 상자 안 떨어져 다행이지. 올해 감귤농사? 아주 잘됐지. 맛도 좋고. 제주 감귤 좀 많이들 사다 잡수시라구 해요.”
 어느 정도 길바닥 감귤을 수습하고 차로 돌아왔다. ‘감귤 구조’ 임무를 다한 김 대원은 아주 흐뭇한 표정이다.
 그때 트럭 아저씨가 황급히 감귤상자를 들고 쫓아왔다. 다짜고짜 열린 차창에 감귤상자를 대고는 귤을 차 안으로 들이붓는다. “성한 걸로 골라 드슈.”
 차 안은 순식간에 싱그러운 감귤 향으로 가득 찼다. 제주도만의 향기였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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