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 전설이 흐른다 제철여행

[제철여행] 산청 백운동계곡

 

용이 산다…곰이 추락사
개인땅 출입지역 제한 흠

 

Untitled-10 copy.jpg큰 산은 골이 깊다. 대개 물 맑고 숲 울창한, 멋진 바위골짜기를 거느렸다. 여름이면 이름난 계곡은 피서 인파로 덮인다. 경치 좋은 골짜기를 찾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옛 사람들은 멋진 골짜기마다 이름을 붙이고 이를 바위에 새겼다. 이런 새김글 가운데 ‘동천(洞天)’이란 게 있다. 흔한 건 아니지만, 빼어난 골짜기 한쪽 바윗자락엔 ‘무슨무슨 동천’ 하는 한자가 새겨진 걸 볼 수 있다.

 

‘동천(洞天)’이란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을 가리킨다. 도교에선 신선들이 사는 곳, 이상향을 뜻한다. 중국엔 36대 동천이 있다고 한다. 우리 선인들도 수려한 골짜기를 찾아 즐기며, 그 곳을 ‘동천’이라 일컬었다. 금강산 만폭동의 바위에 새겨진 ‘봉래풍악원화동천’, 동해 무릉계곡의 ‘두타동천’, 하동 쌍계사 앞의 ‘화개동천’, 강화도 마니산의 ‘함허동천’ 따위가 그것이다. ‘~동천’이란 글씨가 새겨진 골짜기라면, 일단 볼만한 경치를 갖춘 곳으로 볼 수 있다.

지리산에 안긴 고을 산청의 웅석봉(1099m)에서 흘러내린 백운계곡도 이런 곳 중 하나다.

 

너럭바위에 앉으면 선비의 풍류에 젖는다

 

‘용문동천’ ‘백운동’이란 글씨가 골짜기 바위에 새겨져 있다. 대원사계곡·내원사계곡·중산리계곡·거림계곡 등 지리산 자락의 장대한 골짜기들의 유명세에 눌려 외지엔 덜 알려진, 훌륭한 바위골짜기다. 본디 용문천으로 불린 물줄기인데, 골짜기에 용이 산다는 용소가 있고, 부근엔 용문암산이 있다. 웅석봉은 동쪽으로 경호강, 서남쪽으로 덕천강을 낀, 지리산권 동북쪽 봉우리다. 산세가 곰을 닮았다고도 하고, 옛날 곰이 떨어져 죽은 곳이라고도 한다. 백운계곡 물줄기는 산 남쪽으로 뻗어내려, 지리산 동쪽 골짜기들의 물을 모아 내려온 덕천강으로 흘러든다.

 

규모가 웅장하지는 않으나 깨끗하고 거센 물줄기가, 구름처럼 널린 희디 흰 바윗자락을 타고 굽이쳐 쏟아지는 모습이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길고 짧고 넓고 좁은 폭포들과 깊고 얕고 짙푸르고 맑은 물웅덩이(소)들이 줄줄이 이어져, 폭포와 소의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이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 널찍널찍한 바윗자락이다. 어디에 앉아도 편안하고, 어디를 보아도 경치가 그림같이 펼쳐지는 반석들이다. 크고 작은 폭포와 소, 너럭바위들엔 옛 사람들의 풍류가 깃들여 있다. 이곳을 자주 찾아 즐긴 7명이 있었는데, 이를 백운동 7현이라 부른다.

 

이 멋진 골짜기를 말할 때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이자, 영남 사림파의 거두였던 남명 조식(1501~1572)을 빼놓을 수 없다. 합천에서 태어나 61살 때 백운계곡 부근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짓고, 생을 마칠 때까지 후학 양성에만 전념한 전형적인 선비다. 나라가 어려울 땐 상소를 올려 직언을 서슴지않던 분이다. 명종·선조 등 임금들이 그의 학덕을 평가해 거듭 불렀으나, 끝내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대자연에 묻혀 산 ‘산림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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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즐겨 찾던 곳…40여 폭포와 소

 

덕산 시절, 남명이 가장 즐겨 찾던 곳이 바로 백운계곡이다. 제자들과 함께 수려한 경치를 즐기며 풍류에 젖기도 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시름에 잠기기도 했다. 골짜기 중간쯤의 너럭바위 옆 바위에 ‘용문천’이란 글씨가 보이고, 그 뒤쪽 바위엔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구(나막신 구)之所)’란 글씨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남명이 탁족을 하며 즐길 때 지팡이와 나막신을 뒀던 곳으로, 제자들이 새긴 글씨로 추측된다.

 

골짜기 바위엔 이 곳을 즐겼던 이들이 새겨놓은 글씨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마지막 민가 지나 100여m 오르다 오른쪽 벼랑 밑을 내려다보면, 물줄기가 좁아져 급류와 폭포를 이루고 있다. 물길 오른쪽 바위벽에 ‘백운계원’들의 이름이 작은 글씨로 정연하게 적혀 있다. 여기서 상류로 20여m 떨어진 곳엔 ‘영남제일천석’이란 글씨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이 주변을 등천대라 부른다.

