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교문, 잘도 잘도 공부할까? 길에서 찰칵

[길에서 찰칵] ‘경고·위험 표지 전시장’ 함백중·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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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환경위생정화구역(학교 경계선으로부터 200m까지의 지역)으로 설정된 지역으로서 누구든지 학생의 학습과 학교 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주는 행위 및 시설을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만약 이를 위반하는 자는…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어느 학교에나 붙어 있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내문’이다.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함백중·종합고등학교 정문에도 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학교가 여느 학교와 다른 건 안내문 주변이, 각종 ‘경고’ ‘위험’ 표지판의 ‘전시장’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각종 위험 경고판들에 포위된다. 학교 정문이 기찻길 건널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 앞으로, 수시로 열차가 들이닥친다. 한 시간에 두세 차례 10여량씩의 화물차량을 매단 열차가, 거센 바람과 굉음을 일으키며 오간다. 태백선 철길의 한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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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표지판들을 간단하게나마 살펴 보자.

 

우선, 교문 기둥 1m 앞에 ‘위험’ 표지판이 있다. 그 1m 앞에 기찻길임을 알리는 ‘기차 그림’ 표지판이 있고, 그 60㎝ 앞에는 ‘정지’ 표지판이 있다. 정지 표지판 위에 ‘전동차단기’ 표지판과 붉은 사선이 그어진 ‘관리인 없음’ 표지판이, 그 옆에는 노란 사선을 두른 시멘트 말뚝, 그 앞엔 ‘멈춤’이라 쓰인 가위표(×)를 단 쇠기둥, 쇠기둥에 달린 붉은 경광등과 사이렌, 그 앞으로 ‘정지’ 팻말을 단 차단기 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철로 건너편에도 같은 표지판들이 비슷한 순서로 세워져 있다. 울긋불긋한 기둥·말뚝들이 모두 20여개를 헤아린다. 여기에다 두 개의 볼록거울(철길이 학교 옆을 따라 이어진 굽잇길이므로)과 ‘전기 위험’ 팻말을 붙인 전신주들, ‘위험! 특별 고압전선, 제한높이 4.4m’ 팻말이 매달린 전깃줄이 추가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고판에 둘러싸여 철길을 건넌 학생들은 곧바로 차량들이 질주하는 왕복 2차선 도로와 맞닥뜨린다. 기찻길과 정문 사이의 공간보다도 작은 공간이, 기찻길과 찻길 사이에 있다. 불과 20m 정도의 폭 안에 교문·기찻길·도로가 몸을 부비고 맞닿아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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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학교 앞길인 이 도로엔 인도도 갓길도 없다. 덤프트럭을 비롯한 대형 차량들이 질주하는 이 좁은 ‘자동차 전용도로’ 건너편에 볼록거울이 서 있고(기찻길과 나란히 이어진 굽잇길이므로) ‘건널목’ 표시가 있으나, 무용지물이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시설이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기찻길 교문’으로 몰려 나왔다. 위험한 교문 환경에 대해 묻자, 정성진(17)군 등 2학년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씩 했다.

 

“정말이지 아찔해요. 어른들이 너무 해요.”
“교문에 기차 다니는 학교가 세상에 어딨어요.”
“매일 학교 다니기가 아슬아슬해요.”
“어휴, 인제 기차 소리만 들어도 미칠 것 같아요.”

 

예닐곱 명의 학생들은 갓길 없는 도로의 절반 가량을 점령한 채 집으로 가다 뒤돌아보며 외쳤다.

 

“아저씨, 우리 학교 교문 사진, 팍팍 찍어가지구 여기저기 좀 알려 주세요. 제발요.”

 

학교 안에서 만난 선생님들도 한마디씩 했다.

“기차 지나갈 땐 교실이 떨리죠.”

“운동장 전체가 우르르 하고 흔들린다니까.”

“지금은 그래도 낫지. 차단벽도 없던 10여년 전엔 기차 지나가면 수업을 멈추고, 애들은 자리에 앉아 내다보며 승객들에게 손 흔들어줬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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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뿐인가. 학교 정문 반대편, 운동장 뒤로 또다른 철길이 지나간다. 이곳에서도 한 시간에 두번 정도 열차가 오간다. 정문 쪽 철길은 화물열차용, 운동장 뒤 철길은 여객열차용이다. 철길에 에워싸인 학교다.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마을에 철길을 깔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따지고 보면 조동리의 함백초교·함백여고도, 함백성당·함백중앙장로교회도 딩동댕 피아노학원도 식당들도 민가도 모두 두개의 철길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어쨌든 1966년, 태백선 예미~고한 선로(교문쪽) 개통과 같은 해에 학교가 개교했으니, 41년간 이 학교를 거쳐간 학생들은 열차의 굉음과 함께 공부한 셈이다. 운동장 쪽 선로는 그 이후에 개통됐다고 한다.

 

공고·실업고를 거쳐 종합고교로 이름을 바꿔온 이 학교는 한때 한 학년당 6개 학급을 운영할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으나, 석탄산업 사양화로 지역 인구가 줄면서 지금은 중교생, 고교생이 각 44명뿐인 단출한 학교가 됐다.

 

함백종고는 지난 2008년도 대학입시에서 개교 41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해 화제가 됐던 학교다.

 

올초 부임한 함백종고 이익환(55) 교장이 말했다.

 

“부임해 보니 학생들이 모두 착하고 성실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날마다 위험에 노출되고 있어요. 학생 수도 갈수록 줄고 있어서, 앞으로 함백여고와 통합해 이전하는 문제가 검토되고 있습니다.”

 

정선/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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