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뿌리’ 한눈에 보고 명의 흉내 내볼까 박물관 기행

   서울약령시 한의약박물관
 한약재 모두 1천여종…해구신·사향노루 실물도
 동의보감도 보고 내 사상체질 공짜로 알아보고

 

  서울약령시 한의약박물관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787 동의보감타워 지하2층.
 주요전시물| 한의약 도구 등 관련 유물 420점, 사향·해구신 등 한약재 140여종, 서민 구휼기관 보제원과 서울 약령시 소개자료. 
 관람시간| 10시~18시(동절기는 10~17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3293-49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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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 나른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봄날. 보약 한 제 달여먹기 알맞은 때다. 혹독했던 겨울 견디느라 부실해진 건강 챙겨볼 겸 그윽하고 훈훈한 한약 내음에 푹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전통 한의약으로 건강을 제대로 챙기려면, 전통 한의약과 약재에 대한 기본상식 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서울시내 유일 약령시이자, 전국 최대규모의 한약재 유통상가인 제기동 일대 서울약령시 한쪽에, 작지만 훌륭한, 서울 약령시 한의약박물관이 있다. 누구나 언제든 찾아가 보고 배우며 체험할 수 있는 한약재와 한의학 상식 무료 전시·체험관이다. 한약재에 대한 기본상식을 공부하면서 건강관리 지침까지 챙길 수 있다. 동대문구청이 설립한 무료 박물관이다.
 
 왕명으로 설치된 4곳, 보제원 전광원 홍제원 이태원
 
 제기동 서울 약령시 거리로 들어서면 일단 매연 냄새를 압도하는 한약재 내음에 마음이 편해진다. 동의보감타워 지하1층으로 내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한 층 내려서면, 한복을 차려입은 해설사들이 반긴다. 30여명의 서울약령시협회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번갈아 근무하며 방문객들을 한의약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둑한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면 정면의 대형 화면에 한의약의 기본 정보들이 나타나고, 잠시 뒤 화면(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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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미술관·전시관은 언제나 왼쪽부터 시작이다. 먼저 고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면면이 이어지는 한의학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코너다. 모형으로 제작된 보제원 앞에 서서 단추를 누르면, 조선시대 서민 구휼기관인 보제원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온다. 조선시대 한양엔 네 곳에 왕명으로 설치된, 병들고 가난한 백성들을 맞아 치료하고 먹이고 재워주던 구휼기관이자 치료기관이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거저 나눠줬고, 병든 이들을 치료해 줬다. 또 국가 원로 등 어르신들을 초대해 잔치(기로연)를 베풀던 곳이기도 하다. 
 흥인지문 밖(현 안암동오거리)에 보제원이 있었고, 현 한양대 후문 쪽에 전광원이, 홍제동에 홍제원이, 남태령 고개에 이태원이 있었다. 이중 유일하게 그 터가 확인된 것이 보제원이다. 안암동에 보제원이 있던 곳임으로 알리는 빗돌이 있다.
 망태기·주루막(복령 등 땅속 뿌리 약재를 캘 때 찔러보던 도구)·괭이·칼 등 약재 채취도구(채약기구)와 약재의 무게를 달던 저울, 약연(약을 가는 도구), 제약기(약 달이는 도구) 등 선인들이 사용해 온 한약재 관련 도구들이 볼 만하다. 약을 갈던 도구에는 나무약연, 돌약연, 쇠약연, 돌절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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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재 따라 가는 도구 달라…침 자리 12경락·365혈 ‘콕콕’
 
 해설사 소순홍씨가 설명했다. “약재의 성질에 따라 약을 가는 도구도 달라집니다. 예컨대 인삼처럼 쇠를 싫어하는 성질이 있는 약재를 갈 땐 반드시 나무약연을 쓰지요. 인삼은 자를 때도 쇠칼이 아닌 죽도를 썼습니다.” 약을 달일 때 주로 도자기나 곱돌로 만든 용기를 썼다고 한다. 약을 눌러서 짜던 나무틀(약틀), 약재 이름을 쓴 서랍들이 무수히 달린 약장도 있다. 약을 저장해 두던 약장은 한약방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부유한 집안에선 대개 비상용으로 쓸 약재들을 담아두는 작은 약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름난 한의학 서적도 볼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허준의 <동의보감>, 사상체질을 분류해 놓은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등과 중국 의서인 이시진의 <본초강목>(1596년), <의학입문>(1575년) 등을 만난다. 소순홍씨는 “요즘엔 동의보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사실 수십년 전까지 국내에선 이 책의 존재 자체가 희미했던 책”이라며 “책의 진가가 알려진 것은 독일 생약계를 통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일찍부터 생약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 온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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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체 그림에 침 자리를 알리는 12경락, 365혈을 표시한 19세기의 ‘동인도’, 작은 종이 두루말이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한약 비방문을 적어 지니고 다니던 요약집성방, 진역총론 등도 눈길을 끈다. 12경락을 표시한 화면 앞에서 소씨가 말했다. “주먹을 쥘 때 엄지까지 감싸쥐는 것이 편안하다는 이들이 있죠. 이런 분들은 대체로 폐기능이 약한 분들입니다. 폐 관련 경락이 엄지까지 뻗어 있지요. 검지엔 대장, 새끼손가락엔 심장 경락이 분포해 있습니다.”
 소씨는 그러나, 이런 한의학 이론은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서양의학계에선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동양의학은 철학에 바탕한 이치학으로, “과학보다 앞서 나간 의학”으로 볼 수 있다고 소씨는 설명했다.
 
