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넘보지 말라” 온달의 호령 쩌렁쩌렁 제철여행

[제철여행] 역사와 만나는 단양 온달산성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이야기

남한강 끼고 성곽따라 오롯이

고구려의 혼이 북녘에만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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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위태롭다. 중국의 역사 왜곡 앞에서,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스민 크고 작은 유적들은 더욱 소중해진다. 고구려인의 혼은 만주나 북녘땅에만 서려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이 산성이나 보루(소규모 진지) 등 전투의 흔적들이지만, 충주 중원고구려비와 같은 뚜렷한 족적이 남녘에도 남아 있다. 장수왕 때 세운 중원고구려비는 현재 비각 수리 중이어서 10월 이후에나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고구려의 맹장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단양 온달산성을 찾아간다. 온달도 온달이지만 산성 풍치가 아름답고 주변 볼거리도 많다.


온달산성은 단양군 영춘면 하리와 백자리 사이 성산(영춘의 진산)의 해발 385~554m 지점에 있는 석성이다. 바깥벽 둘레 682m(내벽 532m), 평균 높이 3m 가량의 작은 산성이지만, 굽이치는 남한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 전망이 좋고 성 자체의 모습도 아름다워 탐방객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신라군을 격퇴하려고 온달 장군이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온달관광지로 들어가면 온달관 지나 왼쪽에 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들머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은 성황당인데, 수백년 전부터 이 자리에 전해온다고 한다. 10여분 땀을 빼면 온달 장군을 기리기 위해 최근 세운 정자 사모정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10여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우아하게 솟아오른 산성의 북동쪽 모서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으로 돌아 동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작은 평지가 나오는데 이 부근이 산성 안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다.


성은 산 정상인 남서쪽에서 가파르게 북동쪽을 향해 흘러내린 모습으로 전체 모양은 반달형에 가깝다. 동·북·남쪽에 3개의 문터가 있다. 달맞이꽃·개망초꽃이 무성한 평지 위쪽으론 소나무·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40여년 전까지 성 안엔 두어필지의 밭과 우물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산성에 자주 가서 놀았다는 영춘면 하리 주민 허호(53)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물에 송아지가 빠져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얼마 안돼서 우물을 메워버렸다”고 전했다. 그 뒤 경작을 막기 위해 성 안에 소나무·전나무들을 심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1530년)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산성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성은 반쯤 파손됐고, 안에 우물 한 곳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우물은 성을 쌓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에선 기와조각·숫돌·화살촉 등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오기도 했다.


산성 전경을 살펴보려면 성곽을 타고 남문 쪽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남문 부근에서 내려다보면 동문 쪽으로 날아갈 듯 둥글게 솟아올랐다가 북문까지 이어지는 성곽의 곡선미가 압권이다. 멀리 남한강 줄기와 어울려 빼어난 경치를 그려 보인다.


남문에서 북문 쪽으로 돌아 내려가는, 복원되지 않은 성곽 주변은 잡초가 무성하다. 낭떠러지에 가깝게 가파른 성곽 서쪽은 적을 공격하기 쉽도록 석축 끝을 돌출시켜 쌓았다. 무너지고 흩어진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우거진 수풀로 발길이 더뎌진다. 하지만 달맞이꽃과 마타리, 개망초꽃, 그리고 꿀 향기를 품은 칡꽃 따위가 와글와글 피어난 꽃길이어서 오히려 발길을 멈추게 되는 길이다. 내려오면 현재 복원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북문(9월 초 완공 예정)이 나온다. 북문과 동문 사이 성벽 아래쪽엔 배수구 또는 관측용 창구로 추정되는 구멍을 찾아볼 수 있다. 성을 한바퀴 도는 데 20여분.


