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아, 나를 거둬다오 국외 여행기

[국외 여행기] 남태평양 때묻지 않은 섬 피지

 

 

00900000012004031801446155.jpg곱슬머리에 검게 빛나는 피부. 두툼한 입술이 열리며 빠르고 강렬한 리듬이 터져나온다. 쪽빛 바다를 가르는 범선 뱃머리가 따가운 햇살로 하얗게 달아오를 무렵, 원주민 승무원들은 음악과 함께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통기타는 부서질 듯하고,줄기차게 퍼부어지는 전통음악 리듬 속에 40인승 범선은 원색의 폭발을 일으키며 출렁인다. 초록빛 섬들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검고 희고 노란 피부의 이방인들이 한데 어울려 절묘한 배색의 축제가 완성된다. 영국 노부부도, 일본 신혼부부도, 캐나다 처녀들도, 한국 청년들도 현란한 선율이 되어 남태평양의 한 섬으로 흘러간다.

 

피지 여행은 통기타 연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거리의 야자나무 밑에서, 전통가옥인 부레에서, 차 안에서, 뱃전에서 어디든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흰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 낙천적인 모습. 눈빛이 마주치면 크고 부드러운 손을 들어 “불라!(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온다. 먼 옛날 식인 풍습이 있던 섬나라라는 인식은 한 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진다.

 

피지는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섬무리에 속하는 독립국가다. 날짜변경선 서쪽에 바짝 붙은, 33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나라다. 피지·하와이·통가 원주민,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폴리네시안들이다. 우리처럼 어린아이 몸에 몽고반점이 나타나는 몽골족의 후예다. 피지 사람들은 제주도의 2.5배 크기인 본섬 비티레브와 바누아레브 섬 등 150여개의 크고 작은 섬에 흩어져 산다.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과 눈부신 산호 백사장으로 둘러싸인 유·무인도의 대부분이 아름다운 관광휴양지다.

 

국제공항이 있는 비티레브 섬 난디의 데나라우 선착장에서 유람선으로 1시간20분(경비행기로 13분) 거리에 마마누다제도에 속한 마나 섬이 있다. 길이 3㎞ 가량에 폭 300~500m인 섬 전체가 하나의 휴양 리조트를 이루고 있는 깨끗한 휴양지다. 울창한 숲과 산호로 덮인 바닷가에서 문명세계와 선을 긋고 몸과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곳이다.

 

야자나무 숲 사이에 1~2층으로 배치된 객실은 편의시설을 다 갖추고 있으나 텔레비전은 없다. 머무는 동안 신발을 신지 않고도 바닷가와 식당, 산책로, 숙소 등을 오가며 지낼 수 있다. 대부분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일본인인 여행자들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카누·스노클링 등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날짜변경선 서쪽 330여개의 섬…에메랄드빛 바다 형형색색 산호

몽골족의 후예들 순수한 표정들…야자수 해먹 “천국이 따로 없군”

 

00900000012004031801446211.jpg‘마나’란 마술을 뜻한다. 옛날, 바다신의 명령을 받아 보물상자를 지키던 두 전사가 있었다. 이들이 항해 도중 마나 섬 부근에서 좌초해 보물상자를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이 섬을 지키던 바다뱀 신은 두 전사에게 섬에 남아 평생 보물상자를 지키게 했다. 그 뒤 마나 섬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보물상자의 힘에 의해 반드시 또다시 찾아오게 된다고 한다. 주민들은 섬 동쪽 지역을 ‘신들의 땅’으로 부르며 신성시해, 출입하지 않는다. 신들의 땅을 간혹 침범하는 이들은, 더 호젓한 곳을 찾아 스며드는 이방인들뿐이다. 마나 섬 여행의 백미는 커다란 돛을 단 범선을 타고 다른 작은 섬으로 떠나는 ‘섬 속의 섬 여행’이다. 주변에 흩어진 아담한 섬들은 하나같이 깨끗한 숲과 모래밭, 투명한 바닷물을 거느린 천혜의 휴양지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로 유명해진 몬드리키 섬을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는 여행이 가장 인기 있다.

 

마타나누나·도코리키 섬 등 아름다운 휴양섬들을 지나 야누아 섬에 도착해 전통적인 방문인사인 ‘카바(양고나) 의식’을 치른 뒤, 몬드리키 섬에 내려 환상적인 스노클링을 하고 돌아온다. 수십 미터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에서 만나는 형형색색의 산호와 열대어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승무원과 각국 관광객들이 선상 뷔페식과 맥주·포도주 등을 즐기며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범선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돌아오면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 황홀한 해넘이가 기다린다. 잠은 침대 머리맡으로 파고드는 파도소리와 함께 잔다.

