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뻘건 욕 푹 고아 “조질나게 처먹어” 우리땅 이맛
2008.07.14 11:58 너브내 Edit
[우리땅 이맛] 순천 욕쟁이 할머니집 짱뚱어탕
옷도 머리도 온통 ‘빨갱이’ “맛은 무신 개뿔이나”
철없이 대들었다간 ‘관객모독’으로 뼈도 못 추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지만, 식당 일만큼 고된 일도 드물 것이다. 고된 만큼 열심히 하면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게 되는 것 또한 식당 관련 일이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게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먹는 장사가 남는 장사’라는 불멸의 구호를 곱씹으며, 밥집을 차리고 고깃집을 열고 통닭집을 신장개업한다. 하지만 희망차게 시작한 이런 가게들이 대개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은 `먹는 장사’란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방증해 준다. 여간 `물 좋은‘ 목이 아니라면 몇 달에 한번씩 간판이 바뀌는 게 예사다. 돈 많은 이들이야 먹는 장사를 하든 싸는 장사를 하든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을 터이다. 대물림되는 가난을 떨치고, 어떻게든 적게 먹고 길게 싸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서민들로선 한 번 실패가 곧 인생 좌절로 이어질 수 있다.
먹는 건 남는 거지만 ‘먹는 장사’는 남기 어려운 법
먹는 장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집’이니 `욕보 할매집’이니 하는 밥집들이다. 이런 집들은 대개 종업원도 두지 않고 한 자리에서 여러 해째 같은 상차림의 식당을 해오는 할머니들인 경우가 많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뜨고, 자식들은 어리거나 객지로 떠났으며, 재산은 없고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밥하는 일밖에 없다. 이래서 어렵사리 코딱지 만한 식당을 차리게 되지만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식재료 준비하랴 밥하고 반찬 마련
하랴 청소하고 설거지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게 된다.
이 치 저 치 찝적대고 깔보고…그래서 붙은 욕이 돈이 될 줄이야
그 뿐인가. 찝적거리고 껄떡대며, 욕하고 깔보고……. 젊은 치 술주정, 늙은 치들 싸움질에 술상 뒤집어엎기까지 온갖 수모를 겪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거친 삶이 다년간 이어지고 다져지고 뭉쳐진다면 이런 욕지거리가 저절로 튀어나오지 않겠는가.
“예라 이 썩을놈들. 다 나가 뒈져불어야. 느그들헌테 밥 안 팔텡게. 밥집 때려치고 문 닫아불 것이여.”
굳이 손님들 중 누구를 지칭한 것은 물론 아니고, “드럽고 지랄겉은”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화풀이다.
요즘엔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입에 상소리가 밴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코딱지만한 식당들이 뜨고 있다. 기왕이면 밥도 먹고 욕지거리까지 얻어먹겠다는 `꿩 먹고 알 먹고’의 심보로 전국에서 먹자꾼들이 몰려드니 가난에 찌들었던 욕쟁이 할머니들도 이제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 새옹지마란 이런 걸까.
별난 행색하게 된 ‘믿거나 말거나’ 사연
서론이 길어졌지만, 순천 동백식당의 짱뚱어탕 맛도 결국 욕을 곁들여야 한결 걸쭉한 맛이 살아난다는 말씀이다.
순천 별량면 사무소 앞의 동백식당은 욕쟁이 할머니 이점남(73)씨가 짱뚱어와 욕지거리로 수십년을 우려먹고 있는 식당이다.
“뭐시라고라. 짱떼이 맛이 무신 개뿔이나 맛있기는. 좃도 모르는 작것들이 맛 타령이지.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단 낫긋제. 조질나게 처먹어보랑게.”