 
기록에 따르면 각각 20여개에 이르는 폭포와 소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목욕을 하면 자연히 많이 알게 된다는 다지소(多知沼)를 비롯해, 청의소·아함소·장군소, 오담폭포·수왕성폭포·15담폭포·칠성폭포 등이 있다 하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아 일일이 확인해 보기는 어렵다. 골짜기 주변엔 바위구멍에서 쌀이 나왔다는 화장암, 한림사·용문암·백운암 등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백운동계곡은 개인땅이어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지역이 제한돼 있다. 골짜기 안의 마을인 점촌에서 비포장 수레길을 오르면, 백운농원 입구 지나서 오솔길로 바뀌고 곧 굳게 닫힌 낮은 철문이 나타난다. 여기까지 1㎞ 남짓의 짤막한 바위골짜기만 즐길 수 있으나, 이 사이에도 볼만한 경치들이 수두룩하다. 중간 일부 물길은 벼랑 밑에 있어 다가가기가 위험하다. 길 옆 두세 곳에 간이의자들과 간이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화장실 옆 등은 쌓인 쓰레기더미를 치우지 않아 지저분하다. 차가 들어갈 수 있으나, 길이 험해 사륜구동형 차라야 안전하다.

 



삼국때 창건한 대원사 아늑한 풍경소리

 

주변 볼거리 즐길거리

   
02568435_20050714.jpg남명 기념관

 

시천면 사리엔 남명기념관과 남명이 후학을 가르쳤던 산천재가 있다. 남명 조식의 일생과 그가 읽던 전적과 편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시천면 원리엔 후학들이 남명을 기려 세운 덕천서원이 있다.

 

대원사

 

삼장면 유평리, 지리산 동북쪽 자락의 수려한 골짜기 안에 자리잡은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548년 연기조사가 화엄사·법계사 등과 함께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깊은 소들이 이어진 물길을 따라 차로 오르면 왼쪽 언덕으로 아늑한 절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장율사가 세운 다층석탑(보물 1112호)이 있는데, 철분이 많이 든 돌을 써서 전체 빛깔이 붉은 것이 특징이다. 다층석탑이라 얼버무린 것은 실제론 8층이지만, 홀수 층으로 세우는 관례상 9층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여·순사태로 폐허가 된 절을 55년 다시 세웠다. 골의 들머리 왼쪽엔 육이오 때 불탔다는 삼장사터의 3층 석탑이 논 가운데 있다. 차로 골짜기 끝마을인 새재까지 오를 수 있다.

 

내원사

 

마지막 빨치산으로 불리는 정순덕이 붙잡힌 내원골과 장당골이 만나는 지점 언덕에 선 천년 고찰이다. 17세기초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논밭으로 바뀐 터를 1959년 한 스님이 사들여 다시 절을 세웠다. 3층 석탑과 장당골 석남암터에서 옮겨온 비로자나불이 보물이다. 내원골과는 달리 장당골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아름다운 골짜기지만, 생태계 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단속사터

 

백운계곡 오른쪽, 역시 웅석봉에서 발원한 골짜기인 청계계곡 중간 마을에 있는 신라 때의 절터다. 3층 석탑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이곳에 있는 630여년 된 정당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로 알려진다.

 

목면시배유지

 

단성면 사월리, 고속도로 단성나들목에서 3분 거리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면화를 재배한 곳임을 알려주는 기념관이 있다. 목화밭과 면화의 역사, 물레·베틀 등 길쌈도구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밖에 남사예담촌(고가마을), 성철 스님의 생가와 겁외사, 가야 마지막 왕의 능이라는 구형왕릉 등에도 들러볼 만하다.

 

철도공사 웰빙여행

 

한국철도공사는 비타민여행사와 고속철도를 이용한 ‘산청 웰빙여행’ 일정을 마련했다. 서울역에서 고속철도로 대전에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산청으로 간다. 관광지를 둘러보며 홍화꽃을 재료로 한 홍화비빔밥·홍화칼국수, 한방백숙·육회비빔밥 등 별미를 즐기고, 한방 진맥을 받고, 지리산 계곡에서 탁족을 한 뒤 참숯찜질방에서 피로를 푸는 1박2일의 건강 테마 여정이다. 주중 17만4000원. (02)736-9111.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정보

 

02568442_20050714.jpg수도권에서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 대전 지나 대전~진주(통영)고속도로로 바꿔탄 뒤 산청나들목 지나 단성나들목에서 나간다. 20번 국도를 타고 시천·중산리 쪽으로 7~8㎞ 가다가 청계계곡 지나 용문사·백운산장·약수암 등 팻말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곧 상수리나무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왼쪽 길을 택해 약 2.5㎞ 오르면 점촌 지나 골짜기 마지막 집이다. 차는 음식점들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 오르는 게 좋다. 단성면 소재지 단성농협 앞의 목화식당(055-973-8800)은 맑게 끓여내는 추어탕으로 이름 높다. 소 숯불구이도 한다. 단성면 길리엔 두 곳의 참숯가마가 있어, 참숯을 구워낸 뒤 찜질을 할 수 있다. 목욕탕·식당도 갖췄다. 길리 청정 참숯굴찜질방의 식당(055-973-3686)에선 삽겹살·오리고기, 국수류·백반을 맛깔스럽게 낸다. 백운계곡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중산리계곡의 지리산계곡모텔(055-972-1441)은 폭포와 깊은 소를 끼고 있는 전망 좋은 숙소다. 직접 재배한 채소류로 내는 반찬과 시래기·우거짓국이 맛있다. 산청군청 문화관광과(055-970-6421)에 문의하면 고가 마을 숙박 등 숙식 안내와 무료 문화유산해설사를 소개받을 수 있다.
 

 

2005년 7월 14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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