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박차고 허공을 가른다 부우웅~ 제철여행

2004년 4월8일자 기사
 
 
산악오토바이
 


Untitled-6 copy.jpg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네개의 바퀴가 동시에 구르기 시작한다. 절벽처럼 보이는 경사 40도 이상의 비탈길로 곧장 머리를 들이민다. 수직으로 일어서다시피 한 차체가 순식간에 ‘절벽’ 위로 올라선다. 웅덩이도, 커다란 바윗돌도 달리면 모두 길이 된다. 맹렬한 속도로 언덕을 박차고 오르면 몸은 차체와 하나가 돼 허공을 가른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모터 스포츠는 따로 없을 겁니다.” 헬멧에 얼룩무늬 군복, 중무장한 군인 모습의 이승렬(38·사진)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지난 3일 원주시 소초면 교항리, ‘ATV 마니아 클럽 베이스 캠프’의 연습코스에서 만난 이씨는 경력 3년째의 산악오토바이(ATV) 마니아다. 매주말 엔진 소리를 듣지 않으면 잠이 안 올 정도다.
 
“오토바이를 한 10년 탔는데, 에이티브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스릴은 더합니다.” 산악오토바이에 빠져든 뒤 이씨는 ‘삼수갑산’이란 산악오토바이 동호회를 꾸려 팀장을 맡았다. 평일엔 식당을 운영하고, 주말마다 회원들과 원주 등의 연습 코스를 찾는다.
 
비포장 산길로 모험 투어를 떠나기도 한다. 30~60대의 다양한 나이층으로 이뤄진 7명의 회원들과 자연을 즐기며 격의없는 대화를 하는 기회다. “회칙도 규율도 없는 자발적인 모임”이다. 야영까지 하며 산악 코스를 탈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구간이 곳곳에 있다. 인내심·협동심 없이는 팀을 이룰 수 없다. 차가 뒤집히거나 고장이라도 나면 즉시 전원이 달려들어 간단히 해결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어지간한 마니아들은 자칭 ‘맥가이버’들이다. 삽·낫·곡괭이·로프·정글칼 등은 기본 장비. 여기에다 ‘강인한 체력’ 한가지가 더 보태져야 진정한 산악오토바이 마니아 자격이 주어진다.
 
“손·팔·다리·허리 등 온몸의 근육들을 동시에 써야 하는 운동이죠. 두어 시간쯤 산길을 타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요. 스트레스든 감기든 싹 빠집니다.”
 
산악오토바이를 만난 뒤 이씨의 주말은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 찬” 체력단련의 날이자, 재충전의 날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화려한 레포츠 종목이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몇가지 질문·응답.
 
-서민 여가생활과는 거리가 먼 고급 사치성 레저 아닌가?
=차량 가격 때문에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번 구입하면 유지·관리비말고는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100만원대 차량부터 있기 때문에 골프·스키 등 다른 종목에 비해 더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산림 등 환경훼손 우려가 있는데?
=일부 동호인들이 마구 산길을 헤집고 다녀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환경문제에 대한 좀더 철저한 인식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되도록이면 정해진 코스만을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산불 예방, 산림훼손 예방을 위해 애쓰는 동호인들이 대부분이다.
 
원주/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험로 헤치며 "으쌰" 자연에 취해 "야호"
 
산악오토바이의 매력
 
Untitled-7 copy.jpg‘ATV’(All Terrain Vehicle)란 ‘어떤 곳이든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차량’이다. 본디 농기계로 생산되다 레저용으로 쓰이게 됐다.
 
흔히 산악오토바이 또는 4륜오토바이로 부른다. 바퀴 수는 4개부터 6개, 8개짜리까지 다양하다. ‘사발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4바퀴짜리가, 차체가 가볍고 기동성도 뛰어나 많이 이용된다. 유럽·미국 등에선 일찍이 농장에서 운송 및 이동수단으로 쓰이면서 레저용으로도 활성화돼 현재 산길 주행, 사냥·낚시용, 산악 경주용 등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10여년 전 국내에 처음 소개됐으나 본격적인 보급이 이뤄진 것은 3~4년 전부터다. 산악오토바이를 즐기는 국내 인구는 3000여명쯤 될 것으로 동호인들은 추산한다. 거의 매주 산악투어를 나서는 마니아층은 300~400명 가량으로 본다. 전국에 10여개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고, 산악오토바이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10여곳을 헤아린다.
 
