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뻘건 욕 푹 고아 “조질나게 처먹어” 우리땅 이맛

[우리땅 이맛] 순천 욕쟁이 할머니집 짱뚱어탕

 

옷도 머리도 온통 ‘빨갱이’ “맛은 무신 개뿔이나”
철없이 대들었다간 ‘관객모독’으로 뼈도 못 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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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지만, 식당 일만큼 고된 일도 드물 것이다. 고된 만큼 열심히 하면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게 되는 것 또한 식당 관련 일이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게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먹는 장사가 남는 장사’라는 불멸의 구호를 곱씹으며, 밥집을 차리고 고깃집을 열고 통닭집을 신장개업한다. 하지만 희망차게 시작한 이런 가게들이 대개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은 `먹는 장사’란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방증해 준다. 여간 `물 좋은‘ 목이 아니라면 몇 달에 한번씩 간판이 바뀌는 게 예사다. 돈 많은 이들이야 먹는 장사를 하든 싸는 장사를 하든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을 터이다. 대물림되는 가난을 떨치고, 어떻게든 적게 먹고 길게 싸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서민들로선 한 번 실패가 곧 인생 좌절로 이어질 수 있다.

 

먹는 건 남는 거지만 ‘먹는 장사’는 남기 어려운 법

 

 먹는 장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집’이니 `욕보 할매집’이니 하는 밥집들이다. 이런 집들은 대개 종업원도 두지 않고 한 자리에서 여러 해째 같은 상차림의 식당을 해오는 할머니들인 경우가 많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뜨고, 자식들은 어리거나 객지로 떠났으며, 재산은 없고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밥하는 일밖에 없다. 이래서 어렵사리 코딱지 만한 식당을 차리게 되지만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식재료 준비하랴 밥하고 반찬 마련

하랴 청소하고 설거지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게 된다.

 

이 치 저 치 찝적대고 깔보고…그래서 붙은 욕이 돈이 될 줄이야

 

그 뿐인가. 찝적거리고 껄떡대며, 욕하고 깔보고……. 젊은 치 술주정, 늙은 치들 싸움질에 술상 뒤집어엎기까지 온갖 수모를 겪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거친 삶이 다년간 이어지고 다져지고 뭉쳐진다면 이런 욕지거리가 저절로 튀어나오지 않겠는가.

 

“예라 이 썩을놈들. 다 나가 뒈져불어야. 느그들헌테 밥 안 팔텡게. 밥집 때려치고 문 닫아불 것이여.”

 

굳이 손님들 중 누구를 지칭한 것은 물론 아니고, “드럽고 지랄겉은”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화풀이다.

 

요즘엔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입에 상소리가 밴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코딱지만한 식당들이 뜨고 있다. 기왕이면 밥도 먹고 욕지거리까지 얻어먹겠다는 `꿩 먹고 알 먹고’의 심보로 전국에서 먹자꾼들이 몰려드니 가난에 찌들었던 욕쟁이 할머니들도 이제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 새옹지마란 이런 걸까.


별난 행색하게 된 ‘믿거나 말거나’ 사연

 

Untitled-15 copy.jpg서론이 길어졌지만, 순천 동백식당의 짱뚱어탕 맛도 결국 욕을 곁들여야 한결 걸쭉한 맛이 살아난다는 말씀이다.

 

순천 별량면 사무소 앞의 동백식당은 욕쟁이 할머니 이점남(73)씨가 짱뚱어와 욕지거리로 수십년을 우려먹고 있는 식당이다.

 

“뭐시라고라. 짱떼이 맛이 무신 개뿔이나 맛있기는. 좃도 모르는 작것들이 맛 타령이지.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단 낫긋제. 조질나게 처먹어보랑게.”

 

못생겨도 맛은 좋은 짱뚱어 얘기도 흥미롭지만, 더욱 흥미진진한 게 이 별난 할머니의 행색이다. 옷은 늘 새빨간 색으로 골라 입는다. 양말도 빨갛고 속옷도 빨갛다. 머리카락도 빨갛게 물들여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식당의 내실을 들여다 보라. 가방도 지갑도 우산도 모자도 모조리 빨간색이다. 한켠엔 빨간 매니큐어, 빨간 염색약, 빨간 립스틱 따위가 쌓여 있다. 식당 간판도 빨간색이고 글씨도 빨간데, 이 할머니가 끓여내는 짱뚱어탕도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 벌건 빛을 띤다.

 

이점남씨가 `빨갱이 할머니’가 된 데는 ‘믿거나 말거나’ 류의 사연이 있다. 30년째 한 자리에서 짱뚱어탕을 끓여왔는데, 20여년 전 한 중의 방문을 받는다. 풍수깨나 본다는 이 중이 식당을 한번 쓰으윽 훑어보더니 하는 얘기가 대충 이랬다고 한다.

