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덕이 하늘 장단 외줄 타고 덩실덩실 제철여행

                                                           2004년 4월 23일자 기사
 


남사당 명맥 간직한 안성 나들이
 
Untitled-8 copy.jpg안성은 교통의 요지다. 경부·중부고속도로가 시의 서쪽과 동쪽에서 각각 남북을 관통한다. 최근 평택~안성고속도로가 건설됐고, 이 길은 서해안고속도로와 이어진다. 고속도로들이 오히려 그늘을 만든 것일까. 안성은 볼거리가 풍부한 곳인데도 여행객들의 발길이 그리 잦은 편은 아니다. 산골마다 천년고찰 등 빼어난 문화유산들이 널렸고, 들판엔 배꽃이 화사한 빛을 발하고 있는 안성으로 가본다. 지금도 맥을 이어오는 남사당 풍물 공연과 특색 있는 전통 음식을 즐긴 뒤, 잘 꾸며진 찜질방에서 피로도 풀 수 있는 일정이다. 안성시 쪽이 주장하기로는 ‘안성맞춤 웰빙 여행’이다.
 
안성은 남사당의 본고장이다. 조선 말기 전국을 떠돌며 풍물과 소리, 재주를 선보이며 살던 전문 공연예술가 집단인 남사당패들의 본거지가 있던 곳이다. 바우덕이를 만나 보자. 바우덕이가 누군가? 1800년대 중후반 빼어난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 그리고 화려한 줄타기 재주로 뭇 사내들의 넋을 빼놓던 ‘인기 대중 연예인’이다.
 
남사당패 호령 여자 꼭두쇠
 
Untitled-8.jpg서운산 자락 청룡사 들머리 오른쪽 골짜기를 불당골이라 부른다. 겨울이면 남사당패들이 많게는 1만명까지 몰려들어 기예를 익히고 ‘삐리’(초보자)를 교육시키던 곳이었다. 이곳에 한 여자아이가 들어온다. 병들어 죽어가던 아버지가 맡긴 고아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미모는 물론 기예에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남사당패의 최고 윗자리인 꼭두쇠에 오르게 된다. 남자 중심의 남사당패에서 여자가 꼭두쇠에 오른 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그가 바로 바우덕이(김암덕)다. 명성을 전국에 알린 것은 경복궁 중건 공사 중 일꾼들을 독려하기 위해 벌인 공연에서다. 놀라운 기예로 일꾼들을 열광시키자 흥선대원군은 바우덕이에게 ‘정삼품 옥관자’를 하사했다. 명실공히 최고의 남사당패로 올라선 바우덕이패의 깃발이 나타나면 다른 패들은 모두 기를 내리고 물러섰다고 한다. 다음 구전가요가 바우덕이의 명성을 집약해 보여준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 바람결에 잘도 떠나간다.”
 
남사당 문화의 전성기를 이끌던 바우덕이는 폐병에 걸려 불당골에서 짧은 생애를 마친다. 23살. 그를 흠모하던 한 나이든 사내가 바우덕이의 쓸쓸한 생애를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바람처럼 사라졌지만 안성엔 수많은 남사당패들이 생겨나 명맥을 이었다. 바우덕이에 관해선 입으로만 전해질 뿐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바우덕이의 혼이 담긴 기예를 실감해 보려면 토요일 저녁 보개면 복평리 남사당 전수관(031-678-2064)으로 가면 된다. 이곳에선 매주 토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3시간(30분은 뒤풀이) 동안 남사당 풍물놀이 여섯 마당 무료공연이 펼쳐진다.
 
토요일 풍물 여섯마당 무료공연
 
“덕아 덕아 바우덕아, 바람에 손목 잡혀 이 세상에 왔느냐, 길 따라 가도 편히 못 가는 인생, 어찌하여 너는 외줄을 타려 하느냐….”(‘바우덕이 노래’/감태준 시, 박범훈 곡) 처량하면서도 아주 구성진 가락이 울려퍼지는 전수관 앞마당에서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공연은 시작된다.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버나(대접)돌리기·어름(줄타기)·덧뵈기(가면극)·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여섯 마당이 이어지는 동안 관중들은 탄성을 올리며 공연에 빠져들게 된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최근 세계줄타기대회에서 1위를 한 권원태(38)씨의 줄타기 공연. 외줄을 오가며 펼치는 한바퀴 돌기, 외무릎 꿇기, 양발 들어 코차기 등 아슬아슬한 묘기가 볼 만하다.
 