산악오토바이는 아무리 험난한 길도 어렵지 않게 돌파해 갈 수 있다. 바윗길·진흙길·눈길·물길을 가리지 않는다. 계절도 타지 않는 전천후 레포츠다. 때문에 기존 오토바이나 지프 등으로 비포장도로 주행을 즐기던 이들이 산악오토바이의 역동성에 반해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Untitled-8 copy.jpg지난 3일 원주 ‘베이스 캠프’에서 만난 산악오토바이 초보자 김형수(42·서울 성내동)씨는 “오토바이도 타 보고, 한동안 지프로 산길을 누벼보기도 했지만, 네발짜리 산악오토바이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배워 연습코스를 돌아본 김씨는 “멋진 새 레포츠를 만나 즐겁다”며 “빨리 익숙해져 산악투어에 따라 나서고 싶다”고 한껏 기대감을 표시했다.
산악오토바이가 갖는 매력에 대해 동호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의 교감’을 꼽는다.
마니아 이승렬씨는 “그건 한마디로, 끊임없이 긴장하면서 자연의 맨살과 교감하는 즐거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니아들은 시멘트길이나 넓은 길을 벗어나 맨땅의 좁은 산길과 바윗길 등 험로를 골라 돌파하며 성취감을 얻는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을 건너거나 가파른 바위를 타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도 로프를 견인고리에 연결한 뒤 운전해 올라가기도 합니다. 차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많죠.” 이씨는 위험해 보이지만, 험로에선 워낙 천천히 주행하는 데다 헬멧 등 안전장구를 갖추고 있어 크게 다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이런 곡예 수준의 운전이 가능한 것은 차체 길이가 2m 안팎으로 작고, 무게도 가벼워(300㎏ 안팎) 기동성이 뛰어난데다, 각각 구동되는 바퀴가 네개 이상 달려 있어 바닥 밀착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배기량은 50짜리부터 800짜리까지 다양하다. 산악 주행을 하려면 최소한 160 이상은 돼야 한다. 요즘 부쩍 늘고 있는 산악오토바이 체험장에서 빌려주는 것들은 대부분 50~160짜리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마니아층에선 300~400짜리 4바퀴 또는 여섯바퀴짜리를 선호한다. 가격은 100만원대(50)부터 시작된다. 평지 주행 최고속도는 시속 90. 산악 투어때는 보통 20 안팎을 유지한다.
 
이병학 기자
 

자연 즐기다 자연 망칠라

마구잡이 투어 규제등 환경훼손 방지 고민
 
산악오토바이가 흥미로운 신종 레저스포츠인 건 분명하지만, 일부 무분별한 산악투어로 환경훼손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차량을 빌려탈 수 있는 체험장이 급증하고 있고, 동호인들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여서 시간이 갈수록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는 산악오토바이를 즐길 수 있는 정식 산악코스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일부 동호인들은 “새 코스를 개척한다”며 전국 곳곳의 오지를 탐험하듯 파고들고 있는 상황이어서, 산림훼손 및 하천의 최상류 계곡 수질 오염 우려를 낳고 있다.
 
소음으로 인한 주민 불편 등도 예상된다.
 
기존에 만들어진 소규모 체험장들은 대부분 가족단위 유희시설 수준이다. 난이도 높은 코스를 즐겨찾는 모험심 강한 마니아들을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점프시설, 경사가 심한 암벽 등판 코스 등 고도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인 코스를 마련해 동호인들을 흡수하는 방안 등이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ATV협회가 출범됐으나, 아직은 조직적인 회원 관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모터스포츠연맹 산하 ATV협회 김태영(57) 회장은 “환경훼손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장거리 공식 코스를 마련해 동호인들을 흡수하는 한편, 자체 규율 등을 통해 동호회원들의 마구잡이 산악 투어를 막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양식있는 동호인들은 무너진 임도를 복구하거나 산불예방과 산사태 등 자연재해 예방에도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현재 원주 일대 야산의 옛길을 활용한 총 80㎞ 길이의 산악 비포장길 코스를 정식 산악오토바이 코스로 개발하기 위해 원주시쪽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이병학 기자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