 

“이 집터는 기가 너무 세니, 이걸 눌러버리지 않으면 얼마 안가 식당은 망할 것이요. 집을 누르고 있는 귀신을 물리치려면 빨간 옷을 입으시오.”

 

이 말을 들은 이점남씨는 기를 쓰고 기를 키우는 한편, 빨간색으로 치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일삼아 입에 담았고, 행동도 욕설에 걸맞게 과격하고 거칠어지게 됐다고 한다.

 

“아 ㅇㅇ 오늘 짱뗑이탕 읍당게로, 쭈껭이나 처먹든지 말든지

 

이점남 할머니가, 이 날따라 고춧가루를 너무 퍼넣어(왜냐 하면 와서 돕기로 한 딸이 이 날 오지 못하게 돼 혼자 서두르다 그만 잠깐 실수를 해서) 시뻘겋게 된 짱뚱어탕 한 솥을 거의 팔 수 없게 되자 분을 삭이지 못하는 벌건 표정으로 말했다.

 

“아 ㅇㅇ 오늘 짱뗑이탕 읍당게로, 왜 작꼬 짱뗑이 타령이당가. 쭈껭이(주꾸미)나 처먹든지 말든지.”

 

시뻘건 탕이라도 좋으니 달라고, 겨우 간청을 해서 한 그릇 시켜 사진을 찍고 입에 떠넣으니, 과연 맵기가 보통이 아니다. 마치 탕 속에 할머니의 분통과 욕설과 세상사에 대한 한풀이가 뒤엉켜 걸쭉하게 녹아든 듯하다(물론 이 날만 실수를 해서 그렇다).

 

조심할 것은 할머니의 욕설에 ‘철없이’ 맞대거리를 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욕에 관한 한 이 할머니의 내공은 손님들보다 한 수 위다. 함부로 내뱉지 않되 적절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거침없이, 앞뒤 가리지 않고 욕지거리를 씹어던진다. 이 때 반주 한 잔 마신 김에 같이 욕하며 대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상황을 맞게 된다. 할머니가 아니라 손님들이 가만 안둔다. ‘관객 모독’의 진수를 즐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에이, 저 철없는 양반 때문에 할매 욕맛 떨어져 삐네. 고만 하소 마, 전라도 욕지거리 함 지대로 먹을라꼬 대구서 여까지 왔구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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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것들이 저렇게 처먹어 대닝꼐로 나도 먹고 살지라”

 

밥 푸고 탕 끓이고 음식 나르면서도 할머니 입에서는 끊임없이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니기미 사진만 박지 말고 싸게싸게 처먹어부러. 다 식어불면 좃도 맛 읍당게로.” 집터를 누르고 있던 귀신도 욕설에 기가 질려 달아났는지, 이점남 할머니의 짱뚱어 장사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기를 눌러버링게 그런가, 오만 데서 오만 놈들이 다 와부러야. 저 작것들이 저렇게 처먹어대닝께로 나도 먹고 살지라. 희희희.”

 

기가 센 할머니는 동백식당을 하며 4남1녀를 길렀다. 막내인 딸이 식당일을 돕는다. 

 

글 사진/ 한겨레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거무튀튀 푸르딩딩하고 눈 툭 불거져 그야말로 별종
겨울잠 자는 ‘잠둥이’에서 유래…개펄 위를 펄쩍펄쩍

 

이제 짱뚱어를 만나 보자.

 

Untitled-14 copy.jpg짱뚱어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나는 농어목 망둑어과에 속하는 바닷고기다. 망둥어와 비슷하지만 다른 물고기다. 거무튀튀하고 푸르딩딩한 몸매에 눈은 툭 불거져 나왔고 눈꺼풀은 아래서 위로 감기는 별종이다. 겨울엔 개펄 깊숙이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데, 호흡은 아가미와 폐를 함께 사용한다. 짱뚱어란 이름도 겨울잠을 자는 ‘잠둥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개펄에서의 활동기는 4~11월이다. 지느러미와 꼬리를 이용해 개펄 위를 기어다니고 펄쩍 펄쩍 뛰어오르기도 한다. 뛰어오르는 이유는 짝짓기철에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염에 민감한 환경오염 지표종…가을이 제철

 

