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증에 야단법석 해 볼만하십니까 제철여행

2004년 12월17일자 기사


진도군 조도의 호젓한 해돋이·해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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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 무렵, 사람들은 다시 지는 해와 뜨는 해를 생각한다. 지는 해와 함께 한해를 되돌아보고, 뜨는 해를 보며 새 각오를 다지고 싶어한다. 해넘이·해돋이 여행은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하는 매력을 지닌 여행 주제다. 하지만 실상 그 여행의 대부분은 허탈하고 피곤하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세밑에 몇몇 지역으로 여행객이 몰리면서 생기는 교통체증 때문이다. 전망 좋은 바닷가나 이름난 산들은 대개 관광객들로 덮여 홍역을 치른다.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차 안에서 밤을 지새다 길에서 해돋이를 맞는 이들이 많다.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는 데 특정한 장소와 날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탁트인 섬 꼭대기 섬무리 한눈에
 
굳이 해넘이·해돋이 여행을 떠나겠다면 연말을 피하고, 구름이 덜 낀 평일을 골라,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게 좋다. 일단 외지고 높은 곳이 유리하다. 탁 트인 전망과 매섭게 파고드는 바람이 각오를 더 새롭게 해줄 터다.
 
세찬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수많은 섬떼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남도의 섬 꼭대기로 간다. 진도군 조도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비교적 찾는 이가 드문 섬이다. 도리깨질한 타작마당에 콩 깔린 듯한 다도해의 섬무리가 기다린다. 섬의 정상에 서서 그 섬들을, 360도 눈 돌리고 몸 돌리며 바라보는 맛은, 돌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154개의 유·무인도가 빽빽한 섬의 숲을 이루고 있는 곳, 새떼가 모여 앉은 것처럼 섬이 많다 해서 조도(새섬)라는 이름을 얻었다. 섬을 비집고 떠올라 섬 사이로 떨어지는 해돋이, 해넘이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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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 군도는 중심 섬인 상조도와 하조도(면소재지)를 비롯한 35개의 유인도와 119개의 무인도로 이뤄졌다. 이 섬들은 가사군도·성남군도·독거군도·거차군도·맹골군도·상도군도 등 이른바 ‘조도 6군도’로 나뉜다. 4000명이 채 안되는 주민이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대파·배추 등을 재배하며 산다. 하지만 조기·꽃게잡이가 성업을 이루던 20여년 전엔 진도군 전체 인구의 절반인 2만여명이 각 섬에 흩어져 살던, 남해안 어업과 해산물 유통의 중심지였다. 당시 서남해안의 웬만한 포구에선 어선이 출발할 때 “조도가리!”(조도 갈 이)를 외치며 배 탈 사람을 모으는 소리를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관매도 등 일부 섬만이 피서철 관광객을 불러모을 뿐이다.
 
그러나 가슴까지 통쾌해지는 상·하조도의 산꼭대기에 올라, 전후좌우 사통팔달의 풍광을 휘둘러본 이들이 그 감동을 전하면서 다시 ‘조도가리’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조도 주변의 100여개 섬무리를 감상하기 좋은 곳은 상조도의 도리산 돈대봉(210m)과 하조도 돈대산 정상(230m)이다. 돈대란 높은 언덕에 옹벽을 쌓은 곳이나, 성벽을 쌓아 적의 침입 등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던 곳을 말한다. 흔히 이곳에서 봉화를 올려 다른 지역으로 위험을 전하는 구실을 했다.
 
상조도 도리산 돈대봉 정상엔 케이티 중계소가 있고 그 앞에 통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있다.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섬떼의 이합집산을 여기서 목격하게 된다. 멀리 가까이로, 크고 작은 섬들이 몸을 섞으며 흩어지며, 아수라장을 이루는 장면이 펼쳐진다. 특히 중계소 건물 옥상에 서서 섬무리를 따라 360도 돌며 바라보는 기분이 상쾌한데, 물론 허가를 얻어 올라가는 게 좋다. 진도 본섬을 비롯해, 조도대교와 나배도·관매도·거차도·병풍도·맹골도와 멀리 목포·신안의 섬무리까지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관매도 너머로 제주도 한라산까지 눈에 잡힌다고 한다. 하조도 능선 위에서 떠오른 해가 조도대교를 비추며 점점이 흩어진 섬마을을 깨우는 모습이나, 맹골도 쪽으로 잦아들며 금물살·은물살을 조직해내는 해넘이는 참 아름다워 혼자 봐도 쓸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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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해넘이 하루에 모두 보다
 