바우덕이는 청룡천 하류 쪽 냇가에 묻혔다고 한다. 몇 해 전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가묘를 만들고 안내문을 세웠다. 가묘 아래 냇가에도 평평하고 작은 봉분이 있는데 이것이 진짜 바우덕이의 묘라는 설도 있다. 무당들이 가끔 찾아와 제를 올리는데 가묘는 제쳐두고 아래쪽 작은 봉분으로 몰린다고 한다.
 
불당골 옆 청룡사는 고려시대 창건된 절이다. 조선 말기 남사당패들과 서로 도우며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절 중수기’에도 남사당패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이 절은 들머리에 사천왕이 없고, 대웅전 네 처마 밑에 그려져 있는 게 특징. 굽고 휜 아름드리 노송을 그대로 기둥으로 쓴 대웅전이 매우 아름답다. 해마다 10월 안성에선 바우덕이 축제가 열린다.
안성/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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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일죽나들목을 나와 38번 국도를 타거나 경부고속도로 서안성나들목을 나와 시내로 간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가 20분 간격, 남부터미널에서 직행버스가 15분 간격으로 안성까지 운행한다.
■ 먹을거리 안성시 영동에 있는 안일옥(031-675-2486)은 80년 넘게 소의 각 부위로 다양한 탕을 끓여오는 집. 1930년대 안성장터에서 국밥을 팔기 시작한 이래 3대째 며느리가 이어받아 곰탕·설렁탕·도가니탕·우족탕 등의 진하고 구수한 옛 맛을 지키고 있다. 해장국 4000원, 설렁탕 5000원, 꼬리곰탕 1만원. 고삼농협 맞은편의 고삼묵집(031-672-7026)은 간판도 없는 허름한 가정집에서 14년째 시원하고 텁텁한 도토리묵밥·메밀묵밥을 내고 있는 집이다. 4000원.
■ 묵을 곳 금광면 오흥리의 안성비치호텔(031-671-0147)은 호숫가에 자리잡은 운치있는 숙소다. 아침이면 금광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 4만원. 안성시청 문화공보실(031-678-2068)에 문의하면 관광농원이나 문화체험마을의 숙소를 안내받을 수 있다.



‘독안의 비밀’ 옛맛 되살린 된장 청국장
‘피로는 사절’ 대규모 건강 찜질방 후끈  

여행길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다채로운 볼거리와 먹을거리다. 잘 보고, 흐뭇하게 먹은 뒤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일정으로 마무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질 높은’ 여정이 될 터이다. 안성에서 들를 만한 곳들을 소개한다.

● 서일농원
중부고속도로 일죽나들목 부근 일죽면 화봉리에 전통 장류를 옛 방식으로 담그는 서일농원이 있다. 3만평 규모의 잘 꾸며진 공원과 2000여개의 장독 행렬도 볼 만하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무공해 전통 자연식은 매력적이다. 서분례(58)씨가 잊혀가는 옛 맛을 되살리기 위해 담가낸 된장·청국장·고추장과 장아찌류가 구수하고 맛깔스럽다. 국산 해콩만을 재료로 써 2년간 숙성시킨다. 김치도 2년간 발효시킨 것을 낸다. 식당에 15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끼니때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므로 앞뒤 시간을 이용하는 게 좋다. 된장찌개·청국장찌개가 각 7000원, 녹두빈대떡 4000원, 해콩 심층수 두부 8000원. 15가지 이상 반찬이 나온다. 농원 입장료는 없다. (031)673-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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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나라
지난 2월 문을 연 대규모 건강테마 찜질방이다. 자연채광의 대형 사우나, 황토·숯·한방 찜질방 및 장작을 내부에서 때 데우는 돔형 한증막, 원적외선 좌욕실, 마사지실, 한·양식당, 연회장, 오락실, 세미나실까지 갖춘 ‘찜질방 종합선물세트’ 격이다. 24시간 운영. 평일 1만원, 주말 1만3000원. 어린이는 반액. 죽산면 매산리에 있다. (031)674-8255.
 
이 밖에 찾아볼 만한 곳으로 ‘안성 유기’의 명성을 이어가는 ‘안성맞춤 유기 공방’(031-675-2590), 10여가구에서 연중 복조리를 만들어 내는 죽산면 칠장리 복조리마을(011-9786-7949), 청소년수련시설이면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너리굴마을(031-675-2171), 일곱 도적을 감화시킨 설화와 임꺽정 일화가 전하는 칠장사 등이 있다.

안성/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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