 광물성 약재의 경우 직접 섭취하면 90% 이상이 독
 
 의원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침과 침통, 이제마의 사상체질 분류 자료를 보고 약재 채취와 유통과정을 모형으로 전시한 코너로 간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빨리 쉽게 한약재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산에 움막을 짓고 약초를 채취하는 모습, 집으로 가져와 1차 가공하는 과정, 시장에서 거래된 뒤 한의원에서 소비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다음 코너로 드니 은은한 한약 내음이 전해져 온다. 모두 1천여종에 이른다는 한약재 중 140여종의 약재들을, 식물성·동물성·광물성 약재로 나눠 실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소씨가 먼저 산약(마)이 든 유리병을 가리켰다. “약재로 쓸 땐 찐 다음 말려서 사용합니다. 소화기 계통에 아주 좋은 약재죠.” 당귀는 혈액을 보강해주는 대표적인 보혈제요, 강황은 갈아서 향신료를 첨가한 뒤 카레의 원료로 쓰는 약재이며, 천마는 중풍·마비 등 머리와 관련된 질환에 좋은 약재라고 소씨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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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성 약재 중 ‘자’ 자가 붙은 것은 열매 약재를, ‘피’ 자가 붙은 것은 껍질 약재를 가리킨다. 오미자·오가피 등이 그것이다. 소씨는 “요즘 사람들은 몸에 좋다면 다 채취하는데, 열매를 사용하는 약재건, 뿌리를 쓰는 약재건, 껍질을 쓰는 약재건 모조리 뿌리째 캐거나 나무 전체를 잘라 가져가는 마구잡이 채취가 다반사”라며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약재로 쓰이는 식물들이 언젠가는 멸종 위기를 겪게 될 게 뻔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반 약재 전시외에, 유사약재 감별법, 향이 좋은 약재들, 사용이 금지된 동물성 약재, 독성이 강한 약재들을 따로 전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광물성 약재의 경우 직접 섭취하면 90% 이상이 몸에 해롭기 때문에, 반드시 법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부러진 뼈를 잘 붙게 하고 어혈에 좋다는 ‘산골’(황철광)이란 광물의 경우 채취한 뒤 식초에 담갔다가 꺼내 불에 달구는 과정을 아홉 번 거쳐야 한다. 이것을 가루를 내어 0.1g씩 섭취하면 뼈가 잘 붙는다고 한다.
 산골 채취로 이름난 곳이 홍제동인데, 지금도 산골을 채취하던 광산이 남아 있다고 한다. 팔각회향·박하·자단향·당귀 등 ‘향이 좋은 약재’들은 구멍이 뚫린 통 안에 전시해 직접 향을 맡아볼 수 있다. 소씨는 “팔각회향은 베트남에서 나오는 약재인데, 타미플루를 추출할 수 있어 신종플루가 대유행했을 때 생산지 마을이 큰 돈을 벌었다”고 전했다.
 
 한방체험도 해보고 약령시 들러 보약 한 제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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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듣던 물개 수컷의 성기인 해구신, 사향노루의 사향주머니, 작은 뱀인 백화사 등도 실물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산삼·녹용, 한방차·한방음식·한방목욕용 약재를 둘러보고, 토사자·행인 등 피부미용에 좋은 약재, 진피·인삼 등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약재, 숙지황·천궁 등 비만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약재들을 만난다. 약령시의 역사와 세계 약재 산지, 서울약령시 소개 자료를 살펴보고 나면 전시관 뒷문이다.
 박물관 입구 옆엔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약 갈기, 약첩 싸기 체험을 진행하는 한방정보체험실이 있다. 옆의 한방체험실은 어른들이 무료로 사상체질 검사, 혈압과 혈압 나이 측정을 해보는 곳이다. 한의약박물관 들른 김에 본격적인 서울 약령시 탐방에도 나서볼 만하다. 1960년대부터 형성된 시장이지만, 지금은 1천여곳에 이르는 한의약 관련 업소들이 밀집해, 전국 한약재 물동량의 70%를 유통시킨다는 국내 최대 한약재 시장이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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