 

여행 마지막 날. 아쉬움 속에 트랙터를 개조한 간이버스에 오르면 원주민들이 다시 기타를 퉁긴다. 뜻밖에도 나직하게 불러주는 노래가 귀에 익다. “웃음짓는 커다란 그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로 시작되는 노래. 70년대 윤형주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 로 번안해 불렀던 그 노래다. 피지의 전통가요 ‘이사레이’(이별의 노래)다.

 

피지/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폭포 숲길 트레킹

  
피지의 타잔놀이?

 

00900000012004031801446193.jpg피지엔 울창한 숲과 계곡도 많다. 바다 쪽 여행이 큰 줄거리가 되겠지만, 원시림을 뚫고 들어가 커다란 폭포를 만나는 내륙 여행도 경험해볼 만하다.

 

트레킹 코스는 계곡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배편으로 일정 지역까지 들어간 뒤 물길과 숲길을 헤치고 폭포 밑까지 다가가는 다소 ‘험한’ 방식과 처음부터 숲길과 냇물을 건너며 산림욕을 즐기는 방식으로 나뉜다.

 

비티레부 섬 남부 해안 코럴코스트 부근 빌세우 마을에서 출발하는 코스의 경우 30분 정도 걸리는 평탄한 숲길이어서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마을에서 먼저 카바 의식을 치른 뒤 출발한다. 원시림 사이로 뚫린 아름다운 숲길을 걷다 보면 약간의 더위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아름드리 고목들과 너댓번 만나는 물길, 야생화 깔린 숲길이 운치 있다. 건드리면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들도 지천이다. 신발은 아예 벗어들고 가는 이들이 많다. 흙길을 맨발로 딛는 느낌이 좋다.

 

숲길의 끝에 높이 40m짜리 사우브나 마텔라야 폭포와 커다란 물웅덩이가 기다린다. 너도 나도 웃통을 벗어던지고 물로 뛰어들어 더위를 식힌 뒤 맛보는 열대과일이 꿀맛이다. 폭포 앞에서의 30분 휴식까지 포함해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피지의 주요 풍습>


피지는 식인도였다

 

전통 신고식 ‘카바 의식’=피지에선 어느 마을에 가든지 방문자들이 필수적으로 ‘카바 의식’을 치러야 한다. 마을의 추장이 진행하는 입촌 허가 의식으로, ‘카바(양고나)’라 불리는 전통음료(일종의 고추나무 뿌리를 말려 빻은 가루를 물에 타서 만든다)를 방문자와 주민들이 코코넛 껍질 잔으로 돌려가며 마신다. 옛부터 대가족촌을 형성하며 이뤄진 마을간의 전통 의식에서 나왔다.

 

방문객을 친구로 맞아들인다는 환영 행사다. 나무뿌리 가루가 든 자루를 주물러 물에 풀면 뜨물빛 액체가 되는데, 이를 카바 또는 양고나라 부른다. 마취 성분이 있어 마시면 혀가 얼얼해진다. 피지인들은 하루 일을 끝낸 뒤 주민끼리 양고나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방문자는 진행자가 권하는 잔을 받고 ‘불라(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면서 손뼉을 한번 치고, 잔을 비운 뒤 돌려주고 나서 다시 손뼉을 세번 치며 ‘비나카(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참가자가 모자·선글라스를 쓰거나, 상대방의 머리를 만지면 결례가 된다. 150년 전에 끊긴 ‘식인 풍습’=피지에선 1800년대 중반까지 식인 풍습이 남아 있었다. 마을간 전쟁 뒤 이긴 추장이 상대 추장의 시신을 먹으면 그 영혼까지 취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 풍습이다. 강자의 영혼을 빼앗는 방법으로 식인 풍습이 퍼져 있다가 1850년대 유럽 선교사들의 기독교 전파로 사라졌다. 1987년 한 주민이 인육을 먹었다 하여 떠들썩한 일도 있었다. 지금 주민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도로 매우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불에 달군 돌 위 걷기=수백개의 돌을 깔아놓고 나무로 불을 피워 달군 뒤 그 위를 맨발로 걷는 풍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투이라는 전사가 자신이 살려준 뱀장어한테서 얻은 신통력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지금도 행사 진행은 투이의 후손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피지에서도 일부 남자들만이 발바닥을 태우지 않고 돌 위를 걸을 수 있다. 의식 전 2주 동안은 몸을 깨끗이 하고 코코넛도 먹지 않는다.

 

 2004년 3월 1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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