못생겨도 맛은 좋은 짱뚱어 얘기도 흥미롭지만, 더욱 흥미진진한 게 이 별난 할머니의 행색이다. 옷은 늘 새빨간 색으로 골라 입는다. 양말도 빨갛고 속옷도 빨갛다. 머리카락도 빨갛게 물들여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식당의 내실을 들여다 보라. 가방도 지갑도 우산도 모자도 모조리 빨간색이다. 한켠엔 빨간 매니큐어, 빨간 염색약, 빨간 립스틱 따위가 쌓여 있다. 식당 간판도 빨간색이고 글씨도 빨간데, 이 할머니가 끓여내는 짱뚱어탕도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 벌건 빛을 띤다.
이점남씨가 `빨갱이 할머니’가 된 데는 ‘믿거나 말거나’ 류의 사연이 있다. 30년째 한 자리에서 짱뚱어탕을 끓여왔는데, 20여년 전 한 중의 방문을 받는다. 풍수깨나 본다는 이 중이 식당을 한번 쓰으윽 훑어보더니 하는 얘기가 대충 이랬다고 한다.
“이 집터는 기가 너무 세니, 이걸 눌러버리지 않으면 얼마 안가 식당은 망할 것이요. 집을 누르고 있는 귀신을 물리치려면 빨간 옷을 입으시오.”
이 말을 들은 이점남씨는 기를 쓰고 기를 키우는 한편, 빨간색으로 치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일삼아 입에 담았고, 행동도 욕설에 걸맞게 과격하고 거칠어지게 됐다고 한다.
“아 ㅇㅇ 오늘 짱뗑이탕 읍당게로, 쭈껭이나 처먹든지 말든지”
이점남 할머니가, 이 날따라 고춧가루를 너무 퍼넣어(왜냐 하면 와서 돕기로 한 딸이 이 날 오지 못하게 돼 혼자 서두르다 그만 잠깐 실수를 해서) 시뻘겋게 된 짱뚱어탕 한 솥을 거의 팔 수 없게 되자 분을 삭이지 못하는 벌건 표정으로 말했다.
“아 ㅇㅇ 오늘 짱뗑이탕 읍당게로, 왜 작꼬 짱뗑이 타령이당가. 쭈껭이(주꾸미)나 처먹든지 말든지.”
시뻘건 탕이라도 좋으니 달라고, 겨우 간청을 해서 한 그릇 시켜 사진을 찍고 입에 떠넣으니, 과연 맵기가 보통이 아니다. 마치 탕 속에 할머니의 분통과 욕설과 세상사에 대한 한풀이가 뒤엉켜 걸쭉하게 녹아든 듯하다(물론 이 날만 실수를 해서 그렇다).
조심할 것은 할머니의 욕설에 ‘철없이’ 맞대거리를 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욕에 관한 한 이 할머니의 내공은 손님들보다 한 수 위다. 함부로 내뱉지 않되 적절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거침없이, 앞뒤 가리지 않고 욕지거리를 씹어던진다. 이 때 반주 한 잔 마신 김에 같이 욕하며 대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상황을 맞게 된다. 할머니가 아니라 손님들이 가만 안둔다. ‘관객 모독’의 진수를 즐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에이, 저 철없는 양반 때문에 할매 욕맛 떨어져 삐네. 고만 하소 마, 전라도 욕지거리 함 지대로 먹을라꼬 대구서 여까지 왔구마. ”
“저 작것들이 저렇게 처먹어 대닝꼐로 나도 먹고 살지라”
밥 푸고 탕 끓이고 음식 나르면서도 할머니 입에서는 끊임없이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니기미 사진만 박지 말고 싸게싸게 처먹어부러. 다 식어불면 좃도 맛 읍당게로.” 집터를 누르고 있던 귀신도 욕설에 기가 질려 달아났는지, 이점남 할머니의 짱뚱어 장사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기를 눌러버링게 그런가, 오만 데서 오만 놈들이 다 와부러야. 저 작것들이 저렇게 처먹어대닝께로 나도 먹고 살지라. 희희희.”
기가 센 할머니는 동백식당을 하며 4남1녀를 길렀다. 막내인 딸이 식당일을 돕는다.
글 사진/ 한겨레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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