짱뚱어잡이는 낚시로 한다. 동작이 워낙 빨라 때문에 가깝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낚시 고수들은 긴 낚싯줄로 짱뚱어들이 기어다니는 곳에 낚싯바늘을 정확히 던져 조금씩 끌어당기며 유인해 물면 채올려 잡는다. 노련한 꾼들은 하루에 200여마리도 낚아올린다고 한다. 짱뚱어는 오염에 민감한 환경오염 지표종의 하나다. 양식도 되지 않는다. 본디 영암 일대의 개펄에서 많이 잡혔으나 방조제 건설 뒤 거의 사라졌다. 여수, 순천, 보성, 강진, 해남 등 남해안 개펄에선 요즘도 많이 나오지만, 온갖 공사와 오염 등으로 개체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호남 해안지역에선 옛날부터 여름 가을철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보양식이나 해장국으로 짱뚱어탕을 많이 찾았다. 그러나 제철은 가을이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몸에 영양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주로 탕이나 전골, 구이로 요리해 먹는데, 삶은 뒤 살을 으깨 끓여내는 걸쭉한 탕 맛은 진하고 구수하다. 통째로 넣고 끓이는 전골이나 구이는 졸깃한 맛에 술안주로 많이 찾는다. 모두 살아 있는 짱뚱어로 요리해야 제맛이 난다. 짱뚱어 전문식당들은 가을까지는 살아 있는 것을 사용해 탕과 전골, 구이 요리를 내지만, 겨울엔 냉동해둔 것을 쓰므로 탕으로만 낸다. 순천을 비롯해 영암, 보성, 강진, 해남, 목포 등 남해안 일대에 짱뚱어를 내는 식당들이 있다.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삶아 발라내고 시래기 무 넣어 걸쭉하게

 

짱뚱어 요리 방법은 지역마다 식당마다 다소 다른데 이점남 할머니식 짱뚱어 요리 방법은 이렇다. 먼저 짱뚱어탕. 통째로 깨끗이 씻은 다음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삶는다. 뼈와 머리 따위를 손으로 일일이 발라내고 시래기와 무, 붉은고추를 갈아 넣어 끓인다. 간은 된장으로 한다. 걸쭉하기가 추어탕과 비슷하다.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 아주 좋다.

 

다음은 짱뚱어전골. 살아 있는 짱뚱어를 냄비에 넣고 물을 적당히 부어 끓인다. 여기에 감자, 애호박, 무, 마늘, 생고춧가루 등이 곁들여진다. 끓으면 호박잎이나 콩나물, 고구마줄기 따위를 얹어 손님상에 낸다. 시원하고 얼큰한 매운탕인데, 졸깃한 짱뚱어 육질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 빼어난 술안줏감이다.

 

이 집에서 짱뚱어전골을 맛볼 수 있는 시기는 봄부터 11월 초까지다. 10월말이면 벌써 짱뚱어 잘 잡히지 않아 산 채로 쓰는 전골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탕은 냉동해둔 것을 쓰므로 겨울에도 맛볼 수 있다. 냉동한 것마저 떨어지면 추어탕을 낸다. 주꾸미 구이도 한다.
 
◆ 욕쟁이 할머니집 동백식당
짱뚱어탕 7,000원, 짱뚱어전골 2만~3만원, 추어탕 7,000원, 주꾸미구이 1인분 1만원. (061)742-8304, 6533.

 

◆ 가는 길
중부권에서 호남고속도로 타고 가다 서순천나들목에서 나간다. 22번 국도 타고 순천시내 방향으로 가다 선평삼거리서 순천시청 쪽으로 우회전해?직진(22번 국도), 순천시내 거쳐 2번 국도와 만난다. 2번 국도 타고 보성, 벌교 쪽으로 직진, 상림삼거리에서 별량 팻말 보고 우회전해 나가 좌회전한다. 굴다리 지나 얼마 안가 별량면소재지가 나온다.?별량시장 앞 삼거리서 우회전하면 왼쪽에 동백식당이 있다.

 

◆ 가볼만한 곳

순천만 갈대밭, 용산전망대 해넘이, 선암사, 송광사, 천자암, 낙안읍성, 검단산성

 

순천만 갈대밭을 감상해볼 만하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 순천만에 드넓은 개펄과 70여만평에 이르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대대포구로 가면 장산마을 앞 개펄 체험장으로 이어지는 방조제를 따라 개펄과 갈대밭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순천만 전체 풍경을 한눈에 둘러보려면 용산 전망대로 오르는 게 좋다. 개펄과 갈대밭 사이를 S자로 굽이쳐 흘러나가는 거대한 물골이 장관을 이룬다. 해넘이 명소로 자리잡은 곳이다. 조선시대 돌성과 관아, 민가들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에선 해마다 10월 남도음식큰잔치가 열린다. 깊고 진한 맛을 내는 남도 음식들이 관광객을 기다린다. 조계산 자락의 아름다운 절 선암사와 송광사는 순천의 대표적인 볼거리. 순천시청 문화홍보과 (061)749-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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