산성 답사에 앞서 온달관광지에 있는 온달관에 들러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 이야기나, 고구려인의 생활과 문화를 먼저 이해해 두면 유익하다. 온달전시관, 고분관, 인물관, 문화체험관, 정보관으로 나뉜 전시관에서 고구려의 역사와 인물, 생활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온달관광지엔 4억5000만년 전에 생겼다는 석회암굴인 온달동굴이 있다. 본디 남굴로 불렸으나 온달산성 아래 있어 온달동굴이 됐다. 길이 800m의 수평동굴로, 종유석·석순 등이 볼 만하다. 온달관광지 (043)423-8820.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043)420-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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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북단양나들목을 나와 단양으로 간다. 영춘 온달관광지는 단양읍에서 고수대교 건너 좌회전해 59번 국도 따라 직진, 군간교 건너 우회전, 영춘교 건너 좌회전하면 된다.

 

먹을 거리 : 단양은 마늘의 고장. 단양읍 고수대교 앞 터미널 건너편 골목에 마늘솥밥으로 이름난 장다리식당(043-423-3960)이 있다. 잡곡밥에 마늘과 은행 등을 넣어 즉석에서 지어주는 온달장군 마늘솥밥이 1만~2만원. 2만원짜리엔 쇠고기육회와 송이버섯탕이 보태진다. 영춘면 오사리 강변의 사슴나라(043-423-2266)의 곤드레나물밥(7000원)과 각종 한약재를 넣어 삶은 돼지고기한방편육(2인분 1만2000원)도 맛있다. 올갱이해장국집으론 터미널 부근에 대교횟집(043-422-6500)·불개미식당(043-423-0313) 등이 있다.

 

묵을곳 : 단양읍에 모텔 베니스(043-421-4400) 등 여관이 많다. 단양관광호텔 (043)423-4234. 읍내 대성산 자락에 2년 전 문을 연 단양 대명콘도(043-420-8311)가 있다. 객실 847실. 노천탕·사우나와 각종 물놀이기구 등을 갖춘 사계절 야외 물놀이시설인 아쿠아월드가 있어 이용할 만하다. 평일 1만5000원, 주말 2만원.

 

단양/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온달 전사한 아차산성은 온달산성?

 

온달이 영춘의 온달산성을 쌓고 주변에서 전사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다. 서울 광진구·구리시 사이 아차산의 산성이 바로 온달이 전투를 벌인 곳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있다.


‘온달(?~590)은 고구려 평원왕과 영양왕 때 용맹을 떨쳤던 장수로 평원왕의 사위다. 후주 무제의 침입을 무찔렀던 그는 한반도 중부 이남까지 이르렀던 고구려의 옛 영토 회복을 위해 신라 공격에 나섰다.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그는 신라군과 ‘아차성’(阿且城, 또는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숨졌다.’(이상 〈삼국사기〉 권45 열전 기록 발췌정리)


단양 향토사학자 윤수경(55)씨는 “영춘의 고구려 때 이름이 을아단현(乙阿旦縣)이었고, 계립현이 충주~문경을 잇는 지금의 하늘재인 점에 비춰 아차산성이란 바로 남한강 상류의 온달산성을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영춘엔 전투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온달 장군의 다친 병사들을 치료했다는 보수원, 온달이 군사를 점검했다는 장방터, 죽은 병사를 묻었다는 웃무덤·아랫무덤 등이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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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리엔 온달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태쟁이(태장이)묘(사진)가 있다. 산기슭에다 돌을 고구려 기단식으로 쌓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몇 해 전 두차례 발굴작업이 있었으나 유물이 나오지 않아 발굴이 중단된 상태다. 윤수경씨는 “60년대만 해도 여러 층을 이룬 직각의 단이 뚜렷했는데, 네번째 단 옆엔 안으로 통하는 돌문이 있었고, 안엔 직각으로 꺾인 석실이 있었다”며 “새마을사업 등에 돌을 빼다 쓴데다, 도로 포장공사로 윤곽이 허물어졌다”고 말했다.


이 밖에 단양의 삼국시대 유적으론 단성면 하방리의 신라적성비(진흥왕), 신라·백제 유물이 발견된 적성산성,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 열반 뒤 제자들이 세웠다는 향산사 터의 향산석탑 등이 있다. 단양 영춘면사무소 (043)423-7032.


이병학 기자

 

2004년 8월 2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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