하조도 돈대산에서의 전망 감상엔 20~30분 산길을 오르는 재미가 곁들여진다. 유토마을 보건소를 지나 국궁장에 차를 대고 소나무·정금나무 우거진 산길을 오른다. 쟁반으로 뚜껑을 해얹은 약수터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능선에 오르면 왼쪽으로 치솟은 바위무리가 보이고, 창유리(창리와 유토마을) 마을의 집들과 일제 때 막았다는 창리저수지, 그리고 조도 최고봉 신금산(234m)이 푸른 바다를 배경에 두고 또렷이 다가온다. 오른쪽 가시밭길을 올라 정상에 서면 역시 막히는 게 없는, 사방이 트인 전망대다. 발밑 나래마을 포구의 배들이 정겹다. 전망은 좋으나 전망대가 따로 설치돼 있지 않다. 해는 조랑말을 길렀다는 대마도와 거차군도, 맹골군도가 겹치는 쪽으로 떨어진다. 숲길이 다소 거칠어 해넘이보다는 새벽 산행을 곁들인 해돋이 감상 코스로 알맞다.
 
새벽 산행뒤 가슴 후련한 감동
 
상·하조도는 길이 510m의 조도대교로 이어져 있어 차를 타고 오가며 두 전망대를 다 둘러볼 수 있다. 덜 때묻은 조용한 섬에서 하루 묵으며 해넘이·해돋이를 감상할 만하다. 철부선을 이용해 섬으로 승용차를 싣고 들어갈 수 있다. 버스는 한 대가 있다. 면소재지에서 출발해 각 마을로 하루 네번 정도씩 운행한다.
 
조도(진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쪽지>
 
02104048_20041215 copy.jpg■ 가는길 수도권에서 서해안 고속도로 타고 목포 나들목에서 나가 2번 국도를 따라 영암·강진 쪽으로 가다 영산호 방조제 건너 대불 산업단지 쪽으로 좌회전, 영암 방조제와 금호 방조제를 건너 화원 거쳐 18번 국도를 만나 진도로 간다. 18번 국도 따라 진도읍 지나 내려가면 팽목항에 이른다. 팽목항에선 조도 어류포행 조도고속훼리, 신해고속페리가 하루 여섯편 운항한다. 이 중 두편은 관매도까지 간다. 조도까지 편도 3000원, 승용차 운반비 1만4000원(운전자 포함).

■ 먹을거리 조도에 생선회 등 해산물을 내는 식당 10여곳이 있다. 하조도 유토마을 주야식당(061-542-5132)은 20년째 제철 생선회를 내는 집. 돔·우럭 등 회와 매운탕, 맛깔스런 기본반찬들을 먹을 수 있다.

■ 묵을곳 조도에 여관 2곳, 민박집 30여곳이 있다. 시설에 따라 1만5000~2만5000원. 조도면사무소 (061)540-3567. 조도인포(www.jodo.info) 운영자이자 조도 지킴이 오명삼(30)씨에게 연락하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016-665-6610. 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40-3125.


 
800살 후박나무, 빽빽한 노송들
관매도의 겨울 ‘색다른 그림’ 
 
01020285_P_0 copy.jpg하조도에서 남쪽으로 7㎞ 거리에 피서지로 꽤 알려진 관매도가 있다. 관매·관호·장산평 세 마을에 500여명의 주민이 톳과 미역을 채취하며 사는 섬이다. 본디 이름은 ‘새가 먹이를 물고 잠시 쉬어간다’는 뜻의 볼매도인데, 일제 때 바꿨다고 한다. 조도면에 있는 세 해수욕장 중 가장 넓고 깨끗한 해수욕장이 여기 있다.
 
여름철이 아니어도 둘러볼 만한 곳으로, 800년 전 방풍림으로 조성했다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다. 해수욕장 뒤 3만여평 터에 100~200년 된 노송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다. 풍란 보호지역이기도 하다.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관매초등학교와 조도중학교 관매분교가 그림같이 다가온다. 숲가에 서 있는 800년 묵은 후박나무(천연기념물)가 숲의 역사를 알려준다. 해마다 정월초 주민들은 후박나무 앞에서 당제를 지낸다.
 
관매도의 기암절벽도 볼만하다. 선녀가 방아를 찧었다는 방아섬(남근바위), 할미도깨비가 살았다는 할미중드랭이굴, 칼로 자른 듯 깊게 파인 절벽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던 하늘다리(사진) 등 관매8경이 있다. 남근을 닮은 바위가 우뚝 서 있는 관매도 방아섬을 마주보며 멀리 하조도 신전리 앞엔 여자 성기를 닮았다는 음부도가 있다. 두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서로 바람이 날까 우려해 혼인을 꺼린다고 한다.
 
식당·민박을 겸하는 집이 7~8곳 있다. 진도 팽목항에서 하조도 어류포 거쳐 관매도를 오가는 배편이 하루 2